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7: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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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계시록 7:9-17 찬송가 249장 ‘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할 때에’ 요한계시록 4장과5장은 세 개의 연속 환상,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배경이자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6장부터 일곱 인의 환상이 전개되는데 8장 초반까지 이어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여섯째 인과 마지막 일곱째 인 사이에 일곱 인 환상이 아닌 ‘이스라엘의 십사만 사천과 흰 옷 입은 큰 무리’의 환상이 있습니다. 이를 ‘막간(interlude)’ 또는 ‘삽입 묵시’라고 말합니다. 이런 막간이 3개의 ‘일곱 심판’ 중 2번 더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막간’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의 십사만 사천과 흰 옷 입은 큰 무리’의 환상 중 후반부에 해당합니다. 큰 무리가 나와(9-10절)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절에서 8절이 지상 교회를 언급한 것이라면 9절부터 17절은 천상 교회를 언급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십사만 사천’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즉 ‘십사만 사천’의 수는 상징적이며, 셀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한 구원받을 자들의 수를 의미합니다. ‘흰 옷’은 ‘정결’, ‘순결’, ‘승리’를 뜻하며, ‘종려나무’는 ‘번영’, ‘영광’, ‘부활’을 상징합니다. 부활주일을 다른 말로 종려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그 주간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영한 것에서 유래하여 부활주일을 종려주일이라고도 합니다.
9절은 구원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어린 양이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어 하늘에 계신 예수님’ 앞에 선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처럼 우리도 천상 교회의 성도로서 어린 양 앞에 설 것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천상 교회에서 각 나라로부터 온 성도들이 하나님과 어린 양이신 주님을 경배하며 찬양할 소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외치다’는 달리 번역하면 ‘소리지르다’, ‘부르짖다’입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은 이유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내는 소리는 어떻습니까? 지금은 비록 우리가 때론 힘에 겨워 겨우 소리를 내고 있다면, 천상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 내는 큰 소리를 생각하며 온 마음을 다해 찬양합니다.
큰 소리를 외쳐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찬양의 내용 역시 중요합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비전찬양) 가사 그대로 말씀 그대로입니다.
죄인들을 의롭게 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원은 전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천상 교회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이유는 죽을 죄인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때문입니다. 천상 교회 성도가 되기를 소망하는 지상 교회 성도는 이 땅에서도 이렇게 찬양해야 할줄로 믿습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이를 가사로 한 찬양곡이 있으니 그 찬양곡을 틀어놓고 같이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천사들이 찬양하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모든 천사가(11-12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앞 구절에서는 각 나라에서 나온 큰 무리들, 즉 구원받은 사람들이 흰 옷을 입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면 11절과 12절은 모든 천사들이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하는 내용입니다. 모든 천사가 천상 교회의 장로들과 ‘모든 피조물을 상징하는 네 생물’ 주위에 서 있다가, 하나님께서 앉으신 보좌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6장에서 여섯째 인을 뗄 때 나타날 일을 보면, 세상의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들과 자유인’이 숨을 수 있는 곳에서 누구를 볼 것이라고 합니까? ‘보좌에 앉으신 이’입니다. 왜 숨어서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겠습니까? 그분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없을 정도로 이 땅에서 선하게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누가 능히 서리요’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누가 능히 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외면했던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들과 자유인’은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설 수 없겠지만,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믿고 인정한 성도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설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다음은 모든 천사가 천상 교회 성도들의 ‘구원 찬송’에 대한 ‘화답 찬송’입니다.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모든 천사의 ‘화답 찬송’은 아멘에서 시작해서 아멘으로 마칩니다. 아멘은 무슨 뜻입니까? ‘진실한’, ‘확실히 그러합니다, ‘견고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러하실런지요?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중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발신자 예수님을,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7: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장로 중 하나’는 5장 5절에 나오는 ‘이십사 장로 중 한 사람’입니다. ‘장로 중 하나’가 사도 요한에게 질문한 것입니다.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이는 ‘장로 중 하나’가 ‘흰 옷 입은 자들’을 몰라서 사도 요한에 물은 것이 아닙니다. 묵시의 전형적인 문답 형식입니다. ‘흰 옷 입은 자들’은 9절에서 언급하듯이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입니다. 한 장로의 질문에 요한은 이렇게 응답합니다.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보면서 환상에 등장하는 이들을 어떻게 정확히 알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말합니다.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사도 요한이 ‘장로 중 하나’에게 ‘주여’라고 말한 것은 천상에 있는 존재에게 존경을 표한 호칭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장로 중 하나가 사도 요한에게 문답 형식을 통해 결국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인가. 그들의 실체를 알려줍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큰 환난은 6장 11절에 증거하듯이 ‘죽임을 당하는 환난’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흰 옷을 입은 자들은 순교자들만을 지칭한다기보다 더 큰의미가 있어요. 여러분, 어떤 고난의 상황에서도 주님을 증거한 증인들도 포함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천국에서 흰 옷을 입으려면 주님께서 가신 고난의 길을 걸어가며 주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증거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흰옷을 입은 자들이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함은 예수님의 보혈로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을 문자 그래도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붉은 피로 옷을 씻지도 않을뿐더러 붉은 피로 옷을 씻었다고 하더라도 옷이 붉게 물들 수 있을지언정 옷이 희게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보혈은 붉지만 희게 거룩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멘. 그것은 지상에서 몸과 마음의 더러운 죄를 주님의 보혈로 씻음을 받은 사람들이 천상에서 흰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은 사람답게 거룩하게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5절은 어린 양의 피로 죄사함을 받아 정결하게 된 사람들이 천상에서 어떤 삶을 사는지를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을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성전을 이 땅에서 세워졌던 보이는, 어떤 유형적 성전으로 생각하면 천상을 너무 제한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전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내마음이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천국 전체가 성전인 셈입니다. 장막 역시 이 땅에서 사람들이 경험했던 처소로 이해하면 천국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장막 역시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시는 곳을 의미합니다. 천국의 장막은 우리가 지상에서 누리는 거주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편안함을 누리는 곳입니다. 16절에서 그 이유를 알려줍니다.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오늘날 성도들은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고 몸이 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인 것 같은데, 굳이 장로 중 하나가 왜 이 말을 하였겠습니까? 사도 요한이 살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기독교인들의 핍박이 심했습니다. 그리고 삶이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먹고 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먹지 못할 때가 빈번했습니다. 신앙을 지키며 주님의 증인된 삶을 살다 보면 뜨거운 태양 아래 거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런 고충을 겪은 사람들에게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라는 말씀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흰 옷을 입은 자들이 환난과 고통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는 이유를 다음 구절이 알려줍니다.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어린 양 되신 주님이 성도들의 목자가 되시기에 다시는 주림과 목마름과 상해가 없습니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천국에 대한 소개를 성경을 통해 아주 많이 읽고 들었던 오늘날 사람들의 느낌과 천국에 대한 소개를 처음 들어본 사람들과의 느낌은 크게 다를 것입니다. 당시 핍박 중에 있었던 성도들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씀이었겠습니까?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눈물을 씻어 주신다고 하시니 감개무량한 말씀입니다. 오늘날 역시 편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달리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없는 위로의 말씀이자 소망의 말씀이 됩니다. 가나혼인잔치에 나오는 예수의이 주시는 포도주는 뒤로 갈 수록 맛있다는것은, 완전한 최상의 기쁨와 소망은 하늘나라에서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흘리는 눈물을 주님이 씻어 주십니다. 주님을 믿고, 살다가 만나는 고난과 곤핍으로 내쉬는 한숨 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위한 삶을 살다가 받는 어려움으로 인해 흘리는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다. 나아가 주님의 말씀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되십시다.
그리고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요한계시록에 있는 천국을 알리는 사람으로 살아 가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택하신 사람들을 주님의 보혈로 죄를 사해 주시고 천국에서 흰 옷을 입고 보좌 앞에 설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땅에서 주님을 믿고 따른다는 이유로 고난을 당할지라도 미래에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하나님과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주님과 영원히 장막에서 함께 거함을 생각하며 고난을 이기게 하시옵소서. 지상에서 흘린 눈물을 천국에서 주님이 씻어 주심을 믿고 오늘 하루도 구원하심이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음을 찬양하며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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