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성수의 의미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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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출애굽기 20:8(구약 113쪽)
설교제목: 주일성수의 의미에 관하여.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은 흥미롭게 접한 이야기가 있어서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질문을 드릴게요. 일요일에는 교회를 꼭 나가야 하나요? 아마 여기에 모인 분들은 오늘이 일요일인데 이미 몸소 보여주신 것처럼, 일요일에 교회에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관해 한 신학자가 말합니다. ‘일요일에 꼭 교회에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신학자가 이런 말을 하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실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만 봐도 그렇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되어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십계명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따라야하고 지켜야 하는 법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 신학자라는 양반은 성경도 몰라서 일요일에 꼭 교회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그 신학자는 성경을 모르지 않습니다. 아마 여기에 있는 우리보다 더 오랫동안 성경을 공부하고 심지어 그것을 가르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신학자가 왜 일요일에 교회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하는 것일까요? 이제부터 찬찬히 그 내용을 잘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러고나면 신학자의 이야기가 무슨 뜻이었는지가 충분히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다 성경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일요일에 교회를 가는 것 또는 예배를 드리는 것을 전문용어로 주일성수라고 얘기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일성수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주일을 일요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일이 본래부터 일요일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에 나오는 안식일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입니다. 정확히는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의 시간을 가르킵니다. 안식일이 제정된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신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주의 시작인 일요일부터 계산하면 토요일이 일곱번째 날입니다. 그러니 안식일은 토요일이 됩니다.
이제 잘 보셔야 합니다.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이라 생각하신 분이 있는데요. 사실 성경말씀을 문자대로 지켜행하면 우리는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에 예배하고 토요일을 주일로 지켜야 합니다. 그러니 사실 일요일에 교회를 가야된다는 것은 성경에 없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을까요? 이는 예수님의 부활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바로 일요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금요일에 숨지셨습니다. 그리고 3일 후에 부활하셨는데 그날이 바로 일요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일요일을 주님께 예배하는 특별한 날로 또는 주님의 날 곧 주일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사실 우리가 일요일에 예배를 하는 것은 성경말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부터 이어져온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주일을 지키는 것은 사실은 다른 것입니다.
어, 그러면 성경에 없는 것을 우리가 하고 있으면 문제가 아니냐고 물으실지 모릅니다. 사실은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따라 반드시 토요일 곧 안식일에 예배해야한다는 이른바 이단종파의 주장이 있습니다. 일견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원래 안식일이 토요일이고 성경에서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또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로마서 14장 5절의 말씀인데 제가 읽겠습니다.
로마서 14:5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앞서 말했듯이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부활한 날인 일요일을 주일로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유대인들이었는데, 본래 유대인들은 안식일인 토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이 문제에 관해 토요일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맞느니 아니면 일요일인 주일을 지키는 것이 맞느냐에 관한 논쟁이 생겨났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이 교통정리를 깔끔하게 합니다. 토요일이고 일요일고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주일은 어느 요일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토요일을 일요일보다 특별하게 만든 것도 아니고 일요일을 토요일보다 특별하게 만든 것도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날을 사실 특별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특정한 날을 고집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요. 앞선 얘기를 반복하지만 반드시 일요일에 혹은 토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또 그것은 성경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일요일을 지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래서 그 신학자의 말은 옳습니다. 꼭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 예배를 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신학자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러나 주일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반드시 행해야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일요일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우리의 삶에서 구별된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한지를 이제 설명합니다.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일요일에 교회가서 예배하는 정도의 것이 아닙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각각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맨처음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20장 8절은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입니다. 성경에서 십계명이 또 등장하는 곳은 신명기 5장인데요. 이 둘을 비교해보면 주일 또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의 의미를 보다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어요.
먼저 출애굽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하면서 이런 얘기를 덧붙여요. ‘네 아들이나 딸이나 종이나 나그네나 심지어 가축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합니다. 이는 당시로써는 충격적인 이야기인데요. 왜냐하면, 노동을 쉬는 것은 신들에게 혹은 신과 같은 높은 존재에게만 허락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심지어 가축까지도 신과 같은 안식을 허락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이 신과 같은 특별대우를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그냥 쉬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또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신명기에서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에 이러한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애굽에서 종이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구원하셨다’라고 말입니다. 이는 안식일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구원에 이르는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해줍니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은 우리가 구원을 받아서 자유함을 누리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그저 일요일에 교회가서 예배하는 정도의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은혜받은 존귀한 자임을 기억하는 것이고요. 또 우리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구원받고 자유하게 된 자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은혜 받은 자로써 그것에 감사하고 감격하며 예배드리고 이로부터 받은 은혜를 우리만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고자 결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주일을 지키는 것 곧 주일성수의 의미입니다.
얘기가 길어져서 다시 정리합니다.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일요일에 교회가서 예배하라는 의미만이 아닙니다.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를 바탕으로 감사하며 그와 같은 은혜를 함께 누리도록 힘쓰는 일입니다. 그러니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일요일에 얼마나 예배에 잘 참석했느냐로 평가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것에 참으로 감사하며 이를 세상에 전하기를 결단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진 것이냐 아니냐로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교회에 한 번도 안 빠지고 열심히 예배했다고 해서 우리가 주일을 잘 지켰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관심할 것은 일요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했냐 안 했냐가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로 나와서 예배하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아, 그럼 저는 일요일에 예배하지 않고 다른 요일에 예배하겠습니다. 또 어떤 분은 아, 그럼 저는 성심성의껏 예배드릴 수 있는 마음이 들 때만 예배에 나오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만약 진정으로 그렇게 하실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참된 주일성수를 스스로가 알아서 잘 하실 수 있다면 그렇게 해보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훌륭하질 못해요. 완벽하지도 않고요. 그러다보니 사실은 의지만 가지고 어떤 것을 이룰 수가 없어요. 물론 개중에는 이른바 독한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그래요. 저 깊은 산속에 들어가 도를 딱을 수 있는 분들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교회라는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죠. 그런 경험이 있잖아요. 혼자서는 도무지 할 수 없었는데 같이 하니깐 또 가능했던 경험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구절에도 이와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전도서 4장 12절 말씀인데 제가 읽겠습니다.
전도서 4:12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우리말에도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지요. 홀로 할 수 없고 혼자의 힘으로 부족하지만 공동체를 통해 우리는 놀라운 일을 이루고 굉장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해서 일요일에 정해진 시간에 예배하는 것이고요. 또 조금은 부족한 마음과 태도일지라도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변화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상태로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지금껏 신앙생활 해왔던 방식을 고집하면 안 됩니다. 내가 더욱더 하나님의 뜻을 쫓아 행할 수 있도록 우리 공동체를 통해 이 교회를 통해 나를 변화시켜 나가는 겁니다.
그리하여 바라건데, 저는 우리가 오늘 예배하는 것이 그저 습관을 쫓아서 이전의 방식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오늘도 조금씩 변화될 것을 믿고 그에 따라 조금씩 자라고 새로워지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