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의 적극성 2024 0630 레6: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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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레위기 6:24–30 (NKRV)
2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5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속죄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속죄제 제물은 지극히 거룩하니 여호와 앞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그 속죄제 제물을 잡을 것이요
26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 27 그 고기에 접촉하는 모든 자는 거룩할 것이며 그 피가 어떤 옷에든지 묻었으면 묻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빨 것이요
28 그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깨뜨릴 것이요 유기에 삶았으면 그 그릇을 닦고 물에 씻을 것이며 29 제사장인 남자는 모두 그것을 먹을지니 그것은 지극히 거룩하니라
30 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죄하게 한 속죄제 제물의 고기는 먹지 못할지니 불사를지니라

히스토리에와 게쉬히테

독일어는 '역사'를 두 개의 단어로 표기합니다. 히스토리에(Historie)와 게쉬히테(Geschichite).
먼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역사라는 영어 단어 'history'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히스토리아(historia)'에서 왔다. 어원이 의미하는 바는 '조사', '탐구'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에, 역사는 한마디로 '탐구에서 얻어진 지식'을 의미했다. 반면에 게쉬히테(Geschichite)라는 말은 '발생한다', '일어난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 '게쉐헨(geschehen)'에서 유래한 말로 '그 같은 일이나 사건에 관한 지식과 설명'을 의미한다. 그런데 게쉬히테(Geschichite)로 인한 구분은 역사의 의미를 단순하고 인과적 이해방식이 아닌 철학적 해석과 의미를 지닌 영역으로 승화시킨다. 정리하자면, 과거의 발생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탐구한 것이 히스토리에(Historie)라 한다면, 그것에 대한 실존적인 이해와 해석을 담아 재구성 한 것을 게쉬히테(Geschichite)라고 구분함으로써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의미를 깊게 사유케 한다.
벌어진 사건이 과거의 실제로서 히스토리에라면, 그것을 하나의 관점과 어떠한 해석지점을 가지고 바라볼 때는 그것이 게쉬히테가 된다는 것이다.
레위기의 제사법은 그런 의미에서 히스토리에로서의 사실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게쉬히테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겠다.
히스토리에로만 제사법을 본다면, 레위기에서 벌어지는 제사법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을 향한 외면적 종교행위이다. 물론 그 외면적 종교행위를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다. 예수님은 그 제사법의 절차처럼, 순전하고 흠없는(죄없는) 어린 양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희생당하셨고, 그의 피로 우리는 죄사함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레위기의 제사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외면적 언약의 행위이다. 모세 오경은 레위기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레위기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하나님과 관계 맺기 위해 행해야만 하는 율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양쪽으로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내용이, 그리고 가장 끝에 창세기와 신명기의 내용이 대칭을 이루고 있는 구조이다.

그러면 이러한 게쉬히테로서 레위기의 제사법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그것은 레위기의 제사법을 언약관계라는 해석지점을 갖고 이해하는 것이다.
오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즉, ‘이 땅 위에 형성되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언약은 단순한 약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은 하나님과 내가 관계없음에서 관계있음으로 확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로 상관없는 남녀가 결혼을 통해 부부가 된 것, 서로 상관없는 어른과 아이가 입양을 통해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되는 것 등 이렇게 서로 관계없음에서 관계있음으로 변화하게 하는 것이 언약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서로 쌍무계약인 것.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이 죄로 인해 서로 상관없음이 되었다가, 당신의 나라의 백성이 되기 위해 상관있음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받은 언약의 내용들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었는가?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이 언약의 내용을 어떻게 계속 유지할 것인가를 신경써야만 한다. 이 내용을 구약의 레위기는 제사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언약 관계를 매번의 제사가 아닌, 그리스도를 통해 단 한번의 제사로 언약관계를 이뤄냈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삶을 언약백성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신경쓰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서 매번 드리는 예배는 언약갱신 운동의 성격이 짙다. 언약을 갱신하고 회복하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온갖 더러움 속에서 살았던 우리가 주님 앞에 거룩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주 앞에 이 거룩의 상태를 추구해야 한다.

거룩의 적극성

또한 그렇게 된 우리는 거룩의 적극성을 가져야 하겠다.
Leviticus 6:18 NKRV
18 아론 자손의 남자는 모두 이를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서 대대로 그들의 영원한 소득이 됨이라 이를 만지는 자마다 거룩하리라
Leviticus 6:27 NKRV
27 그 고기에 접촉하는 모든 자는 거룩할 것이며 그 피가 어떤 옷에든지 묻었으면 묻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빨 것이요
오늘 본문 제사장들이 속죄제를 통해 지켜야할 내용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특별히 제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속죄제를 이야기 하면서 거룩의 전염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보통 거룩은 더러워질까 염려한다. 죄의 전염, 부정의 전염. 그래서 부정한 것을 진 밖으로 내쫓고 오염되면 반드시 씻어야 했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속죄 제물을 준비하며 만지게 되는 그 고기는 거룩하게 된다고 나온다.
세상 속에서 거룩이 오염되지 않기 위해 애썼던 우리는 주 앞에 나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제물되신 주님을 만지며 당신의 거룩이 우리에게 옮아오는 것을 누려야 한다. 이것이 거룩의 적극성이다. 거룩이 오염을 정복해버린다. 거룩이 전염되고 오염을 정복하는 경우는 많이 나타나지 않고 여기서 나온다. 신자의 삶이 두려워 벌벌 떠는 삶으로 끝나면 안 된다. 구원 받은 성도의 삶은 이 거룩의 적극성을 나타내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말씀하신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세상에 들어가 거룩의 적극성으로 무장되어 오염되고 타락한 그곳을 거룩으로 정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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