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26 새벽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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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6 새벽예배
본문 : 에베소서 5:18-21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오늘도 새벽을 깨워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님들의 심령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크신 은혜가 충만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에베소서는 옥중서신 중 하나로,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작성한 편지입니다. 이 에베소서는 바울이 그의 삶과, 선교의 여정 그 끝에서 기록한 서신으로, 신앙적 깊이와 통찰이 아주 깊은 서신 중 하나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선포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오늘 말씀을 함께 살펴보기 원하는데요. 오늘 본문 18절에서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 다함께 18절을 봉독합니다.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강력하게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선포하면서, 동시에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술 취하지 말라”입니다. 본문 18절을 헬라어 원문상으로 보면, 바울은 술 취함과 성령 충만함을 비교 대조하면서 설명을 합니다. 자, 술에 취한 것과 성령으로 충만한 것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다른 많은 비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바울은 술 취한 것과 성령 충만함을 비교한 것일까요. 바로, 술취함과 성령 충만함이라는 두 조건이 비슷한 경향성을 띄지만 확연한 변화를 일으키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통 술에 ‘취하다’라고 말할 때, 어떤 기운으로 인해 정신이 흐려지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알콜에 쩌들어서 인사불성인 상태가 되죠. 우리가 길거리 지나가다 술취한 사람을 보게 되면 완전히 술에 지배를 받아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범죄를 일으키는 등 방탕함으로 치닫는 일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절제하지 못해서 삶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성령에 취한다, 성령의 충만함은 무엇을 의미하냐면, 성령께 마음이 쏠려 완전히 사로잡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영향력과 능력 아래 있습니다. 인사불성인 상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따라 행동합니다. 알콜에 취한 사람은 알콜에 의해 만족감을 느끼지만, 성령 충만한 사람은 그 사랑 안에서 참기쁨과 자유함을 누리며 사는 것이죠.
바울은 본문 속 에베소 교인들이 진정 성령의 기쁨을 누리며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말씀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에 에베소 교인들의 삶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충만함이 아닌, 감정적인 기쁨을 얻기 위해서, 공허와 근심에서 해방되기 위해 술을 찾고 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면, 술에 취한 듯 살게 됩니다. 비단 술에 취하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술을 포함한 세상의 것들에 취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이 완전히 죽게 되는 것입니다.
18절에 ‘술’이라는 단어 대신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와닿는 문제들을 한번 넣어볼까요? 예를 들어, ‘돈’에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정욕’에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또 ‘염려’와 ‘근심’에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술 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 와닿는 수많은 것들에 취하고, 빠지게 될 때, 우리는 방탕한 삶, 죄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이 성령께 사로잡히지 않으면,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지 않으면 완전히 육신적인 것, 세상의 것에 빠져 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장 6절에서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에 일에 메이게 되고 결국 사망에 이른다 말하는 것이죠. 우리의 삶을 보게 되면, 하루라는 시간 안에서 육신의 것과 영적인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바울은 육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육을,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영을 따라 산다 말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무조건적으로 둘 중 하나를 택하며 살아갑니다. 육의 사람은 육적인 것에 취하고, 성령의 사람은 ‘성령’에 취하며 삽니다. 그런데 세상은,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를 육적인 것에 취하게 만들고 결국 우리를 사망으로 이끄려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단절시키려 합니다. 우리를 계속해서 옛사람을 따라 살게 만드는 것이죠.
우리가 아무리 예수님 만나고 거듭났다 하더라도, 오늘 하루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옛사람으로 돌아갑니다. 여러분,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3년동안 예수님과 함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듣고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성령 받지 못하니 예수님 십자가 달리실 때 다 도망갑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부활 후 자신들 앞에 나타나셨음에도, 부활의 주님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의심하고, 믿지 못하고 다시 고기 잡으러 떠난다 말합니다. 제자들이 간절하게 성령을 사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들이 성령 받지 못하면 또 옛 생활로, 옛사람으로 돌아갈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처지의 대한 절망감이 그들을 마가의 다락방에 모이게 했고, 갈급하게 성령을 사모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성질은 계속해서 성령과 반대되는 삶을 살려 합니다. 계속해서 옛사람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이것이 죄된 우리의 본성이죠. 죄의 종노릇하는 삶을 끊어내기 위해,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거할 수 있을까요? 바로, 전심을 다해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간절하고도 갈급한 마음으로 성령의 임재를 강력하게 사모하고 구해야합니다.
한 예로, 동물의 왕국과 같은 프로를 보면, 사슴이 강물에 내려가 물을 먹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강물 속에는 포식자인 악어가 숨어 있죠. 사슴은 악어가 물 속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물을 먹습니다. 왜일까요? 목이 마르기에, 갈증이 나기 때문입니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죽을 위기에 처해도 목을 내밀고 물을 먹습니다. 그만큼 너무나 갈급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세입니다. 성령은 목마른 자가 받습니다. 갈급한 영혼이 받습니다. 갈증이 나서 목숨을 내놓고 물을 찾는 사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강력하게 찾고 구하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갈급하게 목놓아 구하고 부르짖는 자가 성령을 받습니다. 성령에 취하기 위해선,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선 강력하게 사모하고 구해야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정말 갈급하게, 간절하게, 전심으로, 이렇게 간구하길 원합니다 “주님! 저, 성령에 취하지 못하면 세상의 것들에 취해 살아갑니다. 이 연약하고 무익한 나를 주님의 성령으로 충만케 채워부어 주시옵소서" 이토록 절박한 심정으로 구하시길 소원합니다. 우리가 목마른 마음으로 주님께 때쓰며, 온 힘 다해 기도할 때 주님께서 성령을 충만하게 보내주시리라 믿습니다. 이 기도 시간에 전에 없었던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함으로, 오늘 하루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 되길 소망합니다.
2. 성령 충만의 결과, ‘거룩’
두 번째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면 우리 삶에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는지에 대해 함께 조금 더 살펴보기 원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면 삶 속에서 전에 없었던 새로운 변화들이 나타납니다. 우울한 마음과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염려와 불안에 사로잡혔던 삶에서 벗어나 진리 안에서 자유케 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우리 삶 속에서 맺어집니다. 이처럼 다양한 변화들이 나타나지만, 성령으로 충만해졌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변화는 바로, 우리의 삶이 ‘거룩’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다함께 오늘 본문 19절을 함께 봉독해보겠습니다.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인해 우리 삶이 어떻게 거룩하게 변화되냐면, 첫 번째로 우리의 입이 거룩해집니다. 따라하겠습니다. ‘입의 거룩함’.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의 입이 거룩해집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언어의 습관이 변화됩니다. 오늘 19절을 보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라고 기록합니다. 시와 찬송, 신령한 노래들이 나오는 곳이 어디일까요? 바로 ‘입’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의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또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합니다. 여기서 화답한다는 것은 서로 말을 주고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대화 가운데서 신령한 노래, ‘영적인 말’을 주고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받기 전에 우리의 언어 습관을 한번 되돌아보면, 말이 경건하지 못할 때가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도 한번쯤을 경험해보셨겠지만, 우리가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우리의 언행이 다른 이를 비방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주로 ‘험담’하는 내용이 대화의 주제가 됩니다. “누가 이렇고 저렇고”, “저 사람은 이게 문제야” 등등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욕하고, 뒷담화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또, 삶 속에서 조금이라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지거나, 손해보는 일이 생기면, 상황에 신세한탄을 한다거나 한숨을 푹 쉬며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성령께서 임하시면 비방과 험담의 말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하게 됩니다.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는 말, 화해와 용서의 말, 축복의 말을 하게 됩니다. 또 삶 가운데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경배하는 찬양이 터져나오게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니, 말할 때마다 죄된 것을 말했던 입이,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입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마음이 거룩해집니다. 심령의 거룩함이 찾아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 가운데 찾아오서셔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시고 조정하십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부서를 개혁하기 위해 하는 일이 ‘구조조정’입니다. 기존의 틀을 다 부수고 싹 갈아 엎어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죠.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도 똑같습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들어오셔서, 심령의 구조조정을 거행하십니다. 우리 마음 속을 주장하고 있는 더러운 것들, 미움, 다툼, 시기와 질투, 음란과 교만 등 모든 마음을 싹 걷어내시고, 거룩을 추구하는 마음을 심어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한 마음을 품게하셔서 내가 어디에 있던지 무엇을 하든지,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며, 말씀을 따라 살게 만드십니다.
마지막으로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나타나는 거룩의 변화는 바로, ‘관계’의 거룩입니다. 우리 다함께 오늘 본문 21절을 함께 봉독합니다.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의 말이 거룩해지고, 심령이 거룩해지고, 그것들이 모여 총체적으로 삶의 모든 ‘관계’가 주님 안에서 거룩해집니다. 성령 충만함으로 인하여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어집니다. 21절에서 “피차 복종하라”는 말은 서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처럼 서로가 순종의 자세로 대하라! 말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관계의 거룩입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성령님이 오시고, 충만함이 임하면 내가 먼저 순종의 자세로, 섬김의 자세로 나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각과 뜻을 주장하고 관철시키려는 자세가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듯, 상대에게도 섬기는 마음으로 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사과하게 되고, 먼저 양보하게 됩니다. 서로 높아지려는 게 아닌 서로 낮아지고, 내가 이기려하기보단 먼저 져주는 삶을 살게 됩니다. 직장 속에서의 관계, 가정에서 부부 간에 관계, 자녀와의 관계 등 어떤 깨어진 관계이든지 간에 고칠 수 있는 상황과 환경을 열어주십니다. 상대방이 변하지 않더라도, 내 안에 성령이 임하셔서 은혜 주시니, 내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 사랑하고 용서하게 됩니다. 기쁜 마음으로 섬기게 됩니다. 그 결과, 관계 가운데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기 원합니다. 진정 여러분은 현재 성령으로 충만하십니까? 나의 말과 행동과 관계 가운데 거룩함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우리가 심각하게 점검해보아야합니다. 그리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삶 가운데서, 거룩을 쫓으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연약한 인간이기에 매일 실수하고 넘어지지만, 그럼에도 거룩의 삶을 포기하지 않기 원합니다.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성령님 의지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누가복음 11장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아멘!!?
바라기는 이 시간, 오늘 기도할 때에, 정말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해하는 것처럼, 간절하게 성령을 사모하기 원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주님 안에서 거룩을 쫓으며 살아갑시다. 완전히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나서, 우리의 심령과 말이 거룩해지고, 관계가 거룩해져서, 하나님 안에서 기뻐 찬양하고 감사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 1. 갈보리교회를 위해 갈보리교회가 은혜 충만, 성령 충만한 교회 되도록. 담임 목사님 영육간 강건함을 주셔서 말씀 전하실 때마다 생명의 말씀이 선포되게 하여주소서. 2. 부흥회를 위해 돌아오는 주일부터 부흥회가 시작됩니다. 강사로 오시는 최이우 목사님 성령의 충만함을 더하여 주셔서, 생명의 말씀이 선포되게 하시고 이번 부흥회를 통해, 우리의 삶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새롭게 변화되는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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