240611 화요전도대: 시편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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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찬송하시겠습니다.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52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에돔인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다고 그에게 말하던 때에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화요전도대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은 사실상 전반기 화요전도대 마지막 전도인데요. 전반기 동안 전도하신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는 씨를 뿌리고 물을 주었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우리의 전도로 이 오정동과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전반기 마지막 전도를 하러 가기에 앞서 잠시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한 뒤에 나가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시편 52편으로 의인을 괴롭히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시입니다. 오늘의 이 시편을 통해 의인을 보호하시고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함께 살펴보면서 오늘 있을 전도를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도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오늘 시편에 등장하는 악인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악인을 “포악한 자여”라고 말하면서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라며 이 자는 자신의 악한 계획을 자랑하는 자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 시편 기자는 이어서 약간 어색한 말을 하는데요.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라고 말합니다. 뜬금 없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는 듯하는데요. 이것은 수사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항상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앞에서 자신의 악한 계획을 자랑하는 악인을 고발하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이 끊임없이 지속된다는 것을 어찌 깨닫지 못하는가?”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은 이 악인의 자랑을 어리석게 합니다. 하지만 악인은 이것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시편 기자는 이어서 이 악인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고발하기 시작합니다. 2절에 나타나는 처음의 고발은 악인의 말에 대한 것입니다. 이 악인의 말은 심한 악을 꾀하는 말로 그가 말하는 것이 악한 계획을 품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로 겉으로는 부드러운 말일 수는 있으나 속임수가 가득한 “날카로운 삭도 같”은 말이라는 겁니다. 삭도가 날카로우면 얼마나 잘 베이겠습니까? 그래서 이 악인의 말은 날카로운 삭도와 같아서 여러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말입니다.
또한 이 악인은 3절에서 선보다 악을 더 사랑하며 의를 말하기 보다는 거짓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이 악인은 선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아닙니다. 단지 이 악인은 선보다는 악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또한 옮으며 진실한 말을 하기보다는 거짓을 말하기를 더 좋아하는 자입니다. 이것은 죄인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도 있지만, 선행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고, 그들에게 악행을 용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죄인은 얼마든지 악을 선택하게 될 겁니다. 본성적으로 악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가 고발하는 이 악인도 철저하게 자기 본성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이 자는 자신의 의지대로 악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악인은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합니까? 4절은 이 악인의 혀가 간사한 혀를 가진 자로서 이 자가 하는 모든 말은 간사함, 즉 선보다는 악한 말을 하고, 진실보다는 거짓을 말하며, 타인을 북돋아 주거나 복이 담긴 말을 하기 보다는 날카로운 삭도와 같이 상처를 주는 말로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 자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간혹 있지 않습니까?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을 우리가 마주할 때 “도대체 왜 저런 말을 하지.”, “저런 말을 하면 무슨 득 될게 있나?”하는 질문을 가지게 될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괴롭힌다면 우리는 더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의인은 이 악인에게 단 한번도 악인과 똑같은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악인은 이 의인에게 악행을 저지릅니다. 남을 해치는 말을 의인에게 하는데 이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만약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이와 같은 상황이 우리에게 닥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이 악인을 심판하실 것을 말합니다. 5절입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하나님이 영원히 멸하시는데, 어떻게 멸하시냐. 붙잡아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너의 뿌리를 빼신다 라고 말합니다. 특히 땅에서 뿌리를 빼신다는 것은 뿌리는 식물이나 나무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에게서 뿌리를 빼게 되면 생명이 사라지게 됩니다. 뿌리를 뺀 식물이나 나무는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이 사라져 결국 죽어버리고 말 겁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 악인을 마치 뿌리가 뽑혀 결국 죽어버린 나무와 같이 만드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저주의 말 같습니다. 결국 “나에게 악한 말을 하는 너 죽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시편 기자는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들지라도 하나님께 악인에 대한 심판을 맡기는 것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 빼시리로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의인은 하나님을 믿는 자이기에 악인과 다르게 자신의 힘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심판마저도 맡기는 사람입니다. 또한 자신을 믿는 의인을 사랑하시고, 자신을 믿지 않고 악을 행하는 악인은 미워하시기는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거라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목격하게 될 때 의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6-7절입니다.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바로 이 악인에게 임한 심판을 보고 먼저는 두려워 하게 되고, 그 다음으로는 심판받은 악인을 비웃게 됩니다. 이전에는 악인이 의인을 핍박하고 조롱하였다면,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어 의인이 비웃게 된 것이죠. 이렇게 비웃으면서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않고 자기 재물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임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재물이 풍부하고 권력이 강한 자들 중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그러한 자들을 많이 목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악을 저지른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강함을 의지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가 나타나게 될 겁니다. 지금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나중에 최종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악인이 있을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악인에게 예정된 것은 영원한 멸망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악인과는 대조적으로 의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8절이 그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것에 의지하는 자가 의인이며, 이 의인은 감람나무와 같은 사람입니다. 감람나무는 올리브나무로서 수백 년을 지탱하며, 나무에서 맺히는 열매, 즉 올리브는 여려 면에서 아주 유용한 열매입니다. 우리가 지금도 올리브유를 사용하기도 하고 성경 당시에는 기름 등잔으로 사용하고, 심지어 상처를 치료하는 데 올리브 기름을 바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올리브나무는 하나님의 집에 있습니다. 올리브나무 자체로도 아주 뛰어난데, 하나님의 집에 있으니 완전한 안전이 있는 올리브나무입니다. 악인의 재물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면 없어질 것들이지만, 의인이 거하는 하나님의 집에는 완전한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완전한 풍요로움과 안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의인은 이것을 복으로 받습니다.
그리하여 의인은 이것을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을 9절에서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속임수와 파괴를 사랑하는 불신자들에게서 그분의 사랑을 신뢰하는 자들을 언제나 보호하고 복을 주십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의인들 위에 악인들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보다 더 강해보이며 때론 신자들을 핍박하고 파괴시키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들은 결국 심판받게 됩니다. 우리가 이 땅 가운데 살 때에 악인들이 우리를 괴롭힌다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악인들과 다르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신원해주시기에 우리는 그저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인자하심을 의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분을 의지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가 되는 큰 복을 누리게 될 겁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악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게 만들어주셨기에 이러한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9절처럼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합니다.”라고 찬양하게 될 겁니다.
우리가 전도를 나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직까지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이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와 같이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푸른 감람나무가 되는 복 받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전도를 나갑니다. 고작 종이 한 장, 사탕 몇 개, 종량제 봉투 한 장이지만, 이것을 하나님께서 쓰셔서 이 오정동과 대전 전체가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가 되는 큰 복을 누리게 되는 지역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