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16. 주일오후설교 (고전 15:9-10,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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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9–10 (NKRV)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주일 오후 예배 (16일)에 나오신 성도님들 /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16일) 전도축제를 하나님의 은혜로 잘마쳤습니다.
오늘 오후예배는 남전도회 협의회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우리 남전도회 회원 여러분!
직장에서, 가정에서, 또 교회에서/ 얼마나 참 수고가 많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하여 직장에서도 참으로 수고가 많으신데
또 교회에서 이렇게 서로 사랑으로 섬기신다고 참으로 수고가 많으신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수고하시고 헌신하시는 남전도회회원들을 위해서 무슨 말씀을 같이 나눌까? 고민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오늘 말씀은 우리가 참으로 좋아하고/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씀입니다.
- 특히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는 말을 참 좋아하고, 많은 쓰는 말 입니다.
ex) 권사님, 장로님 이번에 참 좋으신 며느리를 보셨습니다.
참으로 부럽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면/
다 하나님의 은혜죠… 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ex) 권사님 이번에 아드님 좋은 대학가서 너무 축하드립니다. 라고 하면/
다 하나님 은혜죠...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세상에서 잘 될때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는 고백을 많이 합니다.
반면에/ 우리가 잘 안될때/ 세상에서 실패하고/ 좌절할 때에는/
하나님 은혜라는 말을 자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잘못해서 실패한 거지? 거기에 하나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큰 실례라고 생각을 합니다.
2.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어떻게 이야기 할까요?
은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헨”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단어가 처음 사용 된 곳이 창세기 6 장 8절 입니다.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아담)과 함께 살고자 하였으나/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죄가 들어오고/
인간은 눈에 보이는 자기 욕심대로 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6 장을 2 절을 보면/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들을 아내로 삼았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는데요/
거기에서 유일하게 노아를 선택하여 구원하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여호와(주)께서 노아에게 은혜 (헨)를 베푸셨다라고 말합니다.
2) 노아 이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바벨론 땅에서 구원하셨고/
야곱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야곱의 후손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애굽땅에서 구원하셨습니다.
3)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생각할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구원 행위와 연결시켜서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4) 다시 이야기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면/
- 우리가 반드시 구원을 받고/
- 우리 삶에서 구원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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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는데요.
현재 우리 가운데에 구원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천국가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서?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왜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예전하고 똑같이 살지?
이런 자신의 모습속에서/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왜 이렇습니까? 자기 힘을 의지해서 그렇습니다.
날마나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하는데/
그런 은혜는 구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예수를 믿고/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굉장히 비참해 하면서 자괴감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내 힘으로 변화되려고 하였거든요.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분명히/이런 자괴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바울이 전해준 복음으로 /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요/
별로 그들의 삶은 변한게 없었습니다.
1)예수 믿기 전과 같이/ 똑같이 서로 편을 나눠서/ 싸우고
2)도덕적으로도 문란한 생활을 계속하고
3)계속해서 우상을 섬기고 살았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과연 예수를 믿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는가?
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제시하는 해답은?
날마다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라는 것 입니다.
날마다 나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할때에/ 단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나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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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굉장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10절 한 절에” 하나님의 은혜”라는 단어를 3번씩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래서, 우리는
1)우리가 구원 받고
2)우리가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고
3)영광의 몸으로 부활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인가? 살펴보면/
1. 예수님과의 만남 =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8절 보시면/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우리가 잘 아는대로/
사도 바울은 원래 예수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들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죠?
거기서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바울은 이 사간을 회상하면서/
바울인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맨 마지막에 만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을 먼저 이야기 하고/ 맨 나중에 예수님이 자신을 만나주셨다고 합니다.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예수님을 만난 것 =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적용)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언제 어디서 예수님을 만나셨나요?
(베이직교회 조정민 목사님)은 예수 믿는 아내 잡으러 갔다가/
거기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예수님 만나고/ imbc 사장 직 내려놓고/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베이지교회 담임목사님으로 계시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ex)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뒤돌아보면/
예수님을 만난 것이 신학교를 갈때쯤인 것 같습니다.
남들 처럼/ 무슨 사명이 있어서 신학교에 간 것도 아니고/
세상에서 실패하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
다시 교회를 가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 가운데에/ 우여곡절 끝에 / 신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고신 측에서 분리되어 나온 작은 교단 신학교”를 갔습니다.
도저히 졸업할 자신이 없어서/ 중간에 관도도 아무런 피해가 없도록
전액장학금을 준다고 하기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언제 관둘까? 학교를 다니면서 계속해서 의심하면서 다녔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이렇게 차를 운전하면서 신학교로 가는데/
차에서 들려오는 찬양 소리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러 내렸습니다.
지나온 내 인생들, 세상속에서 살 던 내 인생들이 스쳐지나가면서/
어떨때는 눈물이 앞을 가려서/ 운전을 못할 정도로 /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그러다 신학교 2학년 겨울이 되었습니다.
남들은 다들 사역을 하는데, 사역의 기회가 나지 않았던 것 입니다.
아 나는 여기까지인보다 생각하고/
오히려 속으로는 잘되었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힘든 길 가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런데 학교 과장님이 교회를 소개시켜주었습니다.
그런데 소개 시켜준 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합동측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전도사 사역을 하였기 때문에/ 신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여기 영도교회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하였지만/
여러분들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에수님이 저와 여러분을 만나 주신 것 =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 안 만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저는 가끔씩 생각을 해보는데요/ 아마 이 세상 사람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제가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까/ 정말 형편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 = 자기 자신이 “구원 받기에 자격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9절 보시면/
고린도전서 15:9 (NKRV)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여기서 바울은 자신을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사람”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과거가 너무나 부끄러워서/ 사도라 불리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사실, 사도 바울만큼 위대한 사도가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회심 후 순교할 때까지 자신의 생명을 바쳐, 복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고? 얼마나 매를 많이 맞았는지? 얼마나 능욕을 당했는지?
우리는 그의 서신서에서 그의 수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대하여 그 의미를 풀어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십자가의 의미를 풀어서 서신서에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도라 칭함 받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이 구원 받을 자격 없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용)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스스로 / 우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구원 받을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의 과거는 어떠했습니까? 다들 선하고 의롭게 사셨나요?
사람이 아무리 선하고 의롭게 살아도/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떠나 산/ 죄인이었습니다.
특히나 저는 저의 과거를 알고 있기 때문에/
항상 주님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과거에 놀던 곳에는 가기가 싫습니다. (신림, 모란)
우리가 우리 스스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구원 받을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도 임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사도 바울처럼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들은/ 반드시/ 그 반응으로/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ex) 어떤 권사님이 저한테 그래요
왜 목사님은 볼때마다 인사를 하세요?
그렇다고 고개 들고 보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ㅎㅎ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교회에서 서로 보면/ 서로 먼저 인사하세요?
볼때 마다 인사한 번 해보세요...
특히나) 우리 남전도회 회원 임원분들께/ 볼때마다 한 번 인사해보세요.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제가 섬겨야 하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가 자격 없는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닳았다면/
우리는 당연히 겸손해야 합니다.
사실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한 것은 사도 바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많은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였고/ 많은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내가 다른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수고하였지만/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10 (NKRV)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런 겸손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나오길 바랍니다.
특히나 남전도회 회원 여러분
옆에 지나가시는 집사님이 회장님 참 수고하시죠? 인사하면/
그럼 내가 참 수고가 많아요… 그러시 마시고/
무슨 소리리를/ 주님이 은혜주셔서 합니다. 라고 인사하면/
인사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 훈훈 할 것 같습니다.
3.마지막/세번째/ 바울이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3.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는 내 존재와 내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0절 보시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10 (NKRV)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어를 다시 제 말로 의역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만든것 입니다.
늘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2가지를 이야기 하는데요.
1)하나님의 은혜가 지금의 사도 바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변화, 자신의 성품의 변화, 인격의 변화 모두를 이야기 하는 것 입니다.
(설명) 사도 바울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 “사울”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사도행전에서 / 그의 이름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 사울
예수님을 만나기 전 - 바울
이런 이름의 변화가 단순히 이름만 바뀐것이 아니고/ 그의 존재가 변화된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사울(바울) -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사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철저하게 율법을 지켜 - 의롭다함을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하나님의 법”을 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이야기 하면/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거래 관계”로 이해하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행동하는 여하에 따라/ 축복을 받을 수도 있고/ 저주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요즘 말로 고치면/ 종교 행위를 통하여 -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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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자신과 하나님의 사이에 자신의 행위를 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해서 자신과 하나님 과의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이것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그렇게 박해를 받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성경을 보는 눈과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바울의 인격이 변화되고,
성품이 변화된 것은 그의 서신서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나 후서를 보면/ 바울이 얼마나 고린도교인들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되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교인들을 위하여/
바울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사랑으로 품었습니다.
저는 3지역 목사로서/
과연 성도들의 변화된 삶을 위해서 /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가?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 임하여/ 예수님을 더 알아가고/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얼마나 은혜를 구하고 있는가?
라고 반문해보면/ 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요.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을 섬겨서 - 세상에서 복 받는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바울이 예수님 만나기 전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열심히 율법 지켜서/ 복 받아야지?
ex) 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했을때에는/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처럼/
나의 행동으로 하나님 앞에 서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저도 한 열심하면서 신앙생활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봉사하고/ 헌신하면 - 항상 이렇게 까지 했는데? 나를 버리지 않고 나를 복주겠지?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내 시간을 투자하고/ 내 물질을 드리고 한 것이/
결국에는 나를 위해서 행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철저하게 깨졌습니다.
내가 나의 행동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서려고 했던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를 부인하는 행동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이 땅에서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시다.
3)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변화되어/ 복음을 위하여 자신이 수고한 것을/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고 있습니다.
수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수 많은 회심자를 얻었지만/
그것이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짧은 표현 속에/ 얼마나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에 젖어 있었는지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영도교회 성도여러분/그리고 남전도회 회원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1)나 같은 죄인, 구원 받을 자격 하나 없는 나같은 죄인을 불러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하고 있습니까?
2)지금도 여전히 육체의 본성대로 살려고 하는 우리에게 / 날마다 부어주시는 은혜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바르게 복음을 알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어떻게 감사하고 있습니까?
3)나같은 죄인 이렇게 사람처럼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겸손으로 반응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길 바랍니다.
수고하시는 남 전도회 회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은혜가 날마다 풍성히 우리에게 거하여/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날마다 감사하며/ 받은 은혜대로 사랑으로 보답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