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9장 21-41절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동” / 찬5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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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누가가 소개하는 바울의 에베소 사역의 핵심은
에베소를 지배하 는 두 가지 영적 힘인 마술과 아데미 신전에 대한 복음(“이 도”) 의 도전이다.
마술이 아무것도 아니듯, 아데미 신전과 그 위상 역시 그렇다(혼돈과 무질서).
그럼에도 데메드리오와 서기장의 매우 설득적인 연설이 대조를 이룬다.
전자는 사람들의 선동과 응집을, 후자는 사람들의 해산을 목적한다.
전자는 경제적 타격을 후자는 정치적 타격을 우려한다.
20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사도행전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십자가의 도로 인하여 세력을 얻었고, 흥왕(부흥)하였습니다.
마술을 믿던 도시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아데미 신을 섬기는 도시가…어떻게 되나요?
사도행전 19: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큰 소동이 생겼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요?
사도행전 19:26–27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 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우상조각-사장)의 매출이 떨어졌음”- 많은 직원이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됨.
장기적으로 아데미 신전도 무시당하며, 그 신의 위엄이 떨어질 것입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요?
마술을 의지하던 도시가 마술을 버리게 되는 모습을 보았기 떄문입니다.
사도행전 19: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은 오만이나 되는 가치를 불살랐습니다. 신적 행위를 하였지만, 지금 은장색의 모습에는 돈의 가치를 내려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신과 신의 전쟁뿐 아니라, 감춰진 동기는 결국…”나의 배부름”이 내포되었음을 볼 수 있는 것이 26절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연설(선동)이후에 군중들이 응집합니다.
사도행전 19:2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바울과 일행을 붙듭니다. 계속 소리칩니다. 무려 두시간 동안 소리칩니다.
사도행전 19: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에베소 온 시가 떠내려 갈듯이 그들은 분위기를 조장하였습니다. 29절의 연극장을 울리는 소리가 아시아 지역의 대도시 에베소 안에 가득히 울려퍼졌습니다.
마술을 통하여 자기 배를 채우던 사람들…이 중 대부분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아데미를 통하여 자기를 보호하려는 사람들…이들은 예수님의 사람을 무릎 꿇리려 합니다.
물질의 가치가 복음을 가로 막을 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을 굳게 하고, 변화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 우리 안에 이러한 물질의 가치관이 내제되어 있다면, 다시금 점검 합시다. 그리고 복음 앞에 내려놓읍시다.
주여, 당신이 이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당신이 하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서기장을 사용하십니다.
마치 바울이 회당에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을 통하여 유대인들을 설득하는 모습과 유사합니다.
서기장 또한 논리정연하게 몇가지 정당한 이유를 밝히며 그들을 설득합니다.
신을 위협한 적이 없다. 도적질 하지 않았다. (37절)
합법적 절차”재판”을 사용하라.(38절) 민회에 요청하라(39절)
오히려 우리가 선동(소요)에 휘말릴 수 있다(40절)
결국 그들은 서기장의 요구에 따라 해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서기장의 지혜로운 연설을 통해 모든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신 것입니다.
때로는 복음을 전하다 어려움에 당면할 때가 있습니다. 복음이 흥왕할 수록 반대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일하십니다. 바울의 손으로 고치고 치유하셨던 것처럼…그의 가르침으로 변화시키셨던 것처럼 그를 사용하시고자 그를 보호하십니다.
표면에 등장하시지 않지만, 복음의 승리와 확장을 위해 정의롭고 공정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내일 본문에 등장할 드로아, 밀레도를 지나 예루살렘까지 하나님은 그를 인도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복음을 들고 걸어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때로는 흥왕을 경험하기도 하며,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표면에 드러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일하십니다. 오늘 걸어갈 우리의 걸음마다 함께 하십니다.
서기장을 통하여 바울을 도우시는 것처럼 우리를 지켜 보호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