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태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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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 6:6-8(신약 8쪽)
설교제목: 기도의 태도에 관하여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기도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여러 가지 형태로 기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령 예배 때도 기도의 순서가 들어가고요. 예배 외에 기도의 모임들도 있고요. 예를 들면, 수요성령집회라던지 오늘과 같은 새벽기도회라든지요. 그리고 개인 경건생활에서 강조되는 것 중 하나도 기도이지요. 이렇게 신앙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가 왜 중요할까요? 제 얘기를 하자면 이래요. 자세하게 말씀을 드리긴 어렵지만, 이전에 사역을 하면서 굉장히 고통스러운 기간이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쫓겨날뻔한 일이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억울한 것이었고 물론 문제가 해결이 되어 교회에 남아 사역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 괴로움의 시간을 저는 시편을 읽고 기도하면서 통과했습니다. 기도는 저의 고통을 치유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 종종 기도부탁을 받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그 기도가 이뤄질까 의구심이 들때도 있지만, 그래도 믿음을 갖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딱 적절한 때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종종 과거에 써 놓은 기도제목을 보다가 깜짝깜짝 놀랍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많은 기도에 응답해 주셨음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봅니다. 우리의 소원과 간구가 하나님의 의해 이뤄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어떤 신학자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건 기도의 3분의 1정도 밖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기도는 단지 우리의 요구를 하나님께 들어달라고 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흔히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하는데요. 막상 우리는 우리 할 말만 하고 끝내버리는 기도를 합니다. 기도가 대화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요. 그렇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기도는 불완전한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완전한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분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 기도하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 이를 통해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하는 지를 아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기도가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기도도 있음을 말해 줍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느냐에 따라서 그 기도가 응답을 받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이 이에 관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데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에서 8절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6-8(신약 8쪽)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방금 읽은 구절은 예수님께서 기도에 관해 가르침을 주신 내용의 일부분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볼 것은 우리가 기도를 하는 분인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는 것입니다. 8절의 내용을 주목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분으로 우리를 참으로 잘 아시는 분입니다.
간혹 이러한 말은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는데 그러면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서 8절인데 제가 읽습니다.
마태복음 7:7-8(신약 10쪽)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예수님은 분명 우리에게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다시 말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다는 것은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아십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밥을 달라고 하면 부모는 밥을 줄 수 있지만 칼과 같은 위험한 것을 달라면 주지 않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시기에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하고 무엇을 주어야할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여기서 부터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혹시 나의 기도가 잘 응답되지 않는다면, 어쩌면 내가 하나님께 필요없는 것을 구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기도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에 우리의 기도는 무엇을 달라는 것에서 무엇을 우리가 받아야하고 해야하는지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또 기도하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 읽은 마태복음 6장 7절에서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는 고대에서 말이 가진 힘 때문에 비롯된 기도의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말을 주문처럼 외우면 그 주문의 힘 때문에 어떤 마법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여겼습니다. 얼마 전에 ‘파묘’라는 우리나라 영화가 흥행을 했는데요. 그 영화에 보면 무당이 나오고 어떤 주문을 외우고 하는 장면이 나와요. 이러한 주문을 통해 그들은 이른바 신을 부리고 그것을 통해 여러 기이한 일을 하는 것으로 나와요. 이와 마찬가지로요. 중언부언도 어떤 주문을 외는 것을 통해 신을 부릴 수 있다는 고대 사람들의 생각에서 나오는 기도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시죠. ‘중언부언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와 같은 주술에 속박되거나 그걸로 부릴 수 있는 분이 아님을 얘기해 주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결코 하나님은 그와 같이 부릴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은 우리는 하나님께는 티끌이나 먼지보다 작은 자일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여기지 않으셔서 우리가 특별하 것이지요. 결코 우리가 하나님을 부릴 수 있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또한 우리의 기도를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겁박하거나 하나님을 부리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마치 이런 것이죠. 하나님께 칼을 들고 가서 내가 원하는 것 다 내어 놓으라고 협박을 하는 것이죠. 만약 우리의 기도가 그러했다면, 이 또한 우리의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 이유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협박을 당하실 분도 아니시지만, 우리가 협박할 수 있는 분도 아닙니다.
그리하여 이로부터 우리의 기도 자세가 어떠 해야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인 마태복음 6장 6절을 통해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하게 기도하라’고 말입니다. 이는 실제로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기도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대단하시고 얼마나 크신 분인지를 말입니다. 그에 비하여 우리는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의 기도는 아주 겸손해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간절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도는 응답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어떤 내용으로 기도할지에 관한 고민에 앞서서 우리가 어떤 자세로 기도할지도 고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용에 앞서 자세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마태복음 6장 9절부터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문이 나옵니다. 어쩌면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기도의 태도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겸손히 주님의 은혜를 구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응답하실 것임을 이야기 합니다.
바라건데, 오늘 이곳에 모인 우리가 주님께 겸손히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주님께 먼저 무엇을 구해야할지를 물으면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주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오늘 그와 같은 은혜를 누리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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