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음 ccc여름 수련회] 첫쨋날 설교; 주님, 저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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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행22:2-9

Acts 22:2–9 NKRV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설교]

1. 세상의 것을 바라보는 우리

우리는 시각적인 것에 약합니다. 우리의 시각을 가장 자극하는 것 유튭, 인스타죠. 그 안에는 내가 관심있는 것들만 잔뜩있습니다. 그래서 잠깐만 해야지 하고 켰는데, 어느새 삼십분 한시간 훌쩍 지나가 있어요.
유튜브 인스타그램이 우리에게 정말 좋아하는 것들, 재밋는 것들, 시간 보내기 좋은 가벼운 것들만 보여준다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그 것들은 우리의 리 속에 여러 문화들을 필터링할 틈도 없이 우리의 머리 속에 집어 넣거나, 한치의 저항도 못하고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그 문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은근슬쩍 외모지상주의적인 메세지, 외적인 것을 부각하며, 재력 돈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말하는 자본주의의 메세지, 혼자사는 것이 훨씬 편하고 좋은 것이라 말하는 개인주의의 메세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문화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자연스럽게 내 머리로 들어온 이 시대의 주류문화들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합니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기 원합니다. 이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원하며 살아갑니다. 좀 사치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남들에게 보여주면 자랑도 될 만한 것들을 원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삶이 스웩있는 삶, 플렉스한 삶을 원하죠.
그래서 우리 대학시절의 목표는 좀 더 좋은 대학을 위해 편입을 준비한다거나, 또는 남들보다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스터디나 학원, 강의 등등 시간을 보내거나, 남들보다 더 돈을 많이 벌어서 더 많이 내가 좋아하는 거 내가 원하는 것을 사고 쓰기위해 주식을 배웁니다. 이런 삶이 요즘 대학생들의 보편적인 삶입니다.

2. 그러나 성공하는건 쉽지 않다. 실패와 아픔의 삶

그러나 정작 우리 눈엔 성공한 사람들이 잘 안보이지 않아요. 뭐 정말 소수의 몇몇 있기는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대부분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편입을 준비하는데, 그냥 계속 같이 있다가 졸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스터디하고 학원다니고 강의듣고 하는데 같이 졸업해서 몇년째 취준하고 있고요, 투자를 해도 넣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은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슬프죠.
이 시대는 슬픔이 참많아요. 한동안 ‘힐링’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유행했어요. 지금도 힐링하러 간다는 식의 말을 많이 쓰죠. 아픔이 너무 많아서 치료가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요.
김난도 교수가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책이있죠. 그 책을 보면 청춘은 다 그런거래요. 아프데요. 아프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래요. 그래서 힐링도 많이 해야 한데요.
근데 청춘때만 아프면 ‘아 그래, 아프니까 청춘이지?’ 라고 생각할텐데 나이를 먹고 취업을 해도 아프고요,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아도 아프고요, 애를 낳아서 학교보내고 시집 장가 보내도 아프데요. 계속 아파요. 나이가 들고 돈도 어느정도 벌고,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위치오르고 하면 이제 괜찮아 져야 하는거 아닌가요? 그만 아파야 하지 않나요? 계속 아프다면 이런 상황은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3. 아픔을 잊기 위한 우리의 방법; 다시 스마트폰 세상으로

우리는 아픔을 잊기 위해서 다시 휴대폰 잠금을 풉니다. 그리고는 유튜브나 인스타를 켜요. 그리고 스마트폰 세상으로 접속합니다. 그곳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보며 위로를 얻어요.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 예능 프로, 좋아하는 아이돌, 드라마, 영화 등으로 힐링을 해요.
그렇게 위로를 받고나면 전에 자기가 힘들었던 것들을 잊어버리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상처에 밴드하나 붙이고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드는 어린애처럼 다시 상처를 받으러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마치 늪 지대에서 허우적 대다가 간신히 나와서 나 자신과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가싶었는데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그곳이 마치 자기가 돌아갈 곳인 것처럼 거기로 가요.
문제가 뭐였는지 잊어버려요. 아팠던거 같은데, 그냥 원래 세상이 그런거지 생각하며 다시 아프려고 시작합니다. 실제로 인터넷과 sns가 그런 역할을 해요. 우리가 이 시대에 대해서 이 사회의 문제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계속해서 그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만들죠. 끊임없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이게 전부인것처럼 돈만 많이 벌면되고, 나만 잘되면 되는 그런 시대를 계속해서 살아가게 만들어요. 외모는 여전히 내 평생의 컴플렉스고, 나의 학벌, 직장, 내 직업은 늘 남들과 비교하게 되요.
이 시대는 물질만능주의이지만 사람들이 물질을 더 가지면 가질수록 더 외로워지고 공허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결국 물질이 모든것을 할 수 없다는 모순을 알려주고 있어요.
과학도 마찬가지죠. 이 시대는 과학기술 만능주의입니다. 과학은 원인과 결과를 밝혀내는 학문입니다. 실험을 해서 얻은 객관적인 결과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의 질문 앞에서 과학은 ‘우연’이라는 답밖에 내지 못합니다. 모순적이죠. 그러나 과학은 언제나 옳다는식으로 말합니다.
진화론은 단순히 인간이 동물에서 진화한 존재다 라는 생각을 넘어서 사람들의 가치관을 변화시켰습니다. 적자생존의 시대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시대, 나약한 개인은 무시받는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잘난 사람은 계속 잘 나지고, 못난 사람은 끝까지 못 난 삶. 있는 놈들은 더 있어지고, 없는 사람은 더 없어지는 시대입니다.
계급은 사라졌지만 계층은 여전히 나뉘어져 있는 이 시대 속에서 이런 상황을 해결하고자 끊임없이 경쟁합니다. ‘나만 잘되면 되’ 하는 생각은 누가 고통받든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의 맘 속에는 타인의 어려움에 대해 그렇게 크게 고민하거나 깊은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인권인권 얘기를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리고 이 사회는 고통받는 소수의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 듯하지만 두손을 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대해 조금만더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이런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지만, 이 시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막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이 시대의 문제를 바라보며, 무엇이 우리의 아픔을 해결해주며, 무엇이 ‘나’라는 존재를 진정 가치있게 만들어 주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4.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무엇이 아픔을 해결해줄 수 있는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울도 우리와 참 비슷한 사람이었어요. 그는 그당시 최고의 학벌을 자랑하는 가말리엘이라는 교수님 밑에서 공부한 학생이었고, 집안은 정통 유대인 집안이면서 동시에 로마제국의 시민권을 가진 권위있는 집안의 자녀였습니다. 그 시대의 문화 흐름도 지금 이 시대와 다르지 않았어요. 그는 당연히 부귀영화를 누리는 미래를 바라보며 살았을 거에요.예수님 믿는 자들을 잡아서 죽이는 것도 그의 명예를 높이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기 위해 다메섹이라는 동네로 가고 있었어요.
때는 정오에 햇빛이 쨍쟁한 시간이었는데 길을 걷던 중 태어나면서 단 한번도 보지 못한 밝은 빛이 그를 비췄고 그 빛으로인해 두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정오인데 빛이 비추는 것을 느낄 정도라면 그 빛은 정말 대단한 빛이었을 거에요. 그 빛 속에서 들려온 음성은 사울을 바닥에 바짝 엎드리게 했습니다.
그가 왜 엎드렸는가? 그는 유대인으로서 그들이 믿는 여호와께서 어떻게 임재하시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모였을때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하셨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강렬한 불과 천둥과 같은 음성과 같은 음성으로 나타나셨어요 .
Exodus 19:18–19 NKRV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여호와께서는 이와 같은 모습으로 바울에게 나타나셨어요. 그는 당연히 이분께서 여호와시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은 바울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큰 음성은 바울에게 ‘왜 나를 박해하느냐’물었습니다.
바울은 이 물음에 혼란스러워 졌습니다. 바울 자신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께 열심이었기때문에 ‘이분은 내가 믿고, 알았던 하나님이 아니시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 ‘주님 누구십니까?’ 라고 여쭙습니다.
이 말에는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라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여보세요 하나님. 저는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고, 최고의 율법 교수 가말리엘 선생에게 배운 학생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데 저 만큼 열심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근데 저더러 박해한다니요? 제가 아는 하나님 맞으십니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그러자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은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Acts 22:8 NKRV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나는 니가 박해하는 예수님이다’ 이 말을 들은 바울은 머리가 아득해집니다. 그가 생각지도 못했던 분의 이름이 나왔어요. 내가 박해했던 그 사람이 내가 믿는 여호와라고?
유대인들은 전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해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들의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기전, 그리고 포로에서 돌아온 뒤에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통해 다윗과 같이 위대한 왕이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다 약속하셨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윗은 최고의 왕입니다. 국기에서 다윗을 기념해서 별을 새겨놓은 사람들이에요. 다윗과 같이 위대한 왕이 나타나셔 이스라엘을 그가 통치했던 시절처럼 강력한 나라가 되게 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어요.
근데 아니 어디 갈릴리 시골에 듣보잡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자기를 소개하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다’ 말하고 있는거에요. 그를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게 거슬렸어요.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풀 네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자, 왕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란 예수님이 구원자다 라는 의미에요.
바울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일리 없다고 당연히 믿고 있었는데, 오늘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생각에 최고의 지각변동이 일어납니다. 자기가 믿고 섬겼던 하나님 여호와 신이 다름아닌 예수님이란 사실을 알게 된 거에요.
그리고 이제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믿게 되었어요. 사도행전 9장 20절을 보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죽이던 사내가, 이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고 전하기 시작했어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되었다는 것은 요한복음 1장 12절의 말씀처럼 자기 또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을 진정으로 자기의 아버지로 섬기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John 1:12 NKRV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자기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잘 믿지 못했어요. 전능하신 분, 위대하신 분 왕이신 분 그분이 어떻게 나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가 생각하며 아버지로 믿지 못했어요. 자기들이 자녀인데도, 자녀임을 거부했었던 거에요.
그러나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음을 통해 ‘나도 하나님의 자녀이구나’ 나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늘 아버지이시구나 라고 믿을 수 있게 된거에요.
자기의 생각에 갇혀 진리를 보지못했던 그가 예수님을 통해 진리를 알게 되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거에요.

5. 예수님 안에서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바울은 이전까지 자신이 추구했던 것들로 ‘나’라는 존재를 찾은 게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눈이 가리워졌던 그 기간동안 묵상하며 기도했을 거에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된 바울은 이제 질문을 돌려, ‘주님 그럼 저는 누굽니까’ 저는 대체 누굽니까 라고 물어보았을 거에요. 그가 고민했을 질문의 답들은 그가 기록한 편지들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를 보면 우리는 누구인가 이렇게 기록해놓았어요.
Ephesians 1:4–5 NKRV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의 기록처럼 여호와 하늘 아버지께서는 창세전에 우리를 자녀 삼기로 미리 정하셨고, 이를 통해 창세기1장의 기록처럼 우리를 아버지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다만 죄를 지어서 우리의 눈이 하늘 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그분과 멀어졌지만, 하늘 아버지께서 자녀인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그 결과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겨주시고 우리를 향한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셨어요. 로마서5장 7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어요.
의로운 사람을위해서 죽는 사람이 쉽지 않다. 거의 없다는 말이죠.
선한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이 간혹 있다. 정말 간혹 있을까 말까하다.
그러나 8절을 이렇게 말합니다.
Romans 5:8 NKRV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자녀로 불러주셨고, 우리를 향해 너는 내 아들이다 말씀하셨는데 그 사실을 보지 못하고, 알려 하지도 않고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하늘 아버지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려주셨는데도 오히려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말하며 부인하고 바울처럼 욕을하며 믿는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증오했던 게 우리의 모습이고 그것이 죄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므로 우리에게 놀라운 사랑을 알려주셨어요.
이런 놀라운 사랑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이 하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음을 믿게 된 바울은 그에게 허락된 이 지식을,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된 이 지식을 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겠다 고백합니다. 빌립보서3장7-9절말씀이에요
Philippians 3:7–9 NKRV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더욱 알고, 이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기 위해 다른 것들은 다 배설물로 여기겠다, 똥으로 여기겠다 말합니다.
바울 그가 찾은 정체성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이 ‘하늘 아버지의 자녀’ 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이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을 이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 그래서 자기의 정체성을 정의하던 모든 것들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더 고상하고 중요하다 말합니다.
그 이유는 이전에 내가 얻으려고 아둥바둥했던 것들이 더이상 쓸모가 없어진게 아닙니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 나의 아버지이신데, 이 땅의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스리신 분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 세상의 것들을 내가 얻으려고 하는 것보다, 아버지를 의지할 때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허락해주시지 않을까요?
우리가 사춘기를 보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우리에게 드는 생각이 뭔가요? ‘아 나 이제 어른이야’ 아직 만19세면서 무슨 어른이냐 할 수도 있지만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아니 민증 나오고 나서부터는 ‘나 어른이야’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른이야 이 말에 담겨 있는 의미는 나 이제 독립적인 존재야 내 힘으로 할 수 있어, 내가 한번해보겠어 이런 의미가 담겨 있어요.
그래서 내가 하고싶은거 해보겠다며 알바를 합니다. 근데 알바 벌이가 좋지 못해요. 많이 주는 꿀알바? 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꿀알바를 구한다고 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거 다 할 수 있게 되지도 않아요.
여행이나 유학, 어떤 물건을 사겠다는 장기적인 목표를 잡아놓고, 알바를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부분에 대해서 부모님과 얘기해본 친구들을 알거에요.
부모님은 그 일을 도와주세요. 도와주시고자 하시지 외면하지 않으세요. 자기의 힘이 닿는 대까지 아니 그 이상으로 도와주고자 하세요. 물론 눈앞에서 바로 도와주시는 분이 계시기도 하지만 아닌척하면서 몰래 은근슬쩍 도와주시는 분도 계세요.
부모님은 우리가 그걸 얻는데까지 굉장히 힘들껄 아시고 도와주세요 그게 부모의 마음이에요. 어떻게든 내 자녀, 내 아들 내 딸이 하고자 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어하는 마음.
독립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안되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럴 때 우리는 부모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도와주세요.
그러나 이 땅의 부모님들께서 우리를 향한 거의 무한한 정도의 사랑을 갖고 계시지만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어요.
건강이나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여러 어려운 상황들 사람들과의 관계, 진로 등등 오히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걸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내 삶에 찾아올 때 ‘나 어떻게 해야해?’ 하며 힘들어합니다.
그런 문제들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다른 모든 문제들 앞에서도 동일한 해답이지만 하늘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늘 아버지의 자녀라면서요. 이 사실을 믿고 아버지를 의지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다. 이 땅을 창조하신 분이 내 아버지다 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이런 기도, 이런행동 할 수 없습니다.
내 아버지가 이런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부탁드릴 수 있어요, 말씀드릴 수있어요. ‘아버지 도와주세요’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자녀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기뻐하세요. 이 땅의 부모님들도 그러하시는데 우리 하늘 아버지는 어떻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자기의 아들 예수님까지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받으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녀삼으셨는데요. 무엇을 주저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늘 아버지를 요술램프 지니와 같이 여기는 게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그분과의 관계를 깊게 만들어 갈 때 다른 것들은 뒤 따라 옵니다. 자연스럽게 뒤 따라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마태복음 6장을 보시면 25절에
Matthew 6:25 NKRV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말씀하세요.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 다음 구절에
Matthew 6:26 NKRV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들도 기르시는데 너희는 어떻겠냐 너희들이 걔네들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 너희는 하늘 아버지의 자녀이지 않느냐
Matthew 6:27 NKRV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누가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그게 해결되느냐
Matthew 6:31 NKRV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그것들로 염려하지 말라
Matthew 6:32 NKRV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아버지께서 아신다, 자녀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Matthew 6:33 NKRV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말은 쉽게 말하자면 아버지와의 관계를 생각하는것, 그분과의 관계를 내가 더욱 깊이 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믿는 것. 아버지이신데 믿는다는 표현도 맞지 않습니다. 아버지이심을 인정하는 것,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하고, 아버지를 의지하는 것 그게 자녀 아닌가요? 그렇게 할 때 우리 삶에 필요한 것들 저절로 주어집니다.
집에서 부모님과 같이 사는데 저분을 내가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람있나요? 도와주시는 분이시죠. 그러나 저분을 내 부모님으로 나를 랑하시고 나를 길러주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잖아요. 그겁니다. 도와주는 대상 돈을 주는 대상 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할 수도 없고, 결국엔 원망하고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최후의 수단으로 보험금을 타내는 그런 불효막심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거에요. 우리가 저분을 나의 아버지로 믿는다면 필요한 것을 구하는데 관심을 전부 쏟는게 아니라 아버지와의 관계,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구나 감사하다, 내 어려움을 외면치 않으시는 구나 감사하다 고백할 수 있는 거에요.
어떤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쭤보며 아버지의 뜻을 묻고 구하는것 이것이 자녀의 삶입니다.

6.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존귀한 자-기도회로 연결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늘 아버지의 자녀라는 사실을 살펴보았어요.
우리가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가? 지금까지 뒤좇았던 삶의 가치들, 나를 정의하려 했던 세상의 여러 가치들. 그것들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하늘 아버지를 바라보자 말씀드렸어요.
우리의 존재는 너무나 소중하고 큽니다. 온 우주를 지으신 하늘 아버지의 자녀라니요. 그러나 이 시대는 우리의 정체성을 보지 못하게 잊어버리게 흐리게 만듭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진정한 현실을 바라보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이 진리를 막고 흐리게 하는 눈의 비늘, 안개를 거둬내야 합니다.

첫번째 기도; 아버지 나의 눈을 뜨게 해주세요.

오늘 우리의 눈을 밝혀주기 위해 말씀이라는 큰 빛으로 찾아오신 예수님께 기도합시다. 우리의 닫힌 눈을 거둬주세요. 내가 하늘 아버지의 자녀임을 알게 해주세요. 주님 제가 누구인지 알게 해주세요. 제가 아버지의 자녀임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임을 깨닫고 믿어서 나를 좌절시키는 이 땅에서 슬퍼하고 주저앉고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게서 나와 함께 하신다 나의 모든 걱정들 아픔들을 다 아신다는 진리를 믿으며 아버지를 붙잡는 인생 아버지와 함께 사는 인생 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합시다. 함께 기도합시다.

두번째 기도; 내가 하늘 아버지의 자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정말 누구냐, 너는 정말 너 자신을 바르게 알고 있느냐, 너를 누구로 알고 있느냐, 세상의 가치에 찌들어 살아가는 것이 진정 너라고 생각하느냐. 세상의 기준으로 너 자신을 정의하지마라 그것들이 너희를 규정하지 않는다. 너희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은 자, 창세전부터 구원하시기로 자녀 삼기로 택하신 자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생명을 내어주시기 까지 너희를 사랑하셨다. 너희는 영원 무한한 사랑을 받은 자들이다 너희는 하늘 아버지의 자녀들이다 이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해주고 계세요.
그 시대에 정말 볼품없는 자로, 천대받는 자로 살았던 어부 베드로는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이렇게 고백합니다.
1 Peter 2:9 NKRV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도 그렇고 너희도 아버지께서 택하신 족속이요, 왕과 같이 존귀한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 그 안에 살아가는 아버지의 소유된 백성 자녀이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가치는 세상을 보며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를 바라볼 때, 그리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볼 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을 보기 원합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주님, 그분의 생명을 통해 내가 정의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믿고 감사하는 시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나를 자녀삼아주신은혜에 감사합니다. 내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겠습니다. 아버지와 동행하며 살겠습니다. 이런 고백을 아버지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찬양;때로는 너의 앞에/ ‘나의 앞에’로 바꿔서

세번째 기도;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이 시간에는 함께 참석한 조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아직 내가 하늘 아버지의 자녀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을 거에요. 그 친구들이 이 수련회 기간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를 그래서 ‘나는 하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라는 진리를 발견하길 믿게 되길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믿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그친구들은 말씀을 되돌아보며 ‘예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리고 저는 누구입니까?’ ‘저를 이시간 이곳에 불러주셨는데 저는 누구입니까’ 여쭙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조원들을 위해 특별히 생각나는 친구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리고 아직 믿지 못하는 친구들은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합시다. 함께 기도합니다~

찬양; 때로는 너의 앞에(한번 더) ‘원래 가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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