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변화

복음의 능력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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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지난 주에 우리는 눅 15장을 통해 두 아들의 속 마음을 알았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재물을 사랑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나쁜 일을 했습니다.
첫째 아들 또한 아버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재물을 사랑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착한 일을 했습니다.
결국 두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기보다 아버지의 소유를 사랑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자신의 소유가 파산하여 아들이 아닌 품꾼으로 아버지에게 빌어 먹으러 왔다가 아들 대우를 받습니다.
첫째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곧 자신의 소유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보고 화를 냅니다.
화내는 감정은 그 마음 안에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잃어버릴 때를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소유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꾹꾹 참아 왔습니다.
그러다가 폭발한 것입니다.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죠? 사람은 고쳐 쓰는게 아니야.
왜 그러냐하면 생각이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그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결국 의지는 생각하는대로 행동합니다.
사람을 바꾸기 위해서 종교에서는 의지, 곧 행동을 바꾸게 합니다. 그들의 마음에 두려움과 공포의 감정을 심어주기도 하고 유혹하기도 합니다.
이미 굳어져 있는 의지를 억지로 바꾸려면 부러집니다. 몸이 상하든지 마음이 상하든지 큰 상처를 입습니다. 더 비뚤어집니다.
사람을 바꾸기 위해서 오늘날 대부분의 심리상담가는 감정을 바꾸려고 합니다. 공감해주고 들어주고 격려해 줍니다.
그러나 자기 중심적인 생각은 바뀌지 않습니다. 자기 만족으로 충만하든지 자기 비하로 공허감을 느낄 뿐입니다.
사람이 바뀌는 일의 제 3의 길을 제시합니다. 사람을 바꾸기 위해서 복음은 사람의 마음을 녹입니다.
용광로 안에서 모든 물질이 녹아지듯이 성령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복음으로 녹이십니다.
오늘도 두 부류의 사람의 마음을 살펴볼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본론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막10:32-34)?
십자가의 죽음을 세 번째 말씀하심. 확정적이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목적이 분명하다.
제자들은 이 말씀에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두려워합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희생 제물로 죽으러 왔습니다. 그리고 삼 일만에 살아날 것을 예고하십니다.
예수님은 몸 값을 치르러 왔습니다. 인간이 죄의 노예가 된 상태는 우주적인 악이기에 우주적인 몸값이 필요했습니다.
십자가 이야기를 하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고대 원시 종교를 떠올립니다.
피에 굶주린 신이 자신의 아들을 잡아 죽이는 잔인한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디스트 하나님, 학대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는 공포의 대상인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천만에요.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그냥 용서해 주시면 되잖아요? 굳이 예수님이 고난 받아야 하죠? 대속물이 되어야 하냐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속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희생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동물처럼 순식간에 크고 독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끊임없는 사랑으로 돌봐줍니다.
부모님은 자신의 것을 내어줍니다. 해리 포터는 이마에 특별한 표시가 있습니다. 이것은 해리 포터를 보호해줍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덤블도어 교수님이 이야기해줍니다. 사악한 볼드모트가 해리 포터를 죽이려고 할 때 어머니 릴리 포터가 구하기 위해서 대신 죽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깊은 사랑을 받으면 영원한 보호막이 생긴다고 말해 줍니다. 일상적인 경험부터 극적인 경험까지 희생적인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죄는 그냥 모른 체하거나 눈 감는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미안해’, ‘용서해줄께’ 말로만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는 반드시 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합니다. 빚은 갚아야만 합니다.
고대 신화나 종교에서 대신 빚을 갚는 개념은 없습니다. 오히려 신이 분노하고 형벌을 내려 정의를 세울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시기 위해 나서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이 구하는 것은 무엇인가(막10:35-37)?
야고보와 요한에 앞서 부자 관리가 등장합니다. 자신의 의를 자랑합니다.
종교성입니다. 종교는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받아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재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도전 앞에 떠나갑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에 대하여 들었다면 제자들은 다르게 반응해야 하지 않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구한 것은 좌우정과 우의정이다. 권력을 탐한다.
예수님의 얻으시는 영광은 십자가였습니다. 죽음입니다.
십자가 양 옆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아니라 두 강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하십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청탁에 부드럽게 반응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나 구하는 것이냐?
예수님의 마시는 잔과 세례는 고난의 잔이요 물 속에 잠기는 죽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야고보와 요한은 이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권력을 얻는데 어느 정도 희생이 따르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교만한 마음은 겸손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권력을 얻으려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뜻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통제와 영향력일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을 얻는다고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됩니까?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까? 세상이 바뀝니까?
오히려 권력을 얻은 사람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염려와 걱정의 삶을 살아갑니다.평안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냥 내 뜻대로 따라줍니까? 그들을 움직일 만한 돈이나 권력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3. 야고보와 요한의 말을 듣고 나머지 열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막10:41)?
선수치는 야고보와 요한을 향하여 동일한 마음이 있음을 피력한다.
화를 낸다는 감정은 자신의 마음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인사이드아웃)
이들이 마음으로 추구하는 바는 힘입니다. 성공, 승리, 영향력을 추구합니다.
이 추구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때 사람은 화, 분노가 표출됩니다.
우리가 권력을 얻기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수고하고 있는데 서로 비교합니다.
4.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나머지 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막10:38-40; 42-45)?
야고보와 요한의 순교를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오해합니다. 한 자리 하기 위해 하는 수고는 충분히 감당하겠다고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필요한 이유가 자신들의 성공에 있음을 알게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위대함은 겸손에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위대함은 자기 이익과 만족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려는 야망으로 교만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위대함은 예수님에게서 발견합니다.
마가복음 10:45 NKRV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복음은 이것입니다.
희생적인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영향력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다.
진정한 영향력은 사람들에게서 빼앗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자발적으로 당신을 내어 주셨다.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줍니다. 이타적인 삶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주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위해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안 먹고 안 입고 어려운 형편에서 너를 도와 주었는데 그것을 몰라줘!
종교는 복음을 믿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고 합니다.
선행을 통해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복을 받아 내려는 심상입니다.
자신의 가진 것을 드러내려는 우월감에서 비롯된 교만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우상이라고 부릅니다.

결론

두 맹인의 이야기가 10장을 마무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두운 눈을 가진 두 제자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열 제자들을 일깨우고자 함.
어떻게 해야 이런 이기주의 함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희생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바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안 야고보와 요한은 변화되었습니다.
복음만이 이타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순수한 동기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어떻게 변화되는가?
사도행전 12:1–2 NKRV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요한1서 3:16 NKRV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날마다 십자가의 기적을 묵상함으로 시작하라.
-우상을 발견하고 명명하며 버리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지하라.
아침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로 시작하라.
날마다 하나님과 말씀과 기도로 만나라.
-기도를 간구(목표지향적)에서 찬양과 경배(관계지향적)로 이어지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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