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서기, 감사를 선택하기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5 views
Notes
Transcript
오늘 말씀에는
성경의 역사 안에서
가장 끔찍하다고 여겨졌던
질병 중 하나에 해당하는
‘나병’이 등장합니다.
나병은 쉽게 요약하자면,
살아있는 채로
몸이 썩어져가는 병입니다.
이 병이 계속 악화되면
손가락이나 발가락처럼
말단부가 썩어들어가기
시작하고,
몸의 각종 세포에서 부패가 일어나서
심각한 악취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런 나병환자 10명이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나눌겁니다.
그 당시에 나병환자에게는
몇 가지 지켜야할
규칙이 있었습니다.
첫째, 나병환자는
마을로부터 격리된 곳에서
혼자서
살아야했습니다.
사실 나병은
전염력이 굉장히 낮은
질병입니다.
심지어 나병에 대한
치료가 시작되는 순간
나병의 전염확률은
0퍼센트가 됩니다.
그런데 과거에
이 사실을 알 수가
없었을 뿐더러
치료법도 없었기 때문에
나병환자들은
격리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째, 찢어진 옷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코 밑 수염을 가려야 한다.
그 당시 사람들은
나병환자의 숨소리조차도,
그 숨결조차도
누군가를 오염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코 밑 수염을 가려야 했습니다.
조금 너무하죠?
셋째, “부정하다 부정하다” (I am 부정이에요)
외치고 다녀야 했습니다.
이 세 가지 조항을
모두 지키고 사는게
어렵지는 않았을겁니다.
그러나 이 모든 규칙들은
나병환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겨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삶이 너무나
피폐했을 겁니다.
힘들다는 말로 감히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을거에요.
그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
나병 환자들에 귀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들려옵니다.
하나님의 아들, 위대하신 분이
우리가 사는 동네 근처를
지나가신데!
그래서 나병환자 10명은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예수님을 맞이하러 나아갑니다.
그런데, 얼마나 치이고 데이고 살았는지,
그 절박한 순간에도
예수님께 말할때 멀찍이 떨어져서
큰 소리로 말합니다.
너무 가슴 아픈 상황 아닌가요?
삶이 그렇게나 처절하게 되면
앞뒤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고 매달려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몸이 기억하는거에요.
우리는 더러운 존재니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없어.
그리고 처절하게 소리높여
부르짖습니다.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우리의 병을 고쳐주세요.
우리 너무 아파요.
우리 몸이 너무 힘드니까
얼른 고쳐주세요가 아닙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영혼도,
갈기갈기 찢겨나가서
우리의 삶이
모두 무너져버렸습니다.
우리 좀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때 예수님의 대답이
조금 의아합니다.
14절 말씀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Luke 17:14 NKSV
예수께서는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깨끗해졌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몸 보여주면 됨ㅋ”
라고 말했을 때에는 나병이 나은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걸 의미해요.
이 병때문에 몸과 마음과 영혼이
온통 찢겨나갔는데
이 상태로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여주라고…?
우리를 더 엿멕이려는건가?
제가 나병환자라면
몹시 기분나빴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무런 삶의 희망조차 없었기에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어느정도의 약간의 믿음만을 가진채
제사장에게로 향합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자신들의 병이 나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와씨! 미쳤다!
야야야야 빨리빨리 뛰어!
제사장에게 몸만 보여주면 돼!
다들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제사장에게 돌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멈춰섰고,
생각이라는 걸 하기 시작합니다.
와…진짜 허무하다…
그렇게 안 낫던 병이
이렇게나 말끔하게 나았네?
미쳐버렸다 와....
그런데… 어떻게 된거지?
어디서부터 온거지?
이 병고침은 어디서 왔지?
밥 먹을때 좋은거 먹었나?
내가 착한 일을 한게 있나?
죽은 조상님들이 나를 고쳐주셨나?
걷기운동하다가 나았나?
뭔가 다 아닌 것 같은데…
라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느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이몸등장)
모든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한겁니다.
아! 그분이 하셨구나!
그분께서 우리를 고쳐주셨구나!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잖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우리를 도와주신거네!
그래서 냅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냅다 예수님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납작 엎드려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시죠.
열 사람이 깨끗해졌는데,
아홉은 어디있니?
역시나, 병을 낫게 해주신 분이
예수님이 맞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Luke 17:18 NKSV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 사람 한 명밖에 없느냐?”
그리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Luke 17:19 NKSV
그런 다음에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10명의 나병환자들은
모두 어느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이 한 사람에게만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단순하게 삶이 회복된 것을
뛰어넘어 영혼이
구원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누구나 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만져주심을
체험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감사하는 삶까지
나아가야만
진정한 삶의 회복이,
진정한 삶의 행복이
우리의 삶에 선물로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심지어 예수님께서
‘이 이방사람 하나 뿐이냐?’
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나머지 9명의 사람들은
유대사람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하나님께 감사할 생각도,
예수님께 감사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구원받지 못한 족속,
하등한 존재로써 여겨졌던
사마리아 사람은
감사를 통해 삶의 구원,
영혼의 구원을 받아
그 인생이 하나님 안에서
온전하게 회복이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비춰봅시다.
10명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을 만나
삶을 억누르고 있던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되고나니
자신들이 얻게 된 결과만 바라보며
내 눈 앞에 보이는 현상만 바라보며
취해있었어요.
와씨 다 나았다!
개꿀!
이거 제사장한테 보여주면 모든 게 끝이야!
그런데 단 한 명의
나병환자는,
유대인들에게 벌레취급을 받던
사마리아인은 생각했습니다.
이 결과가 당연한 것이 아닐텐데
무슨 과정이 있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삶에 일어난 아픔의 시간도,
기쁨의 시간도,
모두 당연한게 아닌걸 깨달은겁니다.
생각을 해보니
내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의심하며 제사장에게 가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 이전에
내가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 이전에
내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했다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질때,
내가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지 않았다면?
나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나에게 와닿았을까?
아니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감사할 것 투성이네?
세상에나
그래서 이 사마리아인은
제사장에게 달려가서
빨리 이 문제를 종결짓는 것이랑
예수님께 달려가서 감사를 하는 것이랑
두 가지의 선택의 기로에서
감사를 선택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매순간 무엇을
먼저 선택하는 사람인가요?
삶을 되돌아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선택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9명의 나병환자들처럼
앞만 보고 달리느라
하나님께 감사할 것도 찾지 못하고,
감사를 잊고,
아니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십니다.
바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고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해보는겁니다.
그리고 감사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앞만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은
절대로 알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놀라운 삶의 비밀이 담겨져있는 것이
멈춰서서 감사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삶의 문제 앞에서
혹은 삶의 문제가 딱히 없더라도
살아가는 모든 순간 속에서
누구나 하나님께 구하기만 한다면,
하나님 앞에 도움을 요청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도한다고
내 소원이 다 이루어지고,
즉시즉시 이루어지고
그런건 절대 아니에요.
그러나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간절하게 구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어떠한 형태로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반드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필요한 것만
낼름 받아먹고 살아가는 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뭔가를 받았다면
뭔가를 드리는게 당연한 도리죠?
기브앤 테이크가 뭔지는
모두 알잖아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도움과 필요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계약조건을 하나 들이미시는거에요.
내가 널 도와줄테니
너도 나에게 무언가를 줘라.
그런데
그 무언가는 다른 것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내가 널 도와줄테니
돈을 내놔라,
내 무거운 짐좀 들어줘라
노래를 한 곡 뽑아봐라!
춤 한 번 춰봐라
이런 계약조건을 들이미셨다면
하나님은 참 불공평한 분이실겁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재능과 삶의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잘 아시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그것이 감사에요.
감사는 여러분이 가진
재능에 따라서 잘하고 못하고가
결정되는게 아닙니다.
그냥 누구든지
감사하기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사람은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재능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가진 재능으로만
내 인생이 행복해진다면,
내 인생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인생 참 불공평할겁니다.
혹은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인정받는 분위기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잘난 재능을 주셨을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감사라고 하는
너무나 공평한 재능을 주셨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누군가만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이 세상을 창조하지 않으셨어요.
누구에게나 있는 능력으로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고 설계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진정으로 구원받은 삶,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는 삶,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김현승이라는 시인은
감사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어요.
감사하는 마음
그것은 곧 아는 마음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주인이 누구인지를
깊이 아는 마음이다 - 김현승
오늘 말씀에 등장한
사마리아인처럼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은
너무나 잘 합니다.
인생의 시련이 닥쳐오잖아요?
그러면 교회를 찾아옵니다.
그리고는 누구보다 간절하게
기도하고 부르짖어요.
그렇게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는데,
그걸 홀라당 까먹고
다시 교회를 떠나 자신의 삶에,
살아가는 현실에만 집중하며
다시 하나님을 잊고
앞만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 속에서
잠시 멈춰서서
삶을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삶에 허락하신
수많은 감사를 찾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만이
우리가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로써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줍니다.
진정으로 구원받은자만이
이 삶을,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1 Thessalonians 5:18 NKSV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잠시 멈춰서서,
모든 일에 감사를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