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족한 자의 회복

고린도후서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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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실족한 자의 회복
본문: 고후 2:10-11
(고후2:10) 너희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용서하면 나도 용서하노라. 만일 내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용서하였다면 내가 그것을 용서한 것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너희를 위해 한 것이니
To whom ye forgive any thing, I forgive also: for if I forgave any thing, to whom I forgave it, for your sakes forgave I it in the person of Christ;
(고후2:11)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의 계략들에 대해 무지하지 아니하노라.
Lest Satan should get an advantage of us: for we are not ignorant of his devices.
오늘 다룰 본문의 마지막 두 구절을 본문으로 읽었습니다.
(갈6:1) 형제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거든 영적인 너희는 온유의 영으로 그러한 자를 회복시키고 네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
Brethren, if a man be overtaken in a fault, ye which are spiritual, restore such an one in the spirit of meekness; considering thyself, lest thou also be tempted.
이 말씀은 아무도 유혹에서 자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에 빠진 형제 자매를 보게 되면 그들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회와 교회의 차이점과 공통점
일반적으로 사회라는 것은
사회에 위협이 되는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격리 또는 제거하는 일을 합니다.
살인자나 아동 성추행자는 그 사회에서 격리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현 사회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교회도 하나의 사회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교회라는 사회를 파괴하는 사람들을
교회 구성원의 보호를 위해서 격리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의 사례
교회 안에서 술취한 모습을 보이거나 음행을 저지르는 사람은
계속해서 교회에 머무는 것을 허락한다면
그런 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악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교회에 남겨두게 된다면,
사람들은 목사가 그런 행동을 교회에서 허용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죄가 교회 구성원이 거룩해지는데 해가되지 않게,
죄를 범한 지체를 교제권에서 분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교회의 교제권에 합류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공허하고 혼란스러운 일인지를 알게해서
그들이 회개하고 교회에 돌아 올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떠나도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성경적 그리스도인이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적 그리스도인 이라면
이 곳은 함께 있고 싶어해야 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가 여러분과 동일한 것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고,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징계의 목적이 제거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몇몇 사람들을 강제로 교회에서 제거하라고 하셨지만,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 징계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돌아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에 돌아온 사람을 모두가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잘못을 바로잡고
교회로 다시 돌아오고자 할 때는 그들을 환영해서 받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서는 돌아온 사람들을
모두가 환영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교회 구성원 중에는 징계받았던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고
계속 징계를 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징계받았던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피해를 입혔던 사람들에게 댓가를 치르게 하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은혜가 법보다 우선해야
교회 안에서는 은혜와 법의 비중을 잘 조화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법보다는 은혜를 먼저 생각해야 하지만
또한 은혜가 법을 무시하게 만들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잘못하는 일들이 있을 것이고 그 잘못은 냉정하게 대해야 하지만
우리는 그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이 회개하고 그 문제를 처리되고 바로잡고 나면
우리는 그들을 은혜로 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그들의 회복이지 징계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회개한 사람에게만
우리가 본문을 다루기 전에 한가지 더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성경적 기독교 가치관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용서는 하나님께서 오직 회개한 사람에게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게 죄를 저지른 사람을 보고
그들의 회개가 없이 그의 죄를 용서해 주라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용서는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창작물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회개와 믿음은 구원의 축복을 위한 선행 과정이기 때문에
회개의 필요성은 두 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고후2:10) 너희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용서하면 나도 용서하노라. 만일 내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용서하였다면 내가 그것을 용서한 것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너희를 위해 한 것이니
To whom ye forgive any thing, I forgive also: for if I forgave any thing, to whom I forgave it, for your sakes forgave I it in the person of Christ;
(고후2:11)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의 계략들에 대해 무지하지 아니하노라.
Lest Satan should get an advantage of us: for we are not ignorant of his devices.
마귀가 가장 무너뜨리고 싶어하는 곳
교회 라는 곳은 마귀가 가장 무너뜨리고 싶어하는 곳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유일한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다른 영역들은 마귀가 장악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깃발이 꽂힌 곳을 찾아다니며
서로가 반목하게 만들고 무너뜨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고후2:1) 그러나 내가 이것 즉 내가 무거운 마음으로 너희에게 다시 가지 아니할 것을 스스로 결심하였나니
But I determined this with myself, that I would not come again to you in heaviness.
(고후2: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내가 근심하게 한 바로 그 사람 외에 나를 즐겁게 할 사람이 누구이겠느냐?
For if I make you sorry, who is he then that maketh me glad, but the same which is made sorry by me?
성도를 빼앗기는 것은 기쁨을 빼앗기는 것
우리의 기쁨은 구원받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얻습니다.
여러분이 직장에 가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과 더러운 대화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월급을 받기 위해서 일 뿐 기쁨을 얻기 위해서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의 교제를 통해서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삶의 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교회 뿐 입니다.
우리 중 누군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서 교회에서 쫓겨나게 된다면,
그 사람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교제의 대상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모두가 기쁨을 빼앗기는 순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함께 찬양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우리의 직장이나 사회 모임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줄 한 사람을 잃어 버린 것입니다.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교회에 충실해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힘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떠나는 사람이 생기면 서로의 기쁨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 떠나게 되거나 떨어져 나가게 되면
그것으로 인해 그들의 기쁨이 사라질 뿐 아니라
우리의 기쁨의 일부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힘을 잃게 되는 것 뿐아니라
우리 또한 그들로부터 받게될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들이 회복되어서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는 것은
그들이 돌아와야 교회 인원이 늘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다시 회복되어서 자신의 위치로 돌아와야
그들이 나를 하나님의 은혜로 섬겨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후2:3) 내가 바로 이것을 너희에게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기쁨을 얻어야 할 사람들로부터 근심을 얻지 아니하려 함이었노라. 나는 너희 모두에 대하여 확신하되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로 확신하였노라.
And I wrote this same unto you, lest, when I came, I should have sorrow from them of whom I ought to rejoice; having confidence in you all, that my joy is the joy of you all.
주님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 서로에게 기쁨이 되길 원하십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교회 안에서 누리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마귀는 여러분이 죄에 휘말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에서 기쁨을 빼앗아 가게 됩니다.
그 결과로 여러분은 교회가 세상보다 더 나은게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내가 교회에 있어봐야 더 행복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결혼하는 것 보다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애를 낳는 것 보다 부부끼리 사는게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교회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족이 문제가 아니고 결혼제도도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죄입니다.
죄는 여러 관계 속에서 가질 수 있는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 이라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입니다.
여러분은 적극적으로 그 몸에 참여해서 매순간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죄가 여러분의 관계를 망치고 기쁨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죄가 여러분의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어떤 사람은 1년이 넘게 교회에 발을 들여 놓지도 않습니다.
그에게는 교회에 여러가지 불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은 기쁨이 넘치지만,
교회를 떠난 당신만 기쁨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기쁨을 빼앗는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여러분의 결혼생활의 기쁨을 훔치지 않습니다.
결혼생활도 여러분의 기쁨을 훔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불순종의 죄가 여러분의 기쁨을 훔치는 것입니다.
바울은 떨어져 나간 자들이 회복되어 돌아오길 바랍니다.
바울의 이야기는 누군가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고,
그가 회복되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때,
나를 기쁘게 할 한 혼이 사라진 것이 마음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그곳에 가서 회중 앞에 섰을때
이전에 신실했던 자매가 보이지 않으면,
그 자매가 보이지 않는 이유가 궁금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가 이유를 알고 보니
십대 친구들은 다른 세상 친구들과 어울려 세상으로 떠나갔고,
어떤 사람은 죄를 찾아서 세상으로 떨어져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잘됐다고 말할까요?
그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문을 걸어 잠그라고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교회에 다 모였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모든 구원받은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면
내가 더 많은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이 지금 모습에 변화가 없고, 회개가 없다면,
그들을 다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했고, 변화되어서 다시 돌아온다면,
그들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고후2:4) 내가 마음이 몹시 괴롭고 아파서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나니 이것은 너희가 근심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에게 더욱 넘치게 베푸는 사랑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For out of much affliction and anguish of heart I wrote unto you with many tears; not that ye should be grieved, but that ye might know the love which I have more abundantly unto you.
목사는 비난을 즐기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에 설교자가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설교를 즐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은 아주 소수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는 모든 사람이 낙오없이 교회에 참석하기를 원하고 있고,
우리 모두가 완전한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눈물을 머금고 죄를 지은 사람을 제거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채찍으로 맞고 돌로 맞았습니다.
그는 끔찍하고 누추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에게는 살해 위협이 따라 다녔고, 사형 집행이 될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 앉아서
눈물로 서신서를 종이에 적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망치는 사람들은 교회의 교제권에서 제거하라고 적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그대로 방치하면 교회의 간증을 망칠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은 아프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다르지 않다면, 그곳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 교회는 세상을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 못됩니다.
근심하는 바울의 마음
(고후2:5)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근심을 일으켰을지라도 그가 어느 정도만 나를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나는 너희 모두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아니하려 하노라.
But if any have caused grief, he hath not grieved me, but in part: that I may not overcharge you all.
바울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안좋은 일들로 근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은
바울 뿐 아니라 교회 모두에게 아픔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지켜보는 바울의 마음에 대해 사용한 단어를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그것이 나를 아프게 했다거나 상처를 주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나에게 근심을 일으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근심(grief)이라는 단어를 언제 사용하는지 아십니까?
누군가 죽었을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저의 아버지가 10년 전쯤 돌아 가셨습니다.
내 안에는 그분이 안계신 것에 대한 슬픔이 가득합니다.
그분이 지금 이 자리에 계셨다면
그분의 손자가 대학에 가고 장가를 가는 이야기 들려드리면
그분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수 있을 텐데,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기뻐했을텐데,
그러나 그분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그런 기쁨을 나눌 수 없는 것이
너무도 가슴이 아프고 슬픕니다.
여러분이 아내나 남편이나 자녀를 먼저 하늘로 보냈다면
같은 마음을 가져봤을 겁니다.
지금 바울이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의 교회 가족이 지금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형제가 일주일이 넘게 그리고 한 달이 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했던 것들이 지금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로 인해서 내가 내 삶에서 채울 수 있는 것이 있었는데,
그들이 의를 버리고 죄를 찾아 떠났기 때문에
내가 더이상 그들로 인해 내 안에 채워왔던 것을
더이상 채우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에 성처를 준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지옥과 정죄를 이야기 하고 그들을 꾸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들이 교회에서 쫓겨 났지만
그들이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회개하고 돌아오길 바라는 것입니다.
(고후2:6) 그런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에게서 이같이 벌 받은 것이 충분하니라.
Sufficient to such a man is this punishment, which was inflicted of many.
사람들이 회개하고 바로잡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목사가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지지하면
회중이 목사를 지지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여기 남편 몰래 음행을 저지르는 여자가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여자를 교회에 그대로 있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그 여인이 다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그녀의 남편과 올바른 부부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계속해서 그 죄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면,
교회는 반드시 그여인을 교회의 교제권 밖으로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사는 그 여인에게 남편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기 전에
교회로 다시 돌아 올 수 없다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목사에게 너무 잔인하다고 말을 합니다.
왜 그녀를 사랑으로 대하지 않느냐고 불평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하나님과의 올바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고 그를 내쫓는 일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그녀의 죄는 오히려 응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녀를 내쫓는 것에 반대 한 사람은 그녀와 같은 음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음행을 저지른 사람을 교회에서 내보내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이것을 선포한 목사를 회중이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인해서
교회 안에서 멈출수 있는 죄를 멈추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었던 이유
고린도에있는 이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근친상간의 성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을때
그 죄인들을 교제 모임에 초대하지 않기로 한 것 때문인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있어던 많은 문제들이 바로 잡힐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께서 주신 분별을 가지고
교회 목사가 이것이 문제고 저것이 잘못되었다고 말을 하면
교회 성도들이 그 말씀에 동의를 하고 그 문제들을 바로 잡았던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의 영적 권위에 성도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지도자의 권위는 손상될 것이고 교회 안의 문제는 고쳐지지 않을 것입니다.
적당히 항복을 시켜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적당히 항복하고 전쟁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술이 취한 상태로
계속해서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계속해서 술에 취해 오게 되면
교회에 있는 젊은 친구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젊은 친구들은 악한 일들을 빨리 배우기 때문에
이들은 예수님보다 술에 대해서 더 빨리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 사람을 냉정하게 교회에서 내쫓게 됩니다.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을 환영하지 않으면 환영하지 않은 사람의 문제가 됩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회개를 합니다.
그는 목사를 만나서 도움을 받고 술을 완전히 끊은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교회로 돌아오고 싶어합니다.
그때 그가 돌아오는 것을 반대한다면,
그때는 그가 돌아오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잘못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가 없이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고 교회로 돌아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필요하고 우리는 그가 필요한 것입니다.
누군가 그의 과거의 모습을 가지고 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을 한다면
그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사람이 잘못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그런 방식으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할렐루야…
(고후2:7) 그런즉 너희가 오히려 반대로 그를 용서하고 위로함이 마땅하니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 지나친 근심에 잠길까 염려하노라.
So that contrariwise ye ought rather to forgive him, and comfort him, lest perhaps such a one should be swallowed up with overmuch sorrow.
7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여러분이 그가 죄를 지었을때 그에게 단호하게 맞섰던 것처럼,
그가 회개 했을때는 그를 끌어 안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ㅊ이 지나치게 염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후2:8)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그를 향한 너희의 사랑을 확증하라.
Wherefore I beseech you that ye would confirm your love toward him.
우리가 사랑을 주장하는 방법에 위험성이 많이 있습니다.
당연히 성령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성령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넓게 부어졌습니다. (롬5:5-6)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잘못하고 있는 자녀들을 사랑으로만 대해서
바로 잡지 못하고, 자녀를 미워하고 꼴도 보기 싫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바울의 극과 극의 처방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죄를 짓는 사람들에 대해 가혹한 방법을 제시했고,
고린도후서에서는 같은 사람들을 향해서 포용적인 환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죄는 바울의 마음에서 사랑을 빼앗아가지 않은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마음에 상처 입히고 교회를 해치고
그리스도의 간증을 해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결코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혹시 다른 형제 자매를 향한 사랑의 부족함을 변명하기 위해서
그들의 죄를 핑계로 삼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저에게도 죄가 발견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죄가 여러분이 저를 향한 사랑을 빼앗지 않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어쩔수 없이 한 사람을 교회에서 출회를 시켰지만
그렇다고 그를 우리 마음에서 그를 지워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주님과의 관계를 바로 잡았을때는
우리는 그들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불순종했던 사람에게 불순종으로 대하지 말라
(고후2:9) 너희가 모든 일에서 순종하는지 너희의 증거를 알기 위해 내가 또한 이런 목적으로 너희에게 썼노라.
For to this end also did I write, that I might know the proof of you, whether ye be obedient in all things.
누군가 불순종으로 교제를 무너뜨리면 교제에서 배제되게 됩니다.
그러나 불순종했던 사람이 다시 순종하게 되면
교회에서 그를 받아들이는 일에 불순종의 모습으로 대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회복되어 돌아오는 사람은 환영하지 않는다면
이제 문제의 원인은 너희가 될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탕자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만약 돌아온 아들을 향해서 아버지가 그를 받아주지 않고,
“네가 집에서 짐을 싸서 나갈때 너는 더이상 내 자식이 아니다.
나는 너를 다시 받아줄 생각이 없다”라고 말했다면
탕자의 이야기를 굉장히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멀리서 오는 아들을 보고 달려가서 아들을 끌어안았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를 벌였습니다.
아버지는 돼지 우리에 있는 아들에게 가지 않으셨습니다.
큰아들에게 가보라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을때 그를 밖으로 밀어내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사람 사이에 일어난 일로 서로 용서를 구했다면
(고후2:10) 너희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용서하면 나도 용서하노라. 만일 내가 누구에게 어떤 일을 용서하였다면 내가 그것을 용서한 것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너희를 위해 한 것이니
To whom ye forgive any thing, I forgive also: for if I forgave any thing, to whom I forgave it, for your sakes forgave I it in the person of Christ;
두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합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고쳐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너무도 화가 나서 가족을 모두 데리고 교회를 떠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를 떠나는 것이
본인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을 해서 별거 아닌 일로
교회를 떠나서 더 많은 것을 잃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화나게 했던 형제를 찾아 가서 말을 합니다.
당신이 나에게 잘못한 것 같지만 그냥 그 일을 잊어버리고
다시 함께 할 의향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아픈 부분을 잘 마무리하고 서로 잘 지내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들 당사자가 잘 해결을 해서 다시 관계가 회복되었다면,
그것을 지켜보기만 했던 여러분이 그가 돌아오는 것을 반대하고
그들이 계속해서 안좋은 사이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여러분이 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바울이 말을 합니다.
“나는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고 싶지 않다.
그들이 서로 화해했고 그들이 주님 앞에 회개했고
서로가 잘 지낼 수 있게 되었다면, 나는 만족한다.
나중에 그곳에 가면 즐거운 마음으로 같이 만나길 바란다.”
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원만히 해결된 일을 가지고
다시 들추는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탁기에서 다시 깨끗해진 옷이라면
다시 진흙 밭에 더러워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탄에 대한 말씀도 진지하게 믿어야 합니다.
(고후2:11) 이것은 사탄이 우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의 계략들에 대해 무지하지 아니하노라.
Lest Satan should get an advantage of us: for we are not ignorant of his devices.
만약 구원받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
그들은 사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하나님과 그리고 교회와 관계를 바르게 하고 있다면,
마귀가 우리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금 읽은 구절에서 중요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탄이 너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탄이 나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탄이 우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당신의 죄를 이용하여
당신의 관계를 깨뜨리고 당신의 교회를 해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당신의 의로움을 사용하여
교회를 돕기 위해 당신의 관계를 강화하기를 원하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설 때
우리가 교회를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지게 만들어서
교회에 해를 가하게 만들기를 원합니다.
사탄이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 주면 안됩니다.
여러분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전도지를 전하고,
성경책을 사주는 일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여러분을 지켜보니
일요일에 영화관에 앉아 있고, 낙시터나 산에가서 있으면,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 사람이 나를 교회에 데려가려는 이유가
목사에게 실적을 올리기 위한 것으로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지옥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교회에 그렇게 쉽게 빠지고 세상을 즐기고 있고,
그렇게 쉽게 술을 주면 술잔을 받아들고 있는 것은
사탄이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계속 교회에 나와서 예배와 찬양도 드리고 교제도 하고 있지만,
마귀는 그런 여러분을 사용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에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이 교회를 돕게 하기 위해서
당신을 사용하신 방식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짓말이 죄라는 것을 알고 있고, 간음이 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알고 있는 이런 죄들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사용하려는 도구는
두 사람 두 가족 또는 두 그룹을 확보해서 그들이 회복하지 못하게 만들고
화해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쁨대신 슬픔이 있게 될 것이고,
고칠 수 있는 것이 깨져서 망가져 버리기 될 것입니다.
그렇게 사탄은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조금씩 넓혀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말합니다.
내가 교회 전체를 차지하지는 못하지만
오늘은 몇 형제들이 교회를 떠나면 그 만큼의 영역을 갖게 됩니다.
교회는 점점 비워져 가고 있을 것이고 사탄은 그 교회를 빨리
사무실이나 헬스클럽 센터로 바꾸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마귀는 이 땅의 모든 곳을 자신의 통치 영역으로 만들때 까지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귀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성경대로 믿는 교회를 차지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공략할 것입니다.
마귀가 여러분의 영역을 차지하지 않도록 잘 방어하셔야 합니다.
교회에서 쫓겨나는 죄인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독선적이고 자기 교만의 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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