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힘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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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빅터 프랭클이라는 유대인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1500명의 유대인이 잡혀왔는데 그는 그중 1200명이 하룻밤 사이에 가스실에서 죽어가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많은 이들은 좌절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자신도 어느날 가스실로 끌려갈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빅터 프랭클은 끝까지 삶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가 가진 소망까지 가둬두거나 빼앗아 갈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제노동 시간에 땅에서 주은 유리조각을 가지고 아침마다 깔끔하게 면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얼마 지급되지 않는 식수를 아껴 매일마다 세수를 했습니다.
그는 삶에 대한 소망을 놓지 않기 위해 그의 모습을 다듬으며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그의 모습때문에 가스실로 보내는 것을 결정하던 군의관은 그를 차마 가스실로 보내지 못했습니다.
군의관에게 비친 그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는 수용소 생활을 이어갔고, 결국 무시무시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소망은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는 현재의 삶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가진 소망은 무엇이며 그것의 힘이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본론]
바울은 드디어 로마에 도착합니다.
로마까지 오는 그의 여정은 참 쉽지 않았습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맞아 배가 파손되어 거의 죽을 뻔 했습니다.
선원들은 자신들만 살려고 도망치려 했고, 병사들은 죄수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겨우 도착한 섬에서 바울은 독사에 물려 죽을 뻔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여정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바울은 결국 로마에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도 바울과 함께한 275명중 단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럼 바울이 로마에 들어가며 그 심정이 어땠을까요?
이제 죽을 곳에 도착했구나 하면서 두려웠을까요?
중간에 도망칠걸 하면서 후회했을까요?
무엇보다도 이 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입니다.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은 약속대로 바울과 그의 일행들을 지켜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해 바울은 깊이 감사했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돌아보며 앞으로 행하실 일들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때문에 바울에게는 또다른 특별한 일이 일어납니다.
보통 로마로 향하게 된 죄수들은 로마 황제의 근위병들에게 넘겨집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외입니다.
바울은 병사 한 사람만 대동한채 따로 지낼수 있도록 허락을 받습니다.
어떻게 이런 특권을 누릴수 있었을까요?
분명 백부장 율리오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바울을 로마까지 데려온 사람이 백부장 율리오입니다.
그는 그 험난한 여정에서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 경험했습니다.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낼수 있도록 바울이 얼마나 주도적으로 도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백부장은 로마황제의 근위대장에게 이야기를 잘했줬을 것입니다.
물론 바울이 죄가 없다는 점도 황제의 근위대장을 설득하는데 중요한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죄수들과 달리 바울은 이렇게 따로 지낼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 역시 신실하신 하나님이 베푸신 은총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란 우리에게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없는데요”
하나님의 약속을 특별한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만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인적인 꿈이나 환상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내 욕망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자신의 말씀인 성경에서 수많은 약속들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 대표적인 약속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며 가야할 길을 인도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한 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찾아옵니다.
고난이 필요한 이유는 내 힘을 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고난이 없으면 더 믿음이 좋을거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을 겪지 않는 사람의 믿음은 아직 테스트를 하지 않은 믿음 샘플에 불과할 뿐입니다.
고난 속에서 우리는 진짜 믿음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고난을 견딜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고난중에도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있습니다.
바울이 그 힘든 여정을 모두 이겨낼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엄청난 인내력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온전히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로마에서 어떻게 드러날까요?
17절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도착하자 3일후 유대인 지도자들을 불러 모읍니다.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고 자신이 왜 로마로 오게 되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의 율법을 거스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로마 사람들도 자신의 죄에 대한 근거를 찾지 못해 석방시키려 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를 막는 바람에 황제에게 상소하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을 고발하려고 자신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바울이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요?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이 바울에 대해 어떤 나쁜 소문을 냈을지 알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왜곡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울의 말에 유대인 지도자들은 바울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 더 들어보고 싶다고 전합니다.
바울이 내뱉은 한 단어때문입니다.
바로 20절의 ‘이스라엘의 소망’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렇게 쇠사슬에 묶여 로마로 오게 된 것은 모두 이스라엘의 소망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로마까지 오게 된 진짜 이유는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핍박 때문이 아닙니다.
바울이 살아남으려고 로마로 이동한게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이스라엘이 가진 어떤 소망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은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로마 황제에게 통치받고 있지만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라 믿었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다윗의 나라를 회복할 강력한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메시아일수가 없었습니다.
바울도 처음에는 그렇게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마스쿠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바울은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려온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로마까지 오게 된 것은 로마법정에 재판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에 이스라엘의 소망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지금 매여있는 것은 쇠사슬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소망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매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할 것들에 소망을 두곤 합니다.
누군가는 개인적인 성공이나 성취에 소망을 둡니다.
누군가는 사람이나 건강에 소망을 둡니다.
우리 삶에 필요하고 중요한 것들이지만 소망을 둘 대상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것들에 매여살다가 결국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년 전에 행복전도사라고 불리던 유명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방송에서 수많은 강연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파하며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방송에서 안 보이시더니 뉴스에 등장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동반 자살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참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유를 알고보니 행복해야 하는데 각 종 병으로 몸이 너무 아파 행복하지 않아 죽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멀쩡한 남편도 절망에 빠진 아내를 홀로 보낼수 없어 같이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소망을 진짜 둬야할 곳에 두지 않으면 결국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절망에 빠지지 않을 대상이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소망입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 분에 매여 사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예전에 말씀드린 로제타홀 선교사님을 생각해보십시오.
이 머나먼 미개했던 땅 조선에 와서 남편도 잃고 아이도 잃고, 제자도 잃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절망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죽음을 선택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절망에 빠지셨나요?
잠깐 절망하셨을지 모르지만 절망에 빠져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이런 소망을 매였기에 감옥에 있지만 절망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의 생각을 더 듣고 싶어 하자 바울은 날짜를 정해 또 찾아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날에는 더 많은 유대인들이 바울의 숙소를 찾아옵니다.
갑자기 감옥이 예배당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 왕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합니다.
바울은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의 말이 곧 메시아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임을 증명하며 그들을 설득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메시아의 증거라고 선포합니다.
늘 그렇듯 복음에 대한 반응은 둘로 갈립니다.
믿는 자도 있고 믿지 않는 자도 있습니다.
이런 반응에 대해 바울은 이사야서 6장 9-10절 말씀을 인용해 설명합니다.
이 인용의 요점은 어떻게 하여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졌는가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마음이 완악하여 눈과 귀가 닫혀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머리로 이해를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영적 무감각과 불순종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집사님이 저에게 여러번 질문하신 것도 이것입니다.
바울이 구약에 능통하고, 설명을 그렇게 잘하는데 왜 유대인들이 믿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게 이해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유대인들의 이런 불신앙때문에 결국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했기 때문에 새 이스라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새 이스라엘인 교회를 탄생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새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이제 바울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자기 숙소에 초청합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2년 동안 머물며 모든 사람들에게 담대히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바울의 작은 셋집이 하나님 나라 복음의 전초기지가 된 것입니다.
로마가 어떤 곳입니까?
로마제국의 심장부입니다.
황제를 우상숭배하며 돈과 권력이 밀집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 예수님을 선포합니다.
제국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반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바울의 작은 셋집에서 하나님 나라는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사람들 마음 속에 하나님 나라를 심어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훗날 하나님 나라가 로마제국을 집어 삼키게 됩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겨자씨, 누룩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바울이 자신의 셋집에서 심은게 바로 하나님 나라의 겨자씨, 누룩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사도행전을 마무리 합니다.
사도행전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책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어떻게 확장되어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1장 3절에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40일동안 가르치신 내용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이 끝나는 28장에서도 바울이 가르친 내용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로 시작해서 하나님 나라로 끝나는 책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특이한 것은 사도행전은 끝이 열린 결말입니다.
바울이 순교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한 것일까요?
아직도 하나님 나라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아닌 또다른 증인들을 통해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시작됩니다.
바울이 셋집에서 시작하였듯 우리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는 시작됩니다.
제국의 중심부 로마에서 하나님 나라의 반격을 시작한 바울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이 제국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 유일한 소망을 두며 그 분의 뜻을 이뤄나가기를 원하십니다.
나의 소망은 어디있는지 점검해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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