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5장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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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

그리스도인을 위한 통독 주석 시리즈: 사무엘상 (묵상)
1. 다곤 신상이 언약궤 앞에 첫날 엎드렸습니다. 둘째 날에는 신상의 머리와 두 손이 잘려 나갔습니다. 냉철한 이성을 가진 블레셋이 이 사건들을 ‘우연’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그들은 잘려진 두 손과 머리가 닿은 문지방을 그 후 밟지 않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그들의 신앙이 얼마나 집요하고 맹목적인지를 보여 줍니다. 우리가 놓아 보내지 못하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함에도 끊임없이 다시 세우는 우상은 무엇인지 토의해 봅시다.
2. 블레셋 사람들을 보면, 다곤에 대한 맹목적 신앙을 가지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이성을 무한히 신뢰합니다. 이것은 불신자들의 심리를 보여 줍니다. 이들은 인생의 어려움 앞에서 미신과 신비를 찾아다니지만, 인생에 대한 자신감이 넘칠 때는 자신의 이성을 무한히 신뢰합니다. 그러나 무한한 이성 신뢰와 맹목적 신앙은 동전의 앞뒷면입니다.
3. 이스라엘은 엘리 제사장을 잃고, 여호와의 궤마저 빼앗긴 상황입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참 신이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와는 여전히 살아 계시고, 주권적으로 역사하심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블레셋 영토에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인생의 어려움에 처하면, 구름 뒤에 해가 없는 것같이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늘 아래 낮게 드리운 먹구름 뒤에 해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봅시다. 지금 내 삶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듯해도 구름 뒤에 해가 있듯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승리(손)
삼상 5:1–12
여호와의 궤가 다곤 신전에 안치되자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의 승리에 크게 고무되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부터 몇 개월간 자신들의 승리를 악몽으로 바꾸어 놓는 일이 발생한다. 하나님의 궤가 역사한 것이다. 이스라엘을 떠난 궤는 적진 블레셋 땅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을 나타낸다. 사무엘상 5장에서는 블레셋이 자랑하는 자유와 이성이 무력화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아울러 저자는 자유와 이성의 허울 이면에 자리한 블레셋의 맹목적 우상 숭배까지 비판한다.
해설
하나님의 궤를 아스돗 다곤 신전에 둠 5:1–2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엘리의 며느리가 이가봇을 낳으며 죽어 가는 순간에, 블레셋은 하나님의 궤를 아스돗으로 옮겨 갔다. 1절, 이 장면을 영화로 만든다면 엘리의 며느리가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외치며 죽어 가는 장면과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곤 신전에 설치하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궤의 이동 경로】
본문에 따르면 블레셋은 하나님의 궤를 전쟁터였던 에벤에셀(아벡 근처)에서 남쪽으로 약 56킬로미터 떨어진 아스돗까지 이동시켰다. 아스돗이 블레셋의 다섯 도시 중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아스돗은 블레셋 영토의 중간에 위치하며, 다곤 신전이 있는 유일한 도시였다.
아스돗으로 궤를 가져온 블레셋은 다곤 신전 안에 여호와를 궤를 둔다. 그것도 “다곤 (신상) 곁”에 둔다.
다곤 신상이 여호와의 궤 앞에 자꾸 넘어짐 5:3–5
3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5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블레셋의 자긍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언약궤를 가져온 다음 날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러져” 있는 . “엎드러진” 자세는 경배와 예배의 자세이다. 다곤이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은 어제 경험한 정치-군사적 현실과 상치된다. 블레셋 사람들은 일단 이 사건을 “우연”(삼상 6:9 참고)으로 간주하고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우지만(3절),
그러나 이튿날 다곤 신상과 함께 무너져 버린다. 다곤이 다시 한 번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린 것이다. 우연도 반복되면 필연이듯 다시 넘어진 다곤의 모습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을 것이다. 더구나 이번에는 몸통만 제자리에 있고 다곤의 머리와 두 손목은 잘려져 문지방에 놓여 있었다. 신전의 세로 길이가 50여 미터였음을 고려할 때, 신상이 넘어지면서 그 충격으로 머리와 손목이 부러져 문지방까지 굴러갔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지방에 놓인 부러진 머리와 손목, 제자리에 있는 몸통은 밤사이에 다곤과 여호와 사이에 전투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본문은 ‘부서지다’라는 동사를 사용하지 않고 ‘잘리다’(개역개정, “끊어져”)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카라트, kārat)를 사용했다. 또한 잘린 부위가 머리와 손목이라는 점도 주목하자. 고대 전쟁에서는 포로를 처형할 때 목과 손목을 자르는 관습이 있었다.
이처럼 잘린 머리와 손목은 전쟁 승리의 결정적 증거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몸통이 제자리에 있었다는 점이다. 종합해 보면, 다곤이 자기의 집(다곤 신전)에서 도망하려고 문지방을 넘는 순간 여호와에게 잡혀 목과 손을 잘린 후 몸통만 끌려 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블레셋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리를 보여 준다. 여호와가 다곤보다 능력 있는 신이다!
블레셋의 도시들에 독종이 발생함 5:6–10a
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8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9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10a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본 단락부터는 이야기의 무대가 다곤 신전에서 블레셋 영토 전체로 확장된다. 언약궤로 인한 재앙도 블레셋 신(다곤 신상)으로부터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확장된다. 이런 변화의 핵심에 ‘손’(야드, yad)이 있다. 신전 문지방에 무력하게 걸쳐진 다곤의 손과 달리 여호와의 손은 아스돗 사람에게 육중하게 임한다(6절, 개역개정, “엄중히 더하다”). 저자는 독종의 발생과 여호와의 손의 임재를 동시적으로 묘사한다. 여호와의 무거운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임하자 아스돗을 비롯한 주변 지역에 독종을 통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다곤 신상이 파괴된 때와 달리 아스돗 사람들은 이 재앙이 “이스라엘 신”으로부터 왔음을 즉각 간파한다.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다곤 신을 친다”(7절). 그리고 언약궤를 제거하기 위해 정치 지도자 회의(8절, “블레셋 사람의 모든 방백”)를 소집한다. 당시 블레셋은 단일 왕정이 아니라 다섯 도시 연맹체였기 때문에 국가의 중대사는 이 도시 국가의 대표들(방백)이 모여 결정했다.
【다곤, 물고기의 신】 8세기 아시리아 인장에서 발견된 그림으로 이 인장의 한가운데에는 생명의 나무가 있고, 물고기 모양의 두 사람이 호위한다. 다곤이 물고기의 신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이 인장의 물고기-인간을 다곤이라고 주장하지만 증거는 없다.
그들의 회의 내용을 보고하는 본문들 사이에 상당한 사본적 차이가 있기에,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 근거한 개역개정은 가드로 궤를 옮기는 결정이 군주들(방백들)의 합의에 의한 것같이 묘사하는 반면, 헬라어 칠십인역 성경은 가드 사람이 자원하여 언약궤를 자신들의 도시에 들인 것으로 묘사한다. 다음은 8절에 대한 칠십인역이다.
그들은 블레셋의 군주들을 소집하여 말했다.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해야 하는가.” 가드 사람들이 대답했다.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기시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겼다.
칠십인역이 옳다면 아스돗에서 많은 사람을 죽인 언약궤를 받겠다고 먼저 제안한 것은 가드 사람이다. 이것은 성경에 묘사된 이 사람들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가드에는 장수가 많았다. 거인 족속 아나킴이 살았으며(수 11:22), 유명한 거인 골리앗(삼상 17:4)과 그의 아우 라흐미(삼하 21:18–22)도 가드 출신이었다. 이들은 천성적으로 자신감이 넘쳤고, 그리스인의 자유로운 기개를 잘 실현하였다. 아마도 유행하는 독한 종기와 다곤 신전에 안치된 여호와의 궤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미신이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다른 형제들이 주저할 때 먼저 언약궤를 가져오겠다고 제안했다. 가드 사람들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칠십인역을 따르든 마소라 사본을 따르든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의견은 이 단계에서 아직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언약궤를 돌려보내면 자신들의 이전 승리가 부정되기 때문이다.
9절에 따르면 가드 사람들의 자신감은 그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언약궤가 가드에 입성하자 하나님의 손이 그들에게 무겁게 임하여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독한 종기로 목숨을 잃기 시작했다. 이 종기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논쟁이 많다. 어떤 학자들은 ‘독한 종기’(‘독종’, 개역한글)로 번역된 히브리어가 ‘대변 곤란’을 의미하는 아람어와 동족어라는 사실에 착안해 치질이었다고 주장한다(킹제임스역, “emerods in their secret parts” 참고). 그러나 치질은 사망에 이르는 병은 아니다. 다른 학자들은 쥐가 퍼트리는 임파선종이었을 가능성을 제안한다. 임파선종은 그대로 두면 감염자의 70퍼센트가 나흘 안에 사망하는 전염병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후에 황금 쥐 다섯을 황금 독종 다섯과 함께 만든 것을 고려하면 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무서운 독종을 경험한 가드 사람들은 언약궤를 임의로 에그론으로 보내 버린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방백 회의를 소집하여 에그론의 동의를 구할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아스돗에서 발생한 독종이 (여호와의 징벌이 아닌) 우연의 결과라고 떠들던 가드 사람들의 자신감은 찾아볼 수 없다. 언약궤를 통해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에 합리성을 중시하던 가드 사람들이 두 손 들고 항복한 셈이다.
여호와의 궤를 돌려보내기로 결정함 10b–12
10b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이르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11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케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에그론 사람들이 자기들 도시로 궤가 오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 언약궤의 입성과 함께 온 성에 임파선종이 발병하고 거리마다 주검으로 넘치자, 에그론 사람들은 언약궤를 넘긴 가드 사람들을 원망한다. 그리고 해결을 위해 블레셋 방백 회의를 다시 소집한다. 이번 회의에서는 지금껏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안건, 즉 언약궤를 돌려보내는 안건이 에그론 사람들의 손으로 제출되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본처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케 하자”(11절)고 제안한다. 고통 중에 있는 에그론 사람들은 블레셋의 군주들(방백들)보다 덜 정치적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적·군사적·신학적 우위라는 명분보다 생존이라는 실리에 충실한 제안이다.
12절에 따르면 독종으로 인한 고통의 부르짖음이 하늘에까지 사무쳤다. “하늘에 사무쳤다”는 표현은 이집트 종살이 아래 있는 이스라엘의 고통이 “하나님에게 상달되었다”는 표현(출 2:23)을 생각나게 한다. 사무엘상 4–7장에 기록된 언약궤 이야기에는 출애굽을 연상시키는 표현이 가득하다. 예를 들어 4장에서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들어왔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출애굽의 하나님을 언급하고 5장에서 언약궤로 인해 독종이 발병하여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은 출애굽 사건의 ‘열 가지 재앙’을 상기시킨다. 블레셋인들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는 표현도 그중 하나다.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었을 때 변화가 시작된 것처럼, 본문에서도 블레셋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는 표현과 함께 언약궤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질문
1.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다곤 신전에 설치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다곤은 어떤 신입니까?
3. 칠십인역에 따르면 가드 사람은 아스돗에 있던 언약궤를 자원해서 받습니다. 아스돗에서 큰 ‘위험’을 일으킨 언약궤를 왜 마을로 받아들였을까요? 토론해 봅시다.
4. 블레셋에 임한 ‘독한 종기’는 어떤 병이었습니까?
묵상
1. 다곤 신상이 언약궤 앞에 첫날 엎드렸습니다. 둘째 날에는 신상의 머리와 두 손이 잘려 나갔습니다. 냉철한 이성을 가진 블레셋이 이 사건들을 ‘우연’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그들은 잘려진 두 손과 머리가 닿은 문지방을 그 후 밟지 않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그들의 신앙이 얼마나 집요하고 맹목적인지를 보여 줍니다. 우리가 놓아 보내지 못하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함에도 끊임없이 다시 세우는 우상은 무엇인지 토의해 봅시다.
2. 블레셋 사람들을 보면, 다곤에 대한 맹목적 신앙을 가지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이성을 무한히 신뢰합니다. 이것은 불신자들의 심리를 보여 줍니다. 이들은 인생의 어려움 앞에서 미신과 신비를 찾아다니지만, 인생에 대한 자신감이 넘칠 때는 자신의 이성을 무한히 신뢰합니다. 그러나 무한한 이성 신뢰와 맹목적 신앙은 동전의 앞뒷면입니다.
3. 이스라엘은 엘리 제사장을 잃고, 여호와의 궤마저 빼앗긴 상황입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참 신이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와는 여전히 살아 계시고, 주권적으로 역사하심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블레셋 영토에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인생의 어려움에 처하면, 구름 뒤에 해가 없는 것같이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늘 아래 낮게 드리운 먹구름 뒤에 해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봅시다. 지금 내 삶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듯해도 구름 뒤에 해가 있듯 희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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