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17(월)_새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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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주만새 예배를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양 -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아멘
은혜받으실 하나님 말씀은
사도행전 21:35–36 NKRV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제목 : 지금 나에게 중요한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의 인생에서는 무엇이 중요했고 /
그 중요한 무언가에 붙들릴 때 닥쳐오는 환난과 핍박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다시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는 장면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자신이 받을 환난과 결박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행20:23)
그리고 사도행전 20장부터 보면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계속 요청했습니다.
예루살렘을 가지 말라고
하지만 바울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사도행전 20:24 NKRV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다른 여러 성령의 사람들과 동일한 성령의 감동의 내용을 받았지만 바울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어떻게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바울에게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오늘 매일 성경 큐티 본문을 전체 읽어보면 한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이상하리만치 바울의 목소리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붙잡혀 심문 받을 때, 아무 말도 없으셨던것처럼
묵묵히 자신의 사명만을 바라보며 바울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사소한 사건들이 아닌데도
정말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마치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이거 외에는 다 중요하지 않다 , 다 괜찮다 이런 느낌을 받았는데요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서 먼저
예루사렘에 있는 유대 크리스쳔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한 문제를 만납니다.
예루살렘의 유대 크리스쳔들이 바울에 대해 의심가고 불편하 것들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런 의심과 불편함을 해소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사도행전 21:24 NKRV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쉽게 말하면 율법을 지켜달라는 거에요
바울은 여기어 어떤 토를 달거나 변증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대로 해줍니다.
지금 바울에게 중요한것은 어떤 신학적인 옳고그름을 논쟁하거나
자신의 발언과 행동에 대한 변론 이런게 아니었어요
바울은 복음이 증거되고, 그 복음이 거칠 것 없이 이 공동체 속에서
역사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율법대로 행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율법 폐기론자도, 또한 구원이 율법을 행함으로 이뤄진다는 율법주의도 아니었지만
자신이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오히려 누군가에게 거침이 되고 복음 증거에 방해가 된다면
기꺼이 그 방해를 제거하기 위해 자신을 낮출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데요.
복음 증거와 그 복음이 전파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목소리나 자신의 옳고 그름을 변호하는 게 아니라
오직 그 영혼이 살아나고 복음이 그대로 살아있는 복음이 되도록 자신을 죽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세 편지 쓴 내용에서도 정확히 알 수 있는데요
고린도전서 9:19–21 NKRV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앞에서 보여줬던 모습이 꼭 이 말씀을 그대로 행하는 모습입니다.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그 사람의 형편과 사정을 바로 알고
그 사람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
이것이 바울이 보여준 사명자의 자세였습니다.
이게 저도 참 어렵습니다. 아이들이랑 예배 드릴 때도
4살 5살의 단어와 눈높이를 맞춘다는 게
제 은사라고 해야 하나요? 제가 정말 잘하는게 있는데 저는
쉬운 것도 정말 어렵게 설명하는 재주가 있어요
우리가 전도할 때나, 이번 새생명 축제를 통해 온 베스트들을
섬길 때도 그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눈높이에 맞춰서 단어도 사용하고
이야기 해야 하는데, 어쩌면 우리만 아는 관습적인 것을 너무 당연하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조혜련씨 간증에서 출애굽기가 무슨 굽기 관련된거라고 고기굽기 이런걸로 생각했다고 하잖아요
눈높이를 낮춘다는 게 쉽지 않은 부분이지만
이 사명자의 자세를 놓지지 않고 한 영혼을 얻는 우리가 되기 원합니다.
또한
우리의 본질이 무엇일까? / 우리의 사명이 무엇일까? / 무엇이 중요한가
이걸 놓치면 결국 사람의 관습과 전통에 얽매여 본질을 놓치게 되기도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관습과 전통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이 중심되는 신앙생활 되기 원합니다.
우리 교단은 개혁주의 신학을 강조하는 교단입니다.
개혁주의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는건 어렵지만 조금 추상적으로 하지만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이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자 정신이거든요.
가끔씩 그 관습과 전통이 성경대로 하는거야라고 하는데, 성경대로 하고 있지 않을 때도 있거든요
지혜와 분별이 필요하고 날마다 성령님의 조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본질을 놓치지 않기 원합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바울이 대적하는 유대인들에게 심하게 맞아서 로마 군사들에게 들려 나옵니다.
30절에 보면 개인적으로 정말 무서운데요
사도행전 21:30–31 NKRV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바울이 죽기 직전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27절부터 36절까지 바울의 목소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37절 결정적인 순간에 바울이 입을 엽니다.
바울은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어쩔 때는 안 맞아도 되는데 실컷 뚜드려 맞고 감옥에 갇혔다가 실라랑 찬송해서 옥문이 열려서 한 가정을 구원하고
어쩔 때는 채찍질 하고 심문하려고 하니깐 처음부터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사용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 복음 증거와 영혼 구원을 위해 자신의 권세를 사용하기도하고 때로는 사용하지 않기도 하고 자유로웠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어떨 때는 충분히 피할 수 있고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지만 복음 때문에 손해를 입기도 하고
때로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으로 변호하면서 복음을 지키기도 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바울은 들것에 실릴정도로 맞고 핍박을 받아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사명을 위해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다시 일어납니다.
KTX가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강아지가 열심히 짖는다고 해서 KTX가 멈출까요?
안 멈추죠. 우리 사명자의 인생, 천국을 소망 두고 사는 인생은 이 땅에서 들리는 불협화음들이 이런 느낌일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금요철야 때 목사님이 이 땅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라고 말씀하시는 게
저 천국 하늘 소망에 붙들리면, 하나님의 사명에 붙들리면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바로 세워져서 우리 눈 앞에 보이는 문제들을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 있을줄로 믿습니다.
남편이 만삭인 임산부 아내를 태우고 이제 곧 출산할 거 같은데
열심히 달리다가 과속 신호 제한에 걸렸어요 혹은 급하게 차를 엄한데 주차해서 딱지를 끊었어요
그런게 중요할까요? 지금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데 그 몇만원이 중요할까요?
그런데 평상시에 실수로 과속하거나 딱지 끊으면 그렇게 아까워요
사람은 상대적으로 똑같은 사건이라도 우선순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의 우선순위와 가까워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길 줄 아는 저와 여러분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은 요새 무엇이 중요하십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고 기준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나그네, 순례자의 인생길로 부르셨다고 들어서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정말 이 땅이 나그네 인생이신가요? 정말 순례자의 인생인가요?
앞에서 말씀 전하는 자가 먼저 그렇게 살고 본을 보여야 하지만
정말 죄송하게 제 삶을 돌아보면, 제 모습을 보면 사실 안 그런거 같아요
그럼에도 오늘 말씀이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본을 삼고 살아야 할 모델로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믿기에 부족한 자가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 기본값, 우리의 본성으로는 잘 안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도 기도하며
우리 인생을 통해 이루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명을 조금이라도 더 바로 알고
그 사명에 붙들려 성령님께 쓰임 받는 인생 되달라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원합니다.
우선순위가 바로 세워져서 우리 삶의 문제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정도로 오직 푯대만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승리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명자의 자세 - 눈높이를 맞추는
바울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고
오직 그 사명을 바라보며 복음 증거하는 데만 몰두했듯
우리의 우선순위가 바로 세워져 의연하게 이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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