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을 세우는 선택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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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0:23-24(신약 275쪽)
설교제목: 덕을 세우는 선택을 합시다.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는 신앙의 권면을 듣습니다.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즉각적으로 성경에서 답을 얻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지 못해 고민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기도도 해보지만 왠지 모르게 기대가 충족될만큼 즉각적으로 응답이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가령,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음식점을 할지, 편의점을 할지 카페를 할지 고민중입니다. 이 분은 신실한 분이어서 하나님께서 이를 놓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래도록 기도해도 별다른 응답을 얻지 못합니다. 또 어떤 분은 이사를 가려고 합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주택이 좋을지 아파트가 좋을지 고민하며 기도합니다. 앞선 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도하지만 확실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제가 몇 가지 가상의 예를 들었지만, 이보다 더 사소한 경우에도 고민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물건을 산다고 할 때, 어떤 음식을 먹는다고 할 때와 같지 생활의 여러 상황 속에서 고민이 생길 때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선택해야할지를 망설이고 그로 인해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일도 어떤이에게는 심각한 일이 될 수 있으니까 대체로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신실한 신앙인이라면 과연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성경을 펴고 어디를 살펴보아도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의 여러 문제들을 성경이 명쾌하게 답해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을 편지로 받게 되는 고린도교회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사람들은 꽤나 신실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에게는 이전과 달리 고민하게된 것들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언뜻 우리 입장에서는 잘 이해되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고민은 이런 것입니다.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써 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 일인가하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혹시 그리스도인은 고기 먹으면 안 되냐고 물으실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당시 사회적 배경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고기를 먹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물론 매일 같이 고기를 먹는 경우도 드물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드물게 먹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어떤 시절에는 고기는 커녕 밥을 먹는 것도 힘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 당시에는 그것이 더욱더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고기를 먹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였는데 그것은 이랬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있는 고린도라는 지역에서는 여러 신전이 있었고 그곳에서 제사를 치르고 거기에 제물로 사용된 가축이 시장에서 싸게 거래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고린도 지역에서 싸게 살 수 있는 고기는 대부분 신전에서 제사를 치르고 시장에 나온 고기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빗대어 얘기하자면 제사에 사용한 음식을 보통은 떡이나 전과 같은 것을 이웃집에서 나눠주는 것입니다. 음식이 귀한 시절에는 그것이 참으로 값진 것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실한 신앙인들은 여기서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상에게 바친 제물 또는 음식을 먹어도 괜찮은가하고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아니고 왠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써 깨름직한 느낌이 듭니다. 지금처럼 먹을 것이 풍족한 시대에는 그것을 과감히 포기하거나 받지 않을 수도 있겠는데요. 과거처럼 먹고사는 것이 중요했더 시절에는 그렇게 값비싸고 기름진 음식을 먹을 기회가 흔치 않으니 얼마나 갈등이 되겠습니까?
이에 사도 바울은 오늘 성경구절로 답하고 있습니다. 다시금 고린도전서 10장 23절에서 24절의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고린도전서 10:23-24(신약 275쪽)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린도교회 가운데는 고기를 먹는 문제에 관해서 서로 다른 입장으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우상에게 바친 고기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 하나의 입장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는데 우상 말그대로 헛된 것이므로 그것에게 바친 고기를 무엇이 두려워서 못 먹느냐고 오히려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그 우상들을 더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냐고 하는 입장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고기를 먹어도 된다, 안 된다를 놓고 갑논을박하며 논쟁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이 방금 읽은 성경구절로 답을 하는 것인데요. 먼저 바울은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얘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4장 4절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디모데전서 4:4)” 그러니 우상에 바치 고기라고 먹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앞서 읽은 성경구절에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꼭 좋은 일 정확히는 ‘덕을 세우는 일(고린도전서 10:23)’은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결국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이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덕을 세우는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런 것입니다. 술을 마시는 것, 담배를 피우는 것을 해야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대체로 이에 우리는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 얘기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어떨까요? 스포츠를 하는 것,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은 해야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아마 여기서는 좀 헷갈리는 분이 있을 겁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은 어떻습니까? 고기 먹는 것, 사탕이나 초콜릿 먹는 것 해야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아마 이건 대부분이 별문제 없는 것으로 여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사실 술과 담배부터 시작해서 고기와 사탕과 초콜릿까지 그것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술과 담배는 나라에서 정한 법이 있으니 법적으로 저촉이 되지 않는 범위에서요. 이렇게 말하면 저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모든 것은 가하다’고 얘기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든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뒤에 덧붙이는 내용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줍니다. ‘모든 것이 유익하지 않고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일’은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든 선택을 할 수 있지만 모든 선택이 좋은 선택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입니다. 먼저 술, 담배 얘기를 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인이 술과 담배를 하지 않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의 영향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의 눈에는 당시 우리나라의 음주와 흡연이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만연해 있었는데 이를 개선하고 새로운 삶을 제시하기 위해 제안된 것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술과 담배는 그 무렵 일제의 침략으로 우리 민족을 무너트리려는 일제의 수작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일제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확산되어서 중요한 사회운동으로까지 확산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와 다른 나라 보다 정확히는 우리 개신교가 시작된 독일에서는 맥주와 같은 술이 금지되거나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와 다른 문화에 속한 나라들에서 종종 발견되는 모습인데요. 복잡하게 이야기 할 것 없이 우리가 술마시고 담배를 핀다고 구원을 못받거나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는 이것이 중독을 일으키는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술과 담배에 중독이 된 사람에게는 이것이 생활에 여러 지장을 줍니다. 그러니 그것을 금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위험을 가지고 있는 이들 앞에서 술과 담배를 권하거나 그것을 편하게 하는 것은 결코 덕이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영화나 드라마 스포츠 고기와 사탕과 초콜릿 등이 그것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요.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해가되거나 중독을 일으키거나 한다면 그것을 행하는 것 분명 주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우리는 우리 선택의 기준을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인의 선택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덕을 세우는 선택을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나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때로는 나의 선택을 제한하거나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로부터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처럼 모든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만드셨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어떤 선택은 누군가를 실족케하고 누군가를 괴롭게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선택은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를 아끼는 마음으로 이뤄저야 합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이웃 사랑의 실천일 것입니다.
바라건데,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이는 나의 유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일입니다. 그만큼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함을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선택과 결정 앞에 놓일텐데 그 선택 속에서 덕을 세워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