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을 지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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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서론
서론
배경
배경
말라기는 선지자가 쓴 선지서입니다.
구약의 가장 마지막 책이기도 하죠.
그에 맞게 역사상으로 봤을 때도 선지서 중에서 가장 늦게 쓰인 책입니다. 말라기 안에서 연대를 정확하게 추정할만한 단서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라기 내에서 성전이 있는 것을 전제로 하고, 2차 포로귀환 이후의 문제들에 대해서 주로 쓰고있기 때문에 “2차 포로귀환 이후”로 연대를 추정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난 주, 지지난 주 나눴던 말씀들과 비슷한 시기에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의 마지막 성경인 말라기에서도 가장 마지막 부분입니다.
구약의 끝에서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본론
본론
1. 마지막 날(종말)의 두 국면
1. 마지막 날(종말)의 두 국면
구약의 끝에서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마지막 날의 모습”입니다.
마지막 날 즉 우리는 이것을 “종말”이라고도 많이 얘기합니다.
“종말” 때 만군의 여호와께서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임하게 할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뜨거운 불은 용광로였습니다.
용광로의 풀무불이 어떤 금속도 녹이듯이, 하나님의 용광로 같은 종말의 불은 그 어떤 사람도 그 심판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가운데 두 가지 국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악인들에게 있는 일이고, 하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들에게 있는 일입니다.
(1) 악인들
(1) 악인들
(ppt)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1절 후반부)
그들은 그 불 앞에 지푸라기처럼 힘없이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가지도 남기지 않고, 뿌리까지 남기지 않아서 악과 교만의 모든 뿌리를 송두리째 불사르는 심판이 잇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그 심판 이후 더이상 악과 교만을 행할 수 없습니다. 모든 악과 교만의 행위가 영원히 심판받기 때문입니다.
(2)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들
(2)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하나님을을 경외하는 이들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오르고 치료하는 광선을 비춘다고 합니다.
여기서 치료하는 “광선”이라는 말은 사실 한글로 번역할 때 한문 번역을 번역하다보니 생긴 엇나간 번역입니다.
원어로는 광선이 아니라 “날개”입니다.
구약에서 날개는 회복의 의미로 자주 쓰이는 표현입니다.
“치료하는 날개”라는 의미는 몸의 치료보다는 전인격적 회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전인격적인 회복을 받게 될 것이고, 그들이 마치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환희와 기쁨의 찬양을 하는 듯한 이미지의 표현입니다.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공의로운 해가 떠오르고, 그것으로 인해 전인격적 회복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두 가지의 국면이 일어나는 이유가 각각의 원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악인들이 불로 심판받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은 해가 떠서 회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두 가지 국면의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공의로운 해”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정의가 이 땅에 임하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정의가 임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악은 심판 받고, 모든 의인은 회복되는 것입니다.
적용)
지금 이 본문의 상황은 2차포로귀환 시기쯤이라고 볼 수 잇는데요.
사실 2차 포로귀환을 했던 당시는 그래도 귀환한지 얼마 안 돼서 경제적, 사회적으로 조금은 힘들었을 수는 있으나, 그들 정서적으로는 상당히 희망이 있었습니다.
성전도 다시 짓어서 완성됐고,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낙관적인 마음을 가졌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분명히 이것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면, 지금 이 순간은 그저 순간일 뿐, 언젠가는 완전한 공의로운 해가 떠오를 것이라는 점을요.
그리고 그들은 분명히 그때를 기억해야한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상당히 긍정적일 때도 하나님의 정의를 바래야 하고,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기다려야합니다.
여러분 제가 철학 역사에 대해서 잠시 얘기하려 합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이 시작됩니다. 계몽주의 철학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 개인의 이성의 능력이 급부상하게 했습니다.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거죠.
이렇게 이성 중심의 사상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동시에 과학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철학은 인간 이성에 절대적인 능력을 부여했고, 과학은 그 이성이 절대적인 능력이 있는 것을 증명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냐면, 인간의 이성의 능력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한다는 자유주의 신학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곧 뭐냐면, 인간의 자율적이고 이성적인 능력으로 가장 윤리적인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구축한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런 인간에 대해 낙관적인 사상이 거의 2세기를 지배했는데, 이 사상이 완전히 박살납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바로 2차 세계대전입니다.
2차세계대전을 통해 인간의 이성적인 능력으로 이땅에 하나님 나라를 구축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사상의 흐름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것을 통해 처참한 인간상을 보게 된 것이죠.
전쟁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지고, 비윤리적이어질 수 있는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의 상황이 상당히 지금 좋습니까? 그것은 한 순간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좋을 때도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낙관적으로 보일 때도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 그 마지막 때를 바라는 신앙은 하나님의 공의가 이땅에 완전히 임하게 되었을 때, 그 공의는 우리를 치료하는 날개가 되어줍니다.
여러분의 능력이나, 여러분의 상황이 여러분을 구원해줄 것처럼 살아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공의가 우리의 전인격을 치료해주는 날개입니다.
2. 마지막 날(종말) 때 행할 것
2. 마지막 날(종말) 때 행할 것
이렇게 최후의 날, 종말에 대해 얘기하면서 선지자는 이 종말이 이르기 전까지 행해야 할 것을 두 가지 말합니다.
(1) 율례와 법도를 기억할 것
(1) 율례와 법도를 기억할 것
첫째로 “율레와 법도를 기억할 것”을 당부합니다.
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율례와 법도”는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한 부분 하나는 뭐냐면, 오늘 본문에서 율법을 지키라고 말합니까? 기억하라고 말합니까?
“기억하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몇주간 설교를 통해서 기억하실지 모르겟는데, ‘언약을 기억한다’라는 말을 제가 자주 썼습니다.
모세에게 언약을 맺으시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율법이 곧 언약은 아닙니다.
율법은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순종할 말씀들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받게 된 원인이 언약인 것이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들은 언약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은 율법을 지켜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죠.
율법을 기억하라라고 말한 이유는, 그들의 삶에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가며 언약 백성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하라는 것이죠.
언약 백성은 기억하는 자들
언약을, 하나님의 일하심을
(2)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을 기억할 것
(2)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을 기억할 것
언약을 기억하는 것을 먼저 당부하고 한 가지를 더 당부합니다.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크고 두려운 날 = 종말의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보낼 것이라고 합니다.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그리고 그를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선지자 엘리야는 누굴 가리키는 것일까요?
이 선지자 엘리야는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비했던 선지자 세례 요한을 말하는 것입니다.
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구약 가장 마지막인 말라기에서 오게 될 엘리야는 곧 예수님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비하고, 회개를 촉구했던 예수님 당시 선지자입니다.
세례 요한이 외쳤던 것은 무엇인가요?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세례 요한이 회개를 외쳤던 이유는 말라기 본문을 통해서 말하듯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자들의 마음을 아버지께로 돌이키게 하는 것. 즉 회개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회개는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종말론에 대해 조금 이해해야합니다.
종말에 대해 나올 때마다 계속 설명하는 것 같은데 우리의 종말론은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니”입니다.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셨을 때 종말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된 종말은 오지 않아습니다. 그래서 아직 아닌 겁니다.
종말의 완성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입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마지막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를 오게 할 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약의 엘리야, 세례요한이 마지막 날이 오기 전에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준비했던 마지막 날은 언제일까요?
예수님의 초림 때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 초림을 준비하며, 우리한테는 이미 오게 된 종말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이미 세례요한은 죽었으니까 기다릴 엘리야가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엘리야를 보내십니다.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요한은 누구일까요?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세례 요한은 자신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이며, ‘주의 길을 준비하고,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이 오심을 외치고, 예수님을 예비하는 자라는 거죠.
그렇다면 예수님의 초림의 길을 준비한 엘리야는 세례요한이라면, 재림의 길을 준비하는 엘리야는 누구일까요?
그것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올바르게 선포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 우리에게 맡겨진 “지상명령”이라고 하는 이 명령이 바로 우리를 ‘재림의 엘리야’로 세우신 말씀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 교회를 통해 선포될 말씀을 통해 교회를 엘리야로 세우십니다.
적용)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들은 우리의 정체성을 ‘언약 백성’이요, ‘엘리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언약 백성은 말씀을 기억하며 그 언약을 굳게 지키려는 자들입니다. 엘리야는 그 기억한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자들입니다.
(ppt)
이로써 교회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게 됩니다.
교회는 종말의 때에 말씀을 기억하는 언약 백성이요,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엘리야
결론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