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14 금요기도회: 시 63

금요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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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부르시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큰 은혜를 베푸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날마다 살아가면서 저희가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하나님 앞에 서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존재임을 깨닫기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없다면 하나님 앞에 결코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와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자비에 감사하며 오늘도 그런 하나님께 기도하러 나아갑니다. 이 시간도 함께해주시고, 자신의 백성이 부르짖는 소리를 다 들으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토설하는 이 기도회가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강을 얻고 한 주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63편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63 NKRV
다윗의 시,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께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요즘 여름과 같은 날씨인데요.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기도하는 자리에 잘 오셨습니다. 이 시간에 한여름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 그늘에 가듯이 우리의 영혼의 그늘이 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모든 위로와 소망을 얻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은 말씀은 시편 63편으로 왕인 다윗이 광야에서 도망다니고 있을 때에 지은 시편입니다. 이 시편이 사울을 피할 때인지 압살롬을 피할 때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로 인해 광야로 피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위기를 피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데요.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찾았는지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에게 이 시편은 무엇을 가르치며 어떤 유익을 주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다윗은 1절에서 “나의 하나님”이라며 하나님을 찾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데요. 이것은 자신과 언약 관계 속에 있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언약 관계 안에 있는 하나님을 다윗은 지금 갈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에게 하나님이 간절히 필요하고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한 모습으로 묘사하는데요.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바로 물이 없는 광야에서 육체가 목마르듯이 자신의 영혼이 지금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다윗은 “주를 앙모하니이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냥 목마름이 아니라 실신할 정도의 갈급함을 표현하면서 지금 자신이 영적인 외톨이가 되어 정신이 희미해진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갈급해진 다윗의 영혼은 그의 육체까지도 힘들게 할 정도의 큰 갈망을 겪고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 속에 어느 누가 이토록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찾을까요? 어느 누가 “주를 앙모하나이다.”라며 하나님을 갈급해할까요? 우리가 위기의 순간에 돌파구는 찾겠지만, 진정한 돌파구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어느 누가 깨달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다윗은 다른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물을 찾듯이 하나님만을 갈망하였습니다.
이런 긴급한 갈망 가운데서 다윗은 과거를 떠올립니다. 어떤 과거를 떠올리냐면, 성소와 성소에서 하나님으로 인해 누린 만족스러운 경험을 했던 것을 떠올리기 시작합니다. 2절입니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예배했던 과거를 떠올립니다. 그랬을 때 자신에게 주신 말씀과 은혜를 경험했던 것이 생각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성소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자신의 영적 필요가 채워졌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다윗이 성소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찾아갔지만, 그가 직접 두 눈으로 하나님을 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집중하자 그의 마음에는 마치 광야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여 모든 갈증이 채워진 것처럼 만족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 자신이 이러한 어려움에 있더라도 3절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자신의 생명보다 낫다고 찬양합니다. 현재 다윗은 고통스럽고 어려운 광야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 있더라도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며 즐거워 합니다. 다윗은 아마 “내 영혼 평안해”라고 찬양했을 겁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4절에서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이 성취되도록 기도하는 모습인 “손을 들”면서 기도합니다. 특히나 자신의 평생에 그리하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5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는데요.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이것은 지금까지 살펴본 두 가지를 다윗은 합치는데요. 바로 하나님 안에서 얻은 만족과 그 만족에 따른 찬양입니다. 앞에서 다윗은 하나님으로 인한 만족을 광야에서 얻은 물에 비유하였다면, 여기서는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는 일에 비유하여 하나님으로 인한 만족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묵상하니 만족하게 되고, 자연스레 찬양이 터져나옵니다. 찬양하되 어떻게 찬양합니까? “기쁜 입술”, 즉 기쁜 마음으로 찬양합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챤양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 그리고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묵상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으로 인해 만족하게 되고 자연스레 기쁜 마음으로 찬양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찬양하고 싶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다윗의 이런 찬양이 어디까지 이어집니까? 수면을 취하는 침대에까지 이어집니다. 6절입니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다윗은 자신이 자는 침대에서조차 하나님을 기억하며 새벽에 일어났을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찬양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7절이 보여주듯이 역시 하나님은 자신의 도움이 되셨고 날개 아래에서 보호하셨기 때문에 즐겁게 부르겠다는 겁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을 갈급해 하는 상황에서 과거에 하나님으로부터 만족했던 경험을 떠올리자 그의 영혼과 마음이 만족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기쁨의 찬양이 터져나오게 된 것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누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언약 관계를 다시 언급합니다. 8절입니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께 가까이 있다고 말합니다. “가까이 있다.”, 또는 “가까이 따르다”라는 이 말은 마치 뭔가에 딱 붙어 있다는 뜻입니다. 바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의한 충성심입니다. 지금 쫓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다윗은 자신에게 만족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니 하나님께 꼭 붙어 있기로 맹세합니다. 지금 다윗은 육체적으로 성소에 직접 갈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광야에 있습니다. 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어도, 광야에서도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사랑이 압도하여 하나님과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다윗은 고백합니다.
이러한 다윗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강한 능력의 오른손으로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관계를 붙들고 계시니 다윗도 하나님께 붙들릴 수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특별히 성소를 마련하셨지만, 성소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지금 광야에 있는 다윗과도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이 다윗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붙들고 계시기에 다윗은 하나님만을 붙들기로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만을 붙드는 것도 참 유익이며 큰 복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적들에게 쫓기는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 상황에서 구원해주실 것도 기대하며 확신하기에까지 이릅니다. 그 내용이 9-11절입니다.
9절은 한글 성경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그러나 그들은”이라고 시작합니다. 바로 앞에서 다윗에게 만족을 주시고 다윗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은 적들에게는 다르게 하실 것을 말합니다. 9절은 다윗의 영혼, 즉 다윗의 생명을 찾아 멸하려는 자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땅 깊은 곳에 들어갈 것을 말합니다. 땅 깊은 곳은 무덤 안이나 죽은 자들이 가는 스올을 말합니다. 바로 다윗의 생명을 찾아 멸하려는 자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생명을 잃고 멸망 당하게 됩니다.
또한 10절은 이 적들이 당하게 될 멸망을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칼의 세력에 넘겨진 다는 것은 전쟁 중에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윗의 적들은 전쟁 중에 죽게 되고, 고상한 무덤조차 가질 수 없게 될 겁니다. 또한 승냥이의 먹이, 즉 남겨진 것은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짐승의 먹이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 다윗의 적들이 처하게 될 운명입니다. 아마 적들은 다윗이 광야에서 죽어, 승냥이의 무리가 다윗의 시체를 먹어치우는 것을 보기 원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적들의 바람은 오히려 자신들의 운명이 될 겁니다. 다윗이 자신의 적들을 향해 이러한 기대를 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자인 의인을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지키고 보호하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쫓기는 신세로 광야에 있지만, 하나님으로 만족하게 된 의인인 자신과 다르게 자신을 공격하는 악인들은 멸망하게 될 것을 다윗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악인들은 멸망당하게 될 것이지만, 의인인 자신은 11절에서 성소에 돌아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신 것을 축하할 것을 동시에 기대합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라는 표현은 다윗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가 기뻐할 이유를 말합니다. 또한 “주께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라는 표현은 여호와께 충성을 맹세한 모든 자, 즉 여호와만을 믿음과 순종의 대상으로 사는 모든 자는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으로 인해 만족하고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 충성을 맹세한 자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의인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거짓말하는 악인의 입은 막히는, 다시 말해 멸망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오늘 시편에서 광야에서 쫓기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길 갈망하지만, 그가 하나님으로 인해 만족했던 과거의 경험을 떠올렸을 때 그의 마음 속에는 만족과 평안으로 가득 찼고, 평생에 하나님을 찬양할 것과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다윗을 멸망시키려는 악인은 멸망할 겁니다. 그들은 칼의 세력에 넘겨질 것이며 승냥이의 먹이가 될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도움과 날개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편에 등장하는 다윗의 모습은 의인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다른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 갈증을 느끼고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시편의 다윗과 같은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제일 처음에 이야기해듯이 우리는 위기의 순간 속에서 하나님을 갈급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압니다.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왔을 때 우리는 제일 먼저 동요하며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찾는다는 것을요. 다른 것으로부터 위로 받고 싶고 다른 어떤 것이 나에게 없어서 이런 위기가 찾아왔다거나 아니면 그곳으로 도피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결코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갈증을 채우려고 하지만, 우리의 갈증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갈증만 깊어집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떻게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어디로부터 얻을 수 있을까요? 해답은 11절에 있습니다.
11절에서 다윗은 “왕은”이라고 말하며 이 시편을 노래한 자신의 직분을 말하였습니다. 다윗은 단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이 시편을 지었다기 보다는 진정한 왕이신 오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이 시편을 노래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윗을 보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봐야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그 누구보다 바라시며 갈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삶에서 매 순간 하나님과 교제하길 갈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모습들을 떠올려보십시오. 그분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결코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광야에 계실 때 그분은 40일 동안 아무것도 마시지 않으셨으나 결코 갈급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하나님과의 교제만으로 만족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그 누구보다 즐거워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인간의 주된 목적이라고 가르치는 소요리문답 1문을 가장 잘 지키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광야에서 사탄이 시험할 때 세상 모든 만국과 영광을 주겠다고 말했지만, 그분은 이 세상 모든 나라와 그 영광보다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이 더 나았습니다. 다윗이 성소에서 찾은 즐거움을 예수님은 다윗보다 더 잘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이 63편을 이루신 참된 의인이십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만 만족하신 그리스도만이 자신을 공격하는 적들에게서 승리를 약속 받으실 수 있으며, 확신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만을 갈급해하지 않는 우리와 다르게 그리스도께서는 오로지 하나님께만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모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라 어떠한 위기 속에서 다른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겁니다. 내가 내 노력으로 하나님을 바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을 바라셨고, 우리는 그분의 바람이 맺은 열매를 누리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기뻐하려고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하나님을 기뻐하셨고, 나는 그분의 기쁨이 맺은 열매를 누리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즐거워하려고, 특히 새벽에도 묵상하려고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늘 하나님을 즐거워하셨고, 나는 그분의 즐거움이 맺은 열매를 누리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모실 때 우리는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고, 우리 안에 만족이 생겨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게 되어 침대에서 새벽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될 겁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 충성을 맹세하며 하나님만 붙들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이 모든 유익은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이것들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가능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위기의 순간 속에 계십니까?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아니면 나중에 위기를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도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하나님만을 갈망하는 참된 의인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모실 때 63편이 보여준 모든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적들로부터 승리하는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리스도께서는 함께 하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다윗은 하나님만을 갈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과거에 경험한 것들을 회상하였을 때 하나님으로 만족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어 광야에서 쫓길 때조차 하나님으로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경험을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합시다. 위기의 순간 속에 하나님만을 갈망하지 않는 우리를 하나님만을 갈망하는 우리로 만들어주신 그리스도께 감사하는 기도를 합시다. 또한 삶을 살아가면서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로 어떠한 순간 속에서도 하나님을 갈망하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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