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고함이 가져온 비극, 겸손함으로 구한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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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에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 본즉 산 꼭대기에 앉아 있는지라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10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1 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니 그가 엘리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

12 엘리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13 왕이 세 번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보낸지라 셋째 오십부장이 올라가서 엘리야 앞에 이르러 그의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하건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14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전번의 오십부장 둘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매

15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엘리야가 곧 일어나 그와 함께 내려와 왕에게 이르러

16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사자를 보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 하니 이스라엘에 그의 말을 물을 만한 하나님이 안 계심이냐 그러므로 네가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니라

17 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였더라

18 아하시야가 행한 그 남은 사적은 모두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들어가며

오늘도 예배로 하루를 시작하는 성도님들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가득하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오늘도 깨어 주님을 바라보고 기도할 때 이끄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어제 말씀에서 보았던 아하시야 왕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난간에서 떨어져 크게 다친 아히시야 왕은 자신의 신하들에게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나을 수 있는지 물어보라 시켰지만 신하들은 그 길목에서 엘리야를 만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전하라 하신 말씀, 아하시야가 죽을 것이라는 말씀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렇게 신하들은 엘리야가 전한 말씀을 듣고 돌아오게 되었고 그 말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아하시야 왕은 엘리야를 데리고 올 것을 명령합니다. 그 이후의 내용이 오늘 본문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니, 아하시야 왕은 오십 부장을 세 번이나 보냅니다. 앞서 보냈던 두 명의 오십 부장과 그의 부하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인해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온 오십 부장은 앞서 죽음을 당하였던 오십 부장들과 그들의 부하를 보았기에 겸손함으로써 엘리야에게 나아갑니다. 그 모습으로 하여금 마지막으로 온 오십 부장과 그의 부하들은 죽지 않았고, 그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그를 따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엘리야는 오십 부장과 함께 아하시야 왕에게 나아가게 됩니다. 엘리야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전하였고, 결국에는 그 말씀과 같이 아하시야 왕은 낫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보았던 본문의 내용입니다.

본론

1. 아하시야의 모습
계속해서 보고 있는 아하시야 왕의 모습을 보면 그 모습 속에서 완악함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이방의 신을 섬기고 의지한 모습을 보입니다. 또한 엘리야를 데리고 오는 과정에서도 그 완악한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마치 과거 애굽의 바로 왕에게 열 가지의 재앙까지 경험하게 되었던 것을 떠올리게 하는 완악한 모습이 아하시야 왕에게서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돌이키지 않은 아하시야는 죽음이라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아하시야 왕이 엘리야에게 보낸 오십 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하나님이 내리신 불로 하여금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처음 보낸 군대도 그러하였고, 그 다음으로 보냈던 군대들도 그렇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불로써 죽임을 명하신 것은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신 분이시며, 모든 것에 주권이 있고, 온 세상의 주관자 되심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 신을 의지했던 어리석은 아하시야 왕에게 하나님은 그 살아계심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두 번의 불로 하여금 죽임 당한 일 이후에 엘리야는 이방 신을 의지했던 아하시야 왕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여쭤볼 하나님이 계시지 않냐?’
2. 우리의 모습에서도…
계속해서 보고 있는 아하시야 왕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을 의지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둘로 분열된 나라이기는 하였으나, 분명한 하나님의 나라였고, 그들은 분명한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곧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해야 하는 모습이 있어야 함에도 왕이었던 아하시야는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닌 이방 신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런데 방금 보았던 참으로 어리석고 안타까운 아하시야 왕의 모습은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에게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아하시야가 바알세붑을 의지하였던 것처럼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이 아닌 바알세붑과 같은 다른 것들을 의지하고, 붙잡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교회는 나오지만 그와 동시에 사주와 점 같은 걸 보러 다니기도 하고, 그것을 의지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또는 하나님보다 어떠한 사람을 의지함으로써 그 사람에게 더 기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의지하고 붙잡는 것이 바로 우상이고, 이러한 모습이 오늘 말씀에서 보았던 아하시야 왕과 별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에게 하나님께서 전달하신 엘리야의 선포가 동일하게 오늘날에도 선포되어 지고 있습니다. “지금 너에게는 여쭤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
이방의 신을 의지하였던 아하시야의 최후가 어떠하였습니까? 비참하고 안타까운 죽음이었습니다. 그 모습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다른 것을 신뢰하고 붙잡는 모습 속에서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것이 두 마음을 품은 자의 모습이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에서도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이와 같이 말합니다.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하나님은 의심하는 모습 가운데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지금 너에게는 여쭤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
오늘날 많은 이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학생들은 시험기간이 되면 얼굴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왤까요? 당연히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시험을 잘 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교회에 오지를 않습니다. 그러한 학생들에게는 공부, 성적이 바알세붑입니다.
그런데 비단 이러한 모습이 학생들만의 모습일까요? 직장을 다니고, 더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더라도 그 각각의 모습에서 아하시야 왕이 바알세붑을 의지하였던 것과 같은 모습들이 다 다르게 있습니다. 승진이 될 수도 있고, 자녀가 될 수도 있고, 건강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다른 것들을 붙잡고 있고, 되려 그것을 더 의지하는 모습들이 만연한 것을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3. 성령강림절기
지금 교회는 성령강림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던 성령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였고 많은 이들이 성령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임하신 성령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능력으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성령이 임하였던 오순절에만 임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게 임한 것이고, 그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말씀 드린 것처럼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것인가? 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붙잡고 살아가면서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중보기도 때도 말씀하셨지만, 많는 사람들이 코로나 전부터 지침으로 인해서 공감과 위로를 갈망하는 와중에 코로나가 터졌고 그 일로 하여금 완전히 주저 앉아버리게 되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기력한 신앙생활이 계속해서 이어짐에 따라서 그 삶에서 아무런 성령의 역사도 없고, 그러니 기쁨과 감격이 없습니다. 그렇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주님의 능력이 없이 교회만 나오는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최근에 교회의 부흥일 일궈내시고 은퇴를 앞두신 한 목사님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야 한다. 다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초대교회 때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중요하다.” 지금 계속해서 성령,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이것이 신비주의를 쫓자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분명하게 성령이 임하였고, 그 성령의 역사를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곧 오늘 아하시야 왕처럼 다른 것을 붙잡고 그것을 의지함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함으로써 놀라운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무기력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이끄심 따라 그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담대함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4. 초대교회 때의 모습
성령이 임하였고,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함으로 살아갔던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모습이 있었나? 먼저는 베드로가 많은 이들 앞에서 설교를 하면서 요엘서 말씀을 인용하며 성령이 임하면 예언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선포합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요엘서 2장 28절 말씀,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여기서 말하는 예언을 하는 것은 미래에 있을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이 내 안에 임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는 것,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이 생각나게 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선포 되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 안에 성령이 임할 때 경험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성령으로 하여금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시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성령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삶을 사는 자들, 그 이끄심을 경험하는 자들은 결코 아하시야 왕과 같이 두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교회에는 나오면서도 여전히 다른 것을 의지하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공동생활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공유하였고, 그것을 팔아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만을 철저하게 의지하겠다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과거 이스라엘 백성과 같지 않았습니다. 광야 속 불안함으로 하여금 금 송아지를 만들었던 것, 하루 치의 만나를 취하지 않고 불안함 속에서 그 이상의 만나를 챙긴 것과는 상반된 모습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오늘 말씀에서 바알세붑과 같은 것을 의지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정리

오늘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 속에 불안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다른 것을 의지하고 붙잡는 모습이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을 바라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며 나아갈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깨닫게 해주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성령을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갈 때 오순절에 임하였던 성령의 역사가 오늘 이 시간 나에게도 분명하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그 성령을 사모하며, 또 임하신 성령을 바라보며 이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는 이 새벽에 주님의 전에 나와 예배함으로써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그 음성에 순종함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를 살아갈 때 주님의 이끄심 속에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고, 승리의 삶을 사는 귀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 말씀을 돌아보며 먼저는 회개하며 나아갑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내 앞에 있는 문제의 불안함 속에서 주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다른 것들을 붙잡고 의지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이제는 그러한 완악한 모습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모든 것의 주관자 되시는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더욱이 성령을 사모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을 바라보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내 앞에 있는 문제를 바라보며 주저 앉고 낙망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보다 크시며, 사람의 생각보다 더 크신 주님을 바라보며 온전히 신뢰함으로써 이제는 담대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 속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 정관온누리교회가 성령을 사모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 시대 속에서 성령의 역사가 성경 속의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우리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성령을 날마다 간구하며 사모함으로써 성령의 충만함을 더하여 주시고, 놀라운 주님의 역사와 인도하심 따라 나아가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도 어려움 속에 있는 성도님들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와 사람과의 문제, 질병의 문제로 무기력하고 눈물 흘리며 고통 속에 있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옵소서. 친히 찾아가 주시어 위로하여 주시고, 피 뭍은 손으로 붙잡아 주시어 보혈의 능력 가운데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케 되어지는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자리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주님을 만남으로써 다시 회복 되어 굳건히 일어날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우리에게 말씀을 허락해 주시어 주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고, 꺠닫게 하신 말씀 따라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그렇게 결단하여 담대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 드리며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가 183장 빈 들에 마른 풀 같이 / 421장 내가 예수 믿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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