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예수님 닮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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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5 “5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여러분은 땅을 좀 가지고 계십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부자입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했고, 땅을 차지한 자가 힘이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거의 모든 전쟁이 땅을 차지하기 위한 영토 전쟁입니다.
그런 전쟁을 즐겁고 보람되고 기쁘게 할 수가 있나요? 땅을 위한 싸움은 잔인하고 무자비하고 처절합니다.
아파트를 구입하기위해서도 평생을 다 걸고 구입을 합니다. 영끌이라고 하잖아요.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대출을 하면서까지 집을 구입합니다.
인간과 땅의 관계는 참 오묘합니다.
인간은 땅에서 창조되어 다시 땅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땅은 생명이 가득하고 그 생명을 인간이 관리하도록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땅은 어떤 의미일까요?
땅을 통해서 본래의 인간성을 잃었습니다. 이땅의 첫번째 아담은 땅에 피를 적시고 죄를 유통하게 만들었습니다.
두번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회복하게 하시고 새 하늘과 새땅,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다시 보여주시고 안내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소개하신 새로운 땅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오늘 말씀처럼 온유한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눈앞에 듣고 있던 유대사람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이 땅에 들어오기 위해 40년을 광야를 떠돌던 역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약속된 땅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을 이끌었던 모세는 이 땅을 밟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온 땅인데 이제는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땅의 주인으로 살지도 못하고 있는 그런 형편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소망은 무엇일까요? 알렉산더처럼 온 땅을 정복하고 싶은 꿈도 아닙니다. 더 큰 나라를 가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약속한 이땅에서 평화롭게 하나님을 높이며 살고 싶은 것이 이스라엘의 소망입니다.
이 내용은 누가복음, 1장67절에서 80절까지 사가랴의 예언을 보면 알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67–80 “67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렇게 예언하였다. 68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찬양받으실 분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을 돌보아 속량하시고, 69 우리를 위하여 능력 있는 구원자를 자기의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 70 예로부터 자기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71 우리를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내셨다. 72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자기의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다. 73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이니, 74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주셔서 두려움이 없이 주님을 섬기게 하시고, 75 우리가 평생 동안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게 하셨다. 76 아가야, 너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릴 것이니, 주님보다 앞서 가서 그의 길을 예비하고, 77 죄 사함을 받아서 구원을 얻는 지식을 그의 백성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78 이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비로운 심정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해를 하늘 높이 뜨게 하셔서, 79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서, 심령이 굳세어졌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는 날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하나님이 약속한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고 하나님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소망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이고 그 땅을 온유한 사람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나약하고 연약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소개할 때
마태복음 11:29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스스로를 마음이 온유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시 어린나귀를 타고 들어가심 , 이 어린나귀가 온유를 나타내고, 사람들이 흔든 즁유나무와 같다.
온유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것을 사람들앞에서도 동일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36 주님, 주님께서 구원의 방패로 나를 막아 주시며, 주님께서 안전하게 지켜 주셔서, 나의 담력을 키워 주셨습니다.” “35 주님께서는 나를 지키는 방패를 나의 손에 들려 주셨고, 주님께서는 오른손으로 나를 강하게 붙들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이토록 보살펴 주시니, 나는 큰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죄인으로 인정하고 겸손하게 서 있는 것 처럼 사람들앞에서도 겸손하게 서있는 것입니다.
마틴로이드 존스 목사는 이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임을 쉽게 인정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그렇게 말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어렵고 오히려 분개한다라고 말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이 정죄하도록 허용하기보다 스스로가 정죄하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말을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이와 반대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시간에 얼마나 은혜를 사모하여서 열심히 예배를 드립니까.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앞에 나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에 나와서 사람들을 대할 때 조금이라도 나에게 나쁜 말을 하거나 안좋게 이야기하면 그냥 화를 내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나 온유한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의 부족한 모습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나를 좋게 여기시고 사람들마저 나를 좋게 여기는 것에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깜짝 놀라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온유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뿐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가를 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가치관은 어떻게 말을 합니까.
이렇게 거친 세상에서 마냥 착하게만 해서 가질 수 있겠니, 더 가지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해야지, 경쟁에서 이겨야지, 무시하는 사람들은 너도 무시해, 권력이든지 인맥이든지 모든 것을 동원해서 힘을 가져야지 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땅을 가진다고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은 참으로 굴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 굴욕을 벗어나기 위해 뛰어든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열심당원들이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시몬과 가롯 유다가 열심당원이었다.
열심당원들은 독립을 위해 무력을 사용해서 로마를 몰아내기 위해 싸우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일부가 제자로 있었고,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을 한다.
싸워서 이겨야 차지할 수 있는 땅을 기껏 온유함으로 차지한다고?
오늘 우리에게도 이 거친 세상에서 착하게만 살아서 되겠나? 더 가지기 위해 땅을 가지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야하고, 나를 무시하고 없신여기는 사람에게 무시하지 말라고 소리지며, 인정받기 위해 돈이든 권력이든 인맥이든 힘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정 반대의 길을 제시해 주신다.
온유한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하나님의 땅을 온유한 사람에게 유업으로 맡기고 싶어 하신다.
시편 37장을 읽어 보면 이해가 된다.
시편 37 “〔다윗의 시〕 1 악한 자들이 잘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들이 잘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말아라. 2 그들은 풀처럼 빨리 시들고, 푸성귀처럼 사그라지고 만다. 3 주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여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성실히 살아라. 4 기쁨은 오직 주님에게서 찾아라. 주님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5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6 너의 의를 빛과 같이, 너의 공의를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하실 것이다. 7 잠잠히 주님을 바라고, 주님만을 애타게 찾아라. 가는 길이 언제나 평탄하다고 자랑하는 자들과, 악한 계획도 언제나 이룰 수 있다는 자들 때문에 마음 상해 하지 말아라. 8 노여움을 버려라. 격분을 가라앉혀라. 불평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은 오히려 악으로 기울어질 뿐이다. 9 진실로 악한 자들은 뿌리째 뽑히고 말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반드시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 10 조금만 더 참아라. 악인은 멸망하고야 만다. 아무리 그 있던 자취를 찾아보아도 그는 이미 없을 것이다. 11 겸손한 사람들이 오히려 땅을 차지할 것이며, 그들이 크게 기뻐하면서 평화를 누릴 것이다. 12 악인이 의인을 모해하며, 그를 보고 이를 갈지라도, 13 주님은 오히려 악인을 비웃으실 것이니, 악인의 끝날이 다가옴을 이미 아시기 때문이다. 14 악인들은 칼을 뽑아 치켜들고, 또 활을 당겨서,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쓰러뜨리며, 자기 길을 똑바로 걷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지만, 15 그 칼에 오히려 자기 가슴만 뚫릴 것이니, 그 활도 꺾이고야 말 것이다. 16 의인의 하찮은 소유가 악인의 많은 재산보다 나으니, 17 악인의 팔은 부러지지만, 의인은 주님께서 붙들어 주신다. 18 흠 없는 사람의 나날은 주님께서 보살펴 주시니, 그 유산은 대대로 이어지고, 19 재난을 당할 때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기근이 들 때에도 굶주리지 않는다. 20 그러나 악인들은 패망할 것이니, 주님의 원수들은 기름…”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속상해 하지 말아라. 기쁨을 주님에게서 찾아라. 주님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잠잠히 주님을 바라고 인내해라. 노여움을 버리고 격분을 가라앉혀라. 불평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은 악으로 기울게 한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반드시 땅을 받을 것이다. 조금만 더 참아라. 11절, 온유한 자들은 땅을 치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할 것이다.
땅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이었다. 가나안땅은 더욱 그러했다. 범죄함으로 소유를 잃어버렸다. 온유하신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온유함으로 구원을 이루신다. 그리고 온유를 회복하고 예수님의 온유를 닮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유업을 맡기신다.
마치 예수님의 온유는, 하나님의 일을 하청받을 수 있는 자격증과 같은 것이다.
신약에서
갈라디아서 6:1 “1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베드로전서 3:4 “4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 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온유라는 것이다.
모세는 온유하지 못한 사람-혈기, 정체성혼란, 40년을 광야에서 하나님이 온유한 사람으로 다듬어 가심, 모세가 출애굽의 계획에서 계속 거부했던 것은 그 자신이 해야 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인도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게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순종하기만 하면 책임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다.
온유한 사람들은 때로는 재산과 권리를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바보취급 당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닮기위해 애쓰며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분의 나라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땅을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십니다.
온유와 반대되는 것이 완악이다. 온유는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만 완악함은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바로왕을 완악하다라고 말한다. “차자크” 강하다, 딱딱하다. 고집세다
고린도후서 6:9–10 “9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는 사람 같으나, 보십시오, 살아 있습니다. 징벌을 받는 사람 같으나 죽임을 당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10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제는 천주교 신부님과 신자들이 왔다. 신부님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참 격의가 없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데 나를 찾고 찾아서 인사를 하는데
두손을 잡고 허리를 구부리는데 서로 많이 구부릴려고 애를 썼다. 전혀 직분이 주는 권위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힘써야 될 것은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온유한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성품으로는 감당할 수 없지만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면 우리는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할 수 있고, 가난한 사람같지만 사람들을 부요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오늘도 그렇게 예수님 닮아 살아가길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