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6 수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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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창세기 31:1–16 (NKRV)
1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2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4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6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7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8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9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10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11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15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야곱이 집을 떠나 삼촌 라반과 함께 살아온지 14년이 흘렀습니다. 그때 야곱의 나이는 장년을 넘어 노년으로 접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이름으로 그 무엇하나 소유 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라반의 두 딸을 아내로 얻은 대가로 14년을 오롯이 장인을 위해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는 장인이자 삼촌인 라반에게 이제 고향으로 가고 싶으니 그것을 허락해달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라반이 앞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서 댓가를 주겠다며 야곱을 잡습니다. 그래서 야곱과 라반 사이에 품삯을 정하게 됩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원하는 것을 이야기 하라고 하였고, 이에 야곱이 요구하길 라반의 양과 염소중에 앞으로 검은 것과 얼룩 점이 있는 것을 가려낼테니 앞으로 이러한 것이 나오면 자신의 몫으로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라반은 흥쾌히 승락을 합니다.
그 이유는 검은것과 얼룩 점이 있는 양과 염소는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을 보면 창세기 30:35-36 을 보면 야곱과 품삯을 정한 그 날 검은 얼룩 무늬가 있는 숫염소와 암염소 중에는 흰 반점이 있는 것 그리고 검은 양들을 가려내 자신의 아들들에게 맡기고 라반 자신의 양과 염소와 야곱의 양과 염소 사이에 사흘 길의 간격을 두었다. 그리고서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떼를 돌보게 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극히 적은 수의 양과 염소마저도 야곱에게 주지 않으려는 라반의 마음인 것이다.
이후 야곱은 자신의 지혜를 동원해 자신의 재산을 불리려 노력하였다. 그 방법은 오늘날에도 이해 할 수 없는 방법인데 나무 가지의 껍질을 벗겨 알록달록한 나무로 만들어서 양들이 볼 수 있게 물을 먹는 곳에 놓는 것이다. 그랬더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 나무를 보고 새끼를 낳으면 줄무늬가 있거나 얼룩덜룩한 점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는 가지를 놓아 보게 하고, 약한 양이면 가지를 두지 않았다. 그랬더니 야곱의 양과 염소는 튼튼한 것들이 되고 반면에 라반의 양과 염소는 약하게 되었다.
이렇게 6년의 시간이 흘렀더니 야곱의 재산이 점점더 늘어나 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수많은 양과 낙타와나귀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었더니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이 오늘 본문 1절 입니다.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아가고 우리 아버지의 재산으로 거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야곱이 듣게 되었다. 그리고 라반도 자신에게 하는 태도가 전과 같이 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기에 있는 성도님들이 야곱의 입장이라면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아마 야곱은 많이 억울 할 것입니다. 야곱은 그누구보다 열심히 일 하였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7년을 일 하였습니다. 창세기 29:20 입니다.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여기서 섬겼다로 번역된 원어의 뜻에는 봉사하다, 경작하다의 뜻도 있지만 노예의 신분이 되다, 노예가 되다의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야곱은 마치 라반의 종처럼, 노예처럼 7년의 시간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노예는 적당히 일 할 수 없습니다. 어느 노예가 적당히 일 할 수 있겠습니까? 노예는 내가 일 하고 싶을 때 하고, 일 하기 싫을 때 하지 않고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조카가 아니라 종과 같이 7년을 일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라반은 그런 야곱을 속이고 라헬이 아닌 레아를 아내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7년을 더 일해야 한다는 그 말에 야곱은 7년을 더 종처럼 일만 하였습니다. 14년을 종과 같이 열심히 라반에게 속아 라반을 위해 일 하였습니다.
이처럼 야곱이 열심히 일 했다는 것은 야곱만의 주장이 아닙니다. 창세기 30:26 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26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야곱은 당당하게 열심히 일했음을 라반에게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라반도 그런 야곱을 인정합니다. 27절입니다.
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라반이 보기에도 야곱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가지 못하게 잡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이 열심히 일 하였다는 사실을 아내들에게도 당당히 이야기 합니다. 오늘 본문 6절 입니다.
6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러니 지금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또, 자신을 대하는 라반의 태도를 보며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누구보다 열심히 일 하였고 그 결과로 많은 부를 누리는 것인데, 자신의 수고는 생각지도 않고 자신을 이용만 하려는 라반과 그의 아들들을 보며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7절을보면 야곱이 말하길 라반이 자신을 속여 품삭을 열번이나 변경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일하였으니 지금 라반과 그의 아들들의 태도에 야곱은 큰 배신감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꼭 이와 같습니다. 세상은 나를 써먹으려고만 하지 진정 나를 위해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고자 세상에서 선하게 살려고 할 때마다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우리는 고민하게 됩니다. 과연 이렇게 사는것이 맞는가?
어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초중반 여대생 입니다. 저는 친구들로부터 성격이 왜이리 무르냐, 너보다 호구인 사람 없을거다. 그런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제가 돈 적으로 원룸 주인이나 알바하는 가게 사장님과 분쟁이 유난히 많습니다. 이게 다 제가 호구를 자처하고 제 손해를 자처해서 일어난 일이 대부분 입니다.
성격적으로 워낙 무르고, 돈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걸 싫어해서, 스트레스 안받고 금전적인 손해 보는 것을 자처했는데, 이번에 있었던 일로 더 이상 이런 성격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십여년간 이렇게 살아와서 잘 고쳐지지가 않습니다.
남한테 만만해 보이지 않는법, 할 말 다하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원가서 돈주고 배울수도 없는 것이고, 문신을 하거나, 복싱을 배우고, 연기라도 배우면 나아질까요? 사회에서 살아남기 너무 힘드네요 조언 부탁드립니다.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한 20대 청년의 이야기 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권선징악 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선한 일을 권하고 악한 일은 벌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과거에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나온 영화들의 스토리들은 주인공이 선한 삶을 살아갈 때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결국에는 선한 주인공이 승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목부터가 “나쁜놈들 전성시대” 입니다. 이런 영화는 비열하게 권력을 따라 적당히 배신도 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이 끝까지 많은 부와 권력을 누리며 사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말씀만을 기준삼아 살아가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그러기에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 때문에 참고, 주님 때문에 기다려주고, 주님 때문에 버티고, 주님 때문에 견디고, 주님 때문에 웃고, 주님 때문에 포기하며 주님 때문에 양보하고 주님 때문에 기꺼이 져주는 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듯 억울함 가득한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12절 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12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께서 보셨다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했던 라반의 옳지 않는 모든 행동들을 하나님이 보셨고 그래서 야곱의 억울함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이고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렇다면 야곱에게만 그러시는 것일까? 아닙니다. 출애굽기 3:7 을 보면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의 노예가 되었을 때 그들의 어려운 상황도 하나님이 보시고 아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편 94:9 에 시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9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의 죄도 아시지만, 우리의 억울함도 아시고, 어려운 상황과 환경가운데 주님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우리의 우리의 마음도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매번 죄에 걸려 넘어지지만, 그 죄를 끊으려고 눈물 흘려가며 회개하며 애쓰는 우리의 마음도 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그 주님임을 믿으며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을 이야기할 때 빠지면 서운해 할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욥” 입니다. 만약 우리가 욥의 입장이 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자신은 전혀 그럴만한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욥이 당하는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욥이 처한 상황만을 보고 사람들이 와서 악인이라고 손가락질 하고, 심지어 친하다고 하는 친구들이 와서 회개하라고 조롱하고 있으니 그 속이 얼마나 타들어갔겠습니까?
그래서 욥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기 23:11-12
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욥의 삶은 이처럼 흠 없는 삶이라고 말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갔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표현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믿을만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사탄에게 자신있게 욥을 내어주며 마음대로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욥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가옥한 상황입니다. 그 상황속에서 욥은 주위의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던 상관없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습니다. 욥이 이토록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그 하나님은 자신의 죄 없음을 아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기 23:3-7 메시지 성경입니다.
하나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만 알면 당장 그분께 가련만, 그분을 뵙고 나의 사정을 설명하고 그분 앞에서 직접 나의 주장을 펼치련만, 그분의 생각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분의 의도를 알아낼 수 있으련만, 그분이 나를 물리치시거나 힘으로 누르실 것같은가? 아닐세, 그분은 내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실 거네. 내가 올곧게 살아온 사람음을 알아보실 거네. 재판관께서 내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실 거네.
그러면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그 고백을 합니다. 욥기 23:10 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메시지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내가 어디에 있으며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아신다네. 그분이 아무리 철저히 나를 시험하셔도, 나는 영예롭게 그 시험에 합결 할 걸세.
우리가 정말 가지고 있어야 할 믿음은,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믿어지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절 입니다.
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그리고 또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에 그치지 않으시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이 믿어지는 은혜가 있길 소망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힘들때마다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과 억울함이 닥쳐올 때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세상에 대고 억울함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모든 형편을 외치시길 바랍니다.
사람에게 우리의 억울함과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불평이 되고 넉두리가 되지만 하나님께 하면 그것이 기도가 됩니다. 그러니 기도하시며 악한 세상속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만을 의지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성도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가 세상속에서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야 할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여서 믿음의 삶을 살 소망이 사라질 때마다 오늘 주신 말씀이 기억나게 하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함께 하시는 주님이 계심이 믿어져, 세상과 구별된 성도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증거되게 하시고 주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