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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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노래하다
세상에서 노래하다
요한계시록 3:20 “20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오늘 말씀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말씀이기도 하고 일곱교회를 향한 말씀이기도하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특징이 어떤가
요한계시록 3:15–16 “15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겠다. 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예배나 교회는 어떤가?
강단과 가까이 있는 예배자들은 뜨겁다. 멀리 있는 예배자들은 미지근하다.
어느 큰교회를 좀 늦게 갔더니 다른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대부분 그냥 예배를 드리는 건지 찬양을 하고 있는 건지…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나왔는데 내가 예배를 드린 건지 아닌지…그런데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그런데 나는 어느 교회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아. 교회는 다니는 구나. 그러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시니어들이 올려드리는 이 찬양 우리 주님이 기쁘게 받으시면 좋겠다.
또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노래를 불러야 되는 존재이다. 듣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찬양을 듣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듣게 하려고 오늘날 그렇게 다 만들어져버렸다.
시편 81:1 “1 우리의 피난처이신 하나님께 즐거이 노래를 불러라. 야곱의 하나님께 큰 환성을 올려라.”
사사기 5:12 “12 일어나라, 일어나라, 드보라야. 일어나라, 일어나서 노래를 불러라.
우리는 노래를 불러야 하는 존재이다.
왜 우리가 부르는 노래를 통해 하나님이 알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른 이 노래를 들어야 되는 대상이 둘있다. 누구 누구일까.
노래를 들어야되는 존재, 첫째, 하나님이다.
우리 노래를 하나님이 들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노래해야 한다. 하나님이 들으시도록
38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님! 하늘에는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는 영광!”
39 그런데 무리 가운데 섞여 있는 바리새파 사람 몇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선생님의 제자들을 꾸짖으십시오.”
40 그러나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듣도록 노래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노래보다 돌들로 노래하게 하실 것이다.
두번째 누가 듣는가. 교회 밖 사람들이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이 찬양의 사역들이 심각한 위기에 있다. 왜 위기인가요? 이렇게 훌륭한 유명한 팀들이 많은데… 많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이 교회다니는 사람들만 불러 모아서 교회 공간안에서 우리끼리 흥겹게 때로는 감동을 받으며 찬양을 한다. 세상사람들이 하나님을 노래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우리 시니어들이 청년시절에는 교회다니지 않아도 실로암 정도는 다 알았다.
신명기 31:19–21 “19 이제 이 노래를 적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 부르게 하여라. 이 노래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내가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증언할 것이다. 20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뒤에, 그들이, 살이 찌도록 배불리 먹으면, 눈을 돌려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업신여기고, 나와 세운 언약을 깨뜨릴 것이다. 21 그리하여 그들이 온갖 재앙과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한, 이 노래가 그들을 일깨워 주는 증언이 될 것이다. 비록 내가 아직 약속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기 전이지만, 지금 그들이 품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를 나는 알고 있다.””
오늘 말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다. 예수님이 지금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고 하신다.
교회밖에서 지금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예수님은 교회밖에 있는데 우리는 교회 문을 걸어 잠그고 우리끼리 예수님 찬양받으시라며 부르고 있는 형국이다.
오늘 우리는 너무도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예수 믿는 사람 안믿는사람. 진보냐 보수냐,
예수님은 항상 선을 넘으셨다. 어느날 손가락질 하는 죄인을 느닷없이 만나시고 식사를 하시고
바리새인들이 포도주를 탐하는 청년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예수님은 당시 가장 천대받는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런데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저마다 고상하게 살고싶어 안달이 났다.
왜 우리는 사람들이 듣도록 노래해야 하는가
역대상 16:8 “8 너희는 주님께 감사하면서, 그의 이름을 불러라. 그가 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려라.”
찬양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이름을 영화롭게 올려드리는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을 칭찬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외칠때 세상이 듣게 된다. 너희들이 그렇게 높이는 하나님이 누구뇨? 묻게 된다.
우리가 부르는 이 노래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니어들의 이 찬양예배는 큰 의미가 있다.
일단 선을 넘었다. 세상 가장 세속적인 장소에서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다.
시니어들의 찬양은 그저 자랑이 아니다. 그 속에 신앙의 깊은 시간이 담겨져 있다.
우리는 이제 교회당안에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노래해야 한다.,
예수님이 교회를 향해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나 지금 밖에 있어. 너희들은 지금 누구를 위해 노래하니.
예수님을 가장 빨리 맞이 하는 방법은 노크소리를 듣는것 보다. 목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빠른 것이다.
가장 탁월한 찬양은 우리 스스로가 탁월한 실력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함께 기뻐하시는 찬양이다.
시니업예배가 세상에서 계속 하나님을 노래했으면 좋겠다.
다른 엄청난 뭔가가 없어도 기타하나가지고도 그냥 노래할 수 있으면 좋겠다.
tvn 너목보 라는 프로그램에, 제자가 나왔다. 이 친구는 예배찬양사역을 배웠다.
그러나 이 친구는 교회건물안에서 예배찬양사역을 선택하지 않았다. 세상속에서 사람들속에서 하나님을 노래하고 예배하는 것을 선택했다. 때로는 한강다리에서 수능이 끝날때 수험생들과 함께 걸어주고 기타하나 매고 지방을 걸어다니며 길거리에 사람들과 노래하고 간증하고. 시골교회를 만나면 그곳에가서 노래하고 간증하고..누가 불러주지 않아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치명적인 단점은 한쪽귀가 잘 안들린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왜…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짐과 동시에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