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블로킹
Notes
Transcript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요셉의 형 유다입니다.
여러분은 유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요?
예수님을 팔아먹어서
십자가에 못박히게 한
가롯유다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야곱의 아들,
요셉의 형 유다에 대해서는
잘 모를겁니다.
오늘 유다와 요셉의
가정사를 들여다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다와 요셉의 아버지는
야곱입니다.
지난 번에 헬창형인 에서와
볶음용멸치동생인 야곱의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기억하시나요?
그런데 놀랍게도
볶음용멸치 야곱에게는
아내가 4명이나 있었습니다.
4명의 아내에게서
정말 많은 자녀들을 낳았죠.
그런데 그 중에서 야곱이
사랑했던 여인은
딱 한 명이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라헬이에요.
그리고 놀랍게도
4명의 아내 중에 한 명은
라헬의 친언니 레아였습니다.
자매와 결혼한다라…
상상도 되지 않을 뿐더러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사실 야곱은
라헬만을 사랑했었습니다.
그런데 삼촌에게 결혼사기를 당해서
그녀의 언니 레아와 먼저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라헬의 언니가
나의 첫 번째 아내이고,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라헬이
두 번째 아내, 첩입니다.
굉장히 안타깝죠?
만약 여러분이 야곱이라면
두 아내 중에 누구에게
마음이 더 많이 가겠어요?
당연히 라헬일겁니다.
이거는 솔직히 야곱 편을
들어줘야 해요.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두 아내와 결혼하고 난
야곱의 그 다음 행동들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야곱이 사랑하는 여인 라헬과
아무리 잠자리를 가져도
아이가 안생겼어요
그런데 언니인 레아한테서는
무려 4명의 아들을 낳습니다.
그 4명의 아들 중 넷째 아들이
유다입니다.
야곱이 결혼사기를 당한게
너무 억울하다면
정말 레아에게 마음이 없다면
잠자리를 갖지 말았어야죠.
자녀가 무려 4명이나 나왔으면,
사랑하는 감정이 있든 없든
아빠로써 남편으로써
책임을 다해야겠죠.
그런데 야곱은 책임질 생각이 없었습니다.
레아에게 사랑은 커녕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았어요.
그리고
레아와 그 아들들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건 야곱이 굉장히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죠.
남편이란 놈이 되어서는
아내가 사랑해달라고 해도
사랑해주지도 않고,
심지어 4명의 아들들이
관심좀 달라는데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그러다 야곱이
정말로 사랑하는 여인,
라헬에게서 드디어 첫 아이가 탄생합니다.
그 아이의 이름이 요셉이에요.
야곱의 입장에서
요셉이 얼마나 예쁠까요?
레아의 아들 4명을 포함해서
총 10명의 아들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관심도 주지 않던
야곱이 요셉에게는
관심을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10명의 아들들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죠.
아빠가 아들을 사랑해주는 모습을
처음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10명이나 되는
요셉의 형들은
성장기의 시간을
아버지에게 받은
거절감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어요.
그 거절감은
애정결핍과 열등감으로 이어졌고
이내 요셉을 향한 분노로 이어졌습니다.
요셉 저자식만 없었다면,
저녀석만 없으면
아빠의 사랑은 모두 우리차지인데!
그래서 아빠 몰래
10명의 형들이
요셉을 뚜드려 패고
우물 속에 던져버립니다.
그런데 그 10명 중에서
첫째 형인 르우벤은
양심이 있었나봐요.
요셉을 살리려고 했습니다.
나머지 9명이 한 눈 판 사이에
요셉을 살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넷째 아들 유다가
입김이 쫌 강했는지
9명의 형제들을
선동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
자,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말고, 차라리 그 아이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넘기자. 아무래도 그 아이는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피붙이이다.” 형제들은 유다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26절까지만 보면
유다가
그래도 뭔가 양심을 챙긴듯한
발언을 합니다.
그런데 27절을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아무래도 우리의 형제요 피붙이라면
살려야죠 왜 노예로 팔아넘길까요?
이건 양심을 챙긴 사람의
발언이 아닙니다.
질투와 분노가 극에 달해서
유다의 마음 속에서부터 튀어나온
사악한 모습입니다.
저는 이 27절의 말씀을 읽으면서
이 문장 속에서 유다의
사이코스러운 모습을 보았어요.
야야야 죽여서 우리가 얻는게 뭐냐?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
이익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뒤 27절에서는
야 그냥 팔아넘기자
죽이는 건 너무 고통스럽잖아?
그러니까 그냥 노예로 팔자
아무래도 우리는 형제이고,
피붙이잖아?
형들에게 버림받고
노예로 팔려가서
남의 집에서 온갖 설움을 겪는 것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울 텐데
그런 사악한 짓을
유다가 선동해서 감행합니다.
그래서 유다는
결국 형제들을 선동해서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깁니다.
그리고 아빠한테 가서
거짓말을 해요.
요셉은 본적 없는데…
요셉의 피묻은 옷이
찢겨진채로 발견되었어요…
아무래도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 같아요…
이렇게 요셉이 사라지면
아빠가 10명의 아들들을
사랑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주 크나큰 착각이었죠.
그때부터 야곱은
멘탈이 다 무너져서
무려 거의 20년 가까이의 시간을
슬픔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여전히 아빠는
그 어떤 아들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아마 유다가 아빠한테
얘기를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마음이 있었을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하면
아빠한테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빠 눈에 우리는 안 보이는 건가요?
그렇게 유다는
아버지에게 거절당한
상처를 가진채
인생의 시간을 정말 괴롭게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 20년 뒤에
야곱의 집에 식량이 뚝떨어진거에요.
그래서 야곱이 11명의 아들들에게
돈을 주면서
저기 이집트가서 먹을 것좀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킵니다.
그래서 식량을 사러 갔는데
왠걸,
이집트의 총리가 요셉인거에요.
총리는 왕 다음으로 힘이 쎈 사람인데
그게 요셉인거죠.
요셉은 형들을 단번에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복수극이 시작됩니다.
그 내용이 42장부터 44장까지
쭉 길게 나와있어요.
이집트에 찾아온 형들에게
억지를 부리며
일단 3일간 감옥에 가둬버렸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복수극은
3일간 가두어두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요셉이 복수를 하는 방법은
정말 영리했습니다.
요셉에게는 친동생이 있었습니다.
10명의 형들은 사실 아빠는 같지만
엄마는 다르거든요.
그리고 요셉은
아빠인 야곱이
진짜 사랑한 여인 라헬과 결혼해서 낳은
두 아들만 아들로 취급하는걸 알고 있었어요.
바로 요셉 자신과 베냐민이죠.
그래서 베냐민을 인질로 잡기 위해
억까를 시전합니다.
억까를 시전해서
베냐민을 인질로 잡아두면
형들이 속이 타들어갈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요셉은
친동생 베냐민을
인질로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요셉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요셉을 팔아넘기자고
형제들을 선동했던
넷째 아들 유다가
요셉에게 가서
간절하게 부탁을 합니다.
총리님!
차라리 제가 노예로 들어갈테니
우리 동생 베냐민만큼은
살려주십시오.
우리 형제들이 12명인데
아버지가 아들로 인정하는
아들이 2명 있습니다.
하나는 죽었고,
남은 하나가 베냐민입니다.
그 베냐민마저 볼수 없게 된다면
아버지께서는 충격으로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총리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차라리 내가 영영
아버지를 못 보는 것이 낫지
아버지께서 슬픔에 잠겨
돌아가시는 걸
제 눈으로 차마 볼 수 없습니다.
요셉이 깜짝 놀란거죠.
요셉을 살리려고 했던
첫째 형 르우벤이 나선 것도 아니고,
분노과 질투에 먹혀서
요셉에게 끔찍한 짓을 한
유다가 자신을 희생해서
가족들을 지키려고 하는겁니다.
유다가 왜 이렇게
변하게 되었을까요?
단순히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철이 들은걸까요?
사람이 받은 상처는
단순히 시간이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잠시 무뎌지긴 합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
그 상처는 다시 옛날의
기억을 불러오는 것 뿐만 아니라
상처받을 당시의 감정도 불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의 지금 이 행동은
마음의 상처가 회복된 사람에게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고 하잖아요?
그 마음 안에 있었던 상처투성이 자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죽어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유다에게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의 삶이 매우 악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게 하셨어요.
그러고 나서 유다가
아버지인 야곱의 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녀를 잃은 슬픔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된 거에요.
하나님께서 유다가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래서 거절의 상처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유다의 인생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유다는 아버지의 사랑을
아직까지도 받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베냐민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지키는 사람이 되었죠.
만약에 유다의 상처가 회복되지 않았다면,
유다는 끝없는 분노와 상처 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그 상처는 더욱 커졌을거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열등감 덩어리, 애정결핍에 상처투성이인
유다의 삶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거기에다가
유다가 가족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을 통해 요셉의 상처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마음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분명 요셉이 기억하는 형 유다는
굉장히 소름끼치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고,
늘 나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열등감 덩어리였습니다.
그래서 베냐민이 사라진다면
오히려 좋아!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할 바에는
모든 걸 파괴해버릴거다! 라고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런 형이 이제는
자신을 기꺼이 희생해서
가족을 지키는 사람으로
변화된 모습을 본겁니다.
하나님께서 이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모습은
상처가 더 커지지 않게,
그들의 삶이 더 망가지지 않게
상처가 번지는 것을 막아주시고
그들을 회복시켜주시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비춰봅시다.
여러분 혹시 주변에
용서하지 못하는 존재가 있나요?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를 줘서 도무지 용서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
용서하지 못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그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면서
울며 기도해본적 있나요?
우리가 상처를
안 받고 살아간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우리는 살아가다보면
반드시 한 번은
크게 상처를 받을 때를
경험하게 됩니다.
상처를 받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내가 받은 상처 때문에
되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 모든 상처를
막아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안에 상처입은 마음이
더 이상 자라나지 않게끔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무너질때면,
상처 받은 그 마음이
회복되기를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소망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눈물 뿌려 기도하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은 반드시 일하신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깨닫게 하셨던 것처럼
여러분의 삶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나에게 상처를 준 원수같은 존재가
전혀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일하셔서
그 삶의 삶에도 새로운 삶의 기회를,
나의 삶에도 새로운 삶의 기회를 선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를 자유케하시고,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블로킹 해주실 것이다.
너무나 희한하게도,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다보면,
상처의 세력이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것을
반드시 느낄 수 있다.
상처가 아예 잊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상하고 아팠던 감정들이
기억은 나는데
더 이상 그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희한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상처와 고통의 시간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의 상처의 세력이
더 넓어지는 걸 막아주실 것이고,
그 동안 나는 기도를 통해,
예배를 통해서 회복될 수 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받은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유다는 첫째 아들로써 받아야할
사랑을 아버지로부터 거절당한
콤플렉스 덩어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개입하시는 순간
그들이 받았던 상처의 감정들은
더 이상 자라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상처의 기억들은 있습니다.
그러나 상처의 감정들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픔과 고통의 시간 속에서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반드시 일하십니다.
몇일이 걸리더라도,
몇년이 걸리더라도,
가장 선하고 옳은 방법으로,
나에게 가장 알맞는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상처가 회복된
요셉과 유다의 삶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상처가 회복되고 나니
그제서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를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아픔과 고통의 시간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빌립보서 말씀 읽고
결단찬양 함께 고백하겠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