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행복한) 나그네길 2024 0616 창47:9-10, 시3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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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47:9–10 NKRV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Psalm 39:12 NKRV
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참조 : 인생은 (행복한) 나그네길 200517

서론

1964년에 이런 노래가 발표되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하숙생> - 최희준
이 노래는 故 최희준님의 <하숙생>이라는 곡의 가사입니다. 이 노랫말은 인생을 나그네길에 비유하며 세상에 왔다 사라지는 인생의 덧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왜 제목이 하숙생인지 이해가 됩니다. 하숙생은 머물고 있는 곳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영원히 그곳에 살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떠나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죠. 세상에 하숙 하러 왔다가 때가 되면 하숙 했던 자리를 비우고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은 나그네길입니다.
저의 인생도 나그네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까지 부모님과 여수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순천이라는 인근 도시에서 부모님을 떠나 학교를 다녔습니다. 대학 학부 생활은 조치원에서 하고, 군생활은 강원도 인제에서 했습니다. 그리고 신학대학원 시절에는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사역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스라엘과 한국을 오가며 나그네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저처럼 물리적으로 지역을 오가는 것도 나그네와 같겠지만, 심적, 영적으로도 우리 인생을 나그네길과 같다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나그네의 부정적 정의

문자적 정의

이 ‘나그네’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다가오시나요? 저에게는 이 단어가 외롭고, 가엾고, 쓸쓸한, 전라도 말로 “짠한” 느낌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 본문에서 등장했던 이 나그네라는 단어가 영어성경에서는 “Stranger”, 혹은 “Passing guest”로 번역 되어 있습니다.
스트레인져. 낯선 이라는 것입니다. 가깝고 친근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패싱 게스트. 게스트, 손님은 손님인데 패싱, 지나간답니다. 지나갈 사람, 지나칠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뉘앙스를 유지한다면,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간다는 말이 맞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와 같이 나그네길만 같다면, 우리 인생은 참 허무하겠지요. 정일랑 미련일랑 두지 말라, 어차피 인생은 흘러간다는 겁니다. 나그네에게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나그네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이 그의 정체성입니다. 떠도는 삶이 그의 숙명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은 나그네길입니까?

성경적 정의

그렇다면 성경은 우리 인생을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성경도 우리 인생의 정체성을 ‘나그네’로 표현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면서 자신들의 삶 자체가 나그네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신명기 10:19 “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다윗은
역대상 29:15 “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나그네는 한 공동체에 포함되지 못한 외인, 손님으로 그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의 범위를 이야기할 때 꼭 등장하는 말이 고아와 과부와 객,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나그네 인생의 허무함

오늘 우리 본문 구절이 속한 시편 39편도 우리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정체성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 39편은 허망한 인생의 길 한 가운데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39:5“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시편 39:6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새번역에서 이 6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Psalm 39:6 NKSV
6 걸어다닌다고는 하지만, 그 한평생이 실로 한오라기 그림자일 뿐, 재산을 늘리는 일조차도 다 허사입니다. 장차 그것을 거두어들일 사람이 누구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전도서의 주제,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성경도 이 땅에서의 인간의 삶에 대해 이해할 때, 붙잡을 것이 없는 것으로 표현을 합니다. 그림자를 잡을 수 있습니까? 불교 용어 중에 공수래 공수거 시인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가져 온 것도, 가져갈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성경도 우리 인생에 대해 허무함을 강조합니다.
시편 39:11 “11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성경도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그러면 이제 우리는 될 대로 되라 어차피 지나갈 인생~ 하면서 허무주의에 빠져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반전 고백

그러나 다윗은 우리의 판단에 명확한 반전을 선사합니다. 바로 시편 39편 7절의 말씀입니다.
시편 39:7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할렐루야. 우리의 반전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바랄 오직 하나는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소망은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이십니다. 그가 우리 인생의 허무주의를 이기십니다. 어떻게 그가 우리의 소망이 될까요?

나그네 인생의 긍정적 정의

시편 39편 12절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자신의 부르짖음을 들어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자신을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조상들처럼 떠도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그네이기 때문에, 떠도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소망은 주께 있다고 말합니다. 왜 다윗은 여기서 자신을 나그네, 떠도는 자라고 표현했을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나그네, 떠도는 자의 부정적 이미지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자신을 나그네라고 이야기하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그네 히브리어 어원 해석

이 비밀을 풀기 위해 원어적 의미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히브리어로 나그네를 게르, 떠돈다는 말을 토샤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는 어원이 중요한데, 게르, 토샤브에는 모두 거주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의미를 확장해보면, “나그네(떠도는 자)이지만, 그 떠도는 땅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떠도는 자는 그 땅의 주인이 아닙니다. 거주자가 그 땅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단어로 보면, 거주한다는 뜻을 가진 단어가 나그네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서로 상반되는 의미가 한 단어 안에 표현되고 있는 것이지요. 떠도는 자인데, 어떻게 동시에 주인이 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는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신앙을 요청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12절에서 다윗은 나그네는 나그네인데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라고 말합니다.
시편 39:12 “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 인생

우리는 나그네길이라고 말할 때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 말하면서 그 인생을 나 혼자만의 인생으로 전제합니다. 그래서 그 길이 외롭죠. 쓸쓸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의 인생의 나그네길은 혼자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나그네길에는 언제나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건져내실 때, 바로 약속의 땅이 아닌 광야로 보내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광야 길의 목적과 의미

광야는 사람이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 차라리 애굽에서 종으로 살았던 시절이 좋았다고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님이 우리와 나와 함께 하는 그 곳이 (어느 곳이든지 간에) 가장 평안한 곳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으셨습니다.
Philippians 4:11–13 NKRV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광야 한 가운데서 떠도는 삶을 지낼지라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 곳이 하늘 나라입니다. 이것이 광야의 목적과 의미입니다. 혹시 광야와 같은 인생의 길을 걸어가며,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며 허무하게 주저앉아 계시고 있습니까? 주님이 우리와 지금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을 잊은 평안한 곳은 우리의 거주지가 아닙니다. 험악한 광야와 같은 인생의 떠도는 삶 조차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면 그곳은 우리의 거주지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

네. 우리의 인생은 나그네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는 행복한 나그네길입니다. 그리고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길이 아닌,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 영원한 거주지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행복한 나그네 길입니다. 행복한 나그네길을 걸어가시는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지금 나를 붙들고 그 길을 함께 가시는 주님과의 동행길을, 누리며 사는 여러분의 인생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함께 찬송가 438장 3절의 가사로 찬양하시겠습니다.
<결단 찬양>
내 영혼이 은총입어
<말씀노트>
나그네 같은 인생의 경험이 있나요?
내 인생의 모든 상황 가운데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확신하십시오! 이 확신과 소망을 함께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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