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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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고린도후서 5:17(신약 291쪽)
설교제목: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김기석 목사님이라는 분을 아시는지요? 지금은 은퇴했지만 전에 청파교회를 담임했던 분이신데요. 그분에게 어떤 분이 이런 사연을 보냈어요. 아버지, 어머니,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와 자기는 분명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자기 생각에는 아버지는 그러한 믿음 없이 그냥 교회를 출석하는 것 같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사연을 보내요. 그러니깐 김기석 목사님이 이렇게 답을 해요. 그냥 내버려 두시라고요.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덧붙여요.
기독교의 역사에서 좀 특별하다할 인물이 있는데요. 그는 기원후 4세기에 활동했던 아우구스티누스 또는 어거스틴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른바 교부라고 해서 오늘날 교회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인데요. 놀라운 것은 그가 처음부터 기독교인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식으로 말하면 이단이라고 할 수 있는 마니교에 빠져 있었는데요. 그러나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요. 어머니는 아들의 이런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우리로 치면 담임목사 당시로는 주교인 암브로시우스에게 찾아갑니다. 그러면서 아들이 마니교에 빠져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상담하는데요. 암브로시우스가 이렇게 답해주는 겁니다. ‘눈물로 기도한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라고 말이지요. 참 놀라운 것은 정말로 훗날 아우구스티누스는 특별한 체험을 하고 기독교인이 되었는데요. 그뿐만 아니라 그는 그동안 자신이 갈고 닦았던 학문으로 기독교의 기틀을 마련하는 위업을 성취합니다.
이에 덧붙여서 김기석 목사님이 자기 얘기를 해요. 자신이 신앙생활을 한 것은 고등학교 때쯤 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되고서 신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신학교에 입학을 하는데요. 어느 날 어머니가 잠깐 얘기를 나누자고 부르시더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이랬다고 해요. 내가 사실은 오래 전부터 기도했다고 해요. 뭘 기도냐고 물으니깐, 우리 집안에 주의 종이 나오면 좋겠다고 기도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아들이 신학교에 입한 것이 기쁘다고 그래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아니 그랬으면서 왜 한번도 교회를 가자고 하지 않았냐고 말이죠. 그러니 어머니가 이렇게 답했다고 해요. 믿었다고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실 줄을 말이에요.
이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해보게 되는 거예요. 과연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일까하고 말이지요. 어쩌면 믿음이라는 것은 변화의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해요. 저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도 그것을 말해준다고 여기는데요.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신약 291쪽)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오늘 우리는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고린도전서 그리고 고린도후서 이렇게 두 권의 책으로 나눠지지만요. 사실은 고린도전후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아마 4통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져요. 이미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면서 이전에 보낸 편지를 언급하는데요. 이는 고린도전서를 보내기 전에 보낸 편지가 있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고린도후서에는 사도 바울에게 좀 가슴 아픈 사연과 큰 기쁨이 교차하고 있는데요.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이래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나는 상황이 되었어요. 이를 비롯하여 고린도교회에 여러 문제가 생겨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통해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답하고자 편지를 써서 전달하는데요. 그것으로도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서 사도 바울이 조심스럽게 고린도교회를 다시 방문하게 돼요. 자신이 직접 고린도교회로 가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도 바울은 많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떠난 것은 교회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둥, 과연 바울이 사도로써 부름을 받은 것이 맞느냐는 둥의 여러 공격이 있었죠. 사도 바울은 결국 아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고린도교회를 떠나서 다시 자신의 마음을 편지로 써서 전달하게 돼요. 그것이 고린도후서를 쓰게되는 배경인데요.
그렇게 쓰여진 편지를 이번엔 디도를 통해서 보내게 되고요. 다행히도 그 편지에 고린도교회가 반응하여 그동안 안고 있던 문제가 해소가 되었어요. 그 소식을 편지를 가지고 갔던 디도가 전했고 이에 큰 감사와 기쁨을 가지고 사도 바울이 또 다시 편지를 쓰는 것도 고린도후서의 배경이에요. 그래서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의 눈물과 기쁨을 담은 두 개의 편지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요.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에서는 사도 바울의 기쁨이 담겨 있어요.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의 심정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을 보면 이것이 더 강렬하게 와 닿을 수 있어요.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사도 바울이 참으로 진실된 마음과 사랑으로 고린도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위해 봉사했어요.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오해받고 그로 인해 큰 상처를 받게 돼요. 특히나 자신이 낳은 자식같은 교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오해받는 일은 얼마나 괴롭고 슬픈 일이겠어요. 그 배신감을 생각하면 아마도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과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거예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은 이런 것이거든요. 사람은 변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변한다라는 거예요.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정말로 그와 같은 변화를 스스로가 경험하고 또한 고린도 교회의 변화를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주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리고 사실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을 헬라어 원어로 놓고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사도 바울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성경에서 이와 같은 표현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사건에서 사용되는 말이에요. 그러니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전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창조되어진다는 거예요. 또 마지막에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문법적으로는 완료형을 뜻하는 말이에요. 그러니깐 우리는 변화하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새로워졌다는 거에요. 그러니 사도 바울이 이 말을 할 때, 어떤 의미로 이야기했는지를 잘 알 수 있어요. 그냥 점점 좋아지겠지 또는 앞으로 나아질 거야하는 정도 얘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굉장한 확신에 차서 우리는 새로와졌어. 변했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저는 이것이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이 아닐까 해요. 사실은 어느 순간에 우리가 살면서 이렇게 생각하거나 느낄 수 있어요. ‘사람은 참 안 변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그 말이 참 맞다’라고 말이지요. 특별히 가족들의 모습 속에서 그와 같은 것을 더 강하게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자녀가 남편이나 아내가 또는 시댁, 친정 식구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혹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말이지요. 그러면서 더 이상 변화의 가능성을 기대하지 않거나 오히려 변화지 않을 것을 굳게 믿게 될지도 몰라요.
그런데 성경은 오늘 우리게 교훈하고 있어요. 아니라라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어떻게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느냐고요? 우리 스스로가 예수를 이렇게 믿고 있잖아요. 정말 우리가 이와 같이 예수를 믿게 될 것을 생각하셨던가요?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기에 나와 계신 분들은 분명히 이렇게까지 신앙생활하게 될 것을 알지 못했을 거예요. 이 새벽에 이렇게 나와 내가 기도하게 될 줄을 어떻게 아셨던가요?
그리고 설령 나는 이렇게 신앙생활하게 될 것을 생각했고 이것이 전혀 새롭고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할지라도요. 하나님이 우리를 믿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그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까지 하셨잖아요. 우리가 반드시 변화될 것을 믿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이 우리의 변화를 믿는데, 우리가 변화되지 않을 것을 못믿을 까닭이 어디에 있겠어요.
바라건데 오늘 이 하루를 이렇게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킬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또 변화에 대한 믿음으로 오늘 나를 둘러썬 여러 문제와 환경들이 새로워질 것을 기대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새롭게 변화될 날을 위해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