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통한 교훈을 배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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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 78:6-8(구약 858쪽)
설교제목: 역사를 통한 교훈을 배우십시오.
6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7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8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역사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변화를 기록하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역사는 시간 순서에 따라 기록합니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순으로 말이지요. 그러나 시간 순서에 따른 모든 기록이 역사는 아닙니다. 아마 이름을 많이 들어보셨을 영국의 역사학자 흔히 ‘이. 에이치. 카(E.H.Carr)’라고 불리는 에드워드 헬릿 카는 그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 “역사가의 해석이 있어야만 역사적 사실이 성립한다” 이는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을 역사가가 평가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짐을 뜻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역사의 여러 훌륭한 인물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인물 말입니다. 그 외에도 더 많은 위인이 있습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도 있으니 말입니다. 아마 그들 말고도 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위인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책에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책을 쓴 사람들이 그들을 위인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어떤 사람들이 위인으로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사실의 나열이 아닙니다.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가에 의해서 평가되고 구성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사를 기록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역사가 어떤 쓸모가 있을까요? 사실 저도 이 분야에 전문가는 아니니깐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없지만요. 이에 관해 많이 이야기되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 많이 들어본 표현일 것입니다. 흔히 이 말을 우리나라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 했다고 또는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이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사실은 누가 한 말인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정확합니다. 물론 누가 이 말을 했느냐 이 말이 담고 있는 역사의 교훈이 중요합니다. 그 교훈은 이렇습니다. 역사는 미래를 위해 필요함을 얘기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도 사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다시 한 번 같이 읽습니다. 시편 78편 6절에서 8절 말씀입니다.
시 78:6-8(구약 858쪽)
6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7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8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방금 읽은 구절은 이렇게 합니다. 6절에서 후손들에게 이를 알게 하라고 합니다. 7절은 그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말씀을 따라라는 것입니다. 8절은 그래야 선조들과 같은 꼴을 당하지 않을 것을 말합니다. 다시 정리해서 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다음 세대에게 선조들의 역사를 가르치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선조들과 같은 불행을 겪지 않을 수 있고 보다 밝은 미래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역사가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는데, 오늘 성경구절도 미래 세대들에게 역사를 가르쳐야 함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 이스라엘의 역사란 이런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음소리를 듣고 구원해 내십니다.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홍해를 가르셔서 바다를 건너가게 하셨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광야의 길을 지켜주셨으면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을 것도 주셨습니다. 더욱이 노예였고 종이었던 그들에 하나님은 땅을 주셔서 자유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배신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광야의 여정 중에는 하나님께 불평을 쏟아 놓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으며 심지어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른 신 곧 우상을 숭배하기에 이릅니다. 참다 못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 따른 벌을 내리시지만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한 죄를 반복해서 짓게 됩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살던 땅에서 쫓겨나고 이전과 같이 타국에서 전쟁포로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오늘 시편의 시인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흑역사를 길게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상들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고 동시에 이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래 세대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를 통해 미래 세대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78편은 72절로 되어 있습니다. 다른 시편에 비해 상당히 긴 분량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 이를 놓고 생각해 봅니다. 시인은 구구절절하게 미래 세대가 역사의 교훈을 얻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하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역사를 통해 얻어야 하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신실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 이래로 계속해서 인간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원하겠다는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계속해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리하여 앞서 말씀드린데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함을 받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것처럼 언제나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둘째, 반면에 인간은 신실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죄로 인해 벌을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죄를 짓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기로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하여 광야에서 40년을 유랑해야 했으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범죄함으로 나라가 멸망하여 포로신세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죠. 인간은 어리석게도 세계 대전이라는 것을 한번도 아니고 무려 2번이나 일으켰으며, 아직까지도 전쟁이 끝이지 않고 있습니다.
셋째,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인간은 역사적으로 우리가 믿고 따를만한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참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함이 너무 당여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를 통한 역사의 교훈은 우리가 삶의 의미와 가치와 중심을 두어야 할 분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 속하여 살아가는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또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고 오직 하나님께만 구원이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인은 역사의 교훈을 통해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선조들의 어리석은 역사를 반복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구원받고 복된 삶을 누리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시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역사의 교훈을 따를 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 대부분은 그것을 따라야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답이 있음을 알면서도 왜 어떤 이들은 그 글에서 벗어났으며 선조들 가운데는 그로 인해 고초를 겪었는지 말이지요.
그것은 사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나의 뜻을 버려야 합니다. 어제도 비슷한 얘기를 나눴지만 비워져야지만 새롭게 채울 수 있습니다. 나로 가득찬 것 안에서는 하나님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나를 비우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나를 비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방식을 거스르는 일이고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일입니다. 세상은 내가 주인공이 될 것을 가르키고 나를 중심에 두고 살 것을 가르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은 그것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러니 두려운 것이 됩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타는 것이 좀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나와 다른 운전 습관을 가진 사람의 차를 타면 내 마음 같이 않아서 여러 모로 신경이 쓰입니다. 더욱이 그가 초보운전자라면 불안감은 더욱더 커집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운전을 하지 못할 때는 사실 그것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상대를 믿고 차에 몸을 싣으면 불안감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께 내 운전대를 믿고 기꺼이 내어드릴 수 있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 됩니다. 그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를 참으로 구원하는 길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바라건대, 오늘 시인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믿을만 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을 믿고 따르는 삶이 우리에게 복이 되고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주님의 뜻을 따라 살기에 힘쓰는 우리가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