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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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7:7-12; 6:25-34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사랑하는 새순교회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살필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비록 제가 여러분보다도 많이 부족할 수도, 연약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자리에 저를 세우셔서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사랑과 영광만이 이 자리에서 선포되길 바랍니다.
서론
모든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돈을 많이 벌길 원하고, 누군가는 건강하길 원합니다. 이 밖에도 사람은 항상 마음 속에 원하는 것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자신의 간구를 올려드립니다. 오늘은 기도와 간구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함께 살펴볼텐데요.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하시는 말씀인 산상수훈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 산상수훈에서 주님께서는 기도에 대하여 뭐라고 가르쳐주시는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먼저 예수님께서는 7절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7절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쉽게 말해 “하나님께 구하면 너희에게 주시고, 하나님으로부터 찾으면 너희가 찾아낼 수 있고, 너희가 문을 두드리면 그 문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기도하라”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7절은 하나님은 귀를 닫고 계실 때가 있어 기도를 들으실 때가 있고, 안 들으실 때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언제나 기도를 들으신다는 확실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이 세 가지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이것은 기도할 때 구하는 기도, 찾는 기도, 두드리는 기도라는 세 가지 기도 방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29:13 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바로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구하고 찾으면 기꺼이 만나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온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예수님의 말씀은 기도하는 사람을 언제든 만나주신다는 것은 구약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많은 구절들이 있지만, 방금 살펴본 예레미야와 이사야 30:19이 있습니다.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또한 구하는 자에게 그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구약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자녀를 하나님께 구한 한나의 기도에서 나타납니다. 사무엘상 1:27 입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이처럼 구약에서부터 가르치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언제나 듣고 계시는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하여 기도함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요? 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까요? 8절에서 예수님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8절은 한글 성경에는 나와있진 않지만,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바로 “왜냐하면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기 때문이”기에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입니다. 구하면 받고, 찾으면 찾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토록 기도를 강조하고 계시는 걸까요? 그 이유는 본문에서는 직접적으로 나타나진 않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회중, 더 나아가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기도 자체를 안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토록 기도에 대해서 강조하시면서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언제나 들으시며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온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라. 구약에서 가르치지 않느냐.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는 찾게 하시고,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어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니 너희는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기도할 것을 명령하시고 권면하고 계십니다. 야고보서에서도 야고보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에게 기도하길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언제나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시고,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리의 기도 생활은 어떻습니까? 혹시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를 안 하고 있진 않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데, 우리에게 기도는 저 뒷전에 있지는 않습니까? 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기도생활을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헤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의 중요성을 더욱 일깨워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때 받는 유익을 말씀하시기 시작하십니다. 그 내용이 9-11절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기도를 하나님과 우리의 어떤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설명하시는데요. 그 관계는 바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겁니다. 9-10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회중들이 기도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들의 경험을 토대로 말씀하십니다. 이미 부모인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경험적인 설명을 하십니다. 먼저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겠느냐?”라고 하십니다. 떡, 즉 빵은 모든 먹을 것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떡이나 빵을 먹는 이유는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먹습니다. 먹을 것을 먹음으로 에너지를 얻고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그에 비해 돌은 어떻습니까? 돌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너 돌 먹어”하면서 줄리가 전혀 없습니다. 세상에 어떤 아버지가 자신의 자녀에게 빵대신 돌을 주겠습니까? 이것이 예수님이 하고자 하시는 말씀입니다.
10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생선은 장어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장어와 뱀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선 대신 자녀의 생명을 해치는 뱀을 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를 통하여 아들이 구하는 것 대신에 아들의 생명을 해치는 것을 주지 않는 아버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11절과 같은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11절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바로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악한 자를 언급하시면서 아무리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늘에 계신 선하신 아버지께서는 그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라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받는 유익입니다.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빵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지 않으십니다.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주지 않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선하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자, 이처럼 하나님은 기도하며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기까지 여러분이 들었을 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고신 교회는 분명히 기복주의 신앙은 나쁜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시는 기복주의를 말하고 있는건가?”라는 반응이고, 둘째는 “오.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고? 너무 좋은데?”라는 반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을 우리가 읽었을 때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기도하는대로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신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합니다. 그런 것은 아니니 제 말을 끝까지 들어봐주시길 바랍니다.
일단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다 이뤄주신다.”라는 결론으로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그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만일 우리가 말하는대로 이뤄진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신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됩니다. 그렇지 않나요? 하나님은 생각하고 말씀하시는대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내가 기도하는대로 다 이뤄진다면 내가 곧 하나님이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오직 유일한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하나님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이 가르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지만,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 지음받은 피조물이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즉 우리는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대로 이뤄져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가지실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다 이뤄주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요술램프 지니가 아니시며, 내가 원하는대로 뽑아먹는 자판기도 아니십니다.
다음 두 번째 이유는, 여러분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다 이뤄주시길 원하지 않는다는겁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내가 기도하는대로 다 이뤄지면 좋은 것이 아닌가요? 근데 왜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을까요? 잘 들어보십시오. 만일 어떤 사람이 기도하는대로 다 이뤄지는 능력이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누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러시아를 위해서 기도하세요.” 또 다른 사람은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하세요.” 또 다른 사람은 “미국을 위해 기도하세요”, “중국을 위해 기도하세요.”라고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기도할 것을 요청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이것을 위해 기도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저는 세상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이처럼 만일 여러분이 원하지 않는 것을 누군가가 이 사람에게 기도할 것을 요청했다면 여러분이 그것이 이루어지길 바라실까요? 더 나아가 원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일어나서도 안되는 것을 요청했다면 그것이 이루어지길 우리는 바랄까요? 우리는 결코 바라지 않을 겁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이 절대로 이루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응답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하는대로 이뤄지는 능력이 있다면 누군가가 우리를 죽이려고 할 수도 있겠죠. 만일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는 순간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누군가가 우리를 죽이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면 다 이뤄주신다.”라는 것이 하나님만이 오직 하나님이 되셔야 하기에 우리가 기도하는대로 이뤄져서는 안되고, 오늘 본문의 의미가 그런 뜻이기를 우리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의도하신 오늘 본문의 의미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조금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버지가 되고 우리에게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주겠습니까? 아뇨, 돌을 주지 않을 겁니다. 만약 생선이나 고기를 달라고 하면 뱀을 주겠습니까? 아뇨, 뱀을 주지 않을 겁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질문 하지 않나요? “만약 아이가 뱀을 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러한 질문에 오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명확하게 답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절대 자녀에게 주시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아버지는 뱀을 그것도 독이 있는 뱀을 3살, 5살짜리 아이에게 절대로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리가 절대 없습니다. 아무리 아이가 애완동물 가게에 가서 뱀을 달라고 울면서 애원하고 뗴쓴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저거 손으로 잡아봐도 돼요?”, “방울뱀을 잡아봐도 돼요?”, “뱀이 귀여운 소리를 내요.”, “뱀의 이빨이 이뻐 보여요.”라고 말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반응은 무엇일까요?
또 다른 예화로 제가 자주 쓰는 예화가 있는데요. 요리를 하다가 아이가 엄마가 쓰고 있는 칼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칼이 굉장히 재밌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칼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럴 때 엄마의 반응은 무엇이겠습니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시겠죠.
“넌 이해하지 못해. 넌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저건 너에게 굉장히 위험해서 절대로 너에게 절대 줄 수 없어. 저것을 너에게 주지 않는 것은 널 사랑하기 때문이야.”
부모는 자신의 아이에게 해가 되고 다치는 것을 절대로 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아이가 요청하고 떼쓰고 울고불고 한다더라도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나쁘고 해로운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궁극적으로 해롭게 하는 것을 말입니다. 아무리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시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믿음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병이 낫기를 기도했습니다. 직업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결혼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안 주시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한계까지 시험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왜 안주시지 날 사랑하시지 않는건가?”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는 성경 모든 곳에서 얻은 가르침은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자녀에게 좋은 것만을 주십니다.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일지라도 말입니다. 대표적으로 다윗의 기도에서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후에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다윗의 아이가 반드시 죽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하 12장에서 다윗의 아이가 병고에 시달립니다. 이때 다윗은 이 아이를 위하여 금식하면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지만 다윗의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예고하신대로 이레 만에 이 다윗의 아이는 죽습니다. 이때 다윗의 신하들은 아이가 죽은 것을 다윗에게 말하기를 꺼려합니다. 왜냐하면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는 다윗을 말려보았지만 다윗이 듣지 않았기에 아이가 죽은 것을 알렸을 때 큰 상심에 다윗이 빠질까봐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눈치를 채서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신하에게 사실을 확인합니다. 신하들의 예상대로라면 다윗은 큰 상심에 빠져야 합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다윗은 오히려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 성소로 들어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음식을 먹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은 “왕께서 아이가 살아있을 때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식사하시니 어찌된 것입니까?”라며 의구심으로 다윗에게 질문하자, 다윗은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지 혹시 알겠느냐.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겠느냐. 내가 아이를 살릴 수 있겠느냐.”라고 대답합니다. 바로 자신이 기도한대로 하나님께서 이뤄주시진 않았으나 그 하나님의 결정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진 것이 나에게 해로운 것이 아니라 좋은 것임을 다윗은 믿은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다 이뤄주시지 않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예수님은 앞장인 6장에서 더 자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우리가 읽은 6장 25-34절입니다. 이 본문은 두 단어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염려”와 “신뢰”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염려하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5절입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예수님은 물질적 필요를 위해 염려하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염려하지 않아도 되고, 염려할 필요도 없으며, 심지어 염려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26절부터 말씀하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경험할 수 있는 자연 환경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기르시지 않느냐?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다.” 바로 “새들도 하나님께서 기르시는데, 새보다 귀한 너희는 그보다 더 잘 지켜주시지 않겠느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주시에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또 27절에서는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무리 염려한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키”는 우리 신체의 신장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단어의 다른 뜻으로는 “수명”이라는 뜻이 있고 문맥상 “수명”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다시 말해 수명을 연장하는 것을 뜻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경험적으로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걱정하면서 “내가 어떻게하면 오래 살지”라고 염려하더라도 우리의 수명을 우리의 뜻대로 늘리지 못합니다.
이렇게 염려에 대해서 말씀하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염려하는 것이 얼마나 좋지 않은 것인지를 더 잘 이해시켜주시기 위해 가장 극단의 비유로 말씀하시기까지 합니다. 28-30절이 그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들의 백합화는 오늘 있다가 내일 사라지는 존재입니다. 들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화려함을 자랑하여 스바 여왕이 찾아왔을 때에도 그 화려함에 경탄했던 솔로몬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존재인 들꽃보다 못하다는 겁니다. 순식간에 아주 비천한 종말을 맞게 될 운명인 존재가 솔로몬의 아름다움보다 더 낫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30절처럼 “오늘 있따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는데, 이 들풀보다 귀중한 너희는 얼마나 더 잘 보살펴주시겠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지금 예수님이 하고 싶으신 말씀은 하나님을 “신뢰”해라 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좋은 것으로 보살펴 주실테니 그분을 신뢰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꾸짖으십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31절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께서는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기도하면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신 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34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내일 일을 미리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고 내일을 준비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내일에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지나치게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왜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시고 지키시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내가 원하고 생각했던 것을 받을 수도 있지만,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꼐서 우리의 기도를 거절로 응답하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히시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것과 바라는 것을 들어주시지 않을 때 자꾸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속삭입니다. “하나님이 널 사랑하셔? 근데 봐봐. 사랑하시면 너가 원하는 것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니야? 근데 왜 안 주셔? 너에게 안 주시는 것은 널 사랑하시지 않아서야. 하나님은 널 사랑하시지 않아.”라고 말입니다.
똑같은 방법으로 사탄은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범죄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들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열매를 원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거절하셨을 때 이제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 폭력적인 아버지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열매를 주시지 않은 것인데도 아담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이러한 아담의 범죄로부터 시작된 인류의 마음에는 항상 이런 마음이 깔려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는 하나님은 날 사랑하지 않는 폭력적인 아버지이시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류이신 예수님은 다르셨습니다. 그분은 마태복음 4장에서 사탄에게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널 사랑하신다면 돌로 떡이 되게 하실거고, 높은 곳에 뛰어내려도 천사를 시키셔서 널 다치지 않게 하실거야.”라고 예수님을 시험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아담의 전철을 결코 밟지 않으시고 그 시험을 이겨내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셨습니다. 또한 지금은 40일동안 굶주리셨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미 보호하고 계시기에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일치된 기도를 하셨고 구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도의 표본이요. 진정한 모범이십니다. 그러나 이런 주님께서도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구하신 것을 거절당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내려지는 십자가를 피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지 않아서 하나님은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데 매일 염려하고 걱정하는 믿음이 작은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기도를 거절하신 것은 우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거절하셨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인 하나님 자신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께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뢰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의 기도마저도 거절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언제나 채우십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하나님을 신뢰하시면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시길 바랍니다.
삶의 어려운 순간 속에 있으신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제발 들어주셨으면 좋겠는데, 응답하시지 않고 거절하시는 상황 속에 놓인 분이 계십니까? 그럴 때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기 때문에 거절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지금은 당장 이해되지 않더라도 나중에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아,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거절하셔서 다행이다.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참 감사합니다. 내 뜻대로 안되고 하나님 뜻대로 된 것이 참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7장 12절처럼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여 가장 좋은 것을 타인에게 베푸는 우리가 될 겁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나타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기도하시겠습니다.
이 시간 함께 말씀을 두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기도제목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 모두 하나님께서 이뤄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실 때가 있습니다. 또한 지금은 주시지 않더라도 나중에 주실 때가 있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하시는 것을 우리가 이해되지 않더라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셔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시고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그리하신다는 것을 신뢰하며 우리의 필요를 항상 채우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신뢰하며, 날마다 이 신뢰 가운데 기도하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 시간 오늘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