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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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79:13(구약 861쪽)
설교제목: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합시다.
13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시편을 읽으면서 그런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무렵입니다. 그 무렵에 저희 가족은 여러 번 이사를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 좀 과장해서 한 10번 정도 이사했던 것 같습니다. 약 한 달에 한번꼴인 셈인데, 어떤 곳에서는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을 머물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파트 주택 여러 곳을 이사했는데, 그 이유인즉 아버지의 사업에 문제가 생겨서 빚쟁이를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절망적인 상황과 마주 했습니다. 집에 전기가 끊어지고 누구 짓인지 알 수 없지만 열쇠구멍에 본드같은 것이 발라져서 집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큰 두려움이 밀려 왔습니다. 이제 집도 없어지고 길바닥에 내 앉는 것은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고3이라는 적잖은 나이였지만, 그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날 밤은 가족들이 여관에서 잠을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혹시 우리 성도 분들은 저와 같은 절망에 상태에 놓여 본 적이 있으십니까? 어쩌면 그보다 더 가혹한 상태를 경험한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79편이 그와 같은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겪은 절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고통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오늘 시편 2절에서 4절까지를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편 79:2-4(구약 861쪽)
2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3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4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나라가 멸망하는 경험이 두 차례 있었습니다. 하나는 앗시리아 제국에 의해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때였고 다른 하나는 바벨론 제국에 의해 남유다가 멸망한 때였습니다. 둘 중 어느 때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인이 처한 상황이 이러한 때임을 방금 읽은 성경구절로 알 수 있습니다. 섬뜩한 장면들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의 주검이 들짐승들의 밥이 되었고 사람들이 피가 예루살렘 사방을 뒤덮습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아마 전쟁 영화에서 봄직한 끔찍한 살육과 피비릿내가 진동하는 장면일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절망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나라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로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자긍심을 잃어버렸고 큰 슬픔과 좌절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내게 직접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앞서 저의 경험처럼 자신이 지금껏 살며 경험한 가장 절망적인 때를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바로 그것이 시인이 처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극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초한 일입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하나님께 이렇게 구합니다. 오늘 시편 8절에서 9절까지를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편 79:8-9(구약 861쪽)
8 우리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소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
9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결론부터 말하면 이 일은 죄에 따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하나님께 죄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생각해 봅니다. 모든 불행한 일이 죄에 따른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 겸손히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죄의 따른 것이라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줍니다. 앞서 말씀드린데로 고대 이스라엘은 나라의 멸망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로 인함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죄의 용서를 구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기꺼이 용서해 주시고 다시 그들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70년이라는 긴 포로생활을 끝내고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의해 율법이 다시 세워지고 성전이 재건되었습니다.
달리보자면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뉘우치고 그로부터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에 70년이라는 포로생활이어진 것입니다. 광야에서 40년이라는 시간을 헤메인 것도 그때문입니다. 그러니 회개는 1초라도 빠른 것이 좋습니다. 아니면 허송세월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을 뉘우치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시편의 시인은 앞서 보았던데로 죄의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를 벌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분임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마치 이런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훈육하고 교사가 학생을 교육하는 것은 옳은 길 또는 좋은 길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만약 부모나 교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녀나 학생을 이용하는 것이라면 그들은 진정 부모나 교사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진정 자녀와 학생을 위한 부모와 교사는 궁극적으로 옳은 길로 이끄는 이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 길을 벗어날 때에 다시 옳은 길로 돌이키도록 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어디까지나 옳은 길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옳은 길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에 목적이 있지 벌을 주거나 그것을 즐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저는 시인이 이러한 믿음의 바탕으로 오늘 시편을 이렇게 끝맺고 있을 봅니다. 다시금 같이 읽습니다. 오늘 시편 13절입니다.
시편 79:13(구약 861쪽)
13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시인이 이러한 고백을 하기까지를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앞서 말씀드린데로 시인은 극심한 고통과 절망 속에 있습니다. 나라가 망했고 사람들이 죽어가며 많은 피가 사방에 뿌려져 있습니다. 이런 끔찍한 현실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며 하나님을 붙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이 없다면 방금 읽은 성경구절과 같은 고백은 불가능하리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이 시편을 읽다가 마지막 구절에서 눈이 머물렀습니다. 언뜻 생각하기에 시인의 말은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상황에서 시인은 어떻게 감사를 얘기할 수 있을까요? 우리 성도 분들은 어떠셨는지 몰라도요. 저는 앞서 고3 때에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대체 왜 이런 고난이 내게 찾아오는가라고 생각하면서 이것이 다 무능한 아버지 때문인 것 같아 원망스럽고 화가 나고 했습니다.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입니다.
제가 불효막심한 놈이어서 그런 것일까요? 대체 고난을 겪으면서 어떻게 감사를 할 수 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인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를 말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시인의 믿음이 견고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시인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잘 알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죄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따지고보면 시인이 겪는 고난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물론 시인 혹은 그의 조상들의 죄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요. 고난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니 말입니다.
그러나 시인의 믿음은 이랬던 것 같습니다. 비록 죄로 인해 우리가 고난을 받지만,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것이고 구원하시는 것이니 말입니다. 이 믿음 안에서 시인 은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을 믿으며 감사로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진정한 부모와 교사로 우리를 옳은 길로 좋은 길로 인도하고 있음을 믿습니까? 어쩌면 삶에서 마주한 불행과 고난 앞에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기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돌이켜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히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돕고 우리를 위하시는 분입니다.
바라건데, 우리가 이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살 때,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여러 문제 앞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굳건한 믿음으로 주님의 뜻을 쫓아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