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8 새벽기도회: 시편 104:1-9
Notes
Transcript
찬송하시겠습니다. 찬송가 478장 찬송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 자리로 부르시고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께 먼지와 같은 저희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하여 그 일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그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 시간도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모든 염려와 근심을 내려놓고 위로와 소망을 저희에게 주시옵소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구하는 참된 성도로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 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04:1-9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
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옷으로 덮음 같이 주께서 땅을 깊은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로 솟아올랐으나
주께서 꾸짖으시니 물은 도망하며 주의 우렛소리로 말미암아 빨리 가며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곳으로 흘러갔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인 오늘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기도의 자리에 잘 나오셨습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자신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을 누리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시편 104:1-9 말씀을 기도제목으로 삼으면 좋겠는데요. 이 104편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태초에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절부터 보시면 시편기자는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라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자기 자신에게 권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로는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위와 존귀를 드러내시기 위해 “옷 입는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성경에서 ‘옷 입는다’는 종종 그 사람의 속성을 묘사하는 데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스가랴에 등장하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었다는 것은 여호수아가 죄를 지은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우리가 요즘 살펴보고 있는 요한계시록에서 성도들이 흰 옷을 입고 있는데, 이것은 성도들이 제사장이며 승리한 승리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권위가 있으시며 존귀하시다는 뜻입니다.
또한 2절에서도 똑같이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것을 시편기자는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도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빛은 거룩함, 이해, 기쁨 그리고 생명 자체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빛과 관련된 모든 것, 빛 그 자체가 되십니다. 이렇게 존귀하시며 권위가 있으시고, 그리고 빛이신 하나님께서는 하늘 혹은 궁창을 만드셨다는 것을 휘장을 치는 것으로 시편기자는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을 창조하시는 것은 마치 휘장을 치는 것과 같이 너무나도 쉬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하늘을 창조하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뿐더러 아예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그 일은 너무나도 쉬운 일입니다. 바로 시편기자는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이시며 절대 주권적인 위엄이 있으신 븐이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주변의 이웃 나라들의 신들과는 전혀 다른 분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신다는 것은 고대 다른 이방 종교 신화에도 등장합니다. 그러나 다른 이방 신들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큰 차이점은 이 세상이 창조되는 과정에 폭력이 없다는 겁니다. 특히 바벨론의 신화를 살펴보면 이 세상은 신들끼리 전쟁하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생긴 창조물들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신이 다른 신들을 재료로 삼아 그 신의 시체를 가지고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가르치는 것이 이방 나라들의 창조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는 폭력이 아니라 자신의 존귀와 권위로 선하게 창조하신 분이심을 가르치는 것이 성경입니다. 다른 고대근동의 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분이 성경의 하나님입니다.
이어서 시편기자는 3절에서 하나님께서 하늘 위에 물을 만드시고, 구름을 자기 수레로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위엄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지방의 집은 2층 형식으로 2층에 방이 있었고, 그 밑에 거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층의 방은 개인적 목적을 위해 차단된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개념에 기초하여, 시편기자는 “누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하늘의 왕의 궁전은 높이 존재하며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하늘 궁전에 계신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구름을 수레로, 바람을 날개로 삼으시고 왕국을 시찰하는 왕과 같이 그분의 왕국에 있는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은 그분의 뜻을 실행하는 사신이며 종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절대 주권은 측량할 수 없음을 계속해서 강조하면서 찬양의 재료로 삼고있습니다.
이제 이 시편기자의 찬양은 하늘에서 땅으로 옮겨갑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시선을 옮기니 땅도 찬양의 재료가 됩니다. 5절에서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이 땅의 기초를 놓으셨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땅을 만드시니 그 땅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찬양합니다. 또한 이 세상을 처음 창조하실 때 6절에서 물로 땅을, 심지어는 산들 위를 물로 덮으셨다고 말합니다. 바다가 모든 땅을 덮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하여 깊은 바다가 모든 땅의 표면을 덮고 그 아래에 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7절에서 바다를 꾸짖으심으로 8-9절에서 땅이 물 위로 올라오게 만드시고, 물의 경계를 정하셔서 땅 위로 침범하여 덮지 못하게 만드셨음을 시편기자는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바로 창세기 1장에 나오는 것과 같이 땅과 바다가 분리되는 창조 기사의 이야기를 시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시편기자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이미지는 땅이 물과 어둠과 무질서로 덮여 있었던 태초의 혼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니 땅과 바다가 분리되고 물의 경계가 정해져서 물이 땅을 침범하지 못하여 혼돈의 상태에서 질서가 잡히게 됩니다. 바다와 땅이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다른 이방신들과는 달리 독특한 분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이방 종교의 창조 이야기에서 창조의 신과 바다를 다스리는 물의 여신 사이에서 벌어지는 우주적 전쟁을 묘사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그런 부분이 일체 없습니다. 땅과 바다 모두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하나님께서 꾸짖으시니 땅에서 도망하여 절대로 땅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경계가 정해지는 것이 바다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없으시는 절대 주권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시편기자는 창세기 1장을 떠오르게 만들면서 이 세상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 세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움직임으로 혼돈의 상태에서 질서가 잡히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절대주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이방신들과는 달리 하나님은 폭력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선한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이 세상의 모든 창조물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재료로 삼고 있습니다. 근대를 지나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이 시편기자와 같은 모습을 취하기란 굉장히 힘듭니다. 땅과 바다, 그리고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는 사실보다는 어떤 과학적 인과 관계, 또는 그저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느끼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 우리는 이 자연 만물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재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을 통하여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밟는 땅, 우리가 보는 바다와 하늘은 모두 그저 자연으로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찬송할 수 있는 것은 크나 큰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시편기자처럼 한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라면서 자기 자신에게 권면해보십시오. 그렇게 할 때 이 자연 만물을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달리 찬송의 재료로 삼을 수 있을 겁니다.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신 하나님, 이 세상을 질서로 창조하신 하나님,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찬송하게 될 겁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 시편기자가 보여준 것처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느끼며 이 자연을 찬송의 재료로 삼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말씀을 두고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찬양하였습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질서가 있는 세상으로 창조하신 것을 찬양하였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 덕분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이 시편기자처럼 알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오늘 이 말씀과 같이 저희가 날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보며 이 자연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의 재료로 삼는 놀라운 복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이 자연을 보더라도 하나님이 떠오르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떠오르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도저히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는 우리 모든 신실한 성도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지켜주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