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의 장소

엘리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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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홀로 서 있는 하나님의 사람 2. 말씀과 순종 3. 훈련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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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홀로 서 있는 하나님의 사람‌

오늘 예배를 준비하며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셨던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들을 오늘과 이번 주일 두번에 걸쳐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저에게 주셨던 그 마음과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쉬고)
먼저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려고 해요.
배경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오늘 나눌 말씀의 주인공인 엘리야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거든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솔로몬 왕이 죽은 이후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지죠.
북이스라엘은 2백년간 지속 되었는데 19명의 왕이 있었고, 하나 같이 다 악했어요.
남유다는 3백년간 지속 되었고 17명의 왕이 있었고. 그 중 8명은 하나님을 붙잡았고 9명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어요.
(쉬고)
북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왕들은 다 악했는데, 오늘 본문은 그 중 한 왕에 대해 이야기 해요.
17장 1절 바로 앞에 내용을 보면 아합왕과 이세벨 왕비가 등장해요.
16장 31절 이하를 보면 아합은 이세벨과 결혼 한 이후 “이스라엘에서 바알을 섬기고 숭배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해요.
이세벨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으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아합에게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아닌 바알이라는 우상을 소개한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죠.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잘 살펴보면, 역사에 왕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요.
오직 이세벨만 기록이 되어 있어요.
이세벨이 뛰어난 여왕 혹은 백성들을 사랑했던 여왕이었기에 그녀의 이름을 써놓은 것이 아니에요.
북이스라엘의 왕은 아합이었지만, 사실 실세는 이세벨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바알 숭배를 구체화시켜서 본격적으로 진행했던 사람이 이세벨이었어요.
그녀는 결혼하여 북이스라엘로 넘어오면서 바알을 들고 왔어요.
바알을 들고 왔다는 것은 “너희가 믿는 하나님으로는 부족하다.” “바알이 너희에게 필요하다.” “내가 너희에게 소망을 주겠다.”라는 뜻과 같아요.
(쉬고)
이세벨로 인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더 멀어지게 되었어요.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가 하나님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아니게 되었어요.
하나님을 향해 제사를 드리고, 신앙을 고백하고 있으나 그들은 모든 관심사는 오직 바알. 우상 숭배에 있었어요.
북이스라엘은 최악의 상황으로 향해 달리기 시작해요.
하나님과 북이스라엘의 사이가 벌어질데로 벌어져버렸어요.
16장 33절.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사이가 멀어진 것을 넘어서서, 내 삶에 하나님은 필요 없어.
내 삶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바알 뿐이야.
바알이 필요해.라고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거에요.
그들의 모든 삶의 방향이 우상을 향해 있었어요.
(쉬고)
온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바라보고, 그 것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던 그 때.
아무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 같았던 그 때.
정말 암울하고 소망이 없던 그 때 갑자기 한 사람이 등장해요.
(쉬고)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촌사람이에요.
길르앗 어딘가에 있는 디셉이라는 시골에서 온 사람이에요.
까맣게 그을린 피부 그리고 농사일로 단련된 근육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에요.
누가 봐도 어딘가 시골에서 온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정도에요.
(쉬고)
그가 아합 왕을 만나러 궁으로 가요.
여러분 왕을 만나는 것이 쉬울까요?
저 먼 시골출신, 이름도 모르는 남자가 와서 대뜸 왕을 만나겠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죠.
그런데 그가 무작정 왕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지 않으신답니다.”라고 한 마디를 던져요.
사람들은 여기에서 충격을 받아요. 왜 충격을 받았을까요?
(쉬고)
그가 던진 메시지에 충격을 받았을까요?
겁 없이 아합 왕에게, 바알을 최고의 신으로 삼는 이세벨 앞에서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이야기하는 그의 태도에 충격을 받아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했는데 그들이 듣지 않아요.
그들이 그토록 찾고 부르짖는 바알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데, 그들이 떠나고 버린 하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데 듣지 않아요.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으로 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죠.
(쉬고)
하나님을 떠나버린,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더 사랑하는 시대와 상황 속에서 이 사람은 혼자 외로운 싸움을 시작해요.
우상만이 전부이다!
바알만이 우리의 삶을 책임지고 복을 줄 수 있다!
바알만이 우리의 구원이다!를 모두가 외칠 때 이 사람 혼자 잃어버린, 잊혀진 “하나님”을 외처요.
(쉬고)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하는 사람은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 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엘리야에요.
(쉬고)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모두가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 대적하고 미쳤다 말하며 수군거리고 있어요.
의전 절차도 무시하고 왕 앞으로 나간 자신을 끌어내려고 군인들이 달려오고 있어요.
모두가 바알만을 외치던 그 자리. 왕의 앞에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쉬웠을까요?
(쉬고)
우리라면 그런 분위기 속에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었을까요?
(쉬고)
그는 어떻게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당당히 드러낼 수 있었을까요?
(쉬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안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 열망, 뜨거움이 가득했기 때문이에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성령 충만했고, 은혜가 흘러 넘쳤던거에요.
하나님을 아는 백성이면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 말하면서, 다른 것을 붙들고 그 것이 전부이다 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싶었던거에요.
사실 북이스라엘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지 않았어요. 아니 못했어요.
상황. 환경이 너무 두려웠거든요.
내 신앙을 고백하고 나면 찾아오게 될 후폭풍들이 걱정되고 두려웠던거에요.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라 생각하며 상황과 환경에 맞춰서 살아가고 있었던거에요.
(5초 쉬고)
꿈이있는교회 가족 여러분. 하나님은 왜 우리를 자카르타로 부르셨을까요?
하나님은 왜 우리를 꿈교회 공동체로 모으셨을까요?
(쉬고)
이 곳에서 제가 자유교회 모임을 두번을 했는데, 그 모임들을 준비하면서 기도 할 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신 것이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이 곳 꿈이있는교회에 예배자들을 세워두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삶으로 신앙을 드러내길 원하는 이들을 이 곳에 모으셨구나.”
“다음세대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말씀으로, 믿음 안에서 키워내기를 원하는 신앙을 가진 이들을 준비하셨구나.”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 쉽지 않죠.
더 많은 것을 하며 섬기고 교회를 세워나가고 싶지만, 상황과 환경이 녹록치 않아요.
교회를 지켜내시는 분들이 분명 있지만, 때론 힘이 들고 벅찰 때도 분명 있을거에요.
(쉬고)
하지만 더 분명한 것이 있어요.
하나님은 이미 그 상황과 환경을 알고 계신다는거에요.
이미 그 상황과 환경을 넘어서 일하고 계신다는거에요.
여러분을 통해 아름다운 교회와 공동체를 세울 준비를 다 끝마치셨다는거에요.
(3초 쉬고)
하나님께서 꿈이있는교회 가족들을 주목하고 계신다고 저는 믿어요.
마치 엘리야처럼요.
(쉬고)
엘리야는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을 붙들고 살았어요.
하나님은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보이는 때 혹은 어려운 때에 특별한 사람을 찾고 계셔요.
그 막막함 속에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믿음으로 고백하며 그 것을 삶으로 증명할 사람을 찾고 계셔요.
엘리야는 많은 교육을 받은 세련된 사람이 아니었어요.
누가봐도 이스라엘의 어렵고 암울한 영적 상황을 해결해 줄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택하셨어요.
주목하지 않은 시골 디셉에서 투박하게 자란 그 사람을 부르셨어요.
왜요?
하나님 외에 다른 것과 타협하지 않을 사람이었거든요.
시골이라는 제한 되고도 한정된 상황과 환경에서 맞서 이겨본 사람이었거든요.
(쉬고)
바알을 위해 살아가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숨죽여 하나님을 믿던 사람들은 상황과 환경에 맞선적이 없었어요.
그냥 맞춰 살다보니 살만해졌고, 편안해졌어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전혀 몰랐어요.
세상과, 죄와 타협하는 것이 너무 쉬어졌던거에요.
(3초 쉬고)
혹시 신앙생활을 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신적이 있나요?
여러 고민과 걱정이 있어 요즘 특별히 기도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고 계신다는 증거에요.
이제 하나님의 일하심을 눈으로 피부로 느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에요.
왜냐하면 편안함에 있는 사람은 절대 외칠 수 없거든요.
엘리야는 하나님의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는 그 상황 속에 용기를 냈어요.
타협하고 편안함을 누리기 보다, 하나님의 일하심만을 기대하며 목소리를 내었어요.
(쉬고)
하나님은 현재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것을 기대하고 계셔요.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삶의 자리에서
상황과 환경을 보고 한숨 쉬고 그저 받아드리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외치며 붙들기를 원하고 계셔요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꿈이있는교회 공동체에, 인도네시아 이 땅에 회복을 이루어 내실 것이라 믿고 기도하고 있어요.
엘리야를 택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음을 믿어 의심치 않거든요.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은 회복의 은혜를 계속해서 흘려 보내실거에요.

2. 훈련의 장소 - 그릿 시내가

갑작스럽게 세상 앞에 선 엘리야가 말을 이어나가요.
“하나님이 비를 내리지 않으실 것이다.”
“엄청난 가뭄이 올 것이다.”
이름 없는 시골 사람이, 당대 최고의 권력자, 세상 그 자체를 도발하고 있어요.
이세벨 여왕이 북이스라엘로 오면서 가졌던 목표가 있었어요.
“북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을 제거하겠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다 제거하고, 바알만 섬기도록 하겠다.”
그 목표를 갖고 있는 이세벨에게 “지우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거에요.
(쉬고)
다시 말해 엘리야는
“아합, 이세벨 너희가 가진 권력이 최고라 생각하는거지?”
“비를 내려주는 풍요의 신 바알이 최고의 신이라 생각하는거지?”
“너희가 믿고 있는 신 바알은 절대 너희에게 비를 줄 수 없어”
“비를 다스릴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어”
“하나님께서 앞으로 몇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어.”
라고 세상을 향해 말한거에요.
(3초 쉬고)
세상의 권력 앞에 도전하는 믿음의 사람이 등장했어요.
이제 하나님과 바알과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 될 거에요.
하나님을 믿지만 신앙을 고백할 수 없었던 사람들과 엘리야가 힘을 모아,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낼 일만 남았어요.
(쉬고)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싸움의 중심에서 꺼내오세요.
그릿 시내가로 가라 말씀하세요.
그릿이라는 뜻은 고립시키다. 잘라내다에요.
아합 왕.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내며 도전을 하던 엘리야의 모든 활동을 중지시키세요.
혼자만 남도록 고립시키세요.
(쉬고)
왜 하나님은 화려하게 등장한 그를 싸움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외각으로 밀어내셨을까요?
(쉬고)
엘리야는 싸울 수 있는 용기와 충분한 힘이 있었던 사람이에요.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무엇으로 싸워야 할지를 잘 몰랐다는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앞으로 혼자 긴 싸움을 해야 하는 엘리야의 그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릿 시내가로 보내셨어요.
아합 왕으로부터 보호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 시키기 위해 고립시키셨어요.
(쉬고)
그릿 시냇가는 당시 사람들도 잘 모르던 지명이었어요.
그릿 시냇가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엘리야가 답답했을지도 몰라요.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 무엇을 먹을 수 있을지 어떠한 정보’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세요.
“까마귀가 너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줄거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엘리야는 말씀을 믿고 그릿 시냇가로 발걸음을 옮겨요.
(쉬고)
그릿 시냇가와 같은 곳. 광야와 같은 곳에서 혼자 오랜 시간을 지내는 것은 정말로 어려워요.
외롭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해요.
정말로 아침 저녁으로 까마귀가 빵과 고기를 물어왔고, 시냇가에 물이 있었지만 혼자 그 시간을 참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요.
인내하며 시간을 보내던 엘리야에게 곧 위협이 닥쳐요.
17장 7절. “그릿 시내가 마르니라”
(쉬고)
용기를 내어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냈고,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그릿 시내가로 보내어 고립 시키셨어요.
여기까진 참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젠 물이 없어요. 마실 것이 없어요.
빵과 고기가 있으면 뭐해요.
물이 있어야 하잖아요.
(쉬고)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심이 끝난 것 같아요.
하나님을 위해 살겠노라 고백했는데, 나에게 찾아온 것은 축복과 같은 꽃길이 아니라 혹독한 시련 뿐이고 고난의 연속인거에요.
(쉬고)
저는 10년 전 쯤 인도에서 1년 정도 학교를 다니며 살았던 적이 있어요.
하나님을 드러내겠노라고.
다양한 종교와 문화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겠다.
나의 전부이신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겠다. 라고 고백하며 갔어요.
(쉬고)
저의 그 고백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서 무너졌어요.
수많은 신전과 제사. 우상 숭배 앞에서 만신창이가 되었어요.
그 때 하나님에게
“왜 저를 이 곳에 보내셨습니까?”
“하나님을 이 땅에 드러내며 살겠다고 고백하고 왔는데 저를 버리셨습니까?”
“저를 사랑하신 것 맞습니까?”라는 원망을 막 쏟아냈어요.
(쉬고)
엘리야가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닐까요?
(쉬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해서 왔는데, 이게 뭡니까?”
“절 사랑하시는 것 맞습니까?”
“내가 이러려고 이 자리를 지켜냈습니까?”
그의 마음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그를 찾아왔어요.

3. 훈련의 이유

아마 여러분도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실거에요.
하나님을 잘 믿었는데, 이상하게 꼬여가는 상황과 일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잘되는데, 하나님은 너무하신거 아니야?
혹 이런 상황을 경험하셨거나 지금 그런 생각들을 하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쉬고)
엘리야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드렸을까요?
우리는 이런 상황과 환경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까요?
(3초 쉬고)
엘리야에게 빵과 고기와 물을 제공하셨던 분은 하나님이셨어요.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은, 우리의 당연히 노력도 있었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에 받을 수 있었어요.
(웃으면서)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가져가는 것도 하나님 마음이지 않을까요?
인간적인 관점으로 줬다가 뺏는 것은 굉장히 치사한 일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어요.
(쉬고)
내가 가진 이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를 멀어지게 만들고 있었다면.
영적으로 나를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면 언제든 다시 가져가실 수 있어요.
엘리야는 하나님만을 붙들고 의지해야 하는 훈련의 장소 그릿 시내가에서 생각보다 잘 지냈어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잘 먹고 잘 쉬면서 훈련을 받았어요.
다만 혼자였을 뿐이에요.
(쉬고)
사람이 잘 지내게 되면 어떻게 되죠?
하나님에 대한 감사함을 잊게 되고, 편해지려고 하죠.
물이 사라진 그 때 엘리야는 하나님을 떠올려요.
이 상황을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요.
(3초 쉬고)
혹 상황에 대한 답답함과 고민 그리고 어려움이 있으시다면, 더 이상 그 문제를 놓고 고민하거나 걱정하지 않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실 타이밍이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에요.
(쉬고)
답답함, 어려움, 고민을 계속해서 가져간다는 것
여전히 내 생각으로, 고집으로, 경험으로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해결해 보겠다는 뜻이기 때문이에요.
즉 하나님께서 일하실 자리를 내어드리지 않고 있었다는거에요.
(쉬고)
우리에게 찾아오는 여러가지 고난과 혹은 일들은 나의 시냇물이 말라버린 것이 아니에요.
(쉬고)
비로소 하나님을 보게 되는 순간이에요.
드디어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는 순간이에요.
마침내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가 아닌, 고대하게 되는 순간이에요.
(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늘 공급해 오고 계셨잖아요.
삶을 돌아보면, 저를 향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멈추었던 적 없잖아요.
그 고난과 어려움의 상황과 순간들이 우리를 괴롭히기는 했어요.
하지만 그 것들이 나를, 우리 가족을, 교회 공동체를 무너뜨렸나요?
(쉬고)
아닐거에요.
오히려 그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똑바로 보게 되었을거에요.
하나님을 붙들어 냄으로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시지 않았나요?
회복의 때는 반드시 우리에게 찾아와요.
(5초 쉬고)
엘리야는 말라붙은 시냇물을 보며 실망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기쁨을 고백했어요.
내가 훈련의 장소를 잘 견디어 내었구나! 그래서 결국 그는“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불려요.
(쉬고)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상황과 환경에 대한 답답함과 어려움을 계속해서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실망하지 마세요.
말라붙은 물은, 우리의 상황은 하나님의 심판도 저주도 아니에요.
우리의 신앙. 믿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선포할 수 있는 순간이에요.
(쉬고)
아브라함이 100살에 얻은 그 아들을 모리아 산에서 죽여 하나님께 바치려던,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절망적인 그 때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 하셨어요.
미움 받고 팔리고 누명을 쓰고, 배신 당했지만, 요셉은 그 훈련의 시간을 잘 버텨냈고 결국 총리로 쓰임 받았어요.
아무런 죄가 없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그 고난의 길을 걸으셨고 죽으셔야 했어요.
(쉬고)
말라붙은 물, 우리의 상황은 하나님의 심판도 저주도 아니에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여정에는 고난과 어려움과 같은 훈련은 계속 될거에요.
이 순간을 통해 우리는 더 단단한 믿음을 갖게 될 것이고, 더 끈끈한 공동체가 될 거에요.
이 훈련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은, 나의 믿음은 결코 단단해질 수 없어요.
(쉬고)
우리는 오늘을 살아내는 법을. 현 상황을 받아드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오늘이 있어야, 오늘의 이 고민과 아픔 그리고 몸부림이 있어야 내일을 기대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오늘 하나님과의 이야기를 내 삶에 새겨야 내일도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게 되는거에요.
매일 새겨지는 하나님과 나와의 이야기가 쌓여야 해요.
(5초 쉬고)
우리의 모든 상황과 환경우리를 진짜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로 훈련 시키고 있었어요.
그 것을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한 가지에요.
나를 통해 상황과 환경을 역전시키고 회복시키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거에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믿고 기쁨으로 고백하며 기다리는거에요.
(쉬고)
훈련의 장소에서 하나님을 붙들고 일어난 엘리야를 어떻게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는지,
엘리야를 통해 어떤 회복과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지를 이번 주일에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쉬고)
그처럼 나를 통해 회복을 이루어내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엘리야처럼 훈련의 순간인 지금을 잘 견디어 내어 결국, 나를 통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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