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버려두심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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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을 기억해 보면 부모님의 “하지마”라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많이 들었던 말은 “공부해라”라는 말이였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단어는 “하지 마라”, “만지면 안 돼”, “위험해” 이런 말입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참 듣기 싫었던 말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은 아이들을 생각하기에 그런 듣기 싫어하는 말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한 부모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은 잔소리가 담긴 책은 바로 성경입니다. 그 잔소리 같은 성경 말씀 가운데 특별히, 로마에 사는 성도들에게 이야기 하는 로마서를 함께 보도록 합시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복음의 교과서라 불리는 로마서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은 로마로 가고 싶어했던 자신의 열망을 로마서 1장 15절에서 고백합니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믿음으로 살아야 할 삶을 기록한 편지입니다. 그는 3차 전도 여행의 마무리 단계에서 고린도 지방에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로마에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으며,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편지를 쓴 목적 중 하나는 로마 교회를 이루고 있던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에 대한 서로 다른 신학적 확신들이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세우고, 복음을 명확하게 이해시키기 위해 구원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그리고 성도다운 삶의 의무를 자세히 설명해야 했습니다.
특히, 로마서 1장의 후반부를 보면 바울은 읽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신랄하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잘못을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바울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합니다. 28절 말씀에서 그는 "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싫어하며, 마음에 두기 싫어한다는 것.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이 하나님이라면 악은 무엇일까요? “악이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 아니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 부재이며 하나님께서 선하게 만드신 것들의 타락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유명한 기독교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성 어거스틴은 신정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 그 자체가 죄악이며, 그 결과로 죄악된 행동들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9절부터 31절까지 총 21가지의 죄악들이 나열됩니다. 이 21가지 죄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불의, 추악, 탐욕, 악의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죄악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죄악들입니다. 이 죄악들이 나머지 17가지 죄악으로 확산됩니다. 이 네 가지 죄악은 단순히 우리의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순간 동시에 생겨나는 죄악들입니다. 그리고 32절 하반절에서 바울은 이런 죄악을 행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행동을 옳다고 동조하며 오히려 죄악을 더 짓도록 힘을 실어준다고 이야기합니다.
불의는 정의롭지 못한 행동과 판단을 의미합니다. 이는 사회적, 법적, 도덕적 기준을 벗어난 모든 행위를 포함합니다. 불의는 개인의 이기심과 타인을 해치는 행동으로 나타나며,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사람들 간의 신뢰를 깨뜨립니다. 불의한 행동은 작은 거짓말에서부터 심각한 부패와 범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불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고,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무질서한 상태가 됩니다.
추악은 도덕적 타락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동을 말합니다. 이는 성적 부도덕, 불법적인 쾌락 추구, 비윤리적인 행위 등을 포함합니다. 추악한 행동은 개인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타인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착취합니다. 추악함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며,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죄악입니다. 이는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부도덕한 문화가 만연하게 만듭니다.
탐욕은 지나친 욕망과 물질적 소유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의미합니다. 이는 물질적 부를 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권력, 명예, 쾌락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포함합니다. 탐욕은 개인의 만족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행위로 이어지며, 이는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을 초래합니다. 탐욕은 마음의 평안을 빼앗고, 끝없는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결코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끝없는 갈망에 시달리게 됩니다.
악의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적인 마음과 행동을 의미합니다. 이는 시기, 증오, 복수심 등으로 나타나며, 타인의 행복과 성공을 방해하려는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악의는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사람들 간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악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즐기며, 자신이 더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를 멈추지 않습니다. 악의는 개인의 내면을 황폐화시키고,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이 네 가지 죄악은 다른 죄악들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합니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는 서로 결합하여 인간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삶을 살게 만듭니다. 바울은 이러한 죄악이 인간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으며,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순간 이러한 죄악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경고합니다.
또한, 바울은 이러한 죄악을 행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행동을 옳다고 동조하며 오히려 죄악을 더 짓도록 힘을 실어준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죄악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됨을 의미합니다. 죄악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악한 행동이 정당화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죄악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러한 악순환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삶을 더욱 공고히 하며, 사회 전체를 타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우리의 세상을 봅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도 이러한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에 사는 성도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문제들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기술의 발전과 물질적 풍요로움을 자랑하지만, 동시에 도덕적 타락과 영적 빈곤이 심각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그 결과로 여러 가지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탐욕,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등 수많은 죄악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이러한 죄악들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실패를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으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됩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고, 진리를 왜곡하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을 배제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신뢰합니다. 이는 결국 우리를 더욱 깊은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립니다. 하나님 없이 우리의 마음은 공허하고,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끝없이 쾌락과 물질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결코 우리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고, 진리를 왜곡하며,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부패한 정치인들이 권력을 남용하고, 기업가들은 이윤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며, 사회의 약자들을 착취하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납니다. 또한,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퍼지는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들은 사람들 간의 불신과 갈등을 심화시킵니다. 이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데서 비롯된 문제들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을 배제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신뢰합니다. 이는 결국 우리를 더욱 깊은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립니다. 물질주의와 소비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더 좋은 집, 더 비싼 차, 더 많은 돈을 쫓는 동안, 사람들은 점점 더 공허해지고, 영적 빈곤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 우리의 마음은 공허하고,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끝없이 쾌락과 물질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결코 우리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현실을 보면, 많은 이들이 성공과 쾌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관계가 파괴되고, 정신적 고통과 외로움에 시달립니다. 약물 남용과 알코올 중독, 우울증과 불안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반응은 “내버려두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충분히 그들을 강제로 막으실 수 있으셨습니다. 또 그럴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고요. 하지만 내버려 두셨습니다. 무관심하셔서 그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내버려두심에는 바로 이유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예화로 탕자의 이야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 먼 나라로 가서 방탕한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마음에 아버지를 두기 싫어하고 자신의 욕망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로마서 1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음으로써 죄악에 빠진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탕자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께 돌아가기로 결심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그를 멀리서 보고 달려와 반기며 환영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내버려 두지 않고 사랑으로 받아주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고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마음에 하나님을 두길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삶은 너무 악하고 잔인한 삶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마음에 두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람은 내버려두시지만, 하나님을 마음에 두는 사람은 오히려 개입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죄악 가운데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통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게 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통해 삶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평안과 기쁨을 주십니다. 이는 단지 개인적인 구원뿐만 아니라, 그들이 속한 공동체와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둔다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에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하나님께 의지하며, 그분의 지혜와 능력을 신뢰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분의 인도하심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길을 가며 고통과 절망을 경험하게 되지만, 하나님을 마음에 두는 사람들은 그분의 개입과 보호를 통해 참된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실제적인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우리를 죄의 억압에서 해방시키시고,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신다는 이 놀라운 은혜를여러분들이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는 사람들은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21가지의 죄의 노예가 아니라, 자유로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깊이 개입하십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 다시 일으켜 세우시고, 우리의 약함 속에서 강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둔다는 것은 그분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믿고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죄악을 짓는 사람들을 두둔하고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옳지 않다고 이야기하며 오히려 그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온전한 참 자유를 같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는 사람은 그들이 행하는 죄악들에서 건져내어 주시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그분을 모시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죄악된 행동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실 때,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속박에 매여 있지 않고, 참된 자유와 평안을 얻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꾸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찾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악된 행동에서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삶은 그분의 인도와 보호 속에서 죄의 유혹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의 개인적인 구원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때, 우리는 모두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귀한 사역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내버려두심에는 깊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기에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죄로 인해 타락하게 되었으며, 현재 우리의 모습이 그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내버려두심은 단순히 우리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도록 우리 마음에 그분을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 자체가 죄임을 잊지 맙시다. 하나님은 단순히 화가 나서 우리를 버려두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내버려두심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마치 집을 나간 탕자가 돌아오기를 마을 어귀에서 애타게 기다렸던 부모의 마음처럼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우리에게 지적한 것도 이와 같습니다. 그는 성도들이 죄로부터 해방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두심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죄악을 깨닫게 하시고, 결국 우리에게 개입하시기 위해 우리의 마음에 그분을 모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잊지말고 나아갈 수 있는 은혜숲교회 청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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