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발로 서라
Notes
Transcript
Handout
순장반에 링크 꼭 올려주기!
예배 끝나고 현장출석과 온라인 출석 인원 교역자방에 올려주기!
방송, 댓글 담당자가 안오면 꼭 전화해주기
설교자는 6:35까지 기도하고, 방송실 가서 실시간 채팅 사진 꼭 찍어주기. 그리고 다 끄고 귀가하기.
새벽에 나오신 300기도용사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사도신경으로 함께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3. 함께 찬송하도록 하겠습니다. 찬송가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4.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행전-26장1-18절입니다.(두번 말해주기) 한 절씩 교독하겠습니다.
[설교]
[설교]
분석. 사도행전II. 참고(유상섭)
바울은 그동안 유대인이 모인 성전 뜰에서, 산헤드린 법정에서, 벨릭스 총독의 법정에서, 베스도 총독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변호하며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지금까지 지나온 모든 변론들의 총집합체라 할 정도로 절정에 달하는데요.
‘너의 발로 서라’라는 주제를 가지고 함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과 아그립바가 대면하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사실상 바울은 아그립바를 만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 전 내용에서 베스도 총독이 말하기를. 바울에게는 죄목이 없다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거기서 OK! 외치지 않고, 황제에게 상소하겠다고 발언합니다.
로마의 법에 의하면 베스도가 바울의 발언을 취소할 수 없었기에 황제에게 압송할 만한 상소 내용이 담긴 서신을 써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베스도는 유대인의 종교적 관습을 잘 알지 못하여 이 소동에 대한 내용을 쓸 수 없기에 아그립바 왕에게 부탁하여 바울에 대한 공식적인 재판을 밟도록 합니다.
그런데, 내용의 흐름을 볼 때는 재판의 성격보다는 청문회의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베스도 총독이 바울에게 죄가 없다고 발언하고 난 후의 재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이 재판에서 죄로 인하여 벌벌 떨 필요가 없고, 이 위기 같은 순간에 복음을 전할 기회가 된 것이죠. 즉 재판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편하게, 그리고 담대하게 호소할 수 있는 자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뿐만 아니라 복음을 더 담대히 전할 수 있을만한 상황이 이른 것입니다. 그 상황을 누가 만들어 주었냐면, 아그립바 왕입니다.
2-3절 읽어보겠습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6장
2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3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아그립바 왕은 로마 시민권자였지만, 태생은 유대인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로마의 법 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종교적 관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의 입장에서 이 위기를 통해 오히려 여러가지 면에서 복음을 더 힘있게 증거할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본론으로 바울의 연설을 살펴보겠습니다.
처음 연설은
개종 이전의 바울의 삶과 예수 이름을 대적한 내용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단순합니다.
‘나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하나님을 위해 엄격히 하여 살고 있다’입니다.
말씀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5절에서부터 8절입니다.
바울은 우리 유대 종교 중에 가장 엄한 파를 따랐다 여기고 있고요. 그 엄한 파를 따라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도 이 법정에 서 있는 것이라 말합니다. 게다가 우리 유대 종교가 간절히 바래왔던 소망 때문에 역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라 말합니다. 근데 나는 우리 편에게로부터 고소를 당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바울은 바리새인이 가장 고대해왔던 부활의 소망을 8절에서 호소합니다. 유대인이라면 당연히 부활의 소망을 믿는데, 왜 이를 부인하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 라고 말이죠.
그런데 자신도 사실 그래왔던 것을 고백합니다.
자기 또한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 때문에 믿을 수 없었으며, 또한 바리새인으로서 엄격한 신앙 생활을 추구하기에 예수 믿는 자를 대적하여 사형까지 찬성을 했었다고 말이죠.
그뿐만 아니라 나의 철저한 신앙심으로 나라를 벗어나 그리스도인을 잡으려 고군분투 했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까지 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사명이라 여겼던 것이에요.
여기까지 첫번째 연설이고,
이제 두번째 연설입니다.
바울은 그 과정 가운데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말합니다.
가장 밝은 시간인 정오에 해보다 밝은 빛이 자신과 동행자들을 덮었고, 자신이 잘못 된 길을 걷고 있음을 예수께서 깨닫도록 하였음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중에 이런 말을 합니다.
14절인데요.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6장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이것은 로마의 격언인 경구적 표현인데요.
이를 풀어 설명하면, 신이 정한 운명에 거스르는 행동을 해봐야 다친다는 의미입니다.
로마인은 이 격언을 농사 때 사용하는 소한테도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너가 해야할 일을 거슬러봐야 좋을 게 없다는 의미죠.
바울은 분명 자신의 철두철미한 신앙심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 생각하고 그리스도인을 핍박 하였지만, 예수님은 그것이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이라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말을 하신 시가가 참으로 세심한 것 같습니다.
해가 아주 쨍쨍할 때, 정오에 나타나. 그 해보다 밝은 빛으로 바울에게 임한 것이죠.
분명 바울은 밝은 빛 가운데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다 생각했을거에요. 그런데 사실은요. 그는 예수님이 보시기에 밝은 빛 가운데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지하고, 어둠이 가득한 가운데 사명을 감당하고 있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 격언을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에게 사용함으로서 잘못된 길을 걷게 하는 것을 옳바른 길로 교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이 바울에게 이 격언을 사용하셨던 이유는, 그를 이방 땅인 로마까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이 있으셨기에,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와닿는 격언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너희들이 숭배하는 그 신들은 너희를 다치게 하는 일이다. 돌아와 예수를 믿으라. 이런 것이겠죠
그래서 14절에 말하는 것처럼. 그런 잘못된 길을 걷는 바울에게 해보다 밝은 빛으로 그를 비추어 엎드리게 하였고(14절), 16절에 말하듯이 ‘이제 진실을 알았으니, 너의 발로 서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가 전해야할 올바른 소명의 메세지를 부어주십니다. 16절부터 18절까지죠.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6장)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그렇게 바울은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올바른 신앙, 올바른 사명의 메세지를 갖고 주를 위하여 이방의 땅 끝까지 나아가는 진정한 빛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것이 그 세대에만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화감동하심으로 지금 이 세대에까지 힘 있게. 바울은 말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지금도 여전히 해보다 밝은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조명되고 있음을 마음으로 봅니다.
주님은 바울만 지명하여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 또한 주님이 지명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그 주님의 부르심 앞에 바울처럼 정말 진정으로 어떤 순간에서도 변론하며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내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저 지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혹은 타협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혹은 그 부름이 힘들고, 지쳐서 가시채를 뒷발질하며 고생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때때로 하나님의 부르심이 고단하고, 외롭고 지치고 우울할 때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 너무 무겁고 힘겹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은 오늘 18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주님의 부르심은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고, 죄사함을 받는 것과 거룩하게 된 주의 자녀로 기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에게 좋지 않은 것을 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네요!
가시채를 뒷발질하여 고생하지 말고, 말씀의 조명을 받아 너의 발로 서라고~!
그리고 올바른 사명을 갖고,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저는 성경만을 말하고 싶어서 조심스럽습니다만,
저는 중고등부 교역자이기 때문에 여름 사역을 앞두고 아이들을 향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학교가 죽어가고,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 때문에 주일 성수를 포기하고 있는 이 시기에
만남의 교회의 주일학교가 부흥하고 있다는 것에 참 위로를 얻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무엇보다 우리의 다음 세대 아이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품에 있도록 하고, 죄사함을 얻게하며, 주의 자녀로 기업을 받게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세상의 성공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너무 간절합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에 우리 아이들이 가시채를 뒷발질 하지 않고, 주님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 아웃리치, 선교를 통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 스스로의 발로 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다음 세대 아이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우리 만남의 교회 모두가 가시채를 뒷발질 하며 고생하는 것이 아닌, 너의 발로 서서 주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매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5. 기도(짧게)
6. 찬송하겠습니다. 찬송가 200장입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입니다.
7.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8. (문서보기)
9. 제 23차 300새벽기도 용사 2일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며 선하게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10. 오늘은 화요일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샤라샤라
11 학생들
12 환우들
13 군에 가있는 청년들
14 해외 나가 있는 성도들
15 해외 선교사님들
이 시간에 들은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고, 금요일 기도제목과 고3, 중3 학생들, 환우들, 군청년, 해외성도님들, 선교사가정을 위해 주여 한 번 부르시고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