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문을 여는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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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991 설교준비
제 목: 축복을 이루어가는 섬김
본 문: 누가복음
찬 송: 누가복음 7:36-39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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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
흥부와 놀부라는 옛날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진)
흥부는 가난하지만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다리가 다친 제비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냥 둘 수 없어서 제비의 다친 다리를 정성껏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제비4는 흥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고,흥부에게 보물이 든 박이 자라는 씨앗을 보답으로 가져왔습니다. 흥부는 정성껏 농사를 지어 박에서 나온 보물로 인해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나쁜 마음을 갖고 사는 놀부는 배가 아팠습니다.
흥부가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듣습니다. 그리고 이미 부자였지만 더 부자가 되기 위해서 방법을 세웁니다.일부로 제비의 다리를 다치게 합니다. 그리고 흥부처럼 제비의 다리를 고쳐줍니다. 그리고 똑같이 제비가 ‘박씨’하나를 가져다 줍니다.그리고 씨앗을 정성껏 키웠는데 이번에는 보물이 아니라 거지패와 오물들이 튀어나와 놀부의 집을 약탈하고 엉망을 남겨놓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흥부는 착해서 복 받은 사람이고
놀부는 악해서 벌 받은 사람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조금 바꿔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착하고 나쁜 것을 섬김으로 바꿔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흥부는 올바른 섬김을 알고, 올바른 섬김을 실천해서 복 받은 사람입니다.
놀부는 올바른 섬김을 몰라서, 바르지 못한 섬김을 해서 벌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놀부가 복 받기 위해서는 올바른 섬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국민일보의 한 기사에 ‘어떤 목사님의 고백’이 제목으로 쓰인 기사입니다. (사진)
“예수가 보여준 진정한 순종과 섬김 알기까지 7년 걸렸네요”.
이분은 ‘박영열(56)’ 목사님으로 지난날 대중가수로서 “좋아좋아‘, ’인형의 꿈‘ 등으로 애중의 사랑을 받았던 ’나들‘이라는 그룹의 멤버였습니다. 2009년 목사님으로 안수를 받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다가 크리스천 기획사를 세우는 비전을 품고 가수 활동을 재개하며 7년간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의 과정에서 어느 순간 그 꿈이 우상이 되어버린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방법으로 간 게 아니라 내가 계획하고 주도해서 갔기 때문에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어려워졌어요. 제 비전이 잘못된 게 아니라그걸 이루는 방법이 잘못됐던 거예요. 내가 했던 순종이 사실은 진정한 순종이 아니었던 거죠“.
비전이 잘못된 것 아니라이루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주신이 주신 비전을 옳지만, 그것을 이루어가야 하는 순종과 섬김의 방법은 잘못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순종과 섬김을 우리는 배워야 계속해서 배워가야 함을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올바른 섬김과 순종을 깨닫고 박영열 목사님의 마음에 품었던 비전이조금씩 열리기 시작합니다. 풀리지 않던 그의 삶이 ’싱어게인‘, ’복면가왕‘, ’유 퀴즈 온 더 블록‘등에 섭외되고, 2016년 백석예술대 실용음악과 교수로 부임하게 됩니다.올바른 순종과 섬김은 그의 삶에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순종과 섬김을 배워가야 합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섬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올바른 섬김은 무엇일까요? 어떤 섬김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우리에게 주신 비전을 열어가게 하실까요?
귀한 것과 옳은 방식이 혼재됨.
1) 첫 번째 우리는 드려야 할 섬김은 문화적 섬김이어야 합니다.
따라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섬김은 / 문화적 섬김이어야 한다.
누가복음 36절과 44절을 보시겠습니다.
눅7: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눅7: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아멘.
예수님과 바리새인 시몬의 상황입니다.
43절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 자리로 초청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44절에 보면 ’시몬‘이라고 합니다. 시몬이 예수님을 초총하였는데, 44절.
44절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예수님께서 오셨는데 발 씻을 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당시는 문화적으로 손님을 초대했을 때 발 씻을 물을 내어오는 것이 문화입니다.
문화적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발 씻을 물“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나아가 부유한 가정에서는 종을 시켜 손님의 발을 씻게 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그 나라에서인정하는 문화적인 섬김입니다.우리가 이와 같은 문화적인 섬김을 하는 이유는 각각의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몬이라고 하는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식사 자리에 초대하고, 문화적으로 섬겨야 할 섬김을 하지 않습니다. 시몬은 자신들이 행해야 할 섬김의 문화를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초청했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각각의 다른 문화와 경험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문화적인 섬김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❶ 우리나라에서는 손바닥을 올리면 인사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자동차를 타다가 앞 차가 비켜 주었을 때 자동차의 경적을 울리며 감사를 표현하며 또 손을 들어 감사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에서는 손바닥을 들어서 올리면 모욕적인 표현이라고 합니다. ❷ 또 우리나라에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면 ”좋다, 최고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란에서는 심각한 욕이라고 합니다.
문화와 경험을 고려하지 않는 인사는 다른 곳에서는 심한 욕설과 모욕이 됩니다.
섬김에 관한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깁니다.
예배를 통해, 찬양을 통해, 기도를 통해, 헌신과 봉사를 통해 섬김입니다.
그런데 때론 우리의 섬김이 하나님을 불편하게 하는 섬김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옮기려는 다윗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역대상 13장 2절에서 3절 말씀입니다.
대상13:2 다윗이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좋게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와 또 초원이 딸린 성읍에 사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전령을 보내 그들을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대상13: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옮겨올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역대상 13장 3절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으니“라고 기록합니다. 사울 때에 하나님 앞에 묻지 아니하여 이스라엘이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따르고, 그분을 잘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고자 합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실어서 옮기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 방식은사무엘하 6장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옮긴 방식이었습니다. 그들이 수레에 옮겼듯이 다윗도 수레에 싫어 옮기고자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 아닌 세상 나라의 방식입니다.
그 결과 옮기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과정에서 수레에 실려 있다가 떨어지는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던 ’웃사‘가 하나님의 징계로 죽게 됩니다. 결국 다윗이 징계 받은 사건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섬김의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방식,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섬기지 않고,
세상 나라 방식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궤를 옮긴 이후에야 안전하게 옮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섬김을 이룬 것입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초청하고 ’발 씻을 물을 내오는” 문화적인 섬김조차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 모욕적인 섬김을 한 것입니다.예수님을 초청했지만 예수님으로부터 아무런 좋을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죄 지은 여인은자신의 눈물과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눈물과 향유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문화가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예수님을 감동시키는 섬김이었습니다.
그 결과 누가복음 7장 50절.
눅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예수님으로부터 구원과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섬김은문화적 섬김이 되어야 합니다.
아니 문화를 초월하여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섬김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으로부터 모든 좋은 것이 나옵니다.
문화를 고려하고, 문화를 초월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섬김을 함으로
주님으로부터 오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두 번째 우리의 섬김의 대상은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따라해 보겠습니다. 섬김의 대상은 / 예수님이어야 한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식사 자리로 초청했습니다.
보통 식사 자리에 초청하는 것은 상대방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섬긴은 온전한 섬김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 발 씻을 물 조차 드리지 않는 섬김이었습니다.
왜일까요?
예수님의 삶과 사역에 동의하지 않는 섬김이었기 때문입니다.
39절을 보시면.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죄인인 여자가 예수님을 만지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 시몬이 한 생각입니다.
“그가 만일 선지자이면 이 여자가 누구인지, 죄인인지 알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진짜 선지자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5:17 참조)은 이전에 여러분 번(5:17, 21, 30, 33, 6:2, 7) 언급되었는데, 그때마다 예수님께 적대적인 인물로 등장했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눅5:2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눅5:30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눅6: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눅6: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이때 예수님을 초청한 바리새인에 대해 주석에서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어떤 식으로든 예수님을 속이기 위해서 만찬에 초대했습니다”
예수님을 섬김의 목적, 섬김의 대상으로 초대한 섬김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의와 자기 목적을 위한 초청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섬김은 마음을 다한 섬김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죄지은은 여인의 섬김은 모든 섬김의 목적과 방향성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만 섬김의 대상이었습니다.누가복음 7장 37절과 38절이요.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향유를 담은 옥합, 그 발곁에서서 울고,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며 향유를 부었습니다. 모든 섬김이 마음을 다한 섬김이요. 예수님을 향한 섬김입니다.
문화적 요구를 초월하고 넘어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섬김입니다.
그 여인의 눈물을 어떤 주석에서는 “회개와 감사의 눈물이었다”기록합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와 감격함으로 드리는 섬김입니다.
예수님을 전적으로 동의한 섬김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넘치도록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 섬김은 주변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 27절에 기록합니다.
마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성경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주님을 위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작은 자를 넘어 목회자로 이어져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6절에 기록합니다.
갈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모든 좋은 것을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함께하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왜 일까요? 성경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을 동의하지 않는 바리새인 시몬은 온전한 섬김이 없는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사역이 의심의 요소가 되었습니다.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으로 어떤 은혜도 공급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초청하고서도 은혜는 죄 지은 여인이 받게 됩니다.
그런데 죄 지은 여인은 예수님을 동의할 뿐 아니라 삶 전부로 예수님을 동의했습니다.
예수님은 전 삶으로 섬겼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말씀과 그분의 사역은 그 여인의 평안케 했고,
구원에 이르게 했습니다.
목회자에 대한 동의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말씀을 맡은 자, 말씀을 가르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다’라는 단어의 원어의 의미는 “알리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을 알려주고, 하나님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믿음의 길을 알려주는 자입니다.
목회자를 섬기고 동의한다면 그 말씀을 통해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축복의 길을 걸어갑니다.
미국의 최대 부자 록펠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성공 비결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지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지혜를 얻게 한 분은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록펠러의 어머니 엘리자는 유언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10가지 중 맨 위 중요한 두 가지만 소개개 드리겠습니다. 인터넷 CTS 기사에 올라온 글입니다.
1) 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지만 더 중요한 공급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목사님과 좋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 복된 길이기 때문이다.
3)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그려라.
4)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5) 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마라.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7)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8) 아침에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10) 예배 시간에 항상 앞에 앉으라.
10가지 중 77가지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면 나머지 3가지는 인간을 어떻게 섬기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섬기는 것 다음 수순에 목회자에 대한 유언을 합니다.왜냐하면 목사님과 좋은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 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3. 결론
그렇다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섬김은 어떠해야 겠습니까?
문화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섬김이 되어야 합니다.
섬김의 대상은 오로지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섬김은 주변으로 그리고 목회자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부유함과 축복을 누리는 길이이 때문입니다.
올바른 섬김,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섬김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문들이 열려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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