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서 희망을 선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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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이시간 다함께 묵상기도 드리심으로 6월 28일 금요일 새벽예배를 하나님앞에 올려드리겠습니다.
-찬송가 413장 413장 찬송하겠습니다.
-아멘
-함께보실말씀은 행27:21-26 말씀입니다.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감사기도,1년, 1달, 날마다, 공동체위한기도, 교회, 목사님, 사역, 능력, 큰일, 생명,
예물, 예물의 쓰임, 말씀에 대한 기도)
-하루의 평안을 구하는 말들
오늘도 새벽을 깨워 기도의 자리를 찾으신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서론
-예화
여러분 절망중에 처하길 바라십니까? 아니면 희망중에 있길 원하십니까? 아마도 여기모인 모든 성도님들중 단 한분도 나는 절망중에 처하길 바래! 라고 하시는 분들은 없으실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절망이라는 것은 바라볼것이 없게되는 상태 또 희망이 없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절망가운데 처하게 되면 자기 삶을 포기하거나, 또는 비극적인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더이상 살 이유가 없다 하면서 더 부정적이며, 더 어두운 생각을 하게 되고 그 결과가 바로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절망이라는 늪에 많이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이 없기때문이 아니고, 세상이 바로 그러한 곳이기때문에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세상에서 희망을 발견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문제제기
오늘말씀은 바울이 유라굴라광풍을 만나 파선하는 장면에서 절망에 빠진 영혼들에게 선상설교하는 장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처럼 오래동안 먹지 못해서 주려있었습니다. 힘도 빠지고, 이제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바울이 나서서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시작은 이러합니다. ‘여러분 내가 그레데에서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일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걔중에는 이 마당에 왜 저런 말을 하는거야? 배고파 죽겠는데 누구 약올리나! 라는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이러한 말은 이제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바울이 이전에 그레데에서 말했을 때에는 바울을 무시하고 그가 하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만은 꼭 자신이 하는 말을 들어달라는 것이죠. 저들을 향한 강한 사랑과 긍휼의 긍휼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안심하라 그저 배만 손상을 입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절망중에 희망을 선포하였습니다.
목숨을 잃게 될 상황에 처한 자들에게 배만 손상을 입게 될것이다. 너희 목숨은 전혀 이상이 없을 것이다는 말은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입니까? 인생의 기로에 서있는 사람에게는 이처럼 위로가 되는 말이 없을 것입니다.
세상은 절망적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빛이 보이지 않죠. 바울과 같이 있었던 자들도 그러합니다. 빛이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바울과 같이 절망에서 희망을 외칠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이제 그 말을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라는 선택의 기로에 있게 됩니다. 믿으면 희망이 펼쳐질수도 있는 그러한 부분이 있고, 또 믿지않으면 영원히 절망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처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듭니다. 그래서 선택하게 하는 것이죠. 오늘날 우리는 복음을 선택하면서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당시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과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 사이에서의 선택이었습니다.
포세이돈은 세상의 신입니다. 저들이 알고있는 그러한 바다의 신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천하만물을 지으시고 오늘날까지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는 신입니다. 그 선택을 저들에게 뭍고 있는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은 당연 하나님이겠죠.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쉬운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했던 방식을 버리기란 쉽지 않는 문제입니다.
바울은 저들에게 설교하며 그가 본 지난밤의 환상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아 두려워말라 너는 가이사 앞에 서야한다. 그리고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노라. “나는 이러한 말씀을 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하신대로 분명 우리는 섬에 당도하게 될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는곳마다 함께하셨습니다!
아마, 그 메세지를 듣고 난 반응은 크게 두가지였을것입니다. 그 말씀을 믿으며 신뢰하여 희망을 품게된 사람들, 하지만 여전히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절망가운데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바울의 선상설교 이후에 나타나죠.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절망가운데 있던 자들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저들은 나만살고보자라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배에서 도망하고자 하여 작은 배를 내려 자기들을 구원하고자 하죠. 또 배가 파선하게 되자 죄인들이 도망갈까봐 그들을 죽이자는 의견을 냅니다. 생의 비참한 가운데 있던 자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라는 것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속하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나만살고보자하는 그러한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또 이러한 방식은 의심할 필요없이 세상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반면에 믿으며 신뢰하며 희망을 품게된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바울의 설교가운데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것이죠. ‘바울의 하나님이 배 출발전에 이와 같이 어려움에 처할것을 말씀하였고 그대로 되어진것으로 볼때, 바울이 말한 환상도 이루실 것이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말대로 되어지는 모든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 그뿐입니까? 기적의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것이죠. 모든 것이 드라마가 되어 저들에게 다가오게 됨을 경험했을것입니다.
물 깊이를 재려고 바다로 줄을 내려 그 깊이를 관측합니다. 그런데 깊이가 줄어듭니다. 조금더 가니 더 줄어듭니다. 육지가 가까워지는구나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또 배를 타고 나만 살자하고 도망하려 했던 자들에게 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너희가 배에있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지 못할것이다. 줄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사건과 같이 저들은 운명공동체가 되어 그곳에 있게됩니다. 저들의 생각과 행동은 이미 강하게 하나님을 체험한 모습입니다.
또 이제 마지막까지 비축해놓은 식량을 소비합니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아꼈지만, 이제는 육지로 나아가기전에 음식을 먹고 힘을 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뒤에오는 음식을 나누는 장면을 보고 오병이어, 마지막만찬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석들도 이러한 관점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더라고요. 거기에서 성례라는 것이 있지는 않았지만, 오병이어사건과 같이 그런 기적을 소망하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만찬과 같이 그 이후에 구원역사가 있듯, 바울이 저들에게 음식먹기를 권합니다. 아마 그곳에 있던 일부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예수님께서 나눠주시던 그 만찬을 오병이어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안심하였겠죠.
결과적으로,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276명이었고, 믿음의 말을 한 사람들에 의해 저들은 배에 있고 먹고 마시며 함께 있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교회가 바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것을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물론 복음을 전파하면 바울이 그토록 애걸복걸하면서 하더라도 듣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것처럼 때로는 우리의 그들을 향한 마음이 무시될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끊임없이 그들에게 선포하였고, 그 결과 그들은 운명공동체가 되어, 배로부터 도망하지 않고, 음식을 먹고, 결국 육지에 당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는 끊임없이 절망에서 희망을 선포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저들이 듣든지 아니듣든지, 몇사람이 듣고, 또 그로인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른것처럼 선포하며 나아갈때 하나님께서는 저들에 입에서 나오는 말로서 구원을 이루고, 희망을 허락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전에는 절망가운데 있던자들이었습니다. 세상사람들과 전혀 다를바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전해주는 말을 듣고 저희도 구원의 배에 탑승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리할 차례입니다. 내게 베풀어 주신 사랑에 감사하여 그 사랑으로 또다른 자들을 향해 섬기며 나아가야 할것입니다.
오늘 기도하실때 하나님 나를 통하여, 이런 구원의 일들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세상에서 절망속에 살아가는 자들에게 희망을 선포하며, 저들의 인생의 갈림길에서 옳은 선택을 함으로 구원받는 인생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또 그와 동시에 나에게는 더 강한 믿음과 역사주셔서 하나님의 도구로 귀히 쓰임받게 해달라고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결단기도
-주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