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을 덮어주는 관계를 이룹시다.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창세기 2:25(구약 3쪽)
설교제목: 허물을 덮어주는 관계를 이룹시다.
1.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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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봉독: 창세기 2:25(구약 3쪽)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3. 말씀나눔: 허물을 덮어주는 관계를 이룹시다.
제가 다음주 수요예배 설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5월을 흔히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해서, 가족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여러 자료를 살피다가 접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방금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구절은 결혼과 관련하여 많이 인용되는 성구입니다. 이 성구에 관한 짤막한 해설을 어떤 신학자를 통해 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성구에 관해 새롭게 깨닫을 것이 있는데요. 오늘은 이에 관한 얘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제가 이상한 사람인지는 몰라도 이 성구를 접할 때면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영화등급으로 비유하자면, 19금과 같은 느낌 말입니다. 나체로 있는 두 남녀의 모습이 에로틱하거나 선정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혹시 제가 진짜 이상한 사람일까봐 저의 아내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이 구절이 영화장르로 치면 어떤 것에 속할 것 같냐고요. 그러자 같이 사는 사람이라 그런지 비슷하게 에로쪽인 것 같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은 저의 생각과는 달리 영화등급에 비유하자면 전체관람가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벌거벗었다’는 것의 의미가 고대 세계에서 다르게 이해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고대는 신분이 나눠져 있었습니다. 왕과 귀족과 같은 높은 신분이 있는 반면에 평민과 노예와 같은 낮거나 천한 신분이 있었습니다. 그 신분을 구분 짓는 것 중 하나는 그들의 복장에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옷은 단지 몸을 가리거나 보호하는 것 이상으로 그 존재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옷이 벗겨져 벌거벗었다는 것은 존재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수치를 당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벌어벗었다는 것은 보통 고대 세계에서는 수치스러운 상태 곧 허물을 보인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구절에서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다는 것은 물론 실제로 나체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서로의 허물을 보인 상태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서 볼 것은 두 사람이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관계를 이뤘음을 말합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의 장점만 보지 않고 단점까지도 받아들이는 아름답고 따뜻한 관계를 이룬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단지 부부관계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성경은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 또는 부부관계를 통해 공동체가 어떤 곳인지를 교훈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깐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신앙공동체를 위한 교훈으로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서로의 허물을 덮어줄 수 있는 관계를 통해 부부라는 연합을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신앙공동체 또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연합을 이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바라건대, 오늘 우리 또한 이러한 관계를 이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고 허물이 있습니다. 주님께 속한 우리는 그것을 용납하고 덮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로부터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