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한 믿음』
Notes
Transcript
【성경봉독】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7:1-10
누가복음 7:1–10 (NKRV)
1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이만한 믿음”라는 제목으로 나눕니다.
=========================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에 있는 본문이다.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회복사역이었다.
예수님은 사역이 시작되기 전 회당에서 이사야 61:1절을 읽으신다.
▶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도록
▶ 상처받은 자를 치료하고 억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도록
▶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도록(눅 4:18-19)
그것은 선포된 ‘은혜의 해’는 모든 재정적인 빚,
유질 처분된 토지 및 계약된 노예를 사면하기 위해 50년마다 구약성서에
의무적으로 명시된 사면기간인 “희년”을 암시한다.(레 25:8-55)
=========================
이제 예수님의 사역은 가난한 자들과 포로된 자들 그리고 상처받고 억눌린 자들에게 “은혜의 해“을 비추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것을 감당할 자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다.
=========================
그런데 오늘 나오는 백부장은 가난하거나 포로 되거나 상처받거나 억눌린 사람이 아닌 인물로 등장한다.
이런 백부장이 예수님의 은혜의 해를 받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
오늘 본문은 백부장이 자신의 종이 병들어 죽게 되어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 앞에 나아간다.
그리고 예수님의 퉁명스러운 답변에도 불구하고, 말씀만 하시면 나의 종이 낫을 것이라고 말한다.
=========================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자세와 태도를 보고 감탄하시면서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이만한 믿음”을 이스라엘 중에서는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시고 백부장의 종은 그 시점에 종을 고침 받는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만한 믿음”에서 “믿음”이라고 사용된 단어가 “πίστις”이다.
“πίστις”란 단어의 의미는, “충성”이다.
그리고 이 “πίστις”는 신약성서에 “관계적 삶의 방식”과 연관되어서 사용되는 단어이다.
-> 너와 나에 관계 안에서 사용되는 삶의 방식에 대한 충성을 의미한다.
=========================
정확히 표현하면, “이만한 믿음”은 “이만한 충성”을 보지 못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만한 관계적 삶의 방식”을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
그렇다면, 백부장의 충성 또는 관계적 삶의 방식이 무엇이었을까?
백부장이 어떤 인종이었는지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부하다.
유대인이거나 로마인이거나 시리아인 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가장 개연성이 높은 것은 AD 44년 이전에 갈릴리에 로마군이 없었다는 주장에 따라서
헤롯 안티파스 부대 소속의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이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인다.
=========================
그렇다면, 백부장은 헤롯 안티파스에 장교로써,
백부장의 모습은 로마 제국과에 “관계적 삶의 방식에 대한 충성”에 대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본문에서 백부장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자신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명령을 하면 명령을 따른다고 말한다.
이 말은 백부장이 자신도 명령 체계 아래서 황제의 명령은 즉각 실행된다는 ‘관계적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πίστις”(관계적 삶의 방식)과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백부장은 자신과 황제와의 관계적 삶의 방식 안에서 가지고 있는 “충성” 에 모습이다.
곧, “πίστις”를 예수님 앞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
이 충성과 관계적 삶의 방식인 백부장의 모습은 1) 황제 뿐만 아니라 2) 자신의 종에게도 나타난다.
이 백부장은 자신의 병이 아니라, 자신의 “종”에 병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왔다.
본문에는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어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 앞에 나아왔다.
백부장은 자신의 사랑스러운 종에 대한 “충성(관계적 삶의 방식)”이 담겨져 있다.
=========================
예를 들어서 생각해 보면,
여러분의 가족의 구성원 중 한 명(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형, 누나, 언니, 동생)이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다고 가정한다면,
내가 그런 상황에 처 해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마침 그 때 어느 날 갈릴리에 많은 병자를 고친다는 한 선지자가 있다는
소문을 내가 들었다고 한 번 가정해보세요.
여러분들은 그 선지자라는 사람을 찾아 갈까요? 말까요?
당연히 찾아가겠죠.
=========================
백부장은 지금 자신의 종 사랑스러운 종이라고 표현된 것으로 보아서,
이 종은 백부장에게 있어서 가족의 한 일원과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래서 백부장은 예수님 앞에 찾아갔던 것입니다.
=========================
백부장의 “πίστις”(충성, 관계적 삶의 방식)
곧, 황제에 대한 장교로써의 충성과 자신의 사랑하는 종에 대한 충성으로 인해서, 병을 고침 받게 되었다.
=========================
예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 보지 못했다고“ 하신다.
이스라엘을 비꼬는 어투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에 대한 깊은 관심과
회복의 염원을 담고 있는 어투로 느껴진다.
=========================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πίστις”(충성, 관계적 삶의 방식)에 관계가 있었는데, 무너져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하나님에 대한 “πίστις”(관계적 삶의 방식이 그들의 정체성이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관계적 삶의 방식안에 충성)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πίστις”(관계적 삶의 방식과 충성)이 무너지면서 그들의 정체성도 무너지게 되었다.
=========================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한 마디로, ‘회복 사역’이라고 했다.예수님은 이스라엘이 회복되길 바라고 있다.
백부장이 가지고 있던 ‘관계적 삶의 방식’에 따른 충성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 안에 있는 삶의 방식에 관한 충성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의 삶의 방식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인 것이다.
=========================
백부장을 통해서 알려주는 것은 우리의 관계적 삶의 방식이 회복되어지고,
그것이 정체성의 회복이며,
그 정체성은 하나님에 말씀 앞에 충성된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백부장의 고백을 해야 된다.
=========================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
주여 말씀만 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