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2:1-11 계속되는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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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요한복음 2장 1절부터 11절까지에 있는 말씀입니다.(신약성경 144쪽에 있습니다.) 이제 봉독 합니다. ( 봉독 후 )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음식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아직도 잘 못먹는 음식 두 가지가 있습니다. 최근에 과일 가게를 지나다가 두리안이라는 열대과일을 봤는데, 지금은 조금 그 맛을 알겠는데 아직도 낯선 맞입니다.
또 하나는 홍어입니다. 이 홍어는 전라도 잔치에 가면 유명하죠. 예전에 전라도 지역으로 장례식 때무네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귀한 음식이라고 하면서 주셔서 먹었습니다. 처음보다는 조금 그 감칠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서울 촌놈이라 그런지 아직 그 맛을 잘 몰라그렇게 즐기진 않는데요.
그런데 홍어가 생선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음식은 없어도 홍어만 있으면 손님 대접이 된다고 할 정도랍니다. 상다리가 휘어져라 차려져도 홍어가 없으면 실컷 대접하고도 본전도 못 건지는 잔치가 되기 십상입니다. 거의 파장 분위기가 됩니다. 빛이라도 내서 홍어를 올려놓아야 한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찾아가신 곳은 이런 파장 분위기의 자리입니다. '결핍'의 자리입니다. 다른 음식은 아주 풍성했지만 꼭 있어야 할 것이 없어 딱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찾아가십니다.
1절, 2절을 보시겠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요한복음에는 많은 기적 중에 특별히 7개를 소개하고 있는데 오늘 기적이 첫 번째입니다. 그런데 그 기적의 현장이 소박하고 따뜻한 것 같습니다. 성지순례로 ‘가나’라는 마을 가보신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갈릴리 지역의 매우 작고 초라한 마을인데요. 성지순례로 지나가게 되면 꼭 포도주를 작은 한 잔 줍니다. 사실, 예수님이 가나혼인잔치로 참석하신 장소가 예루살렘도 나사렛도 아닌, 유명하지 않은 평범한 그런 동네였습니다. ᅠ
요즘 결혼식은 스몰 웨딩이라고 해서 지인끼리 소박하게 합니다. 그리고 예전엔 목사님 주례도 있었지만 지금은 양가 부모님이 간단한 덕담을 나누거나 결혼하는 커플의 이벤트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고대 근동에서는 달랐습니다. 혼인 잔치가 약 일주일 열린답니다.
당시 포도주는 대단히 값진 음료여서, 가난한 서민들은 거의 먹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결혼식이나 기념일을 제대로 치르기 위해 오랫동안 아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정성스럽게 결혼식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악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으로 보아 이 집은 평소 그렇게 넉넉한 형편의 가정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분, 포도주가 떨어진 잔칫집은 더 이상 잔치를 이어 갈 수가 없습니다. 흥겨움이 깨지고, 불평과 욕지거리가 쏟아져 나올 정도의 위기의 순간이 찾아와서, 이 집안은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이때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께 무어라 속삭입니까? "포도주가 떨어 떨어졌구나"
사실 마리아는 얼마든지 달리 말할 수 있겠다 싶어요.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혹시 저 사람들을 데리고 이웃 동네로 가서 포도주를 사다 줄 수 있겠니? 너희들이 한두 통씩만 들고 오면 나머지 잔치를 치를 수 있을 텐데."
저와 여러분 같으면 그렇게 말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다 큰 아들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며,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조종하거나 부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포도주가 떨어졌구나!"라고만 하고 말을 아꼈습니다. 마리아는 다만 지금 문제 상황을 알리는 것만으로 만족했습니다. ᅠ
어머니의 부탁에 대해 예수님이 이렇게 응답합니다. 4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여자여"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이 마리아를 ‘여자여’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예수님의 고양된 자의식이 전면에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더이상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고양된 자의식을 가지고 공생애를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포도주가 없다는 말에 ‘내 때’를 언급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 물과 피를 쏟을 시점을 생각하면서 응답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포도주가 없다는 말을 너무 앞서서 깊게 해석 한것이지요. 그러니까 포도주가 없다는 말을 하나님 아들인 자신에게 신적인 개입을 요청하는 말로 들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머니 마이라를 여자라고 거리를 두신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그런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고, 또한 아직 개입할 때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어떻게 반응하시는지 보십시오. 일꾼을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ᅠ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5절)
아들에게 강요하지는 않지만, 마리아는 자신의 아들이 꼭 도와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거절하지만, 어미의 딱한 사정을 무시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때를 대비해 일꾼에게 준비를 시켜 둔 것입니다. ᅠ
마리아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고, 예수님도 일행 가운데서 음식을 드십니다. 얼마를 그렇게 있더니, 예수님이 일꾼을 부릅니다. 그들을 데리고 문간에 있는 물항아리 쪽으로 가십니다.
유대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물로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손소독제가 항상 입구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집에 들어가기 전에, 알게 모르게 부정한 것을 만진 손을 정결하게 씻어야만, 먹는 음식에 부정이 타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늘상 돌로 만든 커다란 항아리 여섯 개를 준비해 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일꾼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7절).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손님이 떼로 몰려오려나? 왜 이렇게 물을 많이 준비하라는걸까?'
여섯 개의 물항아리에 물이 가득 채워지자, 예수님이 일꾼들에게 다시 명령하십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8절) 이때는 이미 물항아리의 물이 포도주로 변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일꾼이 물항아리에 바가지를 넣고 한 번 휘저었을 때, 그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조금 전에 자신이 길어다 부은 것은 물이었는데, 그것이 이제는 붉은 포도주로 변한 것입니다. 그 포도주 바가지를 잔치 맡은 이에게 전해 줄 때, 그 일꾼의 마음은 신비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을 것입니다.
잔치를 맡은 사람은 그 바가지를 들고 한 모금 마셔 봅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 모금 더 마십니다. 그리고 급히 신랑을 부릅니다. 손에 들고 있는 포도주 바가지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0절)
신랑도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신랑과 잔치 맡은 사람은 일꾼을 불러 그 포도주가 어디서 난 것인지 캐물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적을 일으키신 사람을 찾고자 할 때, 주님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적을 행한 목적은 자신을 스타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11절을 보면 요한복음 기자가 이렇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여기서 요한복음 기자는 '기적'이라는 단어 대신에 '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ᅠ이 일은 단순한 놀라운 이벤트가 아닙니다 뭔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 '잔치'라는 주제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잔치는 우리 각자의 인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목적은 우리의 인생과 사회를 잔치로 만드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잔치판이 깨졌다는 데 있습니다. 누가 잔치판을 깼을까요?(침묵)
잔치판을 깬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차려 놓은 잔치를 깬 것은, 잔치의 주인인 하나님이 아니라, 손님으로 초대받은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의 거짓과 탐욕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는 깨지고 이웃과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그러자 자연과의 관계도 깨졌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피조물을 돌보라고 했는데, 서로 싸워 정복하고 정복당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전쟁이 발생하고, 세계적 전염병과 오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차려놓으신 잔치는 원래가, 모두가 참여하고 모두가 행복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평강과 기쁨과 풍성함이 있는 잔치 말입니다.
하지만 강자만이 잔치를 즐기고, 약자는 소외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도 강자가 되어 우리의 삶을 잔치로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으로,어떤 사람은 쾌락으로, 어떤 사람은 출세로 영원한 잔치를 만들고자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무엇으로 잔치를 만들든, 결국 고갈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결혼 잔칫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파장 날 뻔했던 것과 같은 위기가 결국에는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설령 죽는 순간까지 아무리 많은 포도주가 우리 손에 남아 있다 해도, 우리 스스로 만든 잔치가 주는 행복은 권태감과 허무감을 불러 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차린 잔치는 우리를 진실로 만족시켜 줄 수 없습니다. 그 잔치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가나혼인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과 같은, 큰 위기과 결핍을 겪게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가 전하는 복음은 무엇입니까?
(천천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잃어버린 잔치를 회복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형편과 상황을 뛰어넘는 잔치를 허락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잔치 맡은 사람이 신랑에게 한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드신 포도주 맛을 보고 그 사람은 신랑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0절)
손님들이 정신이 말짱할 때는 좋은 포도주를 내놓습니다. 그러다가 술에 취해 미각이 둔해지면 그때는 저급 포도주를 내놓는 것이 당연시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만드신 포도주는 그 어떤 포도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잔치 맡은 사람이 놀란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잔치가 회복하면, 그 잔치의 기쁨과 맛은 이전에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시면, 그분은 어떻게 잔치를 회복시켜 주십니까? 죄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막혀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죄의 장벽을 허물어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을 힘입어 성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 자비롭고 긍휼이 풍부하신 아버지는, 자신을 떠나 스스로 잔치를 벌이다가 모든 것을 탕진하고 집으로 돌아온 탕자를 품에 안아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위해 최고의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비로소, 우리는 그분과 더불어 친밀함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때로는 친구로, 상담자로, 의사로, 선생님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평안과 기쁨과 위로와 안식을 경험하게 됩니다. 잔치의 기쁨을 새롭게 경험합니다.
하지만, 때로 주님은 우리를 어렵고 힘든 길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가 즐기던 것을 포기하게도 하시고, 내 손에 쥔 것을 포기하게도 하십니다. 하지만 그분을 믿고 묵묵히 인내하며 순종하고 따를 때, 우리는 그 고난과 희생 속에서도 깊은 보람과 기쁨을 맛보게 하실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잃어 버렸던 잔치를 회복시키시는 분이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런 기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예수님 혼자서 기적을 일으키시지 않습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벌어진 기적만이 아니라 요한복음에 기술된 다른 기적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이들은 하나같이 무엇이 일어날지 전혀 모른채 오직 예수님 말씀만 믿고 그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합니다. 무엇이 일어날지 그 당시는 모르지만, 주님께 기꺼이 순종할때 우리 행위는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끄시는 주님의 섭리 안에서 좋은 결과를 낳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손과 발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프랑스의 한 성당에 신자들이 모였습니다. 성당 마당에 있던 예수님의 상이 폭격을 맞아 두 팔이 떨어져 나갔는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 하기 모였습니다. 두 팔만 복원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다시 만들것인가?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폭격 맞은 그 모습대로 놔두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대신 동상 아래 다음과 같은 글을 써놓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두 팔을 필요로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오늘 혼인잔치에 순종한 하인들처럼,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서 고통 받는 이웃을 찾아가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위로하여 잃어버렸던 잔치를 회복시켜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바라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주님이 허락하시는 그 잔치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삶을 마치면 끝이 날까요? 결코 아닙니다. 그 잔치는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의 목숨이 끝나고 나면, 이제까지 즐긴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영원한 잔치가 하나님 나라에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잔치를 즐기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잔치는 무엇으로 마련하셨습니까? 어떤 잔치를 꿈꾸고 계십니까?
직장이 든든한 것도 감사한 일이고, 자식들이 잘 되는 것도, 능력자가 되고, 건강을 회복하는 일도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것들이 여러분들이 ‘기쁨’ ‘희망’을 주는 유일한 요소라면, 아니 그것이 전부라면, 이것들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가나의 혼인 잔칫집 신랑과 같은 입장에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처한 상황이 그러합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삶의 상황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들과 어려움들 때문에 기쁜 잔칫집 같던 그 삶이, 황량하게 되어버린 분도 계실 것입니다.
상황이 나아지기 전에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삶에 더 깊이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만든 잔치로부터 눈을 돌려, 예수님께서 만들어주시는 잔치에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종의 모습처럼,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다른 이웃에게 잃어버린 잔치를 회복시켜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도 주님은 ‘내 인생은 끝났다“고 탄식하거나 절망되는 상황에서도 다시 잔치를 시작하는 은혜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리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루하루를 잔치와 같은 삶으로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사셨고, 우리에게도 그러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충만한 포도주가 있는것과 같은 기쁨이 있는 잔치의 삶으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참된 잔치를 누릴 때, 여러분이 속한 가정과 직장과 사회도 그렇게 변화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저와 여러분에게 계속되는 잔치의 삶을 누리게 해 주시기를, 그 기쁨을 이웃에게 전염시킬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위로하심이, 탄식과 결핍으로 얼룩진 삶 속에서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인해, 기쁨으로 우리의 삶을 맞이하며 살아가기로 소원하며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 위에 영원토록 함께 하시길 축원하옵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