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17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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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오늘도 이 새벽에 주님전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믿음이 아닌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고 기도하며 주님의 마음을 알게 하셔서 오늘 하루도 주님으로 인해 기쁘고 복된 날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 저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은혜를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잊지않아 감사의 제목으로 예물을 드립니다. 못하실 것이 없으신 주님임을 믿으며 우리의 기도제목과 함께 일천번제 예물을 드립니다. 주님 이 예물에 담기 저희의 마음을 기쁘게 받아주셔서 주님보시기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누가복음 15:11–24 (NKRV)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시고 식사 교제까지 하는 것을 보며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잃은 양의 비유와 잃어버린 드라크마 비유를 통해서 주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세 번째 비유로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탕자의 비유로 알려진 이야기 입니다.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재산 가운데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줄 것을 요구합니다. 당시 문화에 따르면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유산을 나눠주는 것은 죽기 직전이나 죽은 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당시 문화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녀가 부모가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산을 요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아버지가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아들이 유산을 요구한 일은 아버지에게 큰 모욕이었고 수치였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유산을 줍니다. 유산을 받은 둘째아들은 그 길로 모든 재산을 가지고 먼나라로 떠났습니다. 먼나라로 떠난 둘째 아들은 그곳에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며 아버지에게서 받은 재산을 허비하고 탕진해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거기에 아들이 머물던 나라에 큰 흉년이 찾아와 먹을 것조차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돼지 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돼지는 부정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돼지고기는 먹지도 않고 그러기에 돼지를 키우지도 않습니다. 혹여나 돼지를 키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천하게 여겼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둘째 아들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바닥까지 내려갔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심지어 돼지를 치던 둘째 아들은 먹을 것이 부족하고 굶주리게 되자,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를 먹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입니까?
그제서야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집을 생각해 냅니다. 그동안 둘째 아들은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아버지에게 자식으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배가 고파 죽을 신세가 되자 자신이 유일하게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자식이 아니라 아버지의 일꾼으로 살겠노라 결심하고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아들이 아버지 집에 가까이 온 것도 아니고 아직 집에서 거리가 먼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알아본 아버지가 뛰어와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지금 이 상황이 놀랍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21절 입니다.
누가복음 15:21 (NKRV)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없음을 이미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행동에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을 안고 입을 맞춘 아버지는 종들을 시켜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줍니다.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기 까지 합니다.
아버지의 이러한 행동은 많은 종들에게 아들의 신분이 회복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자신의 아들임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의 집에 있는 모든 종들은 둘째 아들이 살아있는 부모에게 유산을 요구 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종들에게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자신의 아들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왜 둘째 아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합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언제 돌아 올지 몰랐습니다. 당시 아들이 돌아 오는 날짜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둘째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 아버지의 집으로 향할 때 아직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 뛰어갔다는 것은 아버지는 아들이 나간 이후 매일 같이 둘째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 꼭 알아야 하는것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자칫 우리가 잘 못 생각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쳐 아버지께로 돌아 왔기에 아버지가 아들을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몫의 유산을 달라는 둘째 아들의 터무니 없는 요구를 들어 주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떠난 이후 매일같이 떠나간 그 길을 바라보며 아들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유산으로 받은 재산이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에게 있어서 그 무엇도 아들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 온 것으로 아버지는 충분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였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 그래서 더이상 아버지를 떠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아버지는 돌아온 둘째 아들을 가리켜 죽었다 살아났났다고 표현 할 정도로 아버지를 찾아온 둘째 아들을 보며 기뻐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 하나 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 입니다. , 혹여나 주님을 떠나 살고 있다면 하루빨리 주님께로 돌아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그 주님과 함께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놓치지 않는 그 삶을 그토록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16 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3:16 (NKRV)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하루도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그 주님을 놓치지 않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우리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시는 우리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한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이 후에 첫째 아들이 나옵니다. 첫째 아들은 지금 이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났다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함께 하자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며 이렇게 불평을 내려 놓습니다.
누가복음 15:29-30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지금 첫째 아들은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그런 첫째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 합니다.
누가복음 15:31 (NKRV)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첫째 아들은 아버지와 항상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만족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아버지와 함께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누린 것에 감사보다 자신이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모릅니다. 우리를 향한 그 놀라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지는 이 새벽이 되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그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얻어내고자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이라, 온전히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귀한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 이제 우리도 주님을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주님만을 사랑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해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주님, 그 주님의 마음이 깨달아 지는 이 새벽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행복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주님때문에 기쁨이 넘치고, 주님 때문에 감사가 넘치는 하루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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