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케 하는 자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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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화평
그리스도인의 화평
야고보서 3:13–18 (KRV)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 서론
안녕하세요? 먼저 다시 한번 앞뒤 좌우에 계신 형제, 자매님들과 인사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인사말은 “샬롬”입니다. “살놈”이 아니라 “샬롬”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몇몇 형제, 자매님들이 이미 “샬롬”이란 인사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사실 이 인사가 어색하고 낮설은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샬롬”의 뜻을 알고 보면 유대인들이 나누는 인사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도 사용하기에 적절하고 알맞은 인사말이구나 생각이 듭니다.
“샬롬”은 히브리어 입니다. 뜻은 평안, 평화, 화평을 의미하는 단어로 만날 때 인사하는 “안녕하세요?”, 헤어질 때 인사하는 “안녕히 가세요”에 대한 의미로 “평안하세요?”, “평안하세요~”와 같습니다.
유대인의 보통적인 인사말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지난 2,000여년간 유랑민족이 되어 환난을 겪었던 유대인들의 이 인사말은 우리가 평상시 하는 인사와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징벌로 말미암아 평강을 잃어버린 유대인들이 살아가는 가운데 가장 바라는 것이 바로 평안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만날 때 마다 서로 평안을 물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살면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진정한 평강, 평안을 얻은 사람이기에 화평케 된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원인에 대한 결과로 마음에 이루어 지는 평안을 얻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인사말을 쓸 수 있습니다. “샬롬” 진정한 평안을 가지고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정말 멋진 인사입니다.
우리는 오늘 육신적이고 일시적인 평화가 아닌 진정한 평안 즉 화평(참된 평화)이 무엇인지, 화평한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교훈 받고자 합니다.
□ 본론
- 이 세상에서 얻는 화평에 대해서...
우리는 먼저 성경에서 우리가 얻은 화평을 생각해 보기 전에 이 세상 가운데 얻은 화평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70~80년 더 오래는 100세까지 지내면서 한번 돌아보면 참 수고와 슬픔이 많은 세월들로 가득합니다.
저 역시도 살아온 세월이 길지는 않지만 이 짧은 세월 되돌아 보면 진정한 기쁨을 얻었던 시간은.. 마음에 평안이 있었던 시간은 너무나 짧습니다.
학창시절은 매일매일 등교하고 공부하며 바쁜 삶을 살다 집에 돌아와서 자기전 잠시 평안한 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등교를 해야하는 마음에 마음에 평안이 깨집니다. 시험기간에도 부지런히 달려오다 시험이 끝나면 잠깐 또 평안한 시간이 있었다가 다른 걱정거리들로 금새 평안이 깨지죠.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대학생활도 별반 다를 것이 없죠. 사회인이 되고 직장에 갑니다. 어떻습니다. 입사 합격 통보를 받으면 기쁘고 마음에 또 평안이 오죠… 하지만 첫 출근날이 다가오면 어떤가요… 오만 걱정이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사회생활에서도 짧은 평안과 뒤이어 오는 걱정, 근심 우리의 인생은 정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수고와 슬픔뿐인거 같습니다. 그렇게 바삐살다 뒤돌아 보면 어느덧 지금인 것이죠
이 세상에서 얻었던 평안과 화평은 일순간적이며 영원하지 않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의 화평과 그로 인한 영향에 대해서...
본문으로 돌아가서 17, 18절을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3:17–18 (KRV)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그렇다면 우리 즉 그리스도인이 얻은 화평은 어떠한 화평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화평, 이 세상 화평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화평입니다.
주님의 의로운 행위는 결국 주님과 화평으로 시작하여 형제, 자매들의 대인 관계에서도 화평을 낳습니다. 그리고 화평함 속에서 하나님의 의가 형제, 자매 개개인의 의로 실현됩니다.
시편 85:9–11 (KRV)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이에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리이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하였도다
10절에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그 긍휼 즉 불쌍하심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은 만나게 됩니다.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의 그 의,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인 삼으신 것은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받는 것이죠. 하나님의 의로 거듭나는 것인데, 그 하나님의 의로 거듭난 사람 안에는 평강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0: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 부활 후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의와 평강이 서로 입맞췄다. 그래서 의와 평강의 항상 같이 갑니다. 같이 가는 거죠
골로새서 1:20 (KRV)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그의 십자가의 피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죠 하나님의 의로 화평을 이루사
로마서 5:1 (KRV)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이제 하나님과 화목 되어서 이제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평강을 누린다는 겁니다.
이러한 의인의 화평은 거짓 지혜에서 생기는 시기와 다툼에서는 맺을 수 없는 열매입니다. 오직 주님이 주시는 평강 가운데서 맺어질 수 있는 열매 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형제 자매들은 하나님이 화목케 하였은즉 형제, 자매들이 더 나아가 세상 사람들에게도 그리스도 주신 화평을 이루어 의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9–10 (KRV)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예수님께서 화평게 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다시 말해 하나님이 구원의 복음을 통해서 마음의 평강이 이루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화평케 하는 그런 일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연한 일이다는 이야기 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참 지혜가 무엇인지 아는 그리스도인은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형제, 자매들의 일상생활 속에 온유한 대화나 행동, 그리고 겸손한 태도를 통하여 참 지혜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혜가 없는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형제, 자매들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참 지혜는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하게 하며 오만해지지 않도록 지켜줍니다.
우리가 봉사를 하며 조심해야할 부분이 내가 뭐를 했다, 나 때문에 이렇게 잘 됐다, 자꾸 나라고 하는 그것을 자랑하는 것은 참 삼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나를 통해서 주님이 하셨고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았더라면, 즉 주님이 하시지 않았더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게 아니라 주님을 내세우는 그것이 우리의 기본 자세고,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눅17:10)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짓 지혜가 세상과 육신과 마귀에게 그 근본으 두고 있는 반면에 참 지혜는 하나님과 성령과 말씀에게 그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사람의 지혜나 인간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1:17–18 (KRV)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가장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온다는 것이죠. 다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겁니다. 화평게 하는 자는 적극적으로 사람 사이에 뛰어들어 화평을 조성합니다. 화평의 주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주님의 자녀가 교회나 세상을 화평케 하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시기와 다툼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속죄의 평강을 통하여 화평케 하는 일은 본인이 주님의 자녀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오 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는 사람이 내가 바로 주님의 자녀다라고 하는 거죠
종종 다큐중에 대가족 즉 자녀가 10명이 넘는 가정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많은 형제, 자매들 속에서 중간 정도 되는 아이가 위와 아래 형제, 자매들에게 이간질을 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들은 부모님뿐 아니라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안타깝고 아쉬운 부분일 것입니다.
저도 세명의 자녀가 있찌만 그 자녀들이 서로간에 사이좋게 서로 마음을 같이하고 서로 이해하고 또 화평케 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즐겁습니다.
이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각각 생각이 다르고 또 모든 것이 다르지만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다는 그 한가지 큰 명제 앞에, 목적 앞에 모든 무릎을 꿇고 모두가 화평케 되게 우리가 한마음으로 품어야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샬롬”은 유대인들이 하는 인사말입니다. 그렇죠 그들은 샬롬 그러잖아요.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화평케 하기보다는 남이 화평케 해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남이 화평케 해주지 않으면 화평을 누릴 수 없습니다.
샬롬 내게 화평케 해주라. 그들의 대다수가 자기는 손해 안보고 상대방이 손해보고 희생하여 만들어주는 샬롬을 바랬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화평은 다릅니다. 상대를 희생시켜 화목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희생하여 화평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희생하더라고 화평케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으신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영원한 평강이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화평을 심어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화평은 타인을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오는 평화입니다.
이러한 영원하고 확실한 화평을 가진 우리는 누구와의 화평을 가져야 할까요?
다음 시간에 이어서 말씀하겠습니다.
화목해야할 대상
하나님과의 화목
가족 또는 배우자와의 화목
형제, 자매와의 화목
이웃, 세상 사람, 불신자들과의 화목
화목하게 하는 방법
말을 조심하라
분을 내지마라
용서하라
하나님께 맡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