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20:1 무엇에 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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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취할 것인가
187:191장
잠언 20:1 /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
에베소서5:18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회사 신입직원 환영회 때 일입니다. 선배들이 빙 둘러앉아 저를 포함한 신입직원에게 술을 권하기 시작했습니다. 권유를 넘어선 선배들의 강요에 이끌려 '그래, 한번 마셔보자!' ‘적응 잘하는 이쁨받는 직원이 되자’ 하는 마음으로 받아 마신 것이 밤새도록 이어졌습니다. 어느 순간 필름이 끊겼고 눈을 뜨니 선배집이었습니다. 그때의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인지 그 후로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술에 흠뻑 취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른바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말입니다. 대학교 입학 시즌이 되면 신입생 환영회 때 술을 마시다 사고를 당했다는 보도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문제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술 문화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 술 문제로 고통을 당해봤을 것입니다. 최근 유명 연예인의 음주운전 사건이 뉴스에 큰 화재가 되었습니다. 술 마셨을 뿐인데, 음주운전, 거짓말하게 되어서 연예인으로서의 활동이 위태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술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겪지 않아도 될 어려움이 생기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한국의 건전하지 못한 술 문화 때문입니다. '내가 한 잔 마시면 너도 꼭 마셔야 한다'는 강제성이 술자리의 중심에 자리 하고 있습니다. 함께 마시는 것을 마치 너와 나 사이에 반드시 지켜야 할 의리처럼 여기다 보니 술 문화가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밤거리를 거닐어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입니다. 한국의 밤은 술로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술 마시는 것을 즐기고 술에 취하려는 것일까요?
"서로 친밀해지기 위해 술을 마신다." "화합을 위해 술을 마신다."
"기분이 좋아지려고 술을 마신다." 술이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고, 친밀함을 높여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술 마시는 사람들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들 속에, 감추어진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깊은 마음자리에는 삶의 불안, 무의미함과 허무함을 위로받고 싶은 심정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봐도 만족스럽지 않고, 육체의 쾌락을 좇아 즐겨봐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술의 힘을 빌려 위안받으려는 것입니다.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은 대체로 외로움을 잘 타는 편입니다.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외롭다는 사실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 자신의 진짜 감정을, 외롭다는 사실을 잠시라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 술을 마실 때 단순히 건배 한 번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술이 자신을 지배할 때까지 취하도록 마십니다. 이러다 때론 알콜에 중독되기도 됩니다. 술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자기 탓이 아니라 술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기도 합니다.
잠언에 나오는 자주 반복되는 주제 중에 하나가 술 취함의 문제입니다. 기분을 좋게 하고,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부드럽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깊이 취해 스스로를 잃어버리도록 마실 때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말입니다.
술로 인한 첫번째 문제는 무엇입니까?
1.거만해지고 소란스러워진다는 것입니다.
술 취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평소에 보이지 않던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호기를 부리거나, 했던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는 등 말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양입니다. 지혜자도 이러한 술 취함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것에 빠진 자는 지혜가 없다고 말합니다.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 잠언 20:1
성경에는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누워 있을 때 아들들에 게 창피를 당한 일이 나옵니다. 노아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의 악함을 보시고 큰비로 벌을 주실 때, 방주를 짓게 할 정도로 하나님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그 일을 해 낸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술에 취해 성도의 품위를 한순간에 깨뜨려버렸습니다.
이것은 단지 노아만의 이야기일까요? 술만 마시면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점잖고, 친절하고 합리적이던 사람이 술을 마시면 포악해지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의 삶에 마음의 질서가 잡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취해 있는 동안 술이 내면의 질서를 어지럽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술을 마시면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말을 많이 하면 실수를 하게 마련입니다.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줍니다.
잠언 23:29–35 (NKRV)
29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30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31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렇게 잠언에서 술에 관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술의 위험성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독주는 어떤 순간에도 결코 삶의 바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2. 가난하고 궁색해진다고 말합니다.
과도하고 무절제한 향락은 인간을 가난하고 궁색하게 만듭니다. 순간적인 쾌락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 위험한 것은 향락의 자리에 늘 술이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술과 함께 마약이 시작하고, 술과 함께 도박과 그밖에 모든 향락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술을 즐기면 술이 인간의 많은 부분을 통제하게 되고, 술에 통제권을 넘겨준 인간의 이성은 더 이상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내가 술을 지배할 때 술은 마음을 기쁘게 하지만, 술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내 삶은 불 꺼진 방처럼 어두워집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역사와 거룩함을 잃어버릴 위험이 높아집니다.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 잠언 21:17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잠언 23:20-21
지혜자는 술 취하는 사람과 게으른 사람, 즉 잠만 자는 사람 모두 가난해질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좀 더 누워 있자. 좀 더 자자' 하며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것이나 '좀 더 취하자. 좀 더 마시자' 하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두 어리석고 미련 한 짓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두 인생을 위해 땀 흘려 수고하지않는 자들입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3.중요한 것을 놓친다
다른 모든 사람도 그렇지만 특히 지도자라면 더욱더 술과 독주를 절제해야 합니다. 지도자의 지혜와 분별력은 그가 속한 공동체를 위한 것이며, 그의 판단력이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잠언 31:4-7.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고 왕 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들에게 마땅하지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곤고한 자들의 송사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그는 마시고 자기의 빈궁 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자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잠언 31:4-7
잠언에서 말하는 르무엘은 대표자를 가리킵니다. 이는 솔로몬 일 수도 있고, 일반적으로 이상적인 지도자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혜자는 죽을 정도로 힘든 사람이 고통을 잊기 위해 마시는 것은 그렇다 쳐도, 지도자라면 독주를 마시지 말고 법과 절제를 무너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독주를 마시거나 술에 취해 법을 잊고 재판을 어긋나게 하고 파멸의 길로 이르는 데 인생을 내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본연의 역할을 잃고 이성적으로 사고하지 못할 때 공동체에 많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지도자는 공동체를 위해 세워진 특별한 사람입니다. 개인의 몸이지만, 개인을 넘어서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더욱더 술에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에 취할 것인가 그것이 관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먹는것에 관심을 갖고 계세요. 구별된 삶을 기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마약에 취하지만, 우리들은 다른 것을 취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 성경에는 취한다는 표현에 술뿐만 아니라 성령에도 사용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에베소서 5:18
바울은 왜 술 취하는 것과 성령 충만한 것을 비교했을까요? 술취함과 성령에 취함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비슷한 부분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떤 면이 비슷합니까?
우선 이름부터 그렇습니다. 증류된 술의 일종인 독주와 화주를 영어로 스피릿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와인을 증류하면 붉은 색이 사라지고 매우 독한 술이 됩니다. 이 술을 종종 와인의 혼 spirit of wine 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와인을 그냥 spirit 이라고도 불려요.
술과 성령 모두 우리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외롭고 답답할 때 친구를 만나 술 한 잔을 하니 마음이 트이는 듯 즐거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감정의 변화는 성령이 우리에게 임할 때에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외롭던 마음이 위로받고 어느새 즐거움과 희망이 가슴을 채우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춤을 추게 합니다. 우리가 은혜 받아 영혼이 충만할 때, 기뻐하고 춤을 추게 합니다. 술도 그래요. 음주가무.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오인합니다.
마음을 열어줍니다.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에 있습니다. 술에 취하면 평소에는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이 열려진 마음의 틈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수다쟁이가 됩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가 임해도 닫힌 마음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고집과 편견, 욕심으로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이 녹기 시작합니다.
또 술과 성령은 수줍던 마음에 용기를 실어줍니다. 자기 마음 안에 있던 생각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합니다. 말에 힘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말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베드로가 성령을 충만해 유대 백성 앞에서 담대하게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 유대인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이 술에 취했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밖에서 봤을 때 술과 성령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준다는 점에서 비슷해요.
그렇다면 술과 성령에는 공통점만 있을까요? 그렇다면 성령충만함을 위해 우리는 예배 때마다 술 한잔씩 들이켜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드러난 현상 말고, 그 이면에 있는 힘의 근원과 현상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술은 망각제, 마취제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자기 몸조차 의지대로 가누지 못하고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게 됩니다. 실수하고 나서, “내가 그때 왜 그랬지? 모든 게 다 술 탓이야!”
반면, 성령은 각성제입니다. 성령에 충만하게 되면 자기 자신을 더욱 뚜렷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참모습과 올바른 정체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회개합니다. 이 땅에서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명확히 깨닫게 됩니다. 이게 성령의 역사이고 성령에 충만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마비시키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은 우리의 판단력과 분별력을 더욱 날카롭게 해주고 모든 것을 더욱 뚜렷하고 올바르게 인식하도록 해줍니다. 내면의 생각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내 연약함과 부족함을 알게 해줍니다. 더불어 그것을 넘어서는 용기를 갖도록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술 취함은 방탕한 것’이라고 경고하며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적극 명령합니다. “방탕하다”는 말은 낭비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생산적인 사람 창조적인 인물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존스토트 목사는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을 천국의 사냥개로 표현해요. 바로 그 사냥개가 자기 인생을 아주 철저하게 따라붙어 추적했다고 말합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유는 궁극적으로 제 부모나 스승의 영향도 아니고 그리스도에 대한 저 자신의 결단 때문도 아니며, 바로 ‘천국의 사냥개’ 때문입니다. 제 마음대로 가고자 도망할 때조차도 끈질기게 저를 쫓아조신 그분 때문입니다. 천국의 사냥개이신 그분이 나를 은혜롭게 추적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헛된 것이 되었을까. 내 인생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목표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사냥개처럼 나를 쉬지 않고 추적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철저하게 하나님께 추적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래서 성령에 의해 내 인생이 쫓김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제가 어디로 도망가더라도 하나님이 저를 따라 오실 텐데요. 제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에 취하며 살아갈 것인가 결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현실의 삶이 너무 힘들거나 근심에 빠질 때 술과 같은 물질에 취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용기, 진정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진정한 힘과 매력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 성령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참된 만족과 위로를 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에 붙들려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추적해오고 계셨음을 확인한 사람 모두가 이미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인줄 믿습니다. 성령충만은 성경에 기록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입니다. 오늘, 바로 지금, 우리 각자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취해서 살아 평화와 기쁨 속에 살아가시는 지혜자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술의 유혹이 있습니다.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자 우울한 기분을 달래고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마시지만, 어느덧 과도한 음주로 인해 실수를 하고 죄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타락한 술 문화가 만연한 이 세상 가운데, 님이 주신 우리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지 않고,
오직 성령안에서 나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고 이 땅에서 주신 사명을 깨달아 살게 하소서. 우리를 위대한 사랑으로 추적하시는 하나님 앞에 내어맡기며, 그 사랑에 붙들려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살아갈 때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주셔서, 평화와 기쁨 속에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물질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여 주님께 헌금을 드립니다. 또 시간을 드립니다. 성령님께서 삶 속에 개입하여 주셔서, 판단력과 분별력을 더하여 주셔서 모든 것들을 올바르게 결정하며 살아가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필요한 것을 예비하시는 주님께 미래를 맡기오니 주님 우리를 친히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보상을 바라지 않고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세하게 예배를 섬기시는 성도님들, 그리고 새벽기도를 사명으로 생각하며, 기도에 힘쓰며 성령안에서 살고자 애쓰는 우리 성도님 한분 한분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오며,
이제는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감화감동 교통하심이 성령에 취해 하나님의 평화와 하나님의 기쁨 속에 살아가는 지혜자, 거룩한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교회를 위해 담임목사님을 위해, 화-수-목에 있을 총회가 성총회가 되도록
우리가 전도할 태신자를 위해 주위에 환우를 위해,
그리고 여러분의 기도제목을 놓고
다함께 통성으로 주여 삼창하시고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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