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사람들 ④ -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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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들어가며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이 시간도 우리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나아가기 원하는데요. 먼저 우리가 말씀을 나누기 앞서 하나만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자리에 왜 오셨습니까?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잠깐만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각자 다 다른 이유로 이 자리에 나왔겠지만, 그것이 무엇이 됐든 이 자리로 이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늘 이 자리도 하나님께 집중하며 나아가는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꿈, 비젼의 주제에 대한 마지막 말씀입니다. 이번 6월 한 달 동안 우리가 나누었던 것처럼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가셨는지, 그 걸음을 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발걸음이 있다고 한다면 너무 기쁜 일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때에 이끄시는 분명한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에게는 크고 작은 꿈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자 하는 것이 크고 작게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가 살고 있는 주위를 둘러 보면 그러한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 자격증을 따는 것,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스펙을 쌓는 것,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 것, 건강해 지는 것, 여러 가지로 크고 작게 그러한 꿈들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들을 보면 물론 희망찬 미래를 향하여 기쁘게 달려가는 모습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의 모습 속에서 보여지는 것은 지친 모습들,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모습들입니다. 여러분도 혹시 그러시나요? 혹은 주위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지 않나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 지침이 있습니다. 졸업 때가 다가오면 취업의 문제로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취업을 해도 그 이상의 스펙을 쌓는 것,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 또 요즘에는 출산에 대한 기피도 있죠. 그 여러 가지 상황에서 꿈을 쫓아 달려가기는 하지만 지치고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하신가요? 꿈을 향해 달려가는 길 가운데 늘 기쁨이 넘치시나요? 그러면 너무나 좋겠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주위를 둘러보면 보이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우리도 걱정이 가득하고, 근심의 마음이 있죠. 우리가 여기서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 본다면, 만약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꾼다면 걱정과 근심이 없을까요? 그럼에도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고, 보여주셨지만 지금 당장에 내 눈 앞에 있는 현실을 보면 하나님이 주신 꿈이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니까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계속해서 나누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지 못하는 모습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 꿈을 꾸게 하시고, 비전을 보여주셨어도 그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모습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꾼 자들이 많이 나오고, 그 가운데서 그 꿈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분명히 있는데 왜 우리의 삶에서는 그러한 일들을 경험하지 못하는 걸까요?

본론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두 마음을 품은 모습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데, 24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길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곧 두 마음을 품은 모습인 것이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코 두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또 다른 것을 믿고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두 마음을 품은 모습,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모습이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성적, 취업, 연애, 결혼, 건강, 돈, 여러 가지로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말로는 아니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그 삶을 보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서 그것을 선택하고, 붙잡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공부하는 분들에게 있어서는 성적이 그러하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지금 당장에 있는 시험이 더 중요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이후에 사회에 나가서도 똑같죠.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보다 내 건강, 내 시간이 더 소중해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에 대해 등한시 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우리는 두 마음을 품은 모습들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2. 걱정과 근심
여러분, 두 마음을 품으면 우리 모습에 드러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걱정과 근심입니다. 오늘 본문의 25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우리가 두 마음을 품으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이 말이 단순히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내일 나갈 땐 어떤 옷을 입을까?’ 하는 걱정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걱정과 근심, 염려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내가 이 성적으로 취업을 할 수 있을까?’, ‘좋은 사람을 만나고 결혼도 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게 별로 없는데’, ‘내 외모, 내 건강이 이런데 앞으로 잘 살아갈 수가 있을까?’ 여러 가지로 걱정하고 근심하는 모습들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우리의 모습을 보면 이러한 염려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물론 청년의 때를 살아가는 지금, 당연히 그런 염려가 들 수 밖에 없죠. 금수저도 금수저의 나름대로 고민이 있겠지만, 나는 금수저도 아닌데 이 힘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냐는 거에요.
3. 걱정하지 마라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모습을 보시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세상 물정을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일까요? 그 이유가 26절 이하에서 나오는데, 먼저 26절만 보겠습니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예수님께서는 새로 예를 들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새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새들을 먹이시지 않냐는 거에요. 그리고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새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 하나님이 만드셨고 보기 좋은 아무것도 아닌 이러한 피조물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는데 먹이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물며 그 어느 것보다도 존귀하게 여기시는 우리를 향해서는 어떠하겠냐는 거죠. 그런 말씀을 쭉 이어 가시면서 30절에서 결정적으로 한 마디를 하십니다. 30절 말씀을 다같이 볼까요?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루 있는 보잘 것 없는 들풀도 입히시는데, 너희를 더 소중하게 입히시지 않겠냐고 말씀하시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써 책망의 말씀도 하십니다.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왜 이렇게 많은 걱정과 염려, 근심을 안고 살아갑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았지만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걱정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하나님의 질서에 맞게 다 입히시고 먹이시는데 왜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하고 존귀한 너희들은 그러한 것에 대해서 걱정을 하냐고 말씀을 하시죠.
예전에도 자주 이야기했지만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나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입히시고 먹이시고 채우시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 눈 앞에 있는 문제와 상황만을 바라보며 걱정하는 모습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 채 여전히 그 문제만을 해결해 줄 다른 것만을 붙잡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많냐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이 깊이 박혀야 합니다.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 이 책망이 단순히 우리를 욕하시는 게 아니라,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을 하시겠냐는 거에요. 채우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이 있는데 왜 걱정을 하냐고요.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님이 내 식사를 안 챙겨 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고, 내가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존귀하게 여기시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3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볼까요?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걱정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모르는 사람들만 구하는 것이라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신다는 것이죠. 앞선 말씀에서도 하나님의 창조하신 피조물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먹이고 채우신다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의 모든 필요를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걱정 속에 빠져서 주저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걱정과 염려로 주저 앉지 말고 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을 33절 말씀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이 조금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말은 곧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나라에서 하나님이 기준이 되는 것을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이 말은 한 단어로 정리를 하자면 늘 우리 교회에서 담임 목사님이 말씀하시듯이 “항복”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서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습에서도 하나님의 질서에 맞지 않게, 그 기준에 맞지 않게 사는 모습이 비일비재 한 것을 보았죠.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내 성적이 더 우선시 하고, 사람을 더 먼저 의지하고, 돈, 건강, 여러 가지로 내 앞에 보이는 것을 더 의지하고 붙잡는 모습들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의 질서에 맞게 먹이시고 입히신 것과는 반대 되는 모습입니다. 그것에 따르지 않고 내 힘으로 아등바등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인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방금 보았던 33절 말씀을 오해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니까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면, 예배 열심히 참여하고 기도 열심히 하면 내 문제가 해결 되고 복을 받을 거라고 착각을 합니다. 이 구절은 절대로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은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항복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질서와 기준을 따르겠다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이러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항복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따를 때, 우리의 필요를 덤으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정리

여러분, 지금도 마음 한 켠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불안과 염려, 걱정, 근심을 안고 살아가십니까? 예수님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이 믿음이 연약한 자야!” 이 말씀이 걱정과 근심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분명히 기억할 것은 단순히 우리를 꾸짖는 것이 아니라, ‘채우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냐?’라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음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간절히 소망하기로는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같이 걱정만을 안고 살지 않기를 원합니다. 나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알고, 그러한 존귀한 “나”라는 걸 알고 그에 맞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6월 한 달 주제였던 꿈과 비전, 단순히 내가 되고 싶은 것만을 바라는 것이 아닌 주님께 항복함으로써 하나님의 질서와 기준 따라 살아감으로 하여금 우리를 꿈꾸게 하시고, 그 꿈을 이루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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