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8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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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세 가지 명령
하나님의 세 가지 명령
여러분 오늘도 우리 캠프를 준비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이 시간을 통해 크신 은혜를 부어주시고, 그 은혜로 더욱 캠프를 잘 준비하게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두번째 시간이죠? 지난 화요일에 준비팀 첫 모임을 가졌는데요, 다들 인사들 잘 나누고 하셨나요?
물론 이 준비팀의 자리가 캠프를 준비하기 위해 모인 자리이고, 그러다보니 캠프를 준비하는 업무들이 주된 일이긴 하지만, 사실 이 자리는 우리 공동체가 함께 모여 교제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모인 공동체가, 혹은 처음 만나는 공동체가 함께 캠프를 준비하며 업무도 하면서, 서로 기도제목도 나누고, 교제도 하면서 함께 하나되어 나아갈 때, 그러니까 모든 준비팀이 하나되어 갈때, 그 준비팀을 통해 만들어지는 캠프의 자리가 더욱 은혜와 사랑으로 가득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여 가장 먼저 예배로 나아가는 것이겠죠? 오늘도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그 은혜를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번 캠프 준비팀 첫 설교를 준비하면서 어떤 말씀을 전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오늘의 말씀을 정하게 되었는데요, 이 말씀을 정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 캠프를 향해 나아가는 첫발 혹은 두번째 발을 떼는 시간들일텐데요, 저는 이 모습이 오늘 말씀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참 닮아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모세가 죽고 난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는 여호수아라는 새로운 리더를 세우고, 가나안 땅이라는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야 하는 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서는 대부분이 출애굽 이세대, 즉 이전의 역사들을 잘 모르는 이들이였구요, 리더인 여호수아는 어떤가요? 물론 전쟁도 많이 했고 많은 경험을 했지만, 리더로서는 처음 그 자리를 경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마도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는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된 가나안 땅에 입성한다는 기대감도 있었겠지만, 반대로 그 길을 잘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도 동시에 존재했을 것입니다.
우리 준비팀도 마찬가지죠. 물론 우리가 오랫동안 공동체 안에서 함께 교제한 관계성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이 인원과 이 구성원으로써 함께하는 것은 처음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실제로 이 준비팀 자체가 처음인 분들도 계시구요.
그리고 그 준비팀을 이끄는 준장과 분과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그리 익숙한 광경은 아닐 거에요.
게다가 우리 이번에 캠프하는 장소는 또 어떤가요? 딱따구리 수양관. 물론 가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우리 캠프가 처음 겪게되는 장소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함께 캠프에서 받을 은혜들, 즐겁게 누릴 것들에 대한 기대감도 크지만, 동시에 처음 경험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이렇게 참 닮은 모습인 오늘 말씀의 이스라엘 공동체와 우리 준비팀에게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나아갈 바를 알려주십니다.
그러면 우리 함께 말씀을 살피며 우리에게 주님께서 어떤 지혜를 주실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는 첫 관문인 요단강을 건너기 위한 준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장에서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담대하라는 말씀을 받고, 2장에서 여리고에 정탐꾼을 보내 상황을 확인한 후 이제 출발하려고 한 것이죠.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백성들에게 세 가지 명령을 내리십니다. 가장 첫번째 명령은 3절에 등장하는데요, 우리 함께 3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어떤 명령이죠? 언약궤 뒤를 따르라고 합니다. 왜 언약궤 뒤를 따라야 했을까요?
일단 먼저 언약궤가 무엇인지를 알아야겠죠? 여러분, 언약궤가 무엇을 상징하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언약궤가 하나님 그 자체인 것처럼 여겨졌지만, 사실 하나님은 어디 한 물체에 구속되시는 분은 아니시죠. 그저 하나님께서 백성들 가운데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하나의 표지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언약궤가 가장 먼저 나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수행해야 할 것은 무슨 일이었죠? 가나안 백성들과의 전쟁이었습니다. 그것도 가장 먼저 마주할 여리고 성은 매우 큰 성읍이었기에, 가장 큰 전투부터 먼저 치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전투는 다른 여타의 전쟁과는 달랐습니다. 왜죠?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전투였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전쟁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전쟁이라는 것은 어떤가요? 그렇게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서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쟁을 하면 할수록 우리의 욕심과 같은 육체적 마음들이 더욱 드러나게 됩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늘 승리를 하게 되어있었죠.
그런데 그렇게 승리만 하다보면,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되나요? 바로 자만을 하게 되고, 전쟁을 통해 어떤 것들을 얻고자 합니다. 물질을 얻거나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아간의 범죄였죠.
이스라엘 백성 중 한명이었던 아간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하셨음에도, 몇가지 물건들을 자신의 수중에 챙깁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나요? 결국 아이성 전투에서 패하게 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언약궤를 가장 먼저 보내시면서 그의 백성들이 다른 것들을 바라보지 않고, 오로지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준비팀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뜻하신 캠프를 준비하는 귀한 여정을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캠프의 모습은 주님께서 계획하시고 원하신 것이기에, 분명 모든 것들이 은혜롭게 진행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쩌면, 우리는 다른 것들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캠프를 통해 주님의 뜻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고 나를 높이고자 한다는 것이죠.
캠프 가운데 내가 이렇게 잘한다고 능력을 드러내고, 내가 이정도에 있는 사람이다라고 위치를 보이고, 그것을 통해 내가 높임받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캠프 가운데 주님은 사라지고 사람만이 가득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의 욕심이 가득한 곳에 주님의 은혜는 존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의 캠프를 통해서는 오로지 주님의 이름만이 드러나야 합니다.
찬양을 통해서도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고,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고, 홍보물을 통해서도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정말 좋은 능력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통해서 준비되는 캠프는 정말 멋진 모습들로 준비가 되겠죠.
하지만 그 모든 것, 캠프의 준비과정은, 여러분들이 만든 결과물로 여러분들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캠프의 모든 것은 오로지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잘 누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도구들에 불과합니다.
여러분, 은혜는 우리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그의 뜻대로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도구로서 이 캠프를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삼는 순간, 우리의 캠프는 언약궤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캠프를 통해 도파민이 아닌 은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성취가 아닌 사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로지 언약궤를 바라보고 주님의 뜻을 향해 나아감으로 주님의 은혜가 넘치는 캠프를 이루어나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이어지는 하나님의 두 번째 명령은 4절에 등장합니다. 우리 함께 4절을 읽어볼까요?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두번째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은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명령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에 손을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율법에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오직 레위 자손들에게만 들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인물들이 언약궤에 손을 댄다면 하나님의 치심을 받게 되었죠.
그래서 다윗 시기 언약궤에 손을 대었던 웃사라는 인물도 그 순간 바로 죽음을 맞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닿고자 하는 행위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바벨탑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죠.
그래서 하나님은 백성들의 맨 앞에 선 언약궤로부터 백성들을 멀리 두도록 명령하십니다.
두 번째 의미는 언약궤를 통해 나아갈 길을 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방금 읽은 4절 하반절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하나님은 언약궤를 통해 백성들을 이끄시면서 먼 거리서 백성들이 언약궤를 보고 가야할 길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말씀에 기록된 대로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야할 길을 잘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구요, 길을 만약 알았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백성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옳든, 하나님은 언약궤와 백성들간에 거리를 두시면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가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를 따라 요단강을 문제없이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명령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주시고자 하는 것일까요? 바로 우리의 욕심을 내려놓으라는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앞선 명령과 이어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텐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으로 나아가는 길처럼, 우리가 캠프로 나아가는 길의 와중에서 어쩌면 우리는 언약궤로 앞서 나가시는 주님의 뜻에 우리의 욕심으로 손을 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욕심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나의 생각대로 모든 것을 행하고자 하는 욕심입니다.
이렇게 해서 잘 됐으니 이렇게만 하면 되겠지. 그때 그랬으니 내 생각이 옳겠지. 이런 생각들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전쟁 과정에서 그러한 사건이 나타납니다. 바로 기브온 민족을 받아들인 사건이죠.
여호수아 구장에 그 내용이 적혀 있는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를 점령하고, 이어 한번 패한 후에 다시 아이성을 점령하고 나니, 가나안 전역에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갑니다.
그리고 그 민족들 중에 기브온 민족이 있었죠. 그들은 이러다가 자신들도 이스라엘에게 멸망할 것을 염려하고 꾀를 씁니다.
행색을 꾀죄죄 하게 만들어놓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가서 이렇게 말을 하는 거에요.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는데, 이스라엘의 종이 되겠습니다’ 하고 조약을 맺자 한 것이죠.
기브온 민족들이 종이 되는 대신 해치지 않겠다는 조약을 맺고자 한 것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가나안 민족을 절멸시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기브온의 이 전략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아 조약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기로 맹세합니다.
결국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이후에 자신들이 속았음을 깨달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이었기에 그 조약을 지킬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결국 이 일로 인해 또 다른 전쟁을 치르게 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여기서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잘못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바로 하나님께 묻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저 자신들만의 생각으로 일들을 진행했던 것이죠. 그것도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중대한 일이었음에도 하나님께 묻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실력을 믿고 행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준비팀에게도 동일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캠프라는 하나님이 명하신 중요한 일들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님의 뜻을 바라보지 못하고 나의 생각대로, 나의 뜻대로 행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주님의 뜻과는 다른 곳을 향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가 많은 캠프를 치러왔고, 그 모든 캠프는 주님이 허락하신 은혜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계획이, 준비하는 과정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완벽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저 이전에 이게 잘 됐다고 해서 나의 기억과 나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뜻과는 어쩌면 다른 곳으로 우리의 캠프를 이끌지도 모릅니다.
물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욕심으로 잘못된 길로 이끌려 하더라도 반드시 우리의 캠프를 은혜롭게 만드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 준비팀이 더욱 더 주님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님 뜻을 따라갈 때, 주님은 우리를 통해 더욱 기뻐하시고 영광받으실 것입니다.
앞서 제가 언약궤를 만져 죽은 웃사의 예를 들었었는데요, 아마 웃사의 본문을 읽어보신다면 좀 이상하게 느끼실 수도 있을거에요. 왜냐면 웃사는 언약궤가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잡다가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말 웃사의 죽음이 억울한 죽음인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웃사가 죽은 이유는 언약궤를 옮기는 그 시작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언약궤를 어떻게 옮기고 있냐면, 소달구지에 실어서 옮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소가 놀라서 뛰게 되고, 그 때문에 언약궤가 흔들려 떨어지려 했던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언약궤를 옮기려 했다면 어떻게 해야 했나요? 말씀대로 레위 자손들이 들어서 언약궤를 옮겨야 했죠.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소달구지에 언약궤를 옮겼던 것이고, 그 결과는 우리가 본 대로 죽음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캠프를 소달구지에 싣고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 앞서 보여주시는 대로, 그 길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물론 어쩌면 그 뜻이 보이지 않고,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말씀대로 멀리 서있지 않고, 가까이서 그 뜻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가까이만 보일 뿐이죠. 그러다보니 멀리 바라보지 못하고 가까이 있는 일들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렇기에 주님께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를 따지게 되죠.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고 나면, 우리는 그 모든 뜻이 이유가 있었음을, 결국 주님께서 선하게 우리를 이끄셨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가까이 하지 말고 멀리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주님을 신뢰함으로 멀리서 그 길을 지켜보라고.
그러면 주님의 언약궤가 우리 삶과, 우리 캠프 가운데 계획하시고 행하실 일들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조급하게 우리의 생각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함으로 주님의 언약궤를 바라보시는 우리 준비팀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 명령을 살펴볼까요? 마지막 명령은 5절에 등장합니다. 5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마지막 명령은 바로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단을 앞에 둔 백성들에게, 어쩌면 그것때문에 떨고 있을 이들에게 자신의 몸을 거룩하게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의 성결은 옷을 씻고 관계를 갖지 않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즉 거룩하게 주님께서 행하실 일들을 마음으로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그리고 그대로 주님은 요단강을 열어 백성들이 강을 걸어서 건너도록 행하십니다.
이 명령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우리가 앞서 보았듯, 주님은 우리 앞서 행하시며 우리의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바라보도록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그 뜻을 발견하기 원하신다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을 성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주님께로 향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런 거에요. 캠프를 준비하는 우리가 준비하는 기간동안 다른 것들에 몰두하고, 그것에 신경을 쓴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뜻을 바로바로 느낄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이 캠프를 은혜로운 캠프로 만들어나가기를 원하신다면, 그래서 앞서 주님께서 주신 명령을 따르시기로 작정하셨다면, 가장 먼저 자신을 성결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몸과 마음을 주님께로 향하도록 설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오늘의 이 시간, 또한 앞으로 있을 모임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겠죠?
물론 오늘 모여서 함께 논의하고 준비하는 것, 중요하죠. 하지만 그 자리 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로 향하지 못하고 다른 것들로 차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바로 우리의 욕심으로 나를 드러내거나 나의 생각을 내세우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세 가지 명령은 어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동일한 명령입니다.
나 자신을 성결함으로 몸과 마음이 주님을 향하고, 그래서 앞서 나가시는 주님의 언약궤를 바라봄으로 다른 욕심에서 벗어나 주님을 따라갈 때, 우리의 캠프는 주님께서 그의 크신 은혜와 사랑으로 넘치게 임하시는, 주제 그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캠프 준비를 시작하는 이때,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기억하고, 오늘의 이 시간부터, 이후에 있을 기도의 시간부터 여러분의 모든 감각을 주님께로 고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캠프를 통해 오로지 주님의 영광만이 가득한, 우리의 욕심이 아니라 은혜만이 가득한 그런 우리의 29차 하임 캠프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