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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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스톱 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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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의 남편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오셨는데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사랑합니다! 논스톱 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절제해야 하는 부분들이 참으로 많다. 거짓말도 해서는 안되고, 도둑질도 하면 안 되며, 남을 미워하거나 돈을 내 마음대로 써서도 안 된다. 또 당연히 그리스도인들은 술도 마시지 못하는 것이 세례 받기 전에 고백하며 약속했었던 부분이다. 주일에 놀고 싶어도 주일 성수를 해야하며, 그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섬김을 하루종일하다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우리 가운데 보게 되는 모습이다. 우리는 분명하게 아는 사실은 이 모든 일들을 그냥하라고 하면 아무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몸이 힘들고 지치더라도 교회와 이웃을 계속해서 섬길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 이렇게 피곤한 시간에 모인 여러분이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주님 만나고자 이 자리에 모인 줄 믿는다. 이 밤에 이전보다 더 뜨겁게 주님을 경험하고 만나는 논스톱 기도회되길 소망한다.
오늘 말씀은 이제 마지막 대사사인 ‘삼손’의 이야기이다. 말씀을 살펴보니 이스라엘이 또 다시 여호와께 악을 행한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여호와께서 이번에는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들 손에 넘기셨다. 도대체 블레셋인들은 누구인가? 주전 12세기에 팔레스타인 남서부 해안에 정착한 블레셋 사람들은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사사 시대 후반에 들어가면 이스라엘이 차지한 땅을 심각하게 위협하기 시작한다. 이미 사사 시대 초에 블레셋 사람들이 단 지파를 산으로 쫒아 들여서 단 지파가 더 이상 분배받은 기업을 차지하지 못하고 북쪽의 라이스로 옮겨 갔음을 알 수 있다. 후에 사울 시대에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으로 나타난다. 그 이후에 로마 시대 때 유대인들을 혐오하여 핍박하던 로마 황제가 유대인들이 살던 땅의 이름을 이스라엘의 원수인 블레셋으로 지어서 팔레스타인이 된 것이다. 이렇게나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이 40년을 괴롭힌다. 사사 시대 중에 역대 가장 길게 외국의 학대를 받은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찾거나 부르짖지 않는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은 외적의 침입을 받아서 학대를 당하면 그래도 여호와께 부르짖어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호와를 부르짖지도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갑자기 한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소라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2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단 지파와 유다 지파의 경계 도시였다. 그때 마노아는 단 지파 중 북으로 올라가지 않고 소라 지역에 남아있던 남은 자였다. 마노아에 대한 다른 부분들은 언급하지 않은 채 오직 아내가 불임이라는 점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노아나 부인은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부르짖거나 기도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들이 기도하지 않고 침묵하는 장면은 성경 기자의 의도가 있다. 즉 그녀의 불임을 이스라엘의 당시 ‘지금 상황이 이렇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마노아의 부인처럼 불임이었고 희망이 없었다. 미래를 스스로 창출할 능력이 없어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자포자기하여 더 이상 구원받고자 하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기에 40년간 블레셋의 압제를 받으면서도 부르짖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마노아의 부인의 불임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삼손의 출생을 보여주는 적절한 배경이 될 뿐 아니라 절망으로 자포자기하려고 하는 이스라엘의 처절한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잘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구약에서 불임이라는 것은 그 여인과 집안은 미래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대를 이어갈 수도 없고, 집안에서 일할 사람도 없으며, 당연히 상속도 받을 사람이 없는 그야말로 완전히 망했다고 보는 것이 당시 시대에서 말하는 ‘불임’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마노아의 부인의 불임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불임을 자신의 창조의 무대로 삼으시기 때문이다. 사사 삼손은 다른 사사들과 다른 특징이 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부모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여호와의 사자는 단 지파의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 나실인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고해준다. 그러면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강조한다. 태어날 아이는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바쳐진 자이다. 또한 머리를 자르지 말 것도 말한다. 그 아이는 나실인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실인 규정은 민수기, 6장에 나온다. 이것은 본인 스스로가 나실인이 될 경우를 말한다. 다시 말해, 나실인 서원 법이다. 나실인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고 포도나무 열매도 먹지 않는다. 나실인 서원을 하는 기간 동안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 또한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안는다. 나실인은 죽은 시체에 몸이 닿았을 경우 7일째 되는 날 머리를 밀고 8일 째 되는 날 산비둘기 2마리로 제사를 드린다. 다시 몸을 구별할 날을 선정하여 일년된 숫양으로 번제를 드린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바치겠다고 서원을 한다. 그러나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에 의해 나실인이 될 것이라고 고지를 받은대로 태어날 삼손을 나실인으로 드리게 된다.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의 남편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오셨는데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여기서 보게 되면 마노아의 부인, 삼손의 엄마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의 이름과 출신을 ‘모르다가’ 나중에 ‘알게’되는 방향으로 스토리가 시작된다. 삼손의 이야기는 하나님에 대해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것을 성취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이어지는 스토리는 마노아가 이 여호와의 사자의 이름과 출신을 알려는 방향으로 진행되게 된다. 마노아의 부인은 여호와의 사자의 약속을 남편에게 전달한 것이다.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원래 여호와의 사자의 약속과 마노아의 부인의 보고를 비교하면 ‘그가 죽는 날까지’가 추가되어 있다.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는 ‘평생 동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죽는 날까지’라는 말은 삼손 이야기의 주제를 드러내며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가 될 것인지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삼손이 머리를 깎이고 힘이 약해지며 몰락하는 것은 나실인이라는 신분 때문이다. 삼손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나실인으로서의 신분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택하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우리의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18살 때,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꿈은 댄스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시던 적이 있었다. “나 요즘 기도하는데, 너가 목회자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네? 근데 엄마는 개인적으로 너가 연예인했으면 좋겠어.” 그때 이야기를 듣고 그런가보다 하고 가볍게 넘겼었다. 그러다가 댄스연습실에서 푸쉬업 200개를 하면서 워밍업을 하던 중에 이걸 평생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중1 때부터 꿨던 댄스가수라는 꿈을 서서히 접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행복할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고3 여름방학 때, 인도 단기선교를 다녀오게 되었는데 그때 복음을 전하는 삶이 너무 행복했었고, 앞으로도 이 일을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목회자가 되기로 결단하고, 기독교교육학으로 진학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그때 군대를 가게 되었다. 내가 친했던 목사님이 자신이 군대에 갔을 때, 군대에서 힘든 일을 다하면서 주말에는 대대 군종병으로 이등병 때부터 설교하고 왔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엄마가 옆에서 듣고 “우리 아들도 그렇게 되기를 기도해야지!”하고 실제로 나는 운전병이 되어 대대 군종병이 되었고, 일병이 되자마자 당시 20년도 1월이었는데 코로나가 터져서 목사님이 부대에 들어올 수 없게 되어 전역할 때까지 설교하고 나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엄마의 기도가 영빨이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각 사람마다 나에게 원하시는 뜻에 맞는 기도를 할 때, 응답이 제일 빠르고 기도한대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모든 일을 누구의 뜻대로 결정하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이미 우리를 선택하여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모인 우리는 왜 하나님이 이곳에 부르셨는지 당장에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나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은 결국 훗날 왜 우리가 지금 기도를 해야했고, 논스톱 기도회를 모이게 하셨을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알게 될 것을 확신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는 때가 분명히 온다. ‘복음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까’ 아니면 ‘내게 주어진 일을 복음의 통로로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까’ 등 하나님께 달려나가고 싶은 뜨거운 마음이 들 때가 생긴다. 그것은 나의 의지로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여러분 각자를 통해 일하실 때가 시작된 것이다. 이를 위해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구해야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그는 그저 ‘약속의 땅으로 가라’는 명령에 순종했는데, 어디로 가야할 곳도 모르는 채로 자기 고향을 떠났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 마노아와 부인도 하나님의 사자가 나실인으로 드리라고 명령하고 실제로 나실인으로 드렸지만,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 생각보다 내 뜻보다 하나님은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비행기를 탈 때 수화물을 맡기면 어떻게 운반하고, 관리하는지 다 알고 맡기지 않는다. 항공사에게 전적으로 맡긴다. 그러니 안심하고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인생을 맡긴다고 고백할 때도 이해가 되서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이 아니다. 믿기 때문에 맡겨드리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이 밤에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드리기 소망한다. 또 이렇게 기도하기 원한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처럼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셨을 때처럼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길 원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이 밤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하여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충성된 자라고 칭찬받으며 하늘 상급을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