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장 1-16절 “유두고를 살리신 하나님” / 찬16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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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20장은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와 아가야 두 지역을 경유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이 중에서도 바울의 상세한 이동경로와 밀레도에서 행한 그의 고별 설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1-6절 드로아로 온 바울의 여정
7-12절 유두고를 살린 사건
13-16절 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 여정
17-38절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한 고별설교
서기장의 개입으로 대소동이 마루리 되자 바울은 원래 의도대로 마게도냐로 떠나기로 합니다.
사도행전 20: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가는 중에 각 지방을 경유합니다. 어느 지역인지 전부 기록하지는 않지만, 2차전도여행시 경유하였던 초대교회일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는 5절에 등장하는 동행자를 통하여 유추할 수 있습니다.
가는 길에 어려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20:3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그럼에도 때에 따라 돕는 은혜로, 드로아에 머물게 됩니다.
사도행전 20: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오늘 특별히 묵상하고자 하는 부분은 바로 바울의 설교와 유두고 사건입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도 떠나기 전날 까지 강론합니다. 레고(논하다), 디아레고마이(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하다)
밤중까지 교제하며 권면의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20: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그 주간의 첫날이라는 표현은 주일을 이야기 하기에 주일 밤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에요.
떡을 떼려하여 모여(성찬)는 예배를 드리고 있었음을 표현합니다.
특별히 20장 드로아의 예배는 어느날 보다도 긴 시간을 드리고 있었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사도행전 20: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윗다락까지 많이 모여서 불을 키고 말씀을 나누며 예배하였습니다.
이 때 일이 일어나죠,
1. 두 차례나 언급하는 것처럼(7,9절) 예배가 길었습니다. 바울의 설교가 길었다는 거세요.
2. 유두고가 졸음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20:9 “유두고라 하는 청년(종)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청년으로 번역된 단어는 종의 의미를 갖습니다. 종으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말씀 앞에 있기에 졸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지친 상태에서 참여했음을 표현합니다. 근데 바울 설교가 길었다고 9절은 표현합니다.
결국 그는 죽었습니다. 이 때 바울은 설교를 중단하고 그 종을 보며 껴안는 모습이 10절입니다.
사도행전 20:10 “바울이 내려가서(떨어져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이 표현은 신체적으로 바울이 유두고와 함께 함을 그려가고 있습니다. 이와 마음과 육체가 하나됨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생명이 그에게 있다.
떡을 뗴고, 떡을 먹다라는 표현 사이에 생명이 있음을 그려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유두고의 생명이 어디에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을까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사건, 생명이 있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데요.
유두고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사건은 성만찬의 핵심인 예수님과 연합한 신자의 죽음과 부활을 연상합니다.
모든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죽고 그의 부활 생명을 통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성찬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 되십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나의 생명이 당신에게 있습니다”라는 고백이지요.
오늘 사도바울은 “생명이 그에게 있다”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대로 죽었을 수도 있어요.
피곤한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와 졸다가 죽은 유두고는 천국에 갔을까요?
“네, 저는 갔다고 믿습니다” “순교로 세워줘야죠…” 얼마나 힘든 하루중에 늦은 설교 예배에 참여하는 유두고인데요.
제가 이런 목회자가 되길 소망하십니까? 네 저는 유두고만큼이라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오늘 본문은 종, 청년, 피곤함에 포커스가 있는게 아니에요.
예배시간에 졸다가 죽습니다…라는 경고가 아니에요.
오직 “예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라는 내용입니다.
성찬의 참된 의미를 누가는 그려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 안에 생명이 있음을 믿고,
오늘도 묵묵히 유두고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 피곤하다 할지라도 주를 붙들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또한 힘이 된다면,,,그 육체를 붙들고 주편에 머물다가 생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