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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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에스겔 37:5(구약 1209쪽)
설교제목 : 성령님에 관하여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주일부터 성령강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성령강림절은 오순절에 일어난 성령강림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인데요. 이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임한 사건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를 기념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 교회의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보다 정확하게는 성령 하나님의 본격적인 사역이 이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탄생은 성령 하나님의 사역의 한 부분인데요. 그리하여 우리는 성령강림절을 통해 성령의 일하심을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누구일까요? 사실 이것은 굉장히 복잡한 얘기인데요. 제가 설명할 수 있는 범위에서 얘기해보자면 이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 성령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인데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서 처음 성령이 등장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눈치가 빠른 분은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요. 틀렸습니다. 성령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1장 2절입니다. 거기에 이렇게 나옵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2 하)”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이 바로 성령입니다. 제가 일전에 성령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이 이것입니다. 저는 성령의 이야기가 창세기에 나올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이미 창세기부터 성령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성령 또한 태초부터 역사하셨고 창조 사역에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보통 창조는 성부 하나님의 사역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 창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함께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을 통해 알 수 있지만 태초의 말씀은 성자 예수님입니다. 결국 창조 때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모두 함께 계셨고 창조사역에 함께하셨습니다.
저는 성령의 이러한 면이 다소 놀랍게 느껴졌습니다. 성령과 창조가 연결될 것을 생각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늘 성령에 관한 생각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거기에 묘사된 성령은 불과 같이 뜨겁게 또 방언과 같은 기이한 일을 일으키시는 분으로 그리고 기도 중에 임하시는 분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생각하고 성령의 역사와 임재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뜨겁게 기도하는 집회현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생각과 달리 성경은 성령이 일찍 창조때부터 역사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창조라는 것은 본래 없었던 것은 새롭게 이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창조는 하나님만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참으로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성령받은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달랐습니다. 오순절에 성령강림받은 사람은 방언을 하기 시작했고 성령 받은 베드로는 수천 명을 회심시키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성령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이를 통해 알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를 새롭게 하는데, 우리는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마음에 근심이 생길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덧붙입니다. 우리의 변화라는 것이요.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음을 알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방언과 같은 어떤 특별한 차원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받은 사람들에 관해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그러니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우리의 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도 성령받은 사람들의 변화입니다. 사실 이것이 대수롭지 않은 변화라고 여겨질지 모르지만요. 이 또한 놀라운 변화입니다. 자기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결단이 이 고백 속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미 성령받은 사람이고 변화된 사람인 것입니다.
또 하나 성령에 관하여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입니다.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에스겔 37장 5절입니다.
에스겔 37:5(구약 1209쪽)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에스겔 37장은 1절에서 14절은 이른바 ‘마른뼈가 살아나는 환상’이라고 하는데요. 에스겔은 고대 이스라엘의 포로기를 살았던 인물입니다. 우리로치면, 일제시대와 같은 암흑기를 살았던 인물입니다. 나라는 망했고 다시 일어설 기미는 보이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다시 회복될 것을 이 마른뼈가 살아나는 환상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고대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방금 읽은 구절에서 ‘생기’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것이 히브리어 원어로는 ‘루아흐’라고 합니다. 바로 이 단어가 앞서 창세기 1장 2절에 나왔던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뜻하는 것입니다. 결국 방금 읽은 성경 구절에서 성령은 창조 때와 마찬가지로 구원의 사역에도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성령은 새롭게하시는 창조의 영일뿐만 아니라 우리를 살리시는 구원의 영이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가 성령에 관심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하)” 이는 우리가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 곧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몰라서도 안 되고 사도 바울의 말처럼 ‘성령을 따라 행해야(갈 5:16 상)’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성령을 아는 것과 성령을 따르는 일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구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따르는 것이란 무엇을 말할까요? 간단하게 말해보자면 내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계속 말씀드렸지만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따르는 일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 될까요?
사실 이것은 간단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또는 성령을 따르면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성령의 열매는 9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본래 한 가지입니다. 헬라어 원어로 보면 성령의 열매는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는 사실 맨처음 등장하는 ‘사랑’입니다. 그 뒤에 나오는 ‘희락, 화평, 오래참음’ 등은 사랑이라는 성령의 열매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우리가 성령을 따르냐 그렇지 않으냐는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분명한 사실은 이렇습니다. 콩심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납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았다면 우리는 당연히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달리 보자면, 우리의 선택의 결과가 사랑이라는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했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나 성령을 따른 결과가 아닙니다.
저는 오늘 성령에 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사실 제가 한 얘기는 성령에 관한 지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다 헤아리거나 측량할 수 없고 절대로 완벽하게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하나님을 완전히 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성령에 관심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함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구원에 관계된 일이고 이로인해 우리 신앙생활에서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회가 닿는데로 성령에 관한 이해를 넓혀가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만은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우리의 열매를 통해 우리가 행하는 일들이 성령에 따른 것인지 성령과 무관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의 선택은 사랑이라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사랑의 열매맺는 우리 성도분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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