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배반한 가롯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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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론

요한복음 13:1–2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오늘은 한 인물에 대해서 같이 말씀을 묵상할려고 합니다.
바로 12제자중 하나입니다. 가롯유다에 대해서 한번 알아볼려고 하는데요..

1-1 유다라는 이름

가롯유다에 대해서 처음으로 성경에서 언급한 부분이 바로
마태복음 10:2–4 “2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방금 읽은 본문 말씀에 보면 영광스러운 이름도 있고 또 어떠한 이름도 있습니까? 불행한 이름도 있죠..
가룟유다 곧 예수를 판자라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유다라는 이름은 바로 찬양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래 예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데 이 가룟유다는 무엇을 찬양했을까요?
돈에 재산 불리는것에 더욱더 마음을 두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마음을 두지 않고 돈에 마음을 두니깐 최후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곧 예수를 판 자라 이렇게 가룟 유다의 모든것을 한 글자에 다 담아 버린것입니다.
로 마서 16장 믿음의 동력자의 이름들…
사도행전 13:36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1-2 가룟유다의 시작

가룟유다의 시작은 어때했을까요?
방금 읽은 말씀처럼 주님의 12제자안에 들어가는 큰 영광을 얻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가룟유다를 바라본 제자들은 어때했을까요?
가룟유다는 아주 보이는 것은 정직하고 인격도 훌륭한 사람인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 가룟유다에게 무엇을 맡겼습니까? 돈을 맡은 직분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6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12제자와 예수님이 사용할 돈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12제자중에서 성실하게 보였을 것이고 인격도 훌륭하게 여겼을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는 압니까? 우리 주님은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본인도 팔지 알았고.. 제자들도 몰랐던 맡겨놓았던 돈들을 조금씩 조금씩 훔쳐간 도적이라고 누구는 압니까? 주님은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롯유다의 시작은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을것입니다 .
야고보서 1:15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처음의 욕심이 가룟유다를 어디로 몰아간것입니까? 사망까지 이르게 한것입니다.
우리는 그 욕심을 처음부터 잡아야 합니다. 작은여우를 잡으라고 아가서에 나와있지 않습니까?
죄는 점점 불어나고 점점 발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룟유다를 보면 우리가 알수 있지 않습니까?

2.가룟유다가 배반한 이유

2-1. 영적의 눈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왜 가롯유다는 그러한 선택을 했을까요? 우리는 그것에 중점을 두고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눈이 가려져 있던것입니다. 보이는 눈.. 영적인 눈이 가려져 버린것입니다.
재물의 욕심때문에 나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예수님을 팔아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을 볼 눈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눈으로 3년반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했을텐데..그리고 주님이 말씀하면 그대로 이루어 짐을 또한 경험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물위를 걸어다니시는 예수님도 경험을 했을것이고요.
또 무엇을 경험했을까요? 오병이어 기적도 경험을 했을것이고요.
또 무엇이 있습니까? 죽었던 나사로를 살렸던 것도 경험을 했을 텐데요..
그의 눈은 이미 어두어져서 그것을 보더라도 영적으로 보지 못한것입니다.
이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요?
마태복음 16:13–15 “13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에게 물어 보았죠..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렇게 물어 보았을때..
대답이 어떠한가요? 세례요한이요.. 엘리야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렇게 대답을 했을때.. 이렇게 믿었던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네 맞습니다. 바로 가룟유다는 이렇게 믿어 버린것입니다.

2-2 믿음이 잘못되었습니다.

이 가롯유다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것은 믿음에 대해서 배울수 가 있습니다.
가룟유다의 모든 문제의 핵심은 영적 눈이 가려진것도 무엇에 핵심이 있냐면요.. 믿음과 관련이 있는것입니다 .
가롯유다는 믿음이 있었을까요? 참된 믿음은 가지고 있지 않은것입니다.
참된 믿음이란 예수님을 주로 여기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64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믿지 않은 자.. 누굴 믿지 않은것입니까? 예수가 누구인지 믿지 않은것입니다.
질문을 해볼까요? 우리는 누굴 믿는 것입니까?
우리가 믿는 것은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한번 대답해볼 중고등부 형제 자매님 계신가요?
우리가 믿고 있는것은 마태복음 16:16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들로 내려온 성자 예수님을 믿는 것입다.
하나님이 직접 이땅에 오신것입니다.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고통을 다 알고 있고요,
그리고 배고품도 알고 계시고요, 또 목마름, 피곤함, 다 알고 계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어떠한 분인가요?? 이러한것을 느낄 필요가 있는 분인가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이 태초부터 계획 하셔서 우리를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땅에 내려온거죠..
만약에 사람이 었다면 우리의 죄를 해결할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사람이 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사람이었다면 우리의 죄를 해결할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내 맞습니다. 우리의 죄를 절대로 해결할수 없는거에요.. 죄의 삯은 무엇인가요 사망이잖아요~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몸도 죽어야 하고 지옥에도 가야 하는 거에요.. 맞죠..
사람이면 이렇게 되닌깐..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의 죄도 해결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라면.. 가능한거죠. 왜요 하나님이시니깐요… 그는 죄를 짓지 않은 분이니깐요! 죄가 없다고 야고보서에 적어져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믿는 거에요.. 맞나요! 틀리나요.. 너무 어렵나요.. 그런데 이것은 꼭 알아야 해요..
우리가 이것을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수 있는겁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그냥 하나의 선지자로 사람을 여긴거에요..
조금 특별한 사람으로만요..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도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분인것입니다.
그 유명한 배드로는 예수님을 의 신성을 알았던 자인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알았을까요?
처음 만났을때.. 깊은대로 그물을 던져라 했을때.. 고기를 잡았을때.. 이미 알았습니다. 이분은 보통 분이 아니다.
하나님을 본거죠.. 물고기를 움직이는 하나님을 보았던것입니다.
그러니깐 예수님을 만나고 무엇이라 말을 합니까?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렇게 말을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보니깐 두려운거에요.. 아 나는 죄인이야.. 예전부터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는것을 알고 있엇던 것입니다.
그러니깐 첫 만남에서 하나님을 보니깐 두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같이 다니면서 더욱더 확실해 진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들에 물어 보았을때. 그럼 너희들은 내가 누구인것 같냐..
이렇게 물어 보았을때 그의대한 답이 아주 유명한 말 마태복음 16:16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인것입니다.
중고등부 형제 자매님 정말 이것을 믿으세요.. 이것을 믿지 않으면 나중에 저랑 잠깐 교제 하면 됩니다.
가룟 유다는 이것을 믿지 않으니깐.. 계속 예수님이 제일처음 선생이라고 하고 그다음은 랍비라고 하죠..
주가 되어 본적이 없는 것입니다. 너무 안타깝죠. 그러니깐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돈을 훔치고 하나님을 돈 30에 팔아 버리는 행동을 한거죠..
우리도 그렇게 예수님을 팔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 형제 자매님이 부모님 손에 이끌려서 교회에 오고 있죠..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고 부모님 손을 벗아나게 된다면..
내가 가야 할 길을 어디일까요? 세상일까요? 주님일까요? 곰곰히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이세상의 것들을 우리가 할수는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도 볼수 있고요, 그리고 게임도 할수 있거요, 그리고 틱톡도 하면서 영상을 찍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래방도 갈수 있죠..
그런데요.. 어떠한것들이 중요할까요? 주님을 내가 알고 섬기는것이 중요할까요?
세상의 것들을 즐기는 것이 중요할까요?
네가 만약에 하나님을 믿는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살아계시잖아요.. 그럼 어디에 있는거에요..
내가 어디에 가든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함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는거구요.
하나님과 함께 게임도 하고 있는거구요.. 하나님과 함께 춤추면서 대중가요 부르면서 영상을 찍고 있는거구요..
하나님과 함께 노래방을 가는거에요.. 어떤가요? 나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가룟유다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이 불안정 합니까? 그럼 반든시 올바른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어느 것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어떠한 믿음을 가진 자입니까? 하나님이 누구인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 다 믿었던 자가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증거로 복음을 전하다가 거꾸로 십자가에 메다리는 순교를 하셨죠..
그의 반면 가롯유다는 어떻습니까? 믿음이 올바르지 않으니깐.. 자기가 더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게 되었고 결국은 예수님을 팔게 되었고,
돌아올 기회가 있었지만 자기 목숨을 끊어 버리는 선택을 하게 되었죠..
믿음이 이렇게 중요한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나와있는 믿음의 선진들은 어떠한 믿음을 말씀하셨습니까?
히브리서 11:6 “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믿음이 없으면 기쁘시게 못합니다. 누굴요.. 하나님을요.. 왜요.. 지옥가니깐요! 그래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즉 하나님이 계시는곳 저 천국에 갈려고 하는사람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그의 답을 알려 주고 계십니다.
반드시 그가 계신것.. 누가 계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계신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것을 믿을려면 무엇을 믿어야 겠습니까
이 성경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무엇이 있습니까?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을 찾는 자는 어떠자입니까? 이제 나는 돌아가야 겠다.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겠다 마음을 먹은자.. 회개를 하는 자에게는 상 주시는 이심..
상이 무엇입니까? 저 영원한 천국을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즉 성경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땅의 일을 믿어야 하고.. 땅의 일을 바탕으로 하늘의 일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무엇을 믿어야 하느냐.. 우리에게는 많은 죄가 있고. .이대로 믿지 않고 가면 지옥으로 가는것을 믿는 사람은 저절로 누굴 찾게 됩니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을 합니까? 아 나는 하나님에게 돌아가야 겠다라는 마음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 돌아가는 자는 마지막으로 상을 주시는 이심을 나의 죄를 다 용서 해주셨다는 것을 믿고 천국간다는것을 믿어야 한다고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믿음입니다.
그런데 가룟유다는 어디서 잘못된것입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은 믿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은 믿지 못한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믿지 않으니깐.. 나의 죄를 용서를 누가 해주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이 해주시는데.. 아직도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을 찾고 있는 꼴이 되는것입니다. 이것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혹시 내가 믿고 있는지 믿지 않고 있는지 우리는 고민할 필요하가 있습니다. 왜냐 나도 가룟유다가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믿음으로 나도 예수님을 배반하면 않되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성인이 되면 정말 주님을 위해서 주님이 나의 주인으로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잘할수 있어 그렇게 확실하게 말해볼 형제 자매가 있을까요?
우리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이 정말 확실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2–4 “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위해 감사하고 기도하는데..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그리고 4절에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이라고 그리고 택하심을 안다고.. 너희 믿음이 진짜다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확실하게 말한 이유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도 점검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유가 도대체 뭐냐 그 말입니다.
첫째 데살로니가전서 1:5 “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우리 복음이 말로만 교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되었다.
그래서 이 복음이 믿어지면은 성령님으로 믿어지면 확신이 생기잖아요.
나 같은 사람은 천국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확실하게 믿어지니까 확실한 간증이 나오는 거예요.
그뿐 아니라 그 뒤에 6절에 또 너희는 많은 환란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사람이 확실한 믿음이 있는지 언제 알 수 있냐 하면은 많은 환란 가운데서 환란이 주어지면은 그 사람 믿음이 확실한지 여부를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많은 환란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이 있고 성령이 들어오셨고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다.
주님이 십자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고난을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받고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됐다.
또 사도들을 본받는 자가 됐다. 일꾼들을 본받는 자가 됐다.
그걸 보니 야 너희 믿음 확실하고 택함 받은 게 맞다 그 말입니다.
또 얘기하기를 그 뒤에 9절에 저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스스로 구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이들은 우상숭배하던 사람들인데 우상을 구원받고 우상을 확 버리고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봐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긴다 말입니다.
그리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님이라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학수고대하면서 기다린다고 하니 이런 걸 봤을 때 야 너희들 정말 구원받은 게 확실하다 이렇게 말했잖아요.
그러니까 구원받은 걸 어떻게 확신한다고 말했냐 하면은 일단 복음이 말로만 아니라 성령과 능력과 큰 확신으로 이루어졌고, 또 한 가지는 너희들은 많은 혼란 중에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고
그리고 씩씩하게 주님과 일꾼들을 본받고 그전에 우상숭배하던 너희들이 우상을 버리고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 품에 안기고 살아계신 참되신 하나님을 생활 중에도 섬기고 있고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사랑하면서 그분이 다시 오시기를 정말 바라는 걸 봤을 때 야 너희 믿음 확실하다 이렇게 말했다.그 말입니다.

2-3 생각이 잘못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3:2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생각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넘어 뜨리는 것은 무엇일것 같습니까?
간단합니다. 작은 생각 하나를 넣으면 우리는 넘어지는 존재입니다.
가룟유다의 마음 무엇을 넣은것입니까?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은것입니다.
만약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죽일 마음을 넣었으면.. 가룟유다는 그 생각을 실행할까요? 하지 않을까요?
그것을 한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 생각을 떨쳐 버렸게죠.. 내가 무슨 생각하고 있지.. 잘못 되었어.. 그렇게 떨쳐 버렸을것입니다.
마귀는 가룟유다가 가장 이기지 못하고, 항상 넘어졌던 그 생각을 교묘하게 넣은것입니다.
본래 가룟유다는 무엇에 약했습니까? 돈에 약한 사람인것입니다. 그러니깐 돈 괘를 맡았을때. 슬쩍 슬쩍 훔쳐갔던 도적이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깐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잡아서 죽일려고 하는것을 이 가룟유다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가룟유다는 예수가 죽든지 말든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가지고 예수님을 미리 장사를 하고 있는 시점에 가룟유다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를 돈 은 30에 팔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14–16 “14 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마귀가 넣어준 생각.. 은 삼심에 예수를 팔자 라는 생각이 들어갔습니다. 그때 멈추면 팔지 않았겠죠.. 그런데 16절에 보면 그때 부터 무엇을 하기 시작한것입니까? 넘겨줄 기회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번의 생각이 행동으로 나와버리면 그것들이 죄가 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멈추지 않죠.. 죄의 속성이 그렇습니다. 가속도가 붙어 버리게 됩니다. 그러니깐 가속도가 붙기전에 우리는 돌아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을 알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관심사가 어디에 많은지 알려면 각자에게 100만원이라는 돈을 주었을때. 어디에 쓰는지 보면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가장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알면 하루 24시간의 패턴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떠한 행동들을 하는지 살펴보면 나에대해서 알수 있을것입니다.
로마서 8:5–6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육신을 좇는자인것 같습니까? 영을 좇는 자 인것 같습니까? 우리가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아들들이 있는데.. 성경에 나오는 첫번째 아들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가인이죠.. 그럼 두번재 아들의 이름은 아벨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어떻게 했습니까? 돌로 쳐 죽이는 최초의 살인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살인하기 전에 했던 말씀이 있습니다. 어떠한 말을 했을까요?
창세기 4:5–7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가인의 마음에 무엇이 들어온것입니까? 분한 마음이 들어온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들어와서 벌써 표정이 변화가 생겼던 것입니다
그럴때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라 말씀을 하시느냐.. 죄의 소원..죄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는것입니다.
분한 마음이 들수 있다.. 그런데 행동으로는 옮기는 것은 않된다고 주님이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마귀가 생각을 넣어 줄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약한 부분을 통해서 생각을 넣어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생각을 어떻게 바꾸어야 합니까? 그것을 우리는 다스려야 합니다.
마르틴 루터가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새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수 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을 할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죄를 짓는 것은 막을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한번 생각해봐야합니다.
그냥 그대로 생각이 난다고 그 흐름대로 해버리면 결국은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싫어 하시는 죄를 짓는대까지 가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합니다.
육신의 생각들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크게 위엣것을 생각하지 않고 땅의 일을 생각을 하는 것들.. 땅의 일이 무엇일까요? 부자되는것. 돈 많이 버는것, 예뻐지는 것, 유명해지는것들.. 이러한 것들이 다 땅의 일이입니다.
땅의 일이 무엇일까 생각할려면 없어지는 것들을 생각하면 쉬울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5:19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악한 생각들이 육신의 생각들인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올라오면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요?
주님이 나에게 주신 사랑으로 바꾸어야합니다.
어떻게 바꿀수 있을까요? 이러한 생각들 때문에 우리는 본래 어디갈 존재였습니까? 지옥갈 존재였다는것입니다.
그런데 생각만 했을뿐인데.. 주님이 그 십자가에서 돌아가신것입니다. 엄청난 은혜이지 않습니까?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는 말씀에서.. 예전에는 내가 죄를 지어야지.. 그 죄에 대해서 회개하고 뉘우치고 반성을 했는데요.. 지금 신앙생활을 하다보니깐. 악한생각, 교만한 생각,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이러한 죄 때문에 돌아가신 하나님.. 너무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것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생각에서 멈추었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에서 진행을 했고.. 후회를 했고.. 결국.. 죽음을 택한것입니다. 생각에서 어디까지 간겁니까? 죽음까지 간겁니다.
그러니깐. 우리는 이 생각들을 잘 다스려야합니다.

2-4 강퍅한 마음으로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리고 가룟유다의 마음은 강퍅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수 있느냐.. 3년반동안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항상 주님 옆에 있었구요.. 그리고 예수님이 가룟유다의 발도 씻겨 주었습니다.
많은 기적과 이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그대로 성취됨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배척한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얼마나 강퍅한 사람인지 볼수 있지 않습니까?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너희중에서 하나가 나를 팔리라 말하였을때에도..
최후의 만찬의 자리는 이미 팔려는 마음이 있었고 대제사장에게 돈도 받았을때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넘겨줄까 고민하고 있을때입니다.
그때 나를 판다고 말을 했을때.. 가룟 유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뜨끔했겠죠.. 어떻게 알았을까? 그러한 생각을 했으면.. 자신을 돌아보고.. 아 저분은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구나 그것을 깨달을수 있었을텐데…
끝까지 예수님을 주라하지 않고 랍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신선을 결국은 보지 못한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누가 생각이 납니까?
네 맞습니다. 출애굽 당시에 메르네프타하 바로 왕이 생각나지 않습니가? 10가지 재앙을 내렸음에도 불고하고.. 그 강퍅한 마음을 그대로 두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10번이나 두드려 맞고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 주잖아요.. 그런데.. 강퍅한 그 왕은 하나님과 싸워볼려고 하다가 어떻게 되었나요..
홍해바다에 수장되었지 않습니까?

3.결론

3-1.선택

우리 여기 앉아 있는 중고등부 형제 자매님의 마음에도 혹 돌이키지 않을 마음으로 그냥 있는 분 계십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선택하라고 나를 선택할지 너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지 물어보시고.. 결정을 기다립니다.
둘다 선택은 없습니다. 반듯이 하나만 선택해야합니다. 그 선택이 구원과 연결이 되어 있는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선택인것입니다. 우리는 잘 선택해야합니다. 어디로 선택 해야할까요?
예수를 파는 쪽으로 선택을 해야할까요? 예수를 사는 쪽으로 선택을 해야 할까요?
어느 누구도 강제로 선택을 하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관계속에서 선택해야할 문제인것입니다.
예수를 사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삶은 어떠한 삶일까요? 바로 히브리서 믿음장인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를 파는 쪽을 선택하는 삶은요..
바로 이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간 데마.. 그리고 이세상을 바라보고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한 롯…
우리는 어디를 선택해야 할까요?
가룟유다를 통해서 우리가 여러가지를 알아보았습니다.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고, 그리고 영적인 눈이 가려지면 않된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생각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고 마지막으로 강퍅한 마음의 결국은 죽음이다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해야함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곰곰히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자유의지.. 우리가 해야 할것은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넣어줄수는 없는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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