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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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보면 재밌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하박국은 무슨 국 이름 같고, 미가는 식당 이름 같습니다. 말라기도 하나님 싫어하는 건 하지 ‘말라’라는 뉘앙스를 주는 재밌는 이름입니다. 말라기서는 구약성경 맨 마지막 선지서입니다. 말라기는 ‘My/His messenger/내 사자’라는 뜻으로,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라고도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말라기의 ‘말’은 한자로 끝 말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 활동했던 선지자인지 확실히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라기를 잘 읽어보면 어떤 시대의 사람이었는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1) 1:8 ‘총독/Governor’이라는 직책을 언급한 것으로 봐서 페르시아가 이스라엘 땅을 통치하던 시기였던 것 같고, (2) 1:10 이후 성전과 제사장이 존재했던 것으로 봐서, 이 두 구절 만 봐도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로 있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 성전을 새로 짓고 난 어떤 시기에 활동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말라기서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있다가 다시 고향으로 옵니다. 그렇지만 페르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성전도 다시 지어졌긴 했지만 예전의 영광이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백성들이 낙심하고 , 낙심하다 보니 성전 예배도 형식적으로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애서의 백성들의 삶이 많이 무질서해졌습니다.
그래서 말라기서 주제가 오늘 본문이 되는 1:2-5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여전히 사랑하시고, 이 백성들과 맺으신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확인시켜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선지서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 이후로 하나님은 백성들의 하나님을 향한 명예, 존경, 신실함을 요구하시고, 말라기서 마지막 문장에서 주제의 결론을 선포합니다. 4: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킬 것이다. 돌이키지 아니하면, 내가 가서 이 땅에 저주를 내리겠다
말라기서를 비롯한 모든 선지서는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다는 의미는, 불편함이 가득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름 동안 우리가 말라기서를 공부하면서 불편함을 지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교회라는 언약공동체가 쇄신하는 시간 될 수 있길 바랍니다.
1절.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한글성경은 경고로 번역하는데, 원문은 신탁, 신의 계시를 뜻하는 oracle로 기록합니다. 이 하나님의 계시는 여러 목적이 있을 수 있겠지만, 선지서의 특징을 생각해본다면 경고의 성격이 강하기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해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더러는 위로와 평강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더러는 도전과 책망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말씀은 결코 가볍게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경고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백성들 때문에 혈압이 올라가신 상태라고도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런 경고의 말씀은 우리를 불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불편하다면 그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우리 안에 뭔가 회개할 것이 있고 깎여야 할 것이 있다는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편한 감정의 반응에서 끝나면 안됩니다. 감사와 찬송, 그리고 우리의 실질적인 회개라는 변화로 이어져야 합니다. 계3:19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너는 열심을 내어 노력하고, 회개하여라’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말숨이 되어 하나님 백성으로 합당하게 하나님과 영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이끄시겠다는 사랑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2절. 개정에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I have loved you. 지금 사랑한다가 아니라 사랑했다로 기록합니다. 왜 새번역은 사랑한다로 번역했을까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언약, 즉 변치 않는 헤세드 사랑이어서 아마 그렇게 번역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바로 그겁니다. 사랑한다는 언약의 언어입니다. 언약은 쉽게 말하면 영원한 사랑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이스라엘을 그렇게 언약 안에 두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전에도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시고, 앞으로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도 가끔 그런 의심이나 질문을 하지 않습니까?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시나요? 정말 나 사랑하는 하나님 맞으세요?’ 바벨론 포로로 있다가 후손들과 다 고향땅으로 돌아옵니다. 뭔가 새로운 날들이 올 것 만 같았는데 힘든건 똑같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느껴지질 않는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하나님께 서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일일이 다 리스트 만드셔서 보여주시면 얼마나 많을까요? 바다를 먹물 삼아도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 어떻게 기록합니까? 하나님은 이런저런 증거를 대지 않으십니다. 딱 한가지 만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어떻게 설명하십니까?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의 예만 들으십니다.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에서의 후손들은 나중에 에돔입니다. 선지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민족입니다. 이 민족은 망한 민족입니다. 4절 ‘비록 우리가 쓰러졌으나, 황폐한 곳을 다시 세우겠다’ 영영 황폐하게 되었고 재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을 사람이 어찌할 수 없습니다.
에서나 에돔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의 선택하심 즉 주권 때문입니다. 아까 사랑은 언약의 언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야곱을 사랑한다고 하신 것은 야곱을 언약의 관계로 선택했다는 말입니다. 또한 에서를 미워하셨다는 것은 에서를 언약의 관계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뺏은 야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의 후손들에게 복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언약을 거절했습니다. 자신의 장자권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에서가 언약의 관계로 선택받지 못했더라도 에돔은 악한 짓들을 너무 많이 했고, 그 악을 행함도 하나님께서 보신 것입니다. 멸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 여기서 한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복된 관계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착한 사람입니까? 뭔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일을 했기 때문에 장자권을 취득하여 언약 안에 있는 것입니까? 야곱이 사랑 받을 짓을 해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야곱과 에서는 둘 다 용서받지 못할 죄인입니다. 야곱은 엄마 치맛바람에 힘입어 장자권을 빼앗은 죄인입니다. 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을 언약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 바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사랑함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나 우리나 누구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기로 이유없이 작정하고 선택한 것입니다. 부모나 자녀나 친한 친구를 향한 거부할 수 없는 선택, 그냥 사랑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무엇을 해서 사랑이라는 상을 취득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을 때 받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곧 은혜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겠다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 그 약속은 은혜입니다. 은혜는 선물입니다. 선물을 주고받음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그 무조건적인 은혜를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롬 9:13에서 오늘 본문을 인용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 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에 관련하여 9:18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완악하게 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완악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전능하신 창조주의 마음입니다. 그 주권에 대하여 바울은 9:16에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며, 우리는 주권자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으로 결론하고 싶습니다.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구할 것은 은혜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의 무게는 얼마나 큰 것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큰 것이었습니다.
4절. 하나님을 주인과 왕으로 모시지 않으면 내가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해도 불안합니다. 실패와 낙심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부패된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5절.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은 이스라엘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이기 때문에 그 주권은 모든 나라와 민족, 백성, 방언 가운데서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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