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자들을 찾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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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렘브란트의 귀향이라는 작품을 보셨습니까?

본론

1. 예수님 앞에 사람들은 누구이고 왜 가까이 나아갔습니까(눅15:1-2)?
누가복음 15:1 NKRV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첫째, 모든 세리와 죄인들입니다. 도덕법, 정결법, 전통적인 가정과 사회에서 떠난 사람들입니다.
누가복음 15:2 NKRV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둘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입니다. 도덕법, 정결법, 전통적인 가정과 사회에 머무는 사람들입니다.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이유는 말씀을 듣기 위함입니다.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과 거리를 둡니다. 그리고 이렇게 평가합니다. 죄인들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누군가와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영접하는 것입니다.
누가는 소외된 자들을 위하여 복음서를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9:10 NKRV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보통 당시에 소외된 자들은 세리, 창기, 여인, 아이들, 이방인들입니다.
당시에 유대인들, 종교지도자들은 주류에 해당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소외된 자들이 이 두 부류의 사람들 모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보통 예수님이 필요한 죄인들은 교회 밖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떠나 주일을 지키지 않고 헌금도 하지 않고 온갖 비리와 죄를 짓는 사람들 말입니다.
정작 교회 안에 있으면서 예수님 앞에 나아가지 않고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에게 베푸신 비유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눅15:3-32)?
오늘 소외되고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비유가 세 가지 나옵니다.
첫째, 길 잃은 양 한 마리와 우리 안에 든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대조시킵니다. 목자는 한 마리를 찾아 나섭니다(4절).
둘째, 열 개 중에서 잃어버린 은전, 한 드라크마를 아홉 드라크마와 대조시킵니다. 여인은 한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 온 집안을 뒤집니다(8절).
셋째, 아버지와 두 아들입니다. 둘째가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고 첫째는 집을 지킵니다.
우리는 보통 잃어버린 양 한 마리와 잃어버린 은전 하나, 그리고 집 나간 둘째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잃어버린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말씀을 듣는 반면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거리를 두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유로운 영혼들이고 또 하나는 전통적인 영혼들입니다.
하나는 부모에게서 멀리 떠나는 친구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부모에게서 머물면서 인정받으려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는 비종교인들이고 또 하나는 종교인들입니다.
하나는 상대주의자들이고 또 하나는 도덕주의자들입니다.
하나는 느낌이 중요하고 또 하나는 행위가 중요합니다.
오늘날 종교가 없거나 배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종교화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처음에는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상한 존재들로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세 가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신전이 없습니다. 보통 종교라고 하면 화려한 신전이 있어야 하는데 기독교는 신전을 중심으로 모이지 않았습니다.
둘째, 제사장이 없습니다. 신전에서 사람들의 중간 역할을 하는 제사장이 있어야 하는데 기독교는 그런 제사장이 없습니다.
셋째, 제사가 없습니다. 신전에서 사람들은 제물을 가져다가 바치면서 제사를 했는데 이상하게 기독교는 제물도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종교화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기독교는 종교요 도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세상에서 방황하다가 돌아오는 사람들보다 집을 지키는 보수적이고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종교를 배격하고 떠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앞에 나아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종교 안에 머문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앞에 나아오지 않습니다.
3. 당신은 어떤 부류의 잃어버린 자입니까(눅15:4;8;11)?
예수님의 세 비유는 점층법을 사용하여 잃어버린 사람들을 강조합니다.
처음 양의 비유는 100마리 가운데 1마리와 99마리를 비교합니다.
둘째 은전, 드라크마 비유는 10개 가운데 1개와 9개를 비교합니다.
셋째 두 아들의 비유는 둘 가운데 하나와 또 다른 하나를 비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두가 잃어버린 자들임을 말씀하고 싶어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크게 두 부류의 잃어버린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는 교회를 떠나 잃어버린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교회 안에서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당신은 어떤 부류의 잃어버린 사람입니까?
둘째 아들은 어떤 의미에서 잃어버린 사람입니까?
누가복음 15:12 NKRV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예수님 당시에 자식에게 유산을 분배하는 경우는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살아계신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아버지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둘째는 아버지의 재산을 분배받기 위해 기다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유산이 아버지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살림을 각각 큰 아들과 둘째 아들에게 나눠줍니다. 참 이상합니다.
보통 첫째는 둘째보다 2배를 물려 받습니다. 아버지 재산의 2/3는 큰 아들에게 1/3은 둘째 아들에게 갔습니다.
아마도 땅을 팔아서 그리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땅을 판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찢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은 덜할 수 있지만 예수님 당시에 땅을 파는 것은 죽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 난리를 치고 나간 둘째 아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완전히 망했습니다. 첫째 아들은 동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누가복음 15:30 NKRV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고 가서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리고 흉년에 비참한 생활을 합니다.
자아 발견과 실현을 위해 자유가 중요하고 그 길은 자신이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를 둘째 아들에게 적용하여 잃어버린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하나님을 떠나 다시 돌아오는 경우는 자기를 의지하다가 한계를 경험했을 때입니다.
첫째 아들은 어떤 의미에서 잃어버린 사람입니까?
누가복음 15:28 NKRV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첫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화가 났습니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중요한 창구입니다.
동생을 다시 아들로 받아들이면 다시 재산을 나누어야 합니다.
아버지에게 받은 재산 2/3를 그동안 놀지도 못하고 열심히 일해 잃어버린 재산을 복원 시켜 놓았는데 다시 나누어야 한다고?
정의롭지 못한 아버지입니다.
누가복음 15:29 NKRV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명을 어긴 적이 없는 아들이 아버지의 헤픈 행동을 따집니다. 그럴 권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 재산은 내 것인데 아버지가 무슨 권리로 동생을 받아들여 다시 나누게 합니까?
첫째는 도덕적으로 순종하며 전통과 공동체가 원하는 삶을 살면서 만족하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살지 않았는데 왜 불공평하게 대우하느냐는 것입니다.
첫째 아들은 착하지만 아버지와 멀어져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의 경우는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를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은 죄의 개념을 좀더 다른 각도에서 깊게 보게 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입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자리에 올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나의 의로움을 내 자신의 행위에서 찾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올라간 것, 곧 교만이 첫째 아들의 죄이며 그런 의미에서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잃어버린 사람은 자신을 잘 보지 못합니다.
내가 잃어버린 자라고? 큰 아들과 같은 사람은 스스로를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하려고 합니다.
형의 마음은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어 보겠습니다.

결론

4.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십니까(눅15:4;8;22-23;28)?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생각해 냅니다. 곧 하나님을 생각한 것입니다.
나름 시나리오를 짭니다. 아들로서는 안되니깐 품꾼으로 들어가 생명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잃어버린 재산을 갚으면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품꾼으로 대우하지 않습니다. 아들의 변명이나 시나리오를 듣지 않습니다. 자아 비판을 시키지 않습니다.
옷과 가락지와 신발을 줍니다. 이는 아버지의 옷이며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습니다. 이는 마을 잔치를 의미하며 사회적인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아버지가 너무나도 헤픈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무조건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뼈저린 참회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값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첫째 아들은 잔치에 들어가는 것을 머뭇거립니다. 아니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첫째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 15:31 NKRV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아버지는 부르기 위해 나오십니다. 그리고 아들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의 비유는 결론을 내지 않고 끝냅니다.
큰 아들이 들어갔을까요?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오늘날 교회에는 이런 형들이 많기에 동생들이 들어오기를 꺼립니다.
사실 형이 동생의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찾아 나서는 것이 맞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세 비유중 앞의 두 개의 특징은 목자가 양을 찾으러 간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은전, 드라크마를 포기하지 않고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비유에서는 찾아 나서는 모습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용납하시고 용서하실 뿐 아니라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첫째 아들이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서 우리의 진짜 형이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값을 치르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들에게 옷을 입히기 위해 예수님의 옷이 벌거 벗김을 당해야 했습니다.
아들이 받아들여지기 위해 예수님께서 버림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아들이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예수님께서 고난의 잔을 마셔야만 했습니다.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기 위해 하나님께서 값없이 받아들이신 은혜가 있습니다.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을 치르신 사랑이 있습니다.
이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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