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5 새벽기도회; 민3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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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
인사
인사
새벽에 아버지와 대화하고자 이 자리에 나아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송가
찬송가
70장 피난처있으니
585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대표기도; 변상철집사님
대표기도; 변상철집사님
본문 민수기35장 9-34절
본문 민수기35장 9-34절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피하게 하라
이는 너희가 복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을 도피성이 되게 하되
세 성읍은 요단 이쪽에 두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 두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거류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부지중에 살인한 모든 자가 그리로 도피할 수 있으리라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자니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피를 보복하는 자는 그 살인한 자를 자신이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면 죽일 것이요
만일 미워하는 까닭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 죽이거나
악의를 가지고 손으로 쳐죽이면 그 친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는 살인하였음이라 피를 보복하는 자는 살인자를 만나면 죽일 것이니라
악의가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을 때에 이는 악의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즉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복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피를 보복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기 거주할 것이니라
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가면
피를 보복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피 흘린 죄가 없나니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임이라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이는 너희의 대대로 거주하는 곳에서 판결하는 규례라
사람을 죽인 모든 자 곧 살인한 자는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
고의로 살인죄를 범한 살인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
또 도피성에 피한 자는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는 속전을 받고 그의 땅으로 돌아가 거주하게 하지 말 것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함을 받을 수 없느니라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있음이니라
설교
설교
오늘 본문은 도피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죄를 지었을 때 이곳으로 피하면 피의 보복자들; 사망한 자의 가족이나 친척들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보호받을 대상은 11절의 기록처럼 부지중에 살인한 자 또는 22절 말씀처럼 악의가 없이 살인을 범한 자가 해당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모든 자들이 다 도피성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거하는 이방인이라 할 지라도 그곳으로 피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사람을 죽이고자 했던 사람들은 도피성으로 피할 수 없었으며, 그들은 보복자들에게 살인을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부지중에 살인을 범한 자라 할 지라도 살인자가 도피성 밖으로 나온다면 그는 보복자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도피성에 머물며 그 사건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이처럼 도피성은 하늘 아버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긍휼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곳으로 피했을 때 여호와께서는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긍휼은 완벽하지 못했습니다. 의도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자들은 그 피의 값을 목숨으로 갚아야 했고, 또한 부지중에 의도치 않게 죄를 지은 자들은 도피성으로 피한 뒤 대제사장이 죽기 전까지 나올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장치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완전한 용서와 긍휼에 대한 소망을 품게 하셨습니다.
이 완전한 용서와 긍휼에 대한 소망은 이 땅 위에 무한한 사랑을 베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성취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지중에 죄를 지은 자들이나, 고의로 죄를 지은 자들이든 누구든지 당신께서 택하신 모든 자들에게 죄용서의 은혜를 허락해주셨습니다.
그분께 순수하게 다가오는 어린아이에서부터,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의 죄가 어떤 것이든 가리지 않고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죄의 종류, 죄의 깊이를 상관치 않으시고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으로 무한한 용서를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향해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관여치 않으시는 주님께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모세의 권위에 반기를 들고 하늘 아버지를 모욕한 결과로 땅의 삼킴을 당했던 고라의 자손 중 한분도 이런 고백을 합니다. 시편 46편 1-3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자기와 자기의 부모 조상들이 지은 죄을 용서하시고 긍휼과 사랑을 베푸신 하늘 아버지께 놀라운 찬양을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나의 피난처시요 힘이십니다라고 말이지요. 주님은 우리의 피난처 도피성이 되십니다.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무한한 긍휼과 사랑은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은혜’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죄를 용서해주시는 예수님께 감사하며, 나아가 죄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지며 죄를 피하고자 하는 마음을 함께 가져야 합니다.
우리를 향해 무한한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시니까 우리가 마음대로 언제든지 죄를 짓는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행동은 아버지께서 베푸신 은헤를 헛되게 하는 행동이며 가볍게 여기는 행동일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회개하는 자들에게 요한일서 1장 9절의 말씀처럼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에서 용서하시지만, 이 은혜를 헤픈 은혜로 생각하며 가벼이 여긴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희생과 사랑을 통해 선물로 허락하신 무한한 긍휼과 죄 용서에 감사하며 우리에게 찾아오는 죄의 유혹들 앞에서 승리하고 정결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그 분 안에 거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또한 살펴볼 것은 고의로 살인한 자에게 분명한 죄의 값을 묻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의로 형제를 살인한 자는 도피성으로 피할 수 없고 피의 보복을 받아야 했습니다. 본문 21절의 말씀입니다.
악의를 가지고 손으로 쳐죽이면 그 친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는 살인하였음이라 피를 보복하는 자는 살인자를 만나면 죽일 것이니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서 벌을 다스리는 구약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모세에게 허락하신 이 율법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죠. 하지만 예수님은 칼과 같이 사람을 대하라는 의도로 율법을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지만 유대인들은 이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정작 중요했던 ‘형제를 향한 사랑’을 놓쳐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을 바르게 해석해주시며 제자들과 우리에게 형제 사랑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약 율법을 풀어서 설명해주신 산상수훈 중중 마태복음 5장 21-22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형제들에게 노하는 자마다, 그리고 욕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도 요한은 자신의 편지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이런 일을 행한 것이 생각나거든 서둘러 회개하고 그사람과 화목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욕을 하는 그리고 악한 마음을 품는 것과 같은 우리가 보기에는 작아보이는 그런 일도 예수님은 마음으로 짓는 죄도 살인하는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이렇게 적극적으로 행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예수님께 놀라운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라자손들과 같이 하늘 아버지의 신성을 모독하고, 예수님을 부인하며 십자가에 못박았던 우리를 위해 예수님은 그보다 더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악행을 악행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오른뺨을 때리는데 왼뺨도 돌려대고. 속옷을 가져가는데 겉옷도 주며, 억지로 5리를 가자고 하는데 10리를 함께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가 주일날 들었던 말씀처럼 예수님의 증인된 삶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우리 사랑의 범위를 이웃을 넘어 원수까지 사랑할 때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들에게 자비로운 은혜를 베푸셔서 아버지의 자녀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3-45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Matthew 5:43–45 (NKRV)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우리의 모습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그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여서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새음교회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기도제목
휴가 중인 담임목사님을 위해
강도사 고시를 치르는 전도사님들을 위해
다가오는 ccc수련회와 교육부서 여름행사들을 위해
625 전쟁을 기억하며 우리 나라를 위해 애쓴 호국장병들께 감사하며, 여전히 분단된 이 나라가 어서 속히 복음으로 통일되기를
각자 가지고 나오신 기도제목을 가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