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능의 조건

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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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이상히 여기셨더라

서론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역사를 엄청나고 큰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세상을 뒤흔드는 기적, 시공간을 초월하는 능력을 기대하지만, 하나님은 때로는 세미한 가운데 말씀하십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강한 바람, 지진, 불 가운데 계시지 않으시고, 세미한 소리 가운데 계심을 경험했습니다.
열왕기상 19:11–12 (nkrv)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특정한 모습으로만 한정짓는다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그분의 섬세한 손길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익숙하고, 늘 반복되던 일상에 서도 주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데, 하나님의 역사가 내 생각한 방식과 사람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리라는 이러한 고정 관념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국 주의 역사에 동참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1. 예수님의 고향 방문 (막 6:1)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곳은 예수님이 자라나신 곳이자, 목수로 일하셨던 친숙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애정을 더욱 가지고 있으셨겠지요.
하지만 나사렛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지나치게 익숙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 마리아의 아들로만 여겼지, 하나님의 아들로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고친 문짝은 맡길 지언정 더 중요한 것은 맡길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그들의 고정 관념, 편견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의 기대에 맞추어 제한하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 (막 6:2)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지혜와 권능으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그 앞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근원을 의심했습니다.
아무런 가르침도 없었고, 역사도 없어도 믿으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놀라운 말씀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일어난 말씀과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는데, 온갖 핑계를 대고 억지로 이 사실을 눌렀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라고 수군거리며,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메시지 자체보다는 메신저의 배경과 출신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겉모습이나 배경에 집착하여, 정작 그 메시지에 담긴 진리를 놓치곤 합니다. 세상의 어떤 영광과 권위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더욱 빛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거꾸로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있는데, 우리의 눈과 마음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가 참 많다는 사실입니다.

3. 사람들의 반응 (막 6:3)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리아의 아들 목수"로 규정지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특별한 존재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이웃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편견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말 성경에 “배척한지라”로 표현된 것이 정확히는 여기에서 넘어졌다는 말입니다. 잘 진행될 수 있는게 여기에서 걸림이 되었다는 말이죠.
우리도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평가하고 분류하지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의 좁은 시선이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역사는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생각보다 크고, 또 때로는 생각보다 섬세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폼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너무도 평범하고, 늘 가까이 있고, 익숙하던 자리에서 그러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4. 예수님의 반응 (막 6:4)

예수님은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귀하지 않음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나사렛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앙의 근원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익숙함에 안주할 때, 그들의 영적 감각은 무뎌지기 마련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 20:8 “8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선지자의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진리를 전하기에, 그들은 종종 배척과 조롱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더욱 심각하고 우리의 태도와 가까운 것은, 진리의 말씀이 마음에 찔려서 불편해서가 아니라, 지혜와 권능을 발견 했음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5. 예수님의 권능 제한 (막 6:5-6)

예수님은 고향에서 나사렛에서 병자 몇 명 외에는 아무런 권능도 행하지 못하셨습니다. 이는 그분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믿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말씀에서도
마가복음 5:34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닫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한다면, 우리 가운데 임하실 수 있는 놀라운 역사도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인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역사를 보고 깨달을 수 있는 그러한 안목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지 않음을 보시고 이상히 여기셨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우셨겠습니까? 애정이 있고,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오셨을텐데, 역사를 가로막는 그들의 영적 무지와 완고함이 안타까우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치료와 구원의 역사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걸 우습게 보고 믿지 못해서 누리지 못한다면 얼마나 아쉽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결론

나사렛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기대와 편견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특정한 모습으로 제한하거나, 그분의 메신저들을 평가하고 분류한다면, 결국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놓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없다면, 넘어지고 배척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고정 관념과 편견의 벽을 허물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눈을 열어, 익숙한 일상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어디에서 이러한 지혜와 권능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들에게 너무 익숙한 사람을 통해 이루어져서 예수님을 이상히 여겼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습니다.
우리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이상히 여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동참하기 위해, 지금 우리의 믿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할 때입니다. 주의 역사는 너무 일상적이고 익숙한 그 자리에 우리의 믿음이 더해질 때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놓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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